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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인한 각국이 처한 위기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초기 대응에 따라 더는 손써볼 도리도 없이 급증하는 감염자로 위기에 몰리는 국가들이 있는가 하면, 나름의 위기관리를 통해 최악의 상황은 간신히 면하는 나라들이 있을 뿐이다.  

 

소위 선진국들의 경제성장이나 강대국이라는 그럴듯한 수치와 수식어로는 지금과 같은 전대미문의 전염병을 해결할 수 없는 모양새다. 심지어 이번 코로나 위기를 맞는 동안 이른바 ‘강대국들’의 대처는 상상 이상으로 무능했고 속수무책 몰락을 자초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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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미국 워싱턴에서 코로나 확산 억제를 위한 봉쇄 조치에 항의하는 시위.

 

코로나를 대처하는 정부 조치에 대한 불신과 불만으로 유럽 도시 곳곳에서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 만인에 의한 만인을 위한 투쟁, 각자도생만이 가장 안전한 생존 방식이 되어 버린 것일까. “공공의 이익”을 지향하는 사회적 합의가 더는 보이지 않는다. 

 

개인의 ‘자유’를 절대적 가치로 삼은 탓에 공동체는 해체되고, 원자화된 개인만이 생존할 수 있는 사회질서가 꾸준히 진행되온 결과다. 

 

그래서 경제성장은 고사하고 자본주의 국가가 아니라는 이유로 60년 넘게 미국의 경제봉쇄로 만성적인 물자 부족을 겪는 쿠바가 이번 코로나 위기에서 방역에 잘 대처하며 두각을 나타내는 이유에 대해 의문을 가져본다. 과연 코로나19 위기에서 지금의 쿠바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코로나 방역에 제대로 대처를 하지 못 하고 있는 다른 라틴아메리카 국가와 쿠바가 다른 점은 무엇인 걸까.  

 

쿠바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전반적인 라틴아메리카의 식민지 역사를 조금 살펴보자. 이 지역의 비극적인 식민지 역사는 쿠바의 역사이기도 하므로.  

 

 

중남미에 남겨진 달갑지 않은 유산, 식민지 질서 

 

유럽 세계사에서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콜럼버스 아메리카 발견”. 콜럼버스의 ‘위대한 업적’으로 남은 새로운 땅은 지금의 중남미·카리브해 지역이다. 

 

중남미 지역에는 미국 바로 밑에 있는 멕시코부터 과테말라,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등을 지나 칠레, 아르헨티나에 이르는 국가들이 포함되며, ‘라틴아메리카’라고도 불린다. 

 

쿠바는 중남미 해안의 카리브해의 섬나라이며, 남미 대륙의 다른 국가들처럼 유럽의 지배를 받았기에 유사한 식민지 역사와 굴곡진 근현대사를 공유한다.   

 

1492년 이후, 대항해 시대를 열었던 유럽인의 관점에서 아메리카는 ‘발견’되었고, 본인들은 선진 문명을 전파했으며, 이것은 모험과 개척정신을 가진 ‘우월한’ 백인 유럽인의 ‘은덕’이었다. 새로운 대륙의 ‘미개인’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계몽에 이르게 하여, 비로소 ‘문명인’으로 거듭나게 하였으니, 이 또한 ‘감사’해야 할 일이라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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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 조선이 임진왜란으로 쑥대밭이 되었을 때, 유럽은 지금의 중남미를 초토화시켰다. 유럽이 ‘발견’이라 부르는 그 새로운 땅의 토착민들은 짐승과 같은 사냥의 대상이었고 노예가 되었으며, 철 무기와 유럽인이 가져온 질병으로 거의 전멸하였다.

 

아메리카 ‘발견’ 후, 100년이 채 가기도 전에 멕시코의 아스텍을 비롯한 잉카, 마야의 문명을 이루고 살았던 토착민들은 자취를 감추었고, 그 후손들이 간신히 연명하고 있다.

