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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어 보이겠지만 ‘배구’ 이야기를 한 번 해보려고 한다. 80년대까지만 해도 남자 배구선수들은 주로 오버핸드 서브(Overhand Serve:공을 위로 던지고 손을 위로 올린 채 공을 쳐서 서브를 넘기는 방식)를 했지만, 대부분의 여자 배구선수들은 언더핸드 서브(Underhand Serve:허리 근처에서 공을 쳐서 밑에서 위로 올리는 서브)를 구사했다. 

 

그러던 것이 2000년대 근처에는 남자 배구선수들만이 아니라 여자 배구선수들도 거의 모두 오버핸드 서브로 바뀌기 시작하더니 요즘은 그것도 모자라 ‘점프 서브’(Jump Serve)라고 하여 공을 머리 위로 던져 놓고 마치 스파이크(Spike)처럼 공을 내려꽂는 강력한 서브를 구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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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 서브를 하는 김연경 선수 / 사진 출처-<시사1번지 폴리뉴스>

 

그래서 남자 배구선수들은 물론이고, 여자 배구선수들도 강력한 스파이크성 점프 서브로 포인트를 내는 일이 많아졌다. 불과 20년도 채 안 되는 시간에 기술적으로 엄청난 발전을 한 것이다. 수없이 많은 경기를 거치면서 승리하기 위해 보다 강력하고 효과적인 서브를 구사할 수 있도록 최적화한 것이다. 

 

배구의 경기 방식이 언더핸드 서브에서 점프 서브로 바뀌었다고 해서 배구가 아닌 것도 아니고 배구가 변질된 것도 아니다. 단지, 보다 효과적으로 점수를 내기 위해 발전된 것뿐일 뿐, 어떤 식으로 서브를 하든 여전히 배구 경기인 것이다. 

 

이런 기술적인 발전은 비단 배구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경쟁 스포츠에서 당연한 일이다. 모든 스포츠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좀 더 빠르고 좀 더 강력하게 변화하며 승리할 수 있는 최적화된 기술들로 진화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무예만은 아직까지도 전통이라는 굴레에 갇혀 답보상태를 면하지 못하는 경향이 짙다. 전통의 방식에서 조금만 어긋나도 사이비니, 짝퉁이니 하면서 비난을 하곤 한다. 

 

전통무예에서는 전통의 수련 방법이나 동작 등을 그대로 유지하며 그것을 그대로 지키는 것을 큰 미덕이라고 생각했다. 스승이 가르쳐 준 대로 똑같이 따라 해야지 조금만 어긋나면, 속칭 사파라며 저주에 가까운 비난을 받는다. 전통무예는 옛날부터 내려오는 방식대로 꼭 그대로 지켜져야만 한다고 굳게 믿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전통(傳統)이라는 단어는 그 자체가 이미 변화해야 한다는 깊은 뜻이 있음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과거에도 있었지만, 현재에도 존재하고, 미래까지 계속해서 이어지는 것이 전통이다. 

 

만일 과거에만 머물러 있다거나, 현재에서 받아들이지 못해 결국 사라져 버린다면 그건 전통이 아니라 유물(遺物)이 되고 만다. 끊임없이 변화하고 진보하여 지속적으로 발전하면서 미래에도 존재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전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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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적인 액션 배우로 세계적인 스타였던 이소룡(李少龍, 1940~1973)을 모두 알 것이다. 이소룡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액션 배우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대표적으로 그의 빠른 몸동작을 꼽을 수 있다.   

 

기존의 전통무예들은 기본적으로 넓은 보폭으로 안정된 자세를 유지하며 기술을 구사했다. 그러나 이소룡은 그런 동양 전통무술의 틀을 깨고 과감하게 보폭을 줄여 편안하게 서서 살짝살짝 뛰면서 가볍게 움직이는 풋워크(footwork:발놀림)를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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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사람들이 태극권을 수련하고 있다. 넓은 보폭에 무릎을 깊게 구부려 낮은 자세를 유지하는 전통무예의 보법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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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룡의 다리 자세를 보면 전통적인 방식과는 다르다는 것을 볼 수 있다.

 

편안하고 가벼운 스텝(Step)에서 나오는 이소룡의 번개 같은 발차기는 세상 사람들을 놀래키기에 충분했다. 사람들은 이소룡의 빠른 발차기에 열광하며 그의 발차기를 이삼각(李三脚:이소룡의 발차기는 마치 다리가 3개 있는 것 같이 빠르다는 표현)이라 칭하며 찬사를 보냈다. 

