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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 소크라테스 오나시스

세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한명의 이름이다. 두가지 이유로 아주 유명했던 사람인데, 바로 어지간한 국가의 해군보다 더 많은 선박을 보유했다고 알려진 해상운송업계의 제왕이자, 암살당한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의 미망인 재클린과 결혼해서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사람이다.

이차대전 당시 연합군의 물자수송에 적극 협력하는 바람에 독일 U보트의 공격으로, 보유한 선박의 반 이상을 잃었지만, 전후 복구사업에서 더 큰 수익을 올리면서 그리스의 해상운송사업을 확실하게 제 궤도에 올려놨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이 글은 이 아리스토텔레스 소크라테스 오아시스에 대한 얘기를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해상운송의 제왕인 그리스에 대한 얘기를 하려고 하는 것이다.

고대문명의 발상지 그리스

EU에는 돼지들이 있다. PIGS라고 하는데, 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이다. 혹은 "I"를 한개 더 넣어서 아일랜드까지 포함시키기도 한다. 그 중의 한 나라인 그리스에 국가부도 사태까지 우려되는 경제위기가 닥쳐왔고, EU는 이 위기가 스페인을 거쳐 PIGS 국가들로 번져 나갈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한다.

명색이 EU 국가라면, 유로화 쓰고 떵떵거리고 잘 사는 나라들 모임 아닌가 하는 생각부터 든다. 하지만, 그리스는 그렇게 잘 사는 나라만은 아니었나 보다.

현재 그리스의 상황은 재정적자의 폭이 GDP 대비 12%가 넘어가고, 국가 부채의 규모가 GDP의 100%를 넘어서는데 실제로는 정확한 채무 규모가 얼마인지도 제대로 확인되지도 않고 있다고 한다. 대략적인 채무 액수가 3000억불이 넘는다고 하니, 응? 3000억불이면, 기껏해야 360조?

작년말 우리나라 국가채무가 정부 발표로 잡아도 366조인데? 얼마 안되네?

해서 그리스라는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부터 알아봐야 겠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그리스를 희랍이라고 불렀다. "희랍인 조르바"라는 책도 기억이 난다. 지중해에 있는 남유럽 발칸반도의 끝자락에 있는 나라로, 알바니아, 마케도니아, 불가리아 등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터키하고도 국경을 마주하고 있다.

아무래도 우리에게는 그리스가 철학자들의 나라로, 또 그리스 신화의 나라로, 고대 문명의 발상지로 더 익숙하게 알려져 있을 것 같다. 철학 하니까 또 아리스토텔레스.... 소크라테스..... 오나시스?

인구는 천만이 조금 넘고, 점차 노령화 되어가고 있는 추세이다. 거기다가 일인당 평균 노동시간이 2000시간이 조금 안되거나 넘거나 한다. OECD 국가 중에 이렇게 일 많이 하는 나라는 우리랑 그리스 뿐이다. (제10회 딴지 시사퀴즈 참조)

인구도 적으니 제조업이 발달할 만한 나라는 아니다. 과연 일반 무역수지는 꽤 큰 폭의 적자를 보고 있으며, 그 적자를 관광사업과 해운사업으로 보전하고 있는 나라다.

관광사업이 왜 활성화 되었는지는 손쉽게 알 수있다. 엄청난 양의 고대 유적지를 가지고 있지 않은가.. 그거 보러 전세계에서 매년 엄청난 사람들이 몰려든다. 심지어 나같이 게으른 사람도 한번 구경하러 가보고 싶은 나라가 그리스다.

또 하나인 해운산업이 바로 그 선박왕 오나시스 이래 세계 최고 수준을 달리고 있다. 전세계 선박의 18% 가량을 그리스 국적 해운사들이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결국 현대중공업 조선사업부의 최대 고객이 아닌가 싶다.

