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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2.23.화요일


연애불패 낡은듯닳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사촌 동생이 스무살이 되었다. 이제서야 드디어. 같이 술 마실수 있는 사촌 동생이 생겼다. 새해가 밝고 "언니 술사주세요"라는 당당한 문자에 득달같이 달려나갔더니 화장을 하고 파마를 한 낯선 사촌동생이 내 앞에 있었다. 먹고싶은 것을 묻는 내게 동생은 "소주"라고 말했고 우린 적당한 술집으로 자리를 잡았다.


 


시간이 흘러 얘기가 무르익던중.


남자이야길 풀어놓는 그애를 보다가 문득 궁금해졌다.그래서 물어보았다.


 


"몇번째 남자친구니?"


"열번째쯤..?"


 


열명.... 열명? .... 응?


 


열명이라함은,


'만났던 남자'를 말하는 것인가.


아니면 '사귀었 던 남자'를 말하는 것인가.


아니면 '같이 잔 남자'를 말하는 것인가.


 


분명 내 기준과 다르다.


스무살이 말하는 남자의 숫자 열명은 과연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이십대 중반이 넘은 여자들은 보통 사귄 남자의 숫자를 밝히기를 꺼린다. 나이가 들수록 "사귄다"는 표현을 갖다 붙이지 않는다. 그저 '만나는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그도 아닌경우 '아는 남자' 정도로 둘러 말한다. 그 남자랑 같이 잠을 자는 사이라고 하더라도 쉽게 "사귄다"는 표현을 꺼내들진 않는다.


 


내 기억에 의하면 이십대 중반의 나는 과거 사귄 남자가 다섯명이었지만,


몇년이 흐른 지금은 세명이다. 그들을 없는 존재로 지웠기 때문이거나,그 사랑을 부인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시간이 지나보니 '남자친구'라는 표현을 붙여주기엔, 혹은'사랑'이라는 표현을 갖다붙이기엔 그 표현이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분명 그들과의 그 시간과 추억은 고스란히 내게 뼈가 되고 살이 되었지만


그들에게 '사랑'이라는 표현은 아무래도 좀 과분한 감이 있다. 시간을 거울삼아 반추해보니 그렇다.


 


나는 그런 그들을 '만났던 남자'로 분류한다. 아 물론, 같이 잤던 남자는 그의 몇배는 되겠지만 그들은 '알던 남자'일 뿐이다. 대부분의 여자들이 이와 다르지 않다.(고 확신 할수 있다.) 


 


그들의 분류를 사귄 시간이나 주변 오픈 정도의 여하로 구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 핵심은 그와 내가 주고받았던 감정의 농밀함과 현재까지 미치고있는 파급력이다. 이별의 방법이나 경위와는 상관 없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내가 첫사랑이라고 말하는(혹은 우기는;;) 내 첫사랑의 경우 나에게 이년동안 고문에 가까운 수준의 상실감을 안겨줬지만 십여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그 기억을 낄낄 거리고 조롱할 수 있을 만큼 편한 관계로 지내고있고,


사랑과 사람, 일 거의 모든 부분에 있어 대화할 수 있는 유일한 이성이 되어있다.


 


그는 내게 변함없이 첫사랑이고 미친듯이 사랑할 수 있었던, 지금 생각해보면 존재함이 다행스러운 사람이다. 그와 헤어진 이후 나는 다행이 모든 걸 주지 않는 사랑을 배웠고, 조금은 영악해졌지만 그가 내가 사랑했던 사람인 건 변함 없다.그렇다. 그는 내 "전 남자친구"이다. 셋중의 첫번째 주자.


  


'만났던 남자'는 "옛 사랑 혹은 옛 남친"과 다르다. 그들과도 농밀한 시간을 아니보냈던 것은 아닐 것이다. 같이 밥도 먹고 영화도 보고 잠도 자고 아침에 일어나 서로의 단내를 싫은 기색없이 핥아가며 모닝 키스를 하기도 했으나,사랑이라 부르기엔 부족한.


 



 


헤어질때 추한꼴을 보였든 아니든,내게 상처를 줬든 아니든,그들은 내 마음을 바쳐 사랑하게 만들지 못했던. "여운"을 남지기 못한 사람들이다.


 


이십대 후반의 여자들끼리 모여 대화를 할 때 '남자친구'와 '만나는 남자'는 엄연히 다른 그룹으로 분류 되는걸 종종 목격할 수 있다. 현재진행형에서 부터 "만나는 남자"로 분류 되는 남자들의 대부분은 그 관계가 끝나고 시간이 지나면 "알던 남자"로 강등 당하는 게 거의 확실하므로 이런 경우는 앞서 말한 "만났던 남자"와는 급을 달리한다.


 


여운을 찾는건 배부른 소리. 적당한 데이트 메이트 혹은 엔조이의 상대일뿐.원나잇이나 술땜에 어쩌다 저지른 남정네들도 여기 포함된다.


 


서른을 목전에 두고 느끼게 되는 건, 많은 언니님들과 내 친구들 그리고 나 역시 아직도 열정을 풀어낼 마음은 있으되, 그녀들의 그 열정을 끌어내줄 스킬이 있는 남자들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다. 처음부터 너무 많은걸 알려 하거나(여자의 과거나 사생활은 남자들의 연봉만큼 예민한 부분이다.), 유치한 알은체를 남자다운 호기라 착각하거나, 약한 부분을 애써 허접한 포장으로 감추려 허둥데는 꼴에 열정을 꺼내들 전의조차 상실하기가 일쑤인 경우가 많다.


 


누가 말했었나.


 


여자는 열여섯에서 스물하나까지가 가장 사랑하기 좋은 때라고.


잔꾀가 없고 적당히 바람 빠진 몰캉한 느낌이라 삶을 유용하게 해줄 사랑을 만날 가능성이 크다고.


 


어쨌든, 그날밤 이후 나는 과연 동생이 시간이 흘러, 서른을 앞두고 사귄 남자의 수를 논할 때 몇명으로 줄어있을지 궁금해졌다.


 


++


쓰다보니 얘깃거리가 몇개 더 떠올라 앞으로 몇개 더 쓸까 싶기도한데;;


그냥,여자들이 내놓고 하지 않는 남자와의 섹스 이야기들일 것 같네요.^^;


 


고수들이 우글 거리는 여기서 깔짝 거려도 될런지.


아...겁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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