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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객전도

 

올해도 유튜브, 올해도 넷플릭스다. 아니 올해는 작년보다 더 유튜브였고, 더 넷플릭스였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다. 오프라인을 기반으로 한 정통 미디어 매체들의 위기는 이미 수년 전부터 지겹도록 반복됐던 얘기였지만, 올해만큼 그 공포감이 현실로, 어떤 하나의 ‘사태’로서 다가온 적은 없었으리라. 유튜브와 넷플릭스는 지금까지 일종의 대체재로 여겨졌었다. 텔레비전(이젠 이 단어마저 옛것으로 느껴진다)에서 놓친 부분을 다시 보거나, 볼 방송이 없을 때 찾던 것이 유튜브였고, 영화관에 가는 대신 가는 곳이 넷플릭스였다.

 

그런데 이제는 정말로 주객이 전도되었다. 아니 애초에 무엇이 주(主)이고, 무엇이 객(客)인지 분간을 할 수 없는 상황에 도달했다. 2020년 지상파 방송에서 가장 핫했던 콘텐츠로 기억에 남는 것은 한가위 특집으로 KBS에 출연한 가수 나훈아의 콘서트와 MBC <놀면 뭐 하니>의 싹쓰리, 그중에서도 ‘1일 1깡’ 열풍을 일으킨 가수 비의 출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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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두 ‘사나이’ 콘텐츠의 유행 현상에서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비의 ‘1일 1깡’의 열풍은 그 시작이 유튜브였다는 것이고, 나훈아는 유튜브처럼 ‘다시 보기’를 허용하지 않는 조건으로 프로그램에 출연했다는 것이다. 유튜브에서 탄생한 무언가를 가져와 만든 지상파 방송과, 지상파 방송에 있는 무언가를 유튜브로 유출시키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방송이 동시에 유행하고 있는 2020년. 다시 한번, 무엇이 주고, 무엇이 객일까. 대체 무엇이 진짜고, 무엇이 가짜일까.

 

그런 미디어 지형 따위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듯 올해를 강타한 두 개의 콘텐츠가 있다. 유튜브 채널 피지컬 갤러리의 <가짜 사나이>와,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ESPN 제작 다큐멘터리 <마이클 조던 : 라스트 댄스>이다. 한 해를 정리하며 오직 온라인에서만 만날 수 있는 이 두 사나이들을 되짚어보는 것은, 물론 미디어적인 관점에서 유의미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을 떠나서 다시 한번 이 두 작품을 언급하고 싶은 이유는, 이 영상들이 분명 우리들에게 동기부여를 시켜주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며, 새해를 맞이하는 시기에 동기부여 영상만큼 영양가 있는 영상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둘 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봐도 너무 재밌는 것도 사실이다.

 

'찐'을 찾는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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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생, 여기 뭐 하러 왔어.”

 

두 작품 중 조금 더 원초적인 재미를 주는 작품은 <가짜 사나이>이다. <가짜 사나이>는 유튜버 혹은 스트리머와 같은 인터넷 방송인들을 대상으로 UDT 훈련을 체험해보게 하는 콘텐츠다. ‘진짜’인지 아닌지 논란이 있었던 MBC의 인기 프로그램<진짜 사나이>를 패러디한 방송으로 봐도 무방하다. <가짜 사나이> 역시 출연진들이 훈련하며 힘겨워하는 모습,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을 이겨내는 모습 등을 보는 것이 재미 포인트이다.

 

얼핏 들으면 <진짜 사나이>와 크게 다를 것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혹은 “또 군대놀이냐"라는 비판을 들을 수 있는 <가짜 사나이>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요인은, 다른 게 아니라 ‘가짜’가 오히려 ‘진짜’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심의가 자유로운 유튜브에선 교관과 출연진들의 험한 말과 행동들이 여과 없이 노출될 수 있다. 그런 것들이 시청자들로 하여금 출연진들의 얼굴에서 ‘진짜’를 보게 만든 것이다. 사람들은 출연자들의 발언과 태도를 보며 분노하다 마침내 달라지는 모습을 보고 응원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교관들을 비롯한 모든 출연진들은 SNS에서 수만 명의 팔로워를 보유한 유명 인사가 되었다.

 