또 특이한 것은 해외로 나가 있는 이민자들의 고국 송금액수가 상당하다는 점이다. 정확하게 통계에 잡히진 않지만 오래 전부터 이민이 활발해졌고 그 800만(헉.. 인구가 천만이라며..)이 넘는 이민자들이 이제 고국의 경제를 돕고 있는 셈이다. 이 부분은 조금 부럽기도 하다.

우리랑 비슷한 그리스

신기하게도 그리스는 우리와 여러가지 면에서 비슷한 점이 있다. 일단 반도국가이다.

이차대전 직후 그리스에서는 공산주의 게릴라에 의한 내전이 있었고, 미국의 도움으로 진압되었지만 향후 수십년간 좌우 대립은 극심하게 벌어져왔다.  우리야 뭐 전쟁을 통해 완전히 분리되어 버렸지만..

60년대 말, 합법적인 사회주의 세력이 등장하자, 이에 두려움을 느낀 우파와 미국의 지원을 받은 군사구테타가 벌어진다. 이유야 좀 다르지만 박정희가 떠오르는 부분이다. 그런데 그 정권은 바로 쫓겨나고, 74년도에 또 역 쿠테타가 벌어지면서 군부독재로 접어들게 된다.

74년 들어서 왕정이 폐지되고, 으잉? 그러면 그 때까지 왕이 있었단 말인가? 맞다. 콘스탄티노스 2세가 폐위된것이 그 때다. 그 전까지는 입헌군주제 국가였다. 그 이후로 신민당과 사회당의 양당체제가 확립되어 오늘날까지 내려오고 있다. 이건 조금 부러운 일이다. 우리는 제대로 된 양당체제를 가져본 적이 없다.

국회는 300명으로 이루어진 단원제이다. 우리는 299명이다. 딱 150명이 찬성하면 어쩌려고 짝수로 했는지 모를 일이다. 현재는 2009년 사회당의 선거 승리로 파판드레우라는 사람이 총리로 있다. 대통령이 있긴 하지만 86년 개정헌법(이것도 우리의 87년 개헌하고 비슷한 듯)이후 총리의 권력이 압도적이다. 다른 당은 공산당, 급진좌파연합,정교연대(응? 불심으로 대동단결?)등이 있다.

그리스의 집권세력의 역사를 보면 대략 이렇다.

Papadopoulos 군사정권 기간 (1967.4 ∼ 1973.11)
oannides 군사정권 기간 (1973.11 ∼ 1974.11)
Karamanlis 신민당 집권기간 (1974.11 ∼ 1981.10)
Papandreou 사회당 집권기간 (1981.10 ∼ 1989.6)
신민당 주도 과도연립정부 기간(1989.7 ∼ 1990.4)
Mitsotakis의 신민당 집권 (1990.4 ∼ 1993.10)
Konstantin Simitis 사회당 집권 (1993.10. ∼ 2004.3)
카라만리스 신민당 집권(2004.3 - 2009.10)
파판드레우 사회당 집권(2009.10 - 현재)
(이름들이 무슨 그리스 신화에나오는 영웅들 같아서.. 영 어색하다.)

이차대전 직후에는 미국의 마샬 플랜의 도움으로 경제성장을 이루었고, 81년부터 EU에 가입했으나, 경제수준 미달이라는 이유로 유로화 도입은 2001년에야 가능해졌다. 21세기 들어서 EU의 기금지원과 관광수입의 증가, 활발하게 벌어진 해운사업등으로 매우 높은 생활수준을 갖추게 되었고, 2004년 올림픽까지 치르게 된다. 우리는 88년에 치렀구만..

요즘엔 여러가지 문제로 반정부시위나 총파업이 빈번하게 벌어지는 좀 불안한 상태이다. 우리야 가카의 영도아래 국격을 높이고 있는 중이지만...

근데 뭘 잘못해서 위기?

