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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하루

 

16일 새벽 4시(16일)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 심의위원회의 징계 의견이 나왔다. 정직 2개월. 지난 10일에 이어 15일 하루 꼬박, 근 18시간의 증인 심문과 토론, 의결 절차를 통해 내린 결정이다.

 

심의위는 윤 총장의 징계 청구 사유 중 판사 사찰 의혹 문건 작성 및 배포와 채널A 사건 관련 감찰 방해, 채널A 사건(일명 검언유착) 관련 수사 방해, 정치적 중립 훼손 혐의를 인정하였다. 다만 조선일보 사주와의 부적절한 만남과 윤 총장에 대한 대면조사 과정에서 감찰을 방해한 혐의에 대해서는 불문에 부쳤다. 불문이라 함은 징계사유는 있지만 징계처분은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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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연합> 

 

검사징계법 제23조에 의거, 징계위원회의 징계 의견을 법무부 장관이 수용하여 대통령에게 제청하고, 이를 대통령이 재가하여 관보에 공고하면 징계가 확정된다. 추미애 장관은 이날 오후 늦게 대면보고로 대통령에게 제청을 요청했고, 문재인 대통령은 저녁 7시 40분경 윤 총장 정직 2개월 징계안을 재가했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징계가 확정되는 시점부터 2개월 동안 검사로서, 검찰총장으로서 직무 집행이 정지되고, 보수도 지급받지 못한다. 당연히 검찰청에서만 접속되는 검찰 내부 게시판인 '이프로스'에 접속할 수 없다.

 

검사의 죄와 벌

 

여기서 잠깐. 검사의 징계에 대해 짚고 넘어가자. 징계의 종류는 총 5가지. 해임, 면직, 정직, 감봉, 견책이다. 해임, 면직, 정직까지는 중징계로 분류하고, 감봉 및 견책은 경징계에 속한다.

 

면직은 스스로 사표를 제출하여 사직하는 것이고, 해임은 쉽게 말해 해고다. 이번에 윤 총장이 받은 정직 처분은 1개월 이상 6개월 이하의 기간 동안 검사의 직무 집행을 정지시키고 보수를 지급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감봉은 1개월 이상 1년 이하의 기간 동안 보수의 3분의 1 이하까지 감액한다. 견책은 검사가 그대로 일하면서, 징계사유가 된 잘못을 반성하게 하는 걸 말한다. 견책 처분을 받게 되면 그 징계 기간 안에 인사가 이뤄질 경우 승진 인사에서 제외되기도 한다.

 

대체적으로 신고된 재산이 전년도에 비해 눈에 띄게 늘었다던가, 수사나 공판 과정에서 중요한 실책을 범했다든가 하는 식의 물의를 일으킨 검사들은 주로 견책의 처분을 받는다. 과거 국민의당 이용주 의원이 2008년 검사 시절 수사 중인 피의자를 만난 일로 견책 징계처분을 받은 적이 있다.

 

특별한 공무원

 

검사징계 심의위원회의 결정 직후 예상했던 반응이 쏟아지고 있다, 윤 총장과 러닝메이트였던 조중동과 기타 보수언론들의 1보 들을 요약해보자면,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무리하게 윤석열을 쫓아내려다 실패한 것’

‘징계의 전 과정에서 중대한 절차적 하자’

‘정부 여당의 검찰총장 찍어내기’

‘징계 과정에 보이지 않는 손 작용’

 

정도의 논평과 함께,

 

‘여당의 박주민 의원과 같은 90년대 학생운동권 출신들이 윤 총장과 검찰 공격에 앞장섰다’

 

같은 색깔론까지 시전하며 온몸으로 윤 총장을 감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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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뉴스1> 

 

한편 윤 총장은 심의위원회 결정 4시간 만에,

 

“임기제 검찰총장을 내쫓기 위해 위법한 절차와 실체 없는 사유를 내세운 불법, 부당한 조치”

 

라고 향후 법적 대응 의사를 밝혔다. 윤 총장은 추 장관에 의해 징계 청구 및 직무 배제 조치가 된 시점부터,

 

‘검찰총장은 함부로 징계할 수 없는 특별한 위치에 있다’

 

는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법률가 윤석열은 ‘검찰총장’을 국가 조직법, 검찰청법, 검사징계법을 초월하는 특별한 공무원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근성 어깃장

 

윤 총장 측은 징계 심의 과정에서, 절차적 정당성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 징계 절차를 무력화시키려는 전략을 택했다. 그 전법은 지난 15일부터 16일 새벽 징계 심의위원회에서 결정이 나는 순간까지도 지속되었다.

 

15일 2차 징계위. 윤 총장 측은 증인 심문 뒤, 새로운 증거 열람과 의견서와 기록들을 검토할 시간을 확보해주지 않았다는 절차를 문제 삼았다. 이후 징계위에서 심의 종결을 위해 최종 의견 진술 제출을 요구하자 ‘무리하고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요구’라면서 최종 의견 진술 제출을 거부하고 회의장을 박차고 나왔다. 징계위원이 심리절차 종료와 함께 결론을 내리겠다고 하자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한 것 아니냐며 트집을 잡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은 시간 끌기 작전이었다. 징계 심의위는,

 

“충분한 감찰기록 열람 등사 및 심리기일 지정, 증인 심문권 보장 등 법이 허용하는 최대한의 절차적 권리와 방어권 보장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면서 이날 저녁 9시 15분경 심문 절차를 종료하고 토론, 의결 절차에 돌입해 날을 꼬박 새우고 새벽 4시경에서야 ‘정직 2개월’이라는 결론을 냈다.

