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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데타

 

정경심 교수가 1심에서 4년 형을 받았다. 윤석열의 2개월 정직 처분 집행정지가 결정되었다. 검찰이 제기한 모든 혐의가 다 사실이고 유죄라 해도 4년 형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판사를 사찰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윤석열이 받은 고작 2개월 직무정치 처분이 과중하다며 집행정지 결정이 났다. 이 역시 납득할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연달아 나온 판결과 결정은 검찰-법원 법조 카르텔이 선출 권력에 반기를 들고 전쟁을 선언한 것이다. 선출 권력에 의한 민주적 통제를 거부했다는 점에서 민주주의를 부정한 것이며 법조 쿠데타라 불러야 한다.

 

많은 민주시민들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며 크게 분노하고 있다. 분노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이럴 때, 분노와는 별개로 한 발 떨어져서 냉정하게 사태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정경심 교수가 무죄가 나오고 윤석열의 정직 처분이 집행되었다고 생각해보자. 그 처분 자체로는 사필귀정이라며 기분이 좋아질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사는 세상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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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뉴시스>

 

윤석열이 해임되느냐 징계받느냐는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윤석열이 해임된다고 검찰이나 검사들이 크게 바뀌는 것도 아니고 유임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사실 별일 아니다. 진영의 기세에 영향을 미칠 수는 있겠지만 대통령이 문재인이라는 사실도 민주당의 의석이 180석에 육박한다는 사실도 바뀌지 않는다.

 

그들은 조직에 충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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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검찰 총장이라면 달랐을 거라며 윤석열을 지명한 게 실수라는 얘기에 대해서도 동의하지 않는다. 윤석열 징계가 나오자마자 전직 검찰총장 중 9명이 함께 “윤석열 징계가 법치주의의 오점”이라는 성명을 냈다. 언제부터 공무원에 대한 징계가 법치주의 문제가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문재인 정부에서 지명한 문무일이 저 명단에 이름을 올렸으며, 이명박 정부의 검찰총장 한상대와 박근혜 정부의 검찰총장 채동욱이 빠졌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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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에서 지명한 검찰 총장인데도 저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는 건 문무일 본인도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에 동의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누구를 검찰 총장으로 지명했어도 온 힘을 다해 검찰개혁에 저항했을 것이라고 쉽게 추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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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연합>

 

한상대와 채동욱이 저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한상대는 대검 중수부 폐지를 밀어붙이다 총장직을 그만두었다. 채동욱은 혼외자 논란 때문에 옷을 벗었다. 두 사람 다 검찰이라는 조직이 보호하지 않은 검찰 총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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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예전부터 제 식구 감싸기라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조직에 충성하는 이들을 절대 버리지 않았다. 학의인 듯 학의 아닌 학의 같은 김학의가 가장 좋은 예다. 조직을 배신하지 않는 자는 어떻게든 지켜준다. 하지만 한상대처럼 조직에 반기를 든 자, 채동욱처럼 무리한 수사로 조직에 위해행위를 한 자들은 냉혹하게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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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대, 채동욱을 제외한 검찰 총장들의 성명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검찰은 검찰을 위해 존재하는 조직이라는 사실과 마피아나 조폭과 비슷한 원리로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검찰은 정권이 어느 진영인가와 관계없이, 조직 내부의 원리에 따라 움직인다는 사실도 쉽게 짐작이 간다.

 

성동격서

 

하지만 어느 쪽을 지지하는지와 관계없이, 윤석열이 징계되면 혹은 징계되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흥분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모두 이 사건에 과몰입되어 있는 것이다.

 

한발 떨어져 보자. 윤석열 때문에 난리가 난 사이, 공수처법이나 국정원법, 사참법 등 중요한 의미를 지닌 법들이 속속 통과되고 있다. 윤석열이란 뼈다귀를 물고 개혁을 막고자 하는 온갖 사람들이 열을 올리고 있는 동안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한발 한발 착실히 검찰개혁, 법조 개혁이라는 길을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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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연합>

 

윤석열 징계 건이 아니었다면 공수처법이 이렇게 쉽게 개정될 수 있었을까? 훨씬 어려웠을 거라고 본다. 윤석열 징계에 모두의 눈이 쏠려있는 사이에 공수처법은 별다른 저항 없이 통과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윤석열은 미끼일 뿐이다. 그의 징계가 의미는 있을지 몰라도 별로 중요한 일은 아니다. 징계받지 않아도 몇 달 뒤면 물러난다. 두 달 정직이 되느냐 아니냐가 뭐 그렇게 중요할까.

 

윤석열 본인이야 자신의 징계처분이니 엄청 중요한 일일 수 있지만, 나머지 국민들에게도 그만큼 중요한 일일까? 아니라고 본다. 물론 지금부터 윤석열이 하려는 일, 할 것이라고 생각되는 일은 (나쁜 의미에서) 중요한 일일 수 있다고 본다.