군사위기도 아니고 소행성이 충돌하는 것도 아니고 자연재해도 아니라면 위기야 돈 문제 밖에 없다. 돈이 모자르니 빚을 내서 썼고 빚이 누적되어 불어난 바람에 이젠 빚 갚는 거 자체가 위험해지고 더 이상 빚도 못 낼 상황에 빠져들고 있다는 거다.

빚이 생겼다는 것은 정부가 너무 심한 적자재정을 운용했다는 뜻이다. 뭐 해먹겠다고 그렇게 적자재정을 많이 운용했을까?

그리스는 독일같은 나라가 아니다. 딱딱 떨어지고 명확하게 처리하고 투명한 나라가 아니라는 것이다. 정치도 불안하고, 사람들 성향도 그렇다. 군부독재 시절을 경험한 탓에, 세금을 안 내는 게 미덕이라는 사회분위기도 남아 있다. 즉 세수도 투명하지 않다. 지하경제 비율이 유럽국가 치고 엄청난 규모로 남아 있다. 세금이 새고 있다는 뜻이다. 좌우파가 교대로 집권하게 되면 좌파라고 해도 세율도 못 올린다. 정권 뺏길 게 뻔해지니까..

또 좌파가 집권을 많이 해서, 국가 기관이 다른나라에 비해 비대하다. 이러면 꼭 생기는 문제가 관료주의와 부패의 문제가 된다. 거기다가 공무원 임금이 정부 재정에 끼치는 부담이 커지게 된다. 이런 경우 또 반대로 우파가 집권해도 공공기관을 함부로 못 줄인다. 공무원 임금도 못 깍는다. 좌파들이 가만 있을리가 없으니까..

또 최근 들어 유로화를 도입하면서 물가가 지속적으로 상승했으며, 사람들의 기대수준이 많이 높아져 있다. 이에 따라 사회보장비용이 지속적으로 상승해 온 점도 국가 재정에 부담이 된다. 한번 시행된 사회보장제도는 정권 날릴 각오없이는 좌파도 우파도 축소하기 힘들다.

산업 경쟁력을 올리는 것이 힘든 나라다. 땅도 별로 넓지 않고, 인구도 적다. 천만명의 인구로는 자체 수요가 미약해서 대규모 산업이 발전하기 어렵다는 것은 상식이다.

결국, 관광사업과 해운산업인데, 최근 들어 문제가 된 점이 유로화가 도입되면서 체감 물가가 상승하는 바람에 관광지로써의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중국의 발전으로 인해 전세계 물동량이 폭발적으로 치솟을 때, 그리스 해운업이 호황을 누리게 되면서 상당수의 국민들이 빚을 내서 해운업에 투자를 하게 되고, 거기서 나온 수익으로 생활수준을 잔뜩 올려놨었는데, 갑자기 국제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중국도 긴축경제를 실시하고 물동량이 허무하게 꺼지면서, 상당히 큰 타격을 받은 점도 있다.

이 부분에서 국제 헤지펀드가 그리스 해운사업에 끼어들면서 미국과의 갈등도 생겼다고 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유로화가 도입되면서 국가가 산업경쟁력을 통제할 만한 수단이 사라져 버린다. 우리가 금융위기 맞서면서 환율이 폭등하고(혹은 인위적으로 폭등시키고) 국내의 생활물가가 올라 사람들이 고통을 받았지만, 자동차 수출경쟁력등이 증가하면서 수출이 늘어난 것 같은 효과를 그리스는 가질 수 없었다는 얘기가 된다. 그러니 정부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재정을 풀어서 경기를 부양시키는 것 뿐이다. 이게 통제한다고 통제가 될까?

이런 악조건들이 겹치면서 급격하게 재정건전성이 악화되고, 급기야는 EU에서 IMF 구제금융을 받으라는 둥, 긴축 재정을 가져 와보라는 둥, 니들이 망가지면 돼지들(PIGS)이 다 망가지니까 큰일이라는 둥 호들갑을 떨고 있다는 얘기다.