 

절차적 정당성, 문제없다

 

절차적 정당성을 지키지 않았다는 윤 총장 측의 주장은 검사징계법을 비롯한 징계 절차법 어디에도 근거가 없다. 이와 관련하여 더불어민주당 김한규 대변인은

 

“각별히 ‘절차적 정당성’을 보장하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징계위원회나 법무부는 이번 징계에 있어 아주 엄격하게 절차를 준수했다. 오히려 윤 총장은 징계 대상자의 권리를 일반 검사나 공무원에 비해 더 철저히 보장받았다. 윤 총장 측에서 제기하는 절차에 관한 문제들은 대부분 검사징계법에 근거가 없는 주장들이다.”

 

라고 보았다.

 

윤 총장 측에서 끈질기게 내밀고 있는 ‘절차적 정당성’ 카드는 추후 법원에서도 크게 문제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묘수 혹은 궁여지책

 

문제는, 정직 2개월이란 징계 결과다. 징계를 청구한 쪽이나, 받은 쪽이나 만족스럽지 않은 결과이기 때문이다.

 

판사 사찰 지시와 수사 중인 사건의 당사자인 언론사 사주를 만났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해임이 충분하다고 판단했던 입장에서는, 정직 2개월은 분명 솜방망이 결정이다. 임기가 6개월 이상 남은 윤 총장 입장에서도 정직 2개월에 불복하여 소송을 진행하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다.

 

이 같은 징계 결과에 대해서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김기창 교수는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해임 같은 강한 징계가 내려졌다면 행정소송 등 전면전으로 나섰을 수도 있었지만, 정직 2개월이라는 징계 결정은 그러기가 애매하다. 정직 2개월에 불복하여 모든 수단을 동원해 다퉈 보겠다 나서는 것은 검찰총장의 꼴이 우습게 되는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징계위원들의 고민도 여기에 있었을 것이다.”

 

이번 윤 총장의 정직 2개월은 과거의 검사 정직 처분과 비교했을 때 형평성이 맞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임은정 검사가 ‘상부의 백지 구형 지시를 어긴 무죄 구형’ 사유로 정직 4개월 처분을 받은 것만 상기해봐도 무게추가 틀어져 있다.

 

이와 같은 양정 결과에 대해 김한규 대변인은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판단한 징계위원들의 결정에 존중한다. 다만, 언론에 공개된 징계사유를 보면 판사 사찰 하나만으로도 다른 검사였다면, 다른 공무원이었다면 면직 이상의 형이 나올 수 있었다. 검찰총장이라는 신분의 특수성, 검찰 조직의 안정 등을 고려해 양정을 낮게 한 것으로 보인다.”

 

법원이라는 변수

 

이와 같은 결정이 내려진 이유로, 추후 법원에서 집행정지 인용 결정을 내는 것에 대한 트라우마가 징계위원들에 작용했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김한규 대변인도 “분명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았다.

 

“이제까지 (안태근과 같은) 검사장들에 대한 징계들이 여러 차례 있었다. 법원은 보통 행정소송에서 다 징계 대상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과거에는 소송에서 설사 지더라도 징계위원회가 면직 처분을 내는데 별 두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징계 대상자인 윤 총장이 소송을 하겠다는 강력한 의사를 사전에 표명했기 때문에 법원에서 뒤집히지 않을 정도의 수위까지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검언동일체

 

이러한 정직 2개월의 결과는 검언일체되어 윤 총장을 엄호했던 언론들의 흔들기가 징계 심의 위원들에게 영향을 주었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김기창 교수는 이 지점을 이렇게 분석했다.

 

“징계는 결국 징계위원들의 강단과 정무 감각으로 좌우된다. 과거 임은정 검사 징계 같은 경우, 비교적 경미한 사유로 무거운 처벌을 받았다. 코에 거느냐 귀에 거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모든 언론, 법조 기자단이 징계위원들을 둘러싸 엄청난 압박을 주었다. 그들도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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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연합> 

 

일장일단

 

윤 총장의 대면 감찰 불응에 대한 ‘불문(사유는 있지만 처분하지 않음)’ 결정은 차후에도 검찰에 대한 감찰을 힘들게 할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김한규 대변인은 이에

 

“이번 불문 결정은 향후 검사들에 대한 감찰을 어렵게 만드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이런 중대한 사안을 징계하지 않으면 잘못된 선례가 될 수 있다.”

 

라고 말했다.

 

찜찜한 선례만 남은 것은 아니다. 이번 징계위는 검찰총장이라도 업무 수행에 있어서 하자가 있으면 징계를 받을 수 있다는 선례를 만들었다. 검찰총장도 법과 원칙에 위반되는 업무 수행을 하면 안된다는 경고, 잘못된 수사나 감찰 방식으로 검찰이 휘둘러온 비대한 권력에 대한 경종이 처음 울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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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