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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두 달 전에도, 이 순간에도 프랑스의 일일 신규확진자는 약 1만 5천여 명을 넘나들고 있다(12/17 기준 1만 8천여 명). 2차 전국 이동제한령에 따라 프랑스 전국이 봉쇄되었고, 사상 최대의 일일 확진자수를 갱신했고, 누적 확진자가 2백만 명을 넘어섰다. 그래서일까? 같은 숫자이지만 프랑스 사람들의 행동에 약간 차이가 있는 듯 하다. 

 

지난 가을에는 마스크 착용에 대한 거부감이 심해 마스크 의무착용과 통행금지, 이동제한령에 대한 반발이 심했었다. 그에 반해 지금은 이동제한령에도 불구하고 보다 강화된 통행금지를 시작한다는 정부에 발표에도 CNEWS의 설문조사에서 ‘받아들이겠다’는 응답이 60% 가량 나왔다. 자유의 나라, 자타공인 정부 정책 반대 1인자의 나라 프랑스에서 지난 2달 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느릿느릿 설렁설렁, 하지만 목표만큼은 확실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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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8일 마크롱 대통령 담화(copyright liberation)

매번 같아 보이지만 다른 날짜다

 

10월 30일 시작된 2차 '콩핀느멍(이동제한조치)'은 급작스럽기 이를 데가 없었다. 수요일에 대국민담화를 하더니 금요일부터 시작해버린 것이다.

 

발표 전에는 노년층 등 고위험군만 격리한다거나, 통행금지를 오후 3시부터 시행한다거나 하는 설이 나돌았지만, 정부의 지침은 아주 명료했다. 대국민 담화에서 대통령이 하나하나 반박했음은 물론이다. 명확한 목표도 제시했다. 일일확진자 5,000명 유지. 제아무리 자유로운 프랑스인이라도 달성하지 못할 유토피아적 숫자가 아니었다. 

 

하지만 갑자기 시행된 콩핀느멍은 생각보다 느슨하게 적용되었다. 식당과 바를 제외하고는 봄처럼 모든 사업장, 자영업자가 문을 닫지는 않았다. 재택근무가 의무였지만 회사가 서류만 발급한다면 출근도 문제없었다. 무엇보다 학력격차 방지와 학습권 보호를 위해 대학을 제외한 학교를 그대로 운영했다. 덕분에 길에는 행인이 꽤 있었고, 파리 시내 주요 거리는 제법 붐비기까지 했다. 식당 역시 포장과 배달을 허용했는데, 이로 인해 식당 앞에 모여 길에서 음식을 먹는 모습이 꽤 목격되기도 했다(결국 포장 및 배달을 22시로 제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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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콩핀느멍 중 뤽상부르그 정원

나름 거리를 두고 앉아 있는 모습

 

이게 봉쇄인가 싶은 나날이 이어졌지만, 장 카스텍스 총리의 중간브리핑을 통해 정부는 2차 봉쇄령에 큰 만족감을 드러냈다. 파리 지역 대중교통 이용 55% 감소, 재택근무 45% 참여, 장거리 운송수단 85% 감소 등등. 대형감염에 대한 일차적인 차단이 가능해진 셈이었다. 하지만 이를 발표했던 11월 12일에도 프랑스에서는 신규확진자가 30초에 1명씩, 중환자가 3분에 1명씩 늘어나고 있었다. 그렇게 느슨한듯 하지만 목표의식이 명확한 봉쇄기간은 연장됐다.

 

 

하루는 86,400초, 하루 확진자 86,852명

 

(ㅇ)11월 7일 86852명(9월27일-12월10일) c coronaboard.jpg

9월 27일부터 12월 10일까지 일일 확진자수 그래프

출처: coronaboard.fr

 

11월 7일은 프랑스 사회에 적지 않은 충격을 준 날이었다. 일일확진자가 86,852명이나 보고된 것. 단순 산술로 1초에 1명 이상 감염되었다 볼 수 있다. 그전에도 4만~5만 명을 오갔고, 누락된 숫자가 보고되었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숫자에 할 말을 잃은 것은 한두 사람이 아니었다. 언론과 개인이 줄기차게 비판하던 미국과 같은 양상이 등장한 것에 대한 충격, 봉쇄령이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걱정, 가장 중요한 명절인 노엘(크리스마스)까지도 코로나에 잠식당하리라는 불안감 등등이 밀려왔다.

