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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26.금요일


화성


 


한달쯤 전이었나, 딴지 독자분들이라면 대부분 아시겠지만 딴지일보 기사 중에 '누가 진정한 국민상녀인가' 를 묻는 투표가 있었다. 당시 본 필자도 소중한 한표를 행사하기 위해 잠시 고민을 했었는데 워낙 쟁쟁한 분들(전여옥 VS 나경원 VS 송영선)의 치열한 각축전이 벌어진 터라 끝내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말았다. 논술형도 주관식도 아닌 객관식, 그것도 3지 선다형 문제 앞에서 그렇게 맥없이 기권을 선택한 일은 태어나 처음있는 일이었다.


 


전여옥을 고르자니 '서키 오빠를 바라보던 나경원의 애처로운 눈빛'이 떠오르고, 그렇다고 송영선을 선택하자니 전여옥의 '아름다운 면상과 고운 화법'이 눈앞에서 아른거리고...그 순간 만큼은 '찍기 신공' 조차 세명 후보의 엄청난 포스에 밀려 '깨갱' 하고 줄행랑을 쳐버렸으니, 어느 한 후보에게 표를 준다는 건 다른 후보에 대한 배반이요 배신이라 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하튼 그날의 그 기권 사건은 화장실 들어갔다가 물만 내리고 나온 듯한 찝찝함으로 남아서 한동안 더러운 기분을 떨치기 힘들었는데, 오늘 우연히...는 아니고 가끔 들어가서 남몰래 훔쳐보던 나경원 의원(이하 나의원)의 미니홈피를 갔다가 마침내, 근 한달 동안의 고민을 한방에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나경원 의원의 미니홈피, 누르면 커집니다.


   


얼핏 봐서는 뭐 별다를 게 없어 보인다.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흔한 내용의 그림이 중앙에 그려져있고... 근데 그 옆을 자세히 보니 보니 '출판 기념 사인회' 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그래서 사진첩을 클릭했더니 아래의 사진이 나온다.


 


 


 




 


 


처음엔 '우리 이쁜 나의원 님이 책을 내시네. 역시 똑똑한 사람은 다르군' 하면서 그냥 지나칠 뻔 했었는데, 정치인이 낸 책으로서는 조금 특이해 보이는 제목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세심(細心)'이라... 이 얼마나 간단명료하면서도 함축적인 의미를 지닌 촌철살인의 제목이란 말인가. 


 


힘든 국정을 수행하시는 가카를 위하여 누구는 오버액션을 하고, 누구는 오랄액션을 하며 설쳐대고 있을 때, 잘 표나지 않는 '세심함'을 무기로 들고 나온 것이다. 그녀만이 할 수 있는 확실한 차별화 전략이라고나 할까.


 


어디 그 뿐인가. 사진 아래  출판 기념 사인회의 안내문을 보자.


 


 




 


먼저, 안내문의 순서대로 장소를 보면 교보문고 강남점이다. 나의원의 지역구가 강북에 있는 중구임을 감안할 때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교보문고 본점은 중구와 가까운 광화문에 있고(광화문 본점이 4월 1일부터 리노베이션을 위해 5개월간 문을 닫는다고 하지만 한달간의 시차가 있기에 이 이유 때문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고 본다.) 교보문고 외에도 강북에 크고 좋은 다른 서점들도 많은데... 그녀는 왜 그녀의 오랜 텃밭인 중구를 버리고 강건너에 있는 서점을 선택한 것일까.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선 먼저 그녀가 출판 기념회를 하는 목적을 알아야 한다.


 


요즘엔 나의원 말고도 많은 정치인들이 앞다퉈 출판기념회를 열고 있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6월 지방선거 때문인데, 행사를 통해 유권자들에게 자신을 알릴 수 있는데다 무엇보다도 이를 통해 벌어들이는 부수입이 상당히 짭짤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선거에 쓰일 실탄(자금) 마련을 위한 효과적이면서도 '합법적인' 수단인 셈이다.


 


그렇게 봤을 때, 나의원이 강남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답이 쉽게 나온다. 지역구 근처에서 하는 게 여러모로 유리하겠지만 아무래도 강북 보다는 강남 쪽이 실탄 마련을 위해선 훨씬 효과적일 거라는, 나의원의 '세심함'이 그대로 묻어나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지역구 사람 몇명 보다 강남 사람 한명의 '액수'가 더 클지도 모를 일이니.


 


다음으로 시간을 보자. 3월 1일 오후 2시, 그래 삼일절이다. 왜 하필 다른 날도 많은데 삼일절을 택한 것일까, 라는 의문이 든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예전의 '쓰라린 기억'을 안고 있을 그녀 만큼은 적어도 '그날' 만큼은 빼고 날짜를 잡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녀에게 그런 당연한 일을 기대하는 건 애당초 무리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녀가 누구인가. 일본 자위대 행사라는 건 알고 갔지만 무슨 내용의 행사였는지는 모르고 참석 했다가 깜짝 놀라 입구에서 발길을 돌렸다는 말도 안되는 말을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당당하게 한 그녀가 아니던가.