 

무예계의 가장 평범한 원리 중에 하나는 ‘격투에서는 먼저 때리는 사람이 유리하고 매는 안 맞을수록 좋다’는 말이 있다. 아무리 기술이 화려하고 멋있어도 때리지 못하면 쓸모가 없고, 매에는 장사가 없듯이 아무리 오랜 수련을 한 사람이라도 맞으면 아프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가 먼저 정확하게 빨리 때리고, 상대의 공격을 잘 피하는 가가 겨루기의 기본 요소라 할 수 있다. 그것을 효과적으로 실행하기 위해 이소룡은 빠른 풋워크로 움직이는 법을 연구했고, 그 결과가 이소룡이 보여준 빠른 스텝에서 나오는 이삼각이라 불리는 발차기이다.

 

▲화질이 좋진 않지만, 이소룡의 발차기 속도를 느껴볼 순 있을 것이다. 

 

그런 빠른 몸짓 등으로 이소룡은 세계적인 액션 스타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당시 이소룡에 대한 전통무예계의 평가는 아주 냉정하고 야박했다. 홍콩을 중심으로 한 중국의 전통무예계에서는 일제히 이소룡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소룡처럼 가볍게 뛰면서 몸을 움직이면 기(氣)가 분산되어 공력(功力)이 쌓이지 않는다는 것부터 시작해 심오한 무술의 깊이를 전혀 모른다는 등 비난 일색이었다.

 

그러나 이소룡 사후(死後) 세월이 흐르면서 많은 전통무예인들이 이소룡과 같이 편안하고 가벼운 스텝으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태권도를 기점으로 가라데(空手道)나 우슈(武術)의 산타(散打:중국무술의 격투기경기) 등 전통무예들이 경기를 본격적으로 활성화 시키며 변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소룡은 그전까지 답보상태에 있던 동양의 전통무예계에 커다란 변화의 불씨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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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런 변화는 주로 경기를 하는 몇몇 전통무술에 국한된 얘기일 뿐, 이소룡이 세상을 떠난 지 벌써 50년 가까이 되었지만, 대부분의 전통무예는 아직도 전통을 고집하며 변화를 꾀하지 않고 있다. 

 

대부분의 전통무예는 아직도 넓은 보폭과 낮은 자세를 취해 느린 동작으로 움직이고 있다. 느리게 움직이니 상대를 때리기도 어렵고 상대의 빠른 공격에 효과적으로 피하기도 쉽지 않다. 

 

지난 편에서 필자는 전통무예가 현대의 격투기 선수들에게 패하는 이유가 첫 번째로 안면 타격 여부 등과 같은 경기 규칙의 차이점에서 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것에 이어 넓은 보폭과 낮은 자세에서 오는 느린 동작이 전통무예가 현대의 격투기 선수들에게 패하는 또 다른 많은 이유 중 하나이다. 

 

현대 격투기 선수들은 적당한 거리의 편안한 스탠스(Stance:스포츠 경기에서 공격이나 수비 등을 위해 기본적인 자세를 취할 때 두 발의 위치나 벌린 폭)를 유지하며 상대에게 빠르고 강력한 로우킥(Low Kick, 상대의 하체를 걷어차는 발차기)을 날리거나 상대의 공격을 재빠르게 피할 수 있도록 대비한다. 

 

그러나 넓은 보폭에 무릎을 깊게 구부려 낮은 자세를 유지하는 전통무예의 보법(步法)은 공력이 쌓일지는 몰라도 상대에게 빠른 공격을 하기도, 상대의 빠른 공격을 효과적으로 피하기에도 어려운 구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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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국제 군악절에서 소림무술을 선보이고 있다. 기본자세에서 전통 무예의 보법을 볼 수 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격투에서는 먼저 때리는 것이 유리하고 안 맞는 것이 최고다. 상대를 먼저 때리고 상대에게 맞지 않으려면 먼저 전체적인 몸동작이 빨라져 공방(攻防)에서 유리해야만 한다. 그러려면 전통무예가 그토록 강조하는 넓은 보폭과 낮은 자세로 이루어진 보법부터 바꿔야 한다.   

 

이런 변화는 변질이 아니라 발전이다. 발전이 있어야만 살아있는 문화가 되는 것이고 그래야만 현재도 있지만, 미래에도 존재할 수 있는 전통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변화하고 발전하는 무예가 진정한 전통무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