 

누적 감염자가 100만 명이 넘은 지 열흘 만에 150만 명을 넘어서는 두려움도 한몫을 했다. 모든 언론이 몇 초에 1명이 감염되는 추세라며 빠른 감염속도에 주목하던 시점이다. 당연하게도 확진자 수가 열흘간 50만 명이 늘어난 만큼 이 시점부터 사망자 그래프도 상승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여러모로 사람들에게 불안과 공포를 안겨주기 충분한 임팩트 있는 시기였던 셈이다. (사실 이전까지 인터넷을 중심으로 ‘존재하지 않는 바이러스를 이용해 정부가 시민의 자유를 통제하려고 한다’는 류의 음모론이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었다. 사망자 그래프를 봐야지 확진자 그래프는 의미가 없다는 주장도 왕왕 볼 수 있었다)

 

 

노엘을 위하여 통행금지도 오케이

 

앞서 브리핑을 발행할 때와 지금 시점의 가장 큰 차이점은 정부와 국민 사이에 약간의 접점이 생긴 것 같다는 것이다. 서로 지쳤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만큼 익숙해졌기 때문인지, 정부의 정책에는 사람들이 여유를 둘 여지를 남겨둔 듯하고 시민들은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에 대해 어느 정도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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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주프랑스 대한민국대사관

 

12월 10일 장 카스텍스 총리는 15일부터 이동제한령을 해제하지만, 여전히 위중한 상황임을 고려해 예고했던 것보다 강력한 통행금지조치를 취하겠다고 발표했다. 저녁 8시부터 새벽 6시까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통행금지를 시행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단 24일 만큼은 제외다. 노엘(크리스마스)을 위해서다. 12월 중순부터 내년 1월 중순까지 강도 높은 봉쇄령을 내리는 독일과는 대조적인 유연한 정책이다. 여전히 목표는 단 하나 일일확진자 5,000명 유지.

 

연말연시를 누구보다 소중하게 생각하는 프랑스 사람들의 반응도 생각보다 유하다. CNEWS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약 60%의 응답자가 이를 ‘받아들이겠다’고 답했다. 물론 아직도 불만은 있다. 영화, 공연, 문화예술 영역은 완전히 문을 닫은 상황이라, 이 부분에 대해서는 온라인을 중심으로 꽤 큰 반발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유럽연합 차원에서 허용한 스키장에도 방문객이 늘고 있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연말연시 기간 리프트사용을 금지하겠다는 것인데, 걸어서라도 올라가겠다는 사람들이 있어 지켜볼 문제다. 하지만 각종 음모론과 반발, 시위로 점철됐던 2차 봉쇄령 초반과는 확실히 다른 모양새임을 알 수 있다.

 

어마어마한 2차 대유행을 겪은 만큼 프랑스 역시 백신에 관한 관심이 상당하다. 특히나 이웃나라 영국이 세계 최초로 백신 접종을 시작해서 눈과 귀가 쏠리는 모양새다. 유럽연합 차원에서 백신을 확보하고 배분하기 때문에 백신 확보 자체에 대한 이슈는 크지 않지만, 백신을 누가 어떻게 언제 맞을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현재 프랑스 정부의 입장은 백신 접종에 의무, 강제는 없을 것이며, 연말 또는 연초에 확보하는 백신은 고위험군을 우선으로 접종한다는 계획이다.

 

 

마크롱 대통령의 확진, 평화는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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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17일, 마크롱 대통령이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다. 본인은 격리에 들어갔으며, 당장 접촉한 이들도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할 처지가 되었다. 

 

사람들은 지칠대로 지쳐있다. 마스크는 곧 죽어도 못한다는 사람들에게도 마스크가 일상이 되었고, 모든 일에 ‘자유'를 외치며 거리로 뛰어나오는 사람들이 몇 주씩이나 집에만 있는 이 상황은 희극보다는 비극에 가깝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의 확진은 무엇을 의미할까. 

 

지리한 재난영화를 보는 것 같은 2020년이 지나고 나면 기적 같은 반전이 일어나 평화가 찾아올까. 그 희망찬 반전의 복선이 한 번쯤은 등장했기를 바라본다. 

 

파리 크리스마스 c Par Elodie D., My B. · Photos par My B. de sortiraparis.jpg

2020년 파리 크리스마스 장식 슈팅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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