 

지금 중남미의 정치, 사회, 경제적 현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난 1492년 이후 약 500여 년간 계속되는 식민지 잔재의 역사를 살펴봐야 한다. 36년 일제 강점기가 우리에게 남긴 “식민지 잔재”만큼이나 수백 년간 백인들이 아메리카에 이식한 식민지 질서는 끈질기고 지독하게 현재를 괴롭히는 달갑지 않은 유산이다. 

 

 

유럽이 떠난 뒤 형성된 미국의 신식민지 질서 

 

청산되어야 할 라틴아메리카의 식민지 ‘유산’은 새로운 ‘신’식민지를 위한 초석을 놓았다. 라틴아메리카는 유럽의 지배에서 벗어나는 1800년대 이후, 독립을 얻는 듯 보였으나, 형식적인 정치적 자유만 얻었을 뿐, 경제적으로는 여전히 미국이라는 새로운 강대국의 경제 속국으로 종속되어있다. 유럽이 물러간 자리에 미국은 고스란히 똬리를 틀었고, 20세기 이후 중남미는 미국의 뒷마당이 되었다. 

 

20세기 이후, 미국의 영향력은 미치지 않는 곳이 없었고, 유럽 식민지 시대의 현지 기득권층은 미국 지배계층과 동맹을 통해 신식민주의 질서를 구축했다. 과거의 방식과는 다르게 경제적 예속 관계를 토대로 하는 새로운 식민지 질서가 정착되었다. 

 

지리적으로는 가장 가까워 영향력을 미치는 것 외에 중남미 지역의 풍부한 지하자원은 미국이 중남미 지역의 지배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다. 당시 중남미는 미국 경제를 수혈하는 주요 원료 공급처였다는 것은 노골적인 미국의 탐욕 정치의 시작과 끝을 설명한다. 이는 석유를 가진 베네수엘라에 대한 미국의 병적인 집착을 설명하는 단서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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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수탈방식은 중남미를 통제하고 지배할 수 있어야 가능했던 착취구조였다. 중남미 매판 자본가와 소수 기득권 세력은 언제나 미국과의 동맹을 통해 친민중적 개혁 세력을 저지하였고, 미국의 착취에 협조하며 그들의 지배방식을 보장받았다. 

 

이에 대해 노암 촘스키(2000)는 분명한 언어로 이야기한다.   

 

“미국의 반민주적인 제3세계 정책은 다수의 정치참여를 막기 위해 정기적인 테러에 의존해 왔다.”

 

친민중적, 개혁적인 민주주의 정권은 미국이 지원하는 테러와 군부 쿠데타로 무너지거나, 이에 쉽게 굴복하지 않으면 내전으로 치달았다. 미국을 위시한 소위 서구 열강 등이 중남미와 같은 제3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은 시종일관 변함이 없다. 서구 자본주의 발전을 위해 반드시 ‘저개발’의 상태로 남아 안정적인 원료 공급처이자 시장이어야 한다.  

 

미국을 비롯한 외세의 지배에서 벗어나려는 모든 민족주의적 저항은 수구 기득권층에게는 위협이었고, 미국은 이것을 ‘공산주의’라 비판하며 내정간섭의 명분을 얻었다. 민족주의적 저항 세력이 중남미 민중들의 지지를 받거나 개혁적인 분배정책이라도 시도하는 경우라면 미국에겐 상당히 곤란한 일이었다. 