진짜 문제는 뭘까?

그리스가 당면한 문제는 한두가지가 아니다. 이 모든 것들이 다 그리스의 재정적자를 악화시키고 있다.

가카께서야 명쾌하게 좌파정권이 집권한 탓에! 라고 신탁을 내려주시긴 하지만, 그 동안 우파들은 뭐했냐는 반론이 가능하다.

분명히 비대한 공무원 조직과 그 조직을 먹여 살리는 임금은 부담이 된다. 그리고 임금을 깍으려 하면 바로 총파업이 일어나는 나라가 그리스다. 하지만, 이 문제는 그리스가 이차대전 직후 경제성장을 할 때 부터 전통적으로 유지해온 문제일 뿐이다. 즉, 변수가 아니라 상수로 고려하고 국가 재정을 운용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핵심은, 모든 상황이 안 좋아지고 있는 상태에서, 정부가 어떤 대안을 선택했는가 하는 곳으로 좁혀질 수있다.

유로화를 도입해서 그리스의 화폐였던 드라크마는 회수해 버렸다. 드라크마화 가치절상, 절하 뭐 이런 방법도 쓸 수가 없다. 세금은 안 걷힌다. 나갈 돈은 많다. 사람들은 돈 달라고 아우성이다. 돈 주면 부패한 넘들이 중간에서 가로채 간다. 공공부문을 민영화 시키는 것도 힘들다....

돈을 꿔 와야 되는거다. 근데 돈 마구 꿔오면, 즉 채권을 발행하거나 하면 EU에서 와서 또 뭐라 한다. 너희나라 EU 기준 맞추려면 재정적자가 GDP의 3% 이내여야 된다, 뭐 이런 소리 하면서 말이다.

이 대목에서 돈이 없으면 그냥 GG 치고 긴축재정으로 가는 게 맞다. 경제규모가 좀 후퇴하고 국민들 생활수준이 좀 나빠지더라도 참아야 되는 것이다. 그 덕분에 집권세력이 정권을 잃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눈에 뻔히 보이는 파국을 알면서도 따라가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회사 짤려서 돈 없고 배고파도, 사채에 손대면 안되는 것과 똑같은 이치다. 나중에 쥐도새도 모르게 신장이 없어진다.

그러나 그 대목에서 그리스는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된다.

신자유주의의 기치아래 엄청나게 발전한 첨단 금융상품, 꼭 굳이 첨단 상품이 아니더라도 장부상 부채로 잡히지 않는 채무를 들여오게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그리스 국영 공항의 향후 이십년간 수익을 담보로 자금을 받아온다. 물론 돈은 월스트리트에서 나온다. 그러면 그 돈은 국가 채무로 잡히는 게 아니라 판매수익으로 잡히게 된다. EU의 감시망도 피할 수 있다. 그 돈을 풀어 경기가 살아나길 기대해 보지만 상황은 점점 더 어려워 진다.

이런 식의 악순환이 벌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2009년 사회당의 승리로 집권한 총리 파판드레우는 신민당으로부터 인수인계 받은 장부를 보고 기겁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쓰바.. 이거 깡통계좌네..

파판드레우는 2009년 선거에서 직전 5년간을 집권한 신민당을 "부정부패 집권세력"으로 몰아부쳐 당선이 된 사람이다.

결국 이런 상황이 되자 파판드레우는 EU에 나가 구제기금을 요청하게 되고, EU는 강력한 긴축정책을 요구하게 된다. 그러니..

긴축정책하면, 당장 총파업이 일어날거고, 아니 벌써 일어났고, 기금은 얻어야 되겠고, 하니 파판드레우는 EU에 나가 이번 위기의 근본 원인은 공직계층의 부패에 있고, 불투명한 세금제도에 있으니, 부패를 일소하고 세무행정을 개선하겠다고 사정을 하고 있는 판이다.