 


 



 



 


그뿐인가. 가카의 BBK 동영상이 문제가 되자  'B.B.K.라고 한 것은 맞는데 주어가 없어서 무효다'라고 해 때아닌 국어의 문법 논쟁을 일으켰고, 미디업법 날치기 때는 '(무식한)국민들에게 어려운 미디어법에 대한 여론조사를 한다는 건 적절치 않다'는 매우 '적절치 못한' 발언까지 서슴치 않았던 분이 바로 '그녀'이시다.    



 


이런 그녀에게 당신도 대한민국 국민이니까, 그것도 집권당의 국회의원 이니까 최소한   '삼일절'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를 갖춰주길 기대하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가 아닐까 싶다. 그녀에게 있어 3월 1일은 단지 사람들이 많이 모일 수 있는 '공휴일'이라서, 그리고 봄의 시작을 알리는 3월의 첫날이라 '쩐주'들의 지갑을 열기에도 좋은 날, 이란 의미 외엔 없었을 테니 말이다. 누가 만세를 부르다 죽든 말든, 누가 매주 수요일마다 거리에 모여서 피눈물로 시위를 하든 말든...


 


안내문의 아래에 적혀있는 내용을 보면 이런 그녀의 '진정성'이 더 구체화 되는 걸 알 수 있다.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소속의 국회의원으로서 삼일절날 '사인회'를 열면서 삼일절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없다.


 


작은 일을 꼼꼼히 챙겨 똑부러지게 하는 것으로부터


개인의 성공도 대한민국의 도약도 가능해진다는 생각입니다.


(작은 돈이라도 꼼꼼히 챙겨 똑부러지게 선거에 임해야


당내 경선에도 이기고 서울시장도 가능해진다는 생각입니다.)


 


“細心”으로 국민의 소리를 듣고,


“細心”으로 민생을 챙기고,


“細心”으로 일하는 나경원이 되겠습니다.


(“細心”으로 연합뉴스를 듣고,


“細心”으로 주어를 챙기고,


“細心”으로 가카를 보위하는 나경원이 되겠습니다.)


 


앞으로 누가 그녀에게 3월1일이 무슨 날인지 알면서 사인회를 연 것이냐고 묻는다면 그녀는 이렇게 답할지도 모른다. 삼일절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무슨 날인지는 잘 몰라서 갔다가 깜짝 놀라 서점 입구에서 발길을 돌렸노라고.


 




삼일절을 앞둔 24일 '정기 수요집회'에 참가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 참가자들.


 


물론, 삼일절이라고 해서 사인회 같은 행사를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은 아니다. 뜻깊은 날이니 만큼 잘만 준비한다면 더 뜻깊은 행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원의 경우는 다르다. 다른 사람은 다 그럴 수 있어도 나의원만은 절대로 그래선 안 되는 것이다.


 


서울 시장 출마를 준비하는 사람으로서 알았든 몰랐든 서울에서 버젓이 열린 <자위대 창립 5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을 했던 사람이기에 그렇고, 이제 몇분 남지 않은 위안부 할머니들을 생각한다면 '세심한' 배려 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최소한 사람된 '도리'로서만 보더라도 그날 만큼은 자숙하고 반성해야 마땅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당신에게 필요한 건 세심(細心)이 아니라 세심(洗心-마음을 깨끗하게 함)이다,는 말을 해주고 싶어서 저 사진 밑에 열심히 덧글을 쓰고 확인을 눌렀더니, '나경원 님은 글쓰기 제한 기능을 사용하고 있습니다.'란 메모창이 떴다. 예전 저작권 문제가 불거졌을 때, '국쌍님 너무 쪽팔렸겠다' 란 덧글을 남긴 적이 있었는데 아마도 그 일로 필자를 '블랙리스트'에 올려 놓은 것 같다. 정말이지 작은 일도 꼼꼼히 챙기는 세심한 분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래도 한나라의 '국상' 자리에 오르려면 모름지기 이정도의 세심함과 뻔뻔함, 그리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의연할 수 있는 '몰지각함' 정도는 갖추고 있어야만 자격이 있는 거 아니겠나.


 


필자와 비슷한 이유로 국민상녀 투표에서 기권을 선택한 분들은 지금이라도 빨리 달려가서 마우스를 누지르기 바란다. 전여옥과 송영선의 막말과 무개념이 제아무리 위협적이라 하나 이분에 비하면 그야말로 어린아이 재롱 수준에 불과할 터, 누가 무슨 지랄을 해도 이 땅에 국상은 오직 '닥치고 나경원' 한분 뿐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