 

서구 열강 등은 이러한 정권들을 마치 일종의 ‘바이러스’로 인식했다고 촘스키(2000)는 일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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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암 촘스키

 

“바이러스가 일단 몸 안에 침투했다면 당연히 박멸시켜야 하는 법이다. 그리고 잠재적인 희생자들은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성을 가져야만 한다. 미국에서 쿠바라는 바이러스는 침략, 공포, 경제 전쟁을 불러일으켰으며 국가 보안국은 이 바이러스가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이런 정책은 동남아시아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칠레 아옌데 정권에 대한 미국의 정책에서 알 수 있듯이, 바이러스에 대한 대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즉 강경 노선과 유화 노선이다. 강경 노선은 칠레 아옌데 정권이 피노체트에 의해 무너졌던 것처럼 군사 쿠데타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유화 노선은 케네디 민주당 정부 당시 칠레 주재 미국 대사였던 에드워드 코리의 발언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칠레 공산 사회의 문제점이 스스로 드러날 수 있도록 미국은 모든 가능한 수단을 총동원해 칠레인들을 극도의 결핍과 빈곤 속으로 몰아넣는다.”

 

1970년 들어선 칠레의 아옌데 민주주의 정권은 3년을 채 버티지 못하고, 1973년 피노체트 군부에 의해 무너졌다. 그리고 칠레의 경제는 미국 시카고 보이즈라 불린 미국 유학파 경제관료들에 의해 재설정 되었다. 덕분에 현재 중남미 역내 가장 불평등한 민영 의료시스템을 구축하고 약값이 가장 비싼 국가가 되었다. 

 

작년 10월, 칠레에서 단돈 50원의 지하철 요금 인상으로 촉발된 시위의 본질은 사회 전반적으로 만연해 있는 이 같은 불평등 구조에 대한 분노의 폭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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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산티아고 거리 가득 메운 시위대 

 

 

중남미 국가들의 개혁 시도는 번번이 실패했다

 

1492년 이후 1820년경까지 약 300년간 지속된 유럽의 지배는 유럽인과 비유럽인 사이의 인종주의적 ‘우월함’의 서열이 고착되는 시기였다면, 미국 통제에 놓이는 20세기 이후의 질서는 인종 간 서열화와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에 기반을 두는 현대판 봉건주의의 질서이다.  

 

사회의 ‘양극화’라는 점잖은 개념으로는 턱없이 부족한, 극단적 빈부격차가 만성화된 중남미는 인간의 존엄을 해치는 ‘인간의 서열화’가 무엇인지 다양한 사회적 관계를 통해 드러낸다. 중남미의 많은 부촌 지역에서 메이드 복장(과거 유럽의 하녀 복장)을 한 십 대 소녀를 발견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중남미 역내 국가들 사이의 대동소이한 이런 기형적인 사회구조는 오랜 유럽 식민지 잔재와 미국의 통제하에 놓이는 20세기 이후 중남미 근현대사가 만들어낸 비극의 결과물이다. 

 

수 백 년 간의 식민지 유산과 잔재를 청산하는 일은 쉽지 않다.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추진되는 제도적 시도들은 종종 기득권층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 좌초되었다. 현재 대한민국 35년 식민지 역사의 잔재가 미치는 우리의 사회정치적 현실을 보더라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주권 국가로서 나가기 위한 중남미 국가들의 개혁적 시도들은 번번이 실패하였다. 수구 엘리트들의 저항은 언제나 미국의 지원을 받는 쿠데타로 이어지며, 군사독재정권으로 마무리되었다. 1960-70년대 중남미 대부분 국가에서 일어난 일이다. 

 

일례로 1954년 과테말라 민주주의 정부가 미국 CIA와 토착 군부의 쿠데타로 무너지는 것을 목격한 체 게바라가 그 뒤로 쿠바의 친미 독재정권을 몰아내는 무장 투쟁에 합류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진 바다.  

 

미국을 향한 중남미 토착 지배계급의 확고한 사대주의는 국민 ‘길들이기’를 위해 외세의 지원을 받고 대중들의 저항을 폭력적으로 무력화한다. 정치적 아젠다는 물론 개혁 의지나 동기가 부재한 소수 토착 지배계층이 다수 국민의 저항을 막아내는 유일한 방법인 것이다.  

 

중남미 근현대사를 통틀어 개혁을 시도하지 않거나 국민의 저항이 거세게 일어나지 않은 역내 국가는 없었고, 그때마다 처절한 실패를 경험하지 않은 곳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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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혁명의 주역들. 맨 왼쪽이 피델 카스트로, 왼쪽에서 세 번째가 체 게바라다.