물론 EU에서는.. 됐고! 재정적자를 3% 이내로 줄이는 긴축안을 가져와봐~ 그러고 있는 중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그거야 양측의 언플이고 실제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화폐통합이 가능한 일인가

실제로 그리스의 문제는 유로화 도입 이후 급격하게 악화된 것이 사실이다. 정부가 통제 가능한 환율이라는 좋은 도구 하나가 그냥 사라진 상황에서 문제 악화에 가속도가 붙은 것이 사실이라는 얘기다.

거대한 공공조직이나 사회보장비용을 축소했어야 한다. 그런데 우파 신민당 정권이 지난 5년간 해온 일이라고는 공공조직의 부패만을 증가시켰을 뿐이다. 그러니까 정권을 뺐겼지..

관광수입의 감소, 해운 사업의 침체, 이런 것들도 한몫을 단단히 했지만, 그런 문제들은 정부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 바깥에 있는 것이다.

화폐통합이후, 독일이나 프랑스등 산업 경쟁력이 강한 국가들은 갈수록 무역흑자폭이 늘어나는 꽃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번 사태에서도 그들이 얼마나 돈을 내어 놓을지가 기대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는 독일도 프랑스도 자꾸 딴소리 늘어 놓으면서 슬슬 피하는 중이다. 하기사 그들도 국제 금융위기로 인해 성장이 둔화되었기 때문에 여유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식으로 국가간의 정치적인 경계를 놔둔 상태에서 화폐를 통합할 때, 국가들 사이에서 양극화가 발생하리라는 것은 다들 예측한 일이다. 그래서 EU에서는 각국으로부터 돈을 거둬 신규 진입국이나 어려운 국가들에게 지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라도.. 그걸로는 부족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가입국 중 한 국가가 망가져 버리고, 그걸 회복하려는 EU의 노력이 무산된다면, 더 이상 단일 화폐 사용 공동체는 유지되지 못하게 된다. 거기다가 한 공동체 내에서 양극화의 끄트머리에 있는 꼴지국가 하나가 떨어져 나가면, 그 다음으로 있는 국가가 또 꼴찌가 되어 떨어져 나가는 연쇄 반응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다 보면 독일하고 프랑스 둘만 남을 것인가?

이런 이유로 이번 그리스의 위기상황이 EU의 존재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도전이라는 지적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EU가 어떻게해서든 이 문제를 잘 해결해 주면 만사 형통이 되는 것일까? 그 다음에 지속적으로 호황이 다가와서 EU 전체가 다 잘먹고 잘살게 되는 건가? 다시 한번 불황이 다가오면? 그 땐 또 이런 소동을 반복하고?

전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즉 EU의 화폐통합이 이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아니라는 얘기가 된다. 좀더 근본적인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돈놀음은 인류를 구원하지 못한다

이 얘기는 바로 미국발 금융위기에서도 여실히 드러난 것일 뿐이다. 우리는 하나마나 한 소리를 또 하고 있는 것이다.

각종 파생상품을 비롯한 첨단 수학에서 비롯되는 신기하기 이를 데 없는 금융 투자상품들 얘기다. 이런 복잡한 거래가 시작되면, 사람들의 생활을 책임지고 있는 정치가나 관료들은 정글에서 벌어지는 것 같은 돈 따먹기 싸움을 통제할 방법이 없어지게 된다.

그리스의 경우에도 해운 산업에 투자하겠다고 들어온 헤지펀드들이 이런 비슷한 장난을 쳐왔다. 해운 산업이 국제 호황에 힘입어 잘나가던 시절 94년 기점으로 대규모 헤지펀드가 들어와 해운 산업에 투자를 하게 된다. 그런데 한방에 훅갔다.

이 투자를 복구하려고 미국 정부까지 동원해서 각종 자금을 추가로 그리스에 들이밀게 되는 것이다. 또한 EU의 재정적자 억제선 때문에 정상적인 자금 도입은 눈치 보여서 못하던 그리스 정부에게 장부상에 헷갈리는 설계를 도입해서 부채로 산정되지 않고 들여올 수 있는 자금은 거부하기 힘든 유혹이 된다. 눈가리고 아웅하자는 거다.

