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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이 끝나고 한국사 20번과 관련된 말들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큰 시험 직후, 어떤 문제가 세간에 오르내릴 때는 수험생의 평균을 크게 상회하는 극도로 어려운 난이도였거나 어처구니 없는 내용을 담고 있는 문제가 출제되었을 경우가 많기에, 한국사 능력검정 1급에 빛나는 필자는 호기심 가득한 마음으로 두근두근 두근대는 심장을 달래며 문제를 찾아보았다.
 
그리고 큰 충격을 받게 되었다.
  
그 이유에 대해서 굳이 설명한다면, 문제를 보기 전까지 "대체 얼마나 정신 나간 문제일까"라는 설렘에 약간의 긴장감까지 느꼈지만, 실제 해당 문제를 접한 이후에는 괜한 긴장을 했다 생각할 정도로 쉽다는 감정을 느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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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능력검정 1급에 빛나는 필자의 출제의도 해설을 느껴보자.
 
해당 문제에 주어진 지문 첫째 줄의 "지난 해 남과 북은 유엔에 동시 가입한 후"는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가장 큰 힌트이다. 남과 북이 유엔에 가입한 것은 1991년 9월의 일이다. 지문 첫 단어인 "지난해"는 "이 해의 바로 앞의 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으니까 연설이 만들어진 해는 1991년 다음 해. 1991+1 = 1992라는 공식을 통한다면 답은 1992년이다.
 
 이 시기는 전두환의 친구 노태우가 정부를 이끌었을 때이니, 본 문제에서 묻는 "정부"는 노태우 정부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문제와 지문을 통해서 나오는 결론은 노태우 정부에서 추진한 정책을 찾으면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왜 쉽다는 감정을 느꼈냐고 묻는다면 나의 대답은 "아직"이다.
  
지문 해석을 통해 문제가 묻고자 하는 것의 정체를 밝혔으니 이제 보기를 보자.
 
사실 설명은 필요없다. 답은 5번.
 
왜 충격을 받았는지 공감하는가? 놀랍게도 보기 1~4번이 고려~조선에 관련된 내용이다. 1991년을 넘어, 대한민국을 넘어, 일제강점기를 넘어, 대한제국 이후로 분류해도 남는 내용은 단 하나, 5번이다. 해당 지문을 완벽히 해석하여 노태우 정부와 관련된 5번을 찾는 루트를 택하면 최선이겠지만 슥 훑어보고 근현대사 이전과 이후를 구분할 정도만 되도 문제는 풀린다.
 
솔직히 말해서 어느 정도의 국어 문해 능력과 어느 정도의 감만 있어도 풀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문제에서는 "정부"를 물어보고 있고 지문에서는 남, 북, 유엔 같은 말을 하고 있으니 뭔 뜻인지 알기도 어려울 1~4번 대신 언뜻 봐도 남북 어쩌고 하는 5번이 있어 보이지 않을까? 
 
한국사능력검정 1급에 빛나는 필자의 경험으로는 보통 이 지문의 내용과 관련한 문제라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7.4 남북공동성명], [남북이산가족찾기], [6.15 남북공동선언]같이 정부를 구분할 수 있고, 남북 관계에 관련이 된 내용들을 보기에 깔아주어서 수험생의 준비 정도를 시험하기 마련인데 전혀 그러하지 않았으니 가히 혜자로운 문제라 하지 않을 수가 없겠다. 시험장에서 해당 문제를 접했을 수험생들의 만족감이 눈에 그려진다.
 
보통 이렇게 쉬워 보이는 문제를 접하면 어딘가 내가 모르는 내용이라거나 느끼지 못한 함정이 있는 게 아닐까 주저함이 들게 마련인데 이건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이렇게 쉽게 내도 출제위원들의 신변에 문제가 없을까...?'라는 고민을 하기도 했으니 아...그런 고민을 통해 시간을 낭비하게 만들고자 하는 고도의 술책인 것인가.
 
물론 농담이고, 이번 수능시험은 코로나19로 힘든 시기를 보낸 수험생들을 고려하여 난도를 낮추는 쪽을 택하게 되리라는 예상은 있어왔다. 이 정도로 문제들이 쉬울지는 예상 밖이었겠지만.
 
참고로 20번 문제를 포함한 나머지 문제들도 다 쉽거나 평이한 수준이었다. 흔히 킬러문제라 불리는 어려운 문제는 없었고 20문제를 모두 푸는데 소요된 시간은 5분이었다. 사실 내가 수험생인 것도 아닌데 어렵든 말든 내 알바는 아니고 그냥 수험생들의 고된 시간들이 보상받는 시험이었길 바랄 뿐이다. 고생했다.
 