 

쿠바의 처지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1959년 ‘쿠바혁명’이 일어났고, 이 혁명으로 미국의 지배에 벗어나고, 미국에 의지에 역행하여 반자본주의적 사회개혁을 향한 시도가 성공하며 쿠바의 운명은 다른 중남미 국가들과는 사뭇 다르게 진행됐다. 

 

 

다른 중남미 국가와 다른 길을 선택한 쿠바

 

쿠바혁명이 일어난 1959년에 쿠바는 미국 산업자본가와 금융가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었고, 미국을 등에 업은 친미 독재자 바티스트의 서슬 퍼런 철권통치가 행해지고 있었다.  

 

혁명의 대가는 혹독하다. 세계시장의 강력한 독점력을 가진 미국은 쿠바에 대해 경제봉쇄를 60여 년간 계속하고 있으며, 쿠바의 체제 전복을 위한 시도들도 멈추지 않고 있다. 미국은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가 창궐하자 쿠바에 대한 봉쇄와 제재 수위를 더욱 높이기도 했다.

 

쿠바는 자본주의 체제를 폐기했고, 그 위에 새로운 사회질서를 구축하고자 했다. 다른 중남미 국가들의 지도층 같은 외세와 결탁해 자신의 이익만을 도모하는 인사들도 처단했다. 새롭게 들어선 지도층은 모든 국민에게 동등한 기회가 주어지는 민주적인 건강한 사회를 만들고자 했으며, 전 국민에게 무상 의료와 교육을 시행하는 것을 시작으로, 사회로부터 소외되는 계층을 최소화하려는 정책을 이어오고 있다.  

 

그 결과는 고무적이다. 그리고 이번 코로나 국면에서 다른 중남미 국가들과는 확연히 다른 대처를 하며 다른 중남미 국가들과의 차이점을 확연히 나타내고 있다. 

 

쿠바는 코로나로 초토화된 역내 다른 국가들과는 달리 코로나에 잘 대처하고 있다. 현재 쿠바는 코로나로부터 매우 안전하다. 쿠바에서는 개인의 자유와 함께 공동체를 위해 모두가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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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의료인력이 지난 3월 22일 로마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공항에 도착해 쿠바 국기를 내보이고 있다. 자국의 코로나 방역에 성공적으로 대처한 쿠바는 세계 20개국이 넘는 나라에 의료 파견 인력을 보냈다.

 

멕시코, 브라질을 비롯한 중남미의 국가에서는 국가와 사회로부터 배제당하는 국민들이 사회 대부분의 다수이다. 그리고 그들이 확진자의 대부분이다. 소외되는 계층이 소수가 아니라 다수로 이루어진 사회는 코로나 같은 전염병이 가장 좋아하는 사회적 환경이다.

 

국가가 국민을 보호해주지 않고, 각자도생을 강요한다. 그러다 보니 국민들은 사회공공의 이익보다 개인만을 생각하며 행동한다. 공동체를 위해 노력할 수 있는 환경이 없다.

 

중남미의 이 같은 사정은 1980년대 신자유주의라고 불린 경제 개혁을 도입한 이후 더욱 심각하다.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대규모의 빈곤층 양산과 사회적 불평등을 만들어냈고, 이후 코로나19 위기만큼이나 손써볼 도리도 없이 빈곤층은 극빈층으로, 불평등은 살인적인 양극화로 진화 중이다.    

 

무분별한 시장개방이나 외국 투기 자본의 난립을 통제할 수 있는 국가의 역할을 대폭 축소하고 사회복지를 위한 지출을 삭감하여 외채 이자를 감당하도록 요구한 미국 월스트리트와 IMF의 처방을 받아들인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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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의 빈부격차를 보여주는 사진.