 

원전 수사 때도 그랬지만, 윤석열이 지금부터 하려고 하는 일은 선출 권력의 정책적 판단을 사법의 대상으로 끌어들인 후, 전쟁을 벌여 검찰 개혁을 좌초시키는 일이다. 검찰총장 단체 성명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지만, 이건 누가 총장직을 수행했어도 비슷하게 행동했을 것이다.

 

판사를 사찰하고도 검찰총장을 2개월 정직조차 시킬 수 없다는 현실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고 있다. 이 에너지는 개혁을 위한 큰 동력이 될 것이다.

 

대체 검찰총장이 뭐라고 자기 멋대로 판사들의 신상정보를 캐내고, 그런 짓을 하고도 해임은커녕 2개월 정직조차 시킬 수 없는가? 이런데도 왜 권력 비판이 자신들의 의무라는 기자들은 비판은커녕 편들어주느라 정신이 없는가? 검찰 총장의 가족에 대한 수사는 왜 지지부진한가? 왜 정경심 교수는 검찰이 재현도 못 하는 표창장 위조로 4년이나 감옥에 살아야 하는데, 나경원은 13개의 고발이 검찰에 의해 전부 불기소 처분이 됐는가? 이런 의문을 느끼는 사람이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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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뉴시스>

 

서초동 카르텔의 속사정

 

뭐든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는 법이다. 검찰이 재현도 못 한 표창장 위조를 가지고 4년 형을 선고한 임정엽 판사는 마지막에 정경심 교수에게 소감을 말해보라고 했다고 한다. 임정엽은 아마 판사들 전체를 대신해 물어봤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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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엽 부장판사

 

“니 남편이 사법개혁한다고 설치다가 너가 4년 동안 감옥에 가게 생겼는데 기분 ㅈ같지? 그러니까 남편한테 가서 설치지 말고 조용히 살라고 해.”

 

한편 조미연 판사는 판사 사찰이 심각한 문제라면서도 2개월 정직조차 집행정지시켰다. 검찰 전체가 판사들의 판결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사찰까지 했는데도 왜 판사들은 검찰의 편을 드는 것처럼 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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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미연 부장판사

 

세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봐야 한다.

 

첫째, 법원 개혁에 대한 거부감이다. 문재인 정부가 법원을 개혁하겠다며 사법 농단 판사들을 재판하고 있는 것에 대해 반발하는 기류가 법원 내부에 없을 리 없다. 문재인 정부에 유리한 판결을 내리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나 꺼리는 마음이 있을 수밖에 없다.

 

둘째, 여론이다. 세상에 여론보다 힘센 것은 없다. 여론이 어떻게 움직이는가에 따라 대통령이 탄핵되기도 한다. 판사들도 여론을 신경 쓴다. 근데 여론으로 따지면 이렇게 일방적인 결과가 나오는 건 이상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면 쉽다. 판사들은 어떻게 여론을 파악할까?

 

신문이나 방송, 포털 사이트에 올라오는 글이나 주변 사람들의 의견을 통해 여론을 파악한다. 판사 주변 사람들이 대부분 판, 검사들일테니 그 동네 여론이 어떨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동안 조국과 윤석열에 대해 쏟아진 기사 내용을 생각해보면 실제 여론이 어떤지와 관계없이 임정엽이나 조미연 판사 같은 이들이 여론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을지도 자명하다. 그들은 다른 판결을 내는 쪽이 여론을 거스르는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셋째로 다들 생각하지 못하는 사실인데, 이번에 윤석열 징계와 관련되어 가장 중요한 사안은 판사 사찰이다. 윤석열 검찰은 판사들을 사찰했다. 임정엽, 조미연을 포함한 판사들도 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다. 검찰에서 취득한 정보 중엔 세상에 나오지 못할 것들도 있을 것이다. 이런 정보를 쥐고 있는 상대에게 불리한 판결을 내린다는 것이 쉬운 일일까?

 

일반 시민이 보기엔 검사들이 판사를 사찰했으니 판사들이 기분 나빠서라도 불리한 판결을 내릴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어떤 정보를 쥐고 있는지 모르는 상대에게 불리한 처분을 내리기는 어려웠을 거다. 그 상대가 조국에 대해 어떤 짓을 했는지는 판사들도 다 보지 않았나.