그래서 이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책임이 월스트릿에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맞다. 근데 월스트릿이야 원래 그렇게 돼먹은 놈들인데 걔들한테 책임을 지우면, 걔들이 알아서 죄송합니다~ 하고 해결책을 내어 놓을까?

이런 식이라는 것이다. 돈 없으면 손가락 빨고 살아야지, 복잡한 금융기법을 동원해서 눈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 돈 끌어다 쓰게 되면 한방에 훅 간다는 진리는 개인들에게만 통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신민당이고 사회당이고 관계없이 그리스 정부도, 이런 식으로 돈을 끌어다 썼다는 얘기다. 그게 이제 한계에 온거고, 왕창 빵꾸나기 직전이라는 것이다. EU가 자금지원을 한다한들, 미국이, 월스트릿이 자금 지원을 한다한들, IMF 구제금융을 한다한들, 이런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단지 시간을 벌 뿐이고, 결국 상황은 다시 반복될 것이다.

똑같은 상황은 우리에게도 주어져 있다. 우리 역시 IMF 구제금융까지 받아 먹은 기억이 있고, 그 결과 IMF가 요구하는 거대한 신자유주의의 흐름앞에 발가벗고 팽개쳐진 경험이 있다.

그나마 지속적인 무역흑자로 외환 보유고좀 올라가고 살만한데, 또 미국발 금융위기가 덮쳐왔다. 그 금융위기에 대처한다는 명분으로 이명박 정권은 엄청난 재정적자를 양산하고 있다. 그 재정적자를 다른데도 아니고, 강바닥 긁어내는 데에 쓰고있다.

그러면서 그리스 문제는 좌파가 집권해서 벌어진 일이란다. 좌파가 작년 10월에 집권했는데 그 사이에 도대체 뭘 했다고 책임을 지우냐 말이다. 그 전에 5년간 우파는 뭘 했길래 그 문제라는 사회보장비용도 못 깍고, 비대한 공무원 조직 축소도 못하고 있었나 말이다. 선거에서 욕을 바가지로 먹고 패할 정도로 부패했던 우파는 괜찮고, 집권한지 몇개월도 안된 좌파는 국가부도 위기의 책임을 져야 되는 건가?

이런 인식을 가진 집단이 우리 경제를 이끌면서 재정적자를 큰 폭으로 벌여가고 있는데, 우리라고 조만간 그리스 짝이 안난다는 보장이 있는가 말이다.

모든 문제의 핵심에는, 사람보다 돈을 우선시하는 자본주의가 있다. 아니 신자유주의가 있다는 얘기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이런 문제는 지속적으로 반복될 뿐이다.

이런 국가 부도네 긴축재정이네 하는 문제가 반복되면 다 죽는 건가? 아니다. 돈 없고 힘없는 노동자들만 죽어난다. 자본가들은 다칠 거 하나도 없다. 그냥 가진 돈이 좀 줄어들 뿐이다. 바로 거기에 상식을 가진 누구라도 딱 보면 바로 알수 있는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바보같은 다람쥐 쳇바퀴 돌기가 계속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호황때는 떼돈 벌어 좋고, 불황때는 노동자들이 대신 다 죽어주고, 이 좋은 상황을 왜 바꾸냐는 얘기다. 그리고 이 세상을 움직이는 룰은 아직까지는 걔들이 정하고 있다. 이게 문제라는 얘기다.

그리스도 그렇고 우리도 마찬가지다. 이런 식으로 항상 없는 사람들만 고통받는 세상은 지속되기 어렵다. 역사는 항상 진보하기 마련이다. 좀 파괴적으로 진보하지 말고, 스무스하게 다치는 사람 적게 진보할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