 

 

쿠바의 선택이 옳았다 

 

코로나19 위기에 쿠바 보건의료 시스템이 다시 재조명되는 것은 고가의 의료장비나 그럴듯한 병원시설이 아니다. 

 

오히려 반세기가 넘는 미국의 야만적인 경제봉쇄에도 불구하고 쿠바 사회가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두에게 건강”이라는 사회적 합의와 1차 보건의료에 기반을 두는 공공의료의 정책적 수행이 사회 전체에 미치는 긍정적인 면면들이다. 

 

GDP와 같은 경제의 거시지표로 보자면 쿠바는 중남미 역내 국가 중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의 하나다. 그러나 그 어느 나라에서보다 코로나19 위기 중의 쿠바 사람들은 평온하다. 다른 어느 국가에서도 볼 수 없는 진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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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보건성 감영청 청장 두란(Durán)

 

지난 3월 이후 쿠바에서 첫 확진자가 나온 이후 하루도 빠짐없이 국민을 대상으로 코로나19 관련 확진자, 사망자, 지역감염 현황 등을 상세히 알려주며 대응 조치를 전달하는 쿠바 보건성의 감염관리청 청장인 두란(Durán) 박사는 코로나19위기 이후 쿠바 주민들 사이 가장 ‘인기’있는 인물이 되었다. 쿠바의 정은경 질병관리청 청장인 셈이다. 

 

코로나바이러스의 무서운 전파력으로 일상에 변화를 가져온 것은 쿠바도 다른 국가들과 유사하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권고되고, 손을 자주 씻고, 마스크 착용을 ‘권고’하는 등 기본적인 공공위생 지침이 만들어진다. 

 

이 같은 정보들은 지역 곳곳에 설치된 진료소, 주민, 지역감염 전수조사를 통해 코로나 감염 현황을 실시간 확인하는 의대생들의 목소리를 타고 전달된다.        

 

쿠바의 인상적이었던 대국민 정부 발표의 내용이다.

 

“언제나 포옹과 악수를 좋아하는 우리 쿠바인들에게 ‘사회적 거리두기’를 제안하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알지만, 지금으로서는 이 위기를 함께 극복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것임을 이해해 주기 바랍니다.”

 

학교는 물론 사교 모임이나 사회활동이 전면으로 차단되자 의대생들은 SNS를 통해 격려와 응원의 메시지를 국민과 공유하며 소통을 유지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모은다. 한국에서 코로나 19위기에 전공의들은 파업을 시작했고, 대한민국의 의대생들이 이에 동참했을 때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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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의대생들이 ‘사회적 거리두기’로 제한된 외부 활동 대신에 SNS를 통해 서로 격려하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모습 (SNS 사진 캡처)  

 

이 같은 쿠바의 강력한 사회적 응집력을 만들어내는 동력이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앞으로도 제법 긴 시간 동안 쉽게 끝나지 않을 코로나19 위기 속 쿠바 사회는 다른 중남미 국가와 다르게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한편으로 쿠바가 구축한 의료 체계와 같은 사회의 안전망이 제 기능을 하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유사한 식민지 역사와 근현대사를 공유한 쿠바가 다른 중남미 국가들과 유일하게 다른 점이 있다면 서구 열강이 요구하는 서구 열강 맞춤형 자본주의 사회가 아니라는 점이다. 

 

현재의 코로나19 위기 속 역내 다른 국가들의 현실과 굳이 비교해보자면, 어쩌면 쿠바의 선택이 옳았다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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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그렇다면, 좀 더 자세한 쿠바의 코로나 대처는 어떤 모습일까? 다음 편에선 코로나 국면 속 쿠바의 대처에 대해서 좀 더 집중적으로 다뤄보겠다.

 

                               정이나 (쿠바 아바나 의과대학, 중남미 사회인류학 박사)

 

<계속>

 

 

 

Reference

 

https://www.prensa-latina.cu/index.php?o=rn&id=374767&SEO=cuba-195-casos-activos-de-la-covid-19-con-190-estables (검색일 2020, 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