 

문재인 대통령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알 수 없지만, 추미애 장관의 사표는 반려하는 것이 맞다. 문재인 대통령의 성격상 사표를 수리할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하지만 이미 홍남기 장관의 사표를 반려한 적도 있다. 저쪽에서 앞뒤 안 가리기로 막가기로 한 이상, 이쪽에서 점잖은 척해봐야 소용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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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뉴시스>

 

추미애의 사표는 을지문덕이 우문술에게 보낸 편지와 같다. 이쯤에서 서로 물러나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하지만 윤석열은 발도 물러설 생각이 없다는 걸 보여주었다. 저쪽에서 물러날 생각이 없다는데, 이쪽에서 물러나는 것은 일을 그르치도록 만들 가능성이 높다. 이런 의미에서 추미애 장관의 사표는 반려해야 한다.

 

분노하라, 고귀하게

 

정경심 교수와 윤석열에 대한 판결이 나오자 지난 총선 때 민주당에 투표했다고 180석을 줬네 마네 떠들어 대며 청와대와 민주당을 욕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의 기분도 시리도록 이해가 간다. 한 표의 가치가 가벼운 것은 아니지만 그 표만으로 180석이 만들어진 게 아니라 그 표들이 모여서 180석이 된 것이다.

 

게다가 이 판결이 의회에서 결정한 것도 아니고 판사들이 결정한 일이다. 무슨 도시락 폭탄이라도 던진 것처럼 열 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180석이 있다고 모든 걸 뜻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민주주의는 다수결의 원리만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다. 게다가 민주당이 180석이 되는데 자신이 얼마나 기여한 거 같은가? 고작해야 한 표 던진 것뿐이다. 큰돈 맡겨놓은 것처럼 “이러려고 촛불 들었나” 이딴 소리는 딴 데 가서 해라.

 

세상 어떤 싸움도 10대 0의 싸움은 없다.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으며, 뜻대로 될 때가 있으면 뜻대로 되지 않을 때도 있다. 한 대도 맞지 않고 이길 수는 없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싸움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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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연합>

 

이 판결들에 대해 분노하지 말라는 게 아니다. 오히려 더 분노하는 게 옳다. 나만 해도 이런 글을 쓰고 있지 않은가. 윤석열 집행정지가 나온 이후 민주당에 가입해서 힘을 실어주겠다는 이들이 많다. 분노를 자신의 화풀이나 감정 해소가 아니라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동력으로 삼기 위해 냉정하고 차분하게 사태를 파악하고 행동해야 한다. 한 발 떨어져 사태를 객관적으로 보고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해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는 의미다.

 

오랜 시간 검증해온 독감백신이 위험하다며 백신 맞은 사람들은 다 죽을 것처럼 위협해서 백신을 맞지 못하게 만들던 기자들이, 아직 검증되지 않은 코로나 백신을 확보 못 했다며 사람들 다 죽는다고 겁을 주고 있다.

 

각각의 기사들만 보면 분노하는 게 당연하다. 정부가 위험한 독감백신을 맞추려고 하면 화를 내야하고, 꼭 필요한 코로나 백신을 확보하지 못하면 분노해야 한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그 분노는 옳은가? 한 발 떨어져 보면 최소한의 앞뒤도 맞지 않는 기사들이다. 독감백신 기사를 보고 독감백신 위험하니 맞지 않겠다고 하거나 코로나 백신 기사를 보며 백신 당장 내놓으라고 화를 내는 것은 누군가에게 이용당하기만 할 뿐 아무 유익도 없는 짓이다. 분노 없이 세상을 바꿀 수 없지만, 분노만으론 세상을 망칠 수도 있다.

 

분노는 강력한 감정이고, 그 분노를 이용해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려 하는 자들이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기자들이 그런 자들의 선봉대가 되어 사람들의 분노를 조장하고 이용하려고 하고 있다. 분노하더라도 한 발 떨어져서 보지 않으면 이런 자들에게 자신의 고귀한 분노를 이용당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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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연합>

 

이제 공수처장 임명이라는 큰 싸움이 남아있다. 그 싸움이 벌어졌을 때 검사들이 어떤 수사와 기소를 할지, 기자들이 어떤 내용의 기사를 쓸지 판사들이 어떤 판결을 할지 우리는 정경심 교수 판결과 윤석열 집행정지 결정을 통해 똑똑히 확인했다. 윤석열 정직 처분 같은 건 이 싸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일이다. 다들 가슴 깊은 곳에 정경심 교수 판결과 윤석열 집행정지 결정에 대한 깊은 분노를 품고 이 싸움에 대비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공수처장으로 최적의 후보는 이해찬 전 대표라고 생각하지만, 법조인 출신이 아니라서 가능한지 모르겠다.

 

밑에 링크는 대법원을 개혁하려는 과정에서 미국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글인데 다들 꼭 읽어봤으면 한다. 개혁이란 이런 싸움이다.

 

(링크)루즈벨트는 연방대법원과의 5년 전쟁에서 어떻게 승리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