여기서 끝나면 좋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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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으로 통일 교육…한국사 20번 문제 어떻길래 | 한경닷컴 (hankyung.com)

 기사는 이미 수정되었지만 조리돌림은 영원하리라
  
국민의힘의 존경하는 윤희숙 우원께서 페이스북에 저 문제에 대한 문제 의식을 제기하였고 한국경제의 성모 기자가 그 떡밥을 덥석 물고야 말았다.
 
존경하는 윤희숙 우원께서 구체적으로 무엇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진 것인지 그 깊은 뜻을 나 같은 필부로서는 감히 알 수가 없다. 다만 추정하건데 명색이 교수 출신이니만큼 해당 문제처럼 쉬운 문제를 낸다면 대한민국 대입 수험생의 전체적인 학력 저하를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우국충정과 애국헌신의 발로에서 비롯된  무언가가 아닐까 싶다. 코로나19로 힘들었을 수험생의 마음을 고려한 출제위원들의 따뜻한 마음을 모르진 않으셨겠지만, 멸사봉공의 마음가짐으로 과감하게 문제를 제기하는 태도에서 이 나라의 밝은 미래를 예상할 수 있겠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국경제의 성모 기자는 존경하는 윤희숙 우원의 깊은 뜻을 읽지 못하였는지 아니면 한국사에 대한 깊이가 얕았던 탓인지 뜬금없는 내용으로 기사를 쓰고야 말았다. "1991년 남북유엔동시가입"이라는 지문의 내용을 대체 어떻게 봤길래 그러한 결론을 냈는지는 모르겠지만 해당 지문을 무려 "문재인 대통령의 남북관계에 대한 연설"로 해석하고 만 것이다. 성모 기자는 대한민국의 유엔가입을 2019년으로 알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문재인 정권에서 무려 유엔 가입을 이끌어내다니 박근혜 정권에서 국민들 모르게 강제탈퇴라도 당했던 건가. 대체 유엔이 뭔지는 아는 걸까? 혹시 장어 반기문 선생께서 사무총장으로 지냈던 기구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긴한가? Unidentified Nations? 그 정체가 뭔지는 몰라도 회원국인 건 아는 것 같으니 그야말로 경축이다 씨바. 
 
많이 양보해서 도병마사나 노비안검법을 모른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며 넘어가겠는데...  지문 해석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문제의 난이도에 대해서 떠들고 있는 이 한심한 상황에 부끄러움을 느껴야 하는 사람은 고작 그 정도의 지식수준을 드러낸 기자양반들일까, 아니면 그들의 기사를 바라봐야 하는 우리일까?
 
성모 기자의 기사를 읽다 보면 존경하는 윤희숙 우원께서도 본인과 같이 해당 지문이 문재인 정부와 관련된 내용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것인 양 여기는 게 아닌가 싶은데 설마 명색이 교수 출신인데 그럴 리가 있을까, 나는 결코 그리 생각하지 아니한다. 혹시라도 만약 그랬다면 자식 교육에 대한 열정으론 둘째가라면 서러울 서초구 갑 유권자들이 통탄할 일이리라. 뭐 우리나라를 남의 나라로 생각하는 모 집단의 일원이라면 대한민국이 유엔에 가입한 해에 대해서 잘 모를 수도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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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국민의힘 서울 서초갑 국회의원 윤희숙 블로그>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는 헌법 문구만 봐도 분노에 절어 호흡 곤란에 빠지고 야마는 어느 분들에게는 슬픈 일이겠지만, 문재인 정부가 국정과제 홍보를 위해서 수능 문제에 자신의 치적과 관련한 지문을 삽입하고 수험생들에게 크나큰 감동을 주기 위해서 난이도 최하의 3점짜리 문제를 만들라고 출제위원들을 동원했을 것이라는, 3류 소설가도 헛웃음 짓지 싶은 상상력의 결말은 그렇게 느그당의 대표 수괴였던 노태우로 끝이 났다. 
  
존경하는 윤희숙 우원에게도, 한국경제 성모 기자에게도, 이를 지켜보는 나에게도, 이걸 글이라고 바라보고 있는 분들에게도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놀랄 정도의 쉬운 문제라 여겼던 나의 생각과 달리 해당 문제가 어느정도의 변별력을 갖추고 있음이 한국경제의 성모 기자를 통해서 입증이 되었으니 출제위원들께선 다 계획이 있었구나 싶다. 역시 전문가 집단은 격이 다르다. 
  
존경하는 윤희숙 우원과 한국경제 성모 기자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면서 글을 끝내야겠다.
웃을 일이 많지 않던, 거칠고 메마른 최근의 삶에 한여름의 폭우와도 같은 참으로 크나큰 웃음이었다.
 
"정말 고맙습니다"
 
덧, 알고보니 지문 해석도 제대로 못 한 주제에 난이도를 논하는 기자들이 한국경제 성모기자 말고 더 있더라.
기자들 수준 처참하다 처참해. 외롭지는 않아서 좋겄다 모지리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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