그렇게 성황리에 마무리된 1기의 인기에 힘입어 오래지 않아 2기를 모집한다는 발표가 나왔다. 이에 전 축구 국가대표 선수인 김병지는 자신의 시그니처인 뒷머리까지 자를 수 있다는 각오를 밝히며 지원을 했고, 유도 선수 조준호 뿐만 아니라 지상파 방송에서도 활동 경력이 있는 줄리엔 강, 종합격투기 선수 김동현, K팝 스타에서 준우승한 샘김까지 지원을 했다는 소식이 들리며 다시 한번 그 인기를 실감하게 했다. <가짜 사나이>의 새 시즌에 유명인들을 포함한 많은 인터넷 방송인들이 지원한 것은, 그만큼 현재 ‘어디가 핫한지’를 보여주는 지표라고도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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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원자들이 단순히 관심을 끌기 위한 목적으로 이 프로그램에 지원을 한 것은 아니었다. 사전 공개된 지원자들의 지원 영상을 통해 알 수 있듯, 그들이 지원을 한 보다 중요한 동기는 바로 나태한 자기 자신을 바꾸는 것이었다. 훈련장에서 교관들은 끊임없이 훈련생들에게 여기에 온 이유를 묻고, 그들은 거의 죽기 직전의 표정을 지으면서도 ‘할 수 있다’며 구호(‘악!’)를 외친다. <가짜 사나이>에 대한 사람들의 호응은 이러한 지원자들의 포기하지 않는 태도가 진심으로 느껴진 것으로부터 기인했을 것이다. 올해 또 한 명의 뜨거운 사나이였던 트로트 가수 영탁의 대표곡처럼, <가짜 사나이>가 담고 있던 것 역시 ‘찐’이었던 것이다.

 

왜 아직 쏘지도 않은 슛을 걱정하는가

 

전 세계를 통틀어 ‘진짜 사나이’를 꼽는다고 했을 때 이 남자가 빠질 수 있을까. 진짜를 넘어 ‘전설의 사나이’라고 불려도 부족하지 않을 그 남자, 마이클 조던. 1984년은 미국 일리노이 주 시카고에, 아니 NBA 리그 전체에 ‘진짜가 나타난’ 해로 기억된다. <라스트 댄스>는 마이클 조던이 시카고 불스의 선수로 뛰었던 마지막 해, 즉 97~98시즌을 위주로 조던의 선수 인생 전체를 이야기하는 다큐멘터리이다. 이미 다섯 번의 우승컵을 팀에 가져다준 조던은 새 시즌을 맞이하여 6번째 우승의 각오를 다지는데, 팀 단장과의 오래된 불화로 올해가 조던의 마지막 시즌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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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댄스>는 ‘조던의 6번째 우승’이라는 엔딩을 정해둔 채, 계속해서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가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말하자면 마이클 조던이 아직 그 ‘마이클 조던’이 되기 전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게 다큐멘터리는 조던이 전설이 되는 과정에 내려야 했던 수많은 선택들을 되짚어본다. 이는 결국 ‘이렇게 하면 조던이 될 수 있어요’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고, 동시에 ‘아무도 조던이 될 수 없다’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를 통해 누군가는 마이클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며 감동하거나 실망할 수 있을 것이고, 다른 누군가는 승리를 위해서 그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그의 비인간적인 면모를 존경하거나 비판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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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다큐멘터리가 독특한 것은, 이 모든 ‘과거’를 돌아보고 있는 것이 우리뿐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과거 영상들 사이사이엔 그 당시를 회고하는 관련자들의 인터뷰가 삽입되어 있는데, 그중엔 2020년 현재 57세인 마이클 조던도 있다. 현재의 조던이, 과거의 조던을 보고 있는 것이다. 전성기 시절과 너무도 다른 육중한 모습을 한 채 앉아 있는 조던은 자신이 내렸던 선택에 대해 이런 말을 한다.

 

다시 돌아가도 그렇게 할 거라고. 누군가는 비난하겠지만, 나는 오직 ‘현재’에 충실했던 것뿐이라고.

 

그러니까 현재와 달리 유튜브나 SNS를 통해 널리 알려지기 어려웠던 시대에 조던이 세계적인 스타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무엇도 아닌 자신의 실력이었던 것이고, 그 실력은 모든 경기를 마지막 경기인 것처럼 뛰었던 그의 태도에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었을까. 아직 쏘지 않은 슛을 걱정하는 대신, 현재 1분 1초에 충실한 태도가 그를 ‘진짜 사나이’로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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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부여 영상은 끝났다. 훈련도 끝났고, 경기도 끝났으며, 연말 연휴도 곧 끝이 날 것이다. 이제 계속해서 다음 영상을 추천하는 유튜브와 넷플릭스의 알고리즘으로부터 벗어나, 다시 현실로 복귀할 차례다. 여러분의 다음 미션은 무엇인가. 여러분의 다음 목표는 무엇인가.

 

‘가짜 사나이’는 결국 가짜다. <가짜 사나이>와 <라스트 댄스>에서 아무리 좋은 영감을 받는다 해도 그것은 결국 내가 아닌 남의 훈련이며, 남의 경기일 뿐이다. 그렇다고 UDT 훈련을 직접 받으라는 것도 아니다. 운동선수가 되라는 것도 아니다. 왜 자꾸 의미 없는 비슷한 말들을 반복하는 거냐고? 그건 나도 답이 없기 때문이다.

 

영화평론가인 내가 왜 영화가 아닌 다른 콘텐츠에 관한 글을 쓰고 있는지 나도 정말 모르겠다. 2021년에 영화가 개봉을 할는지. 유튜브는 내년에도 ‘갓튜브’일지. 이러다가 모든 영화가 넷플릭스에서 개봉하는 것은 아닐지. 다만 가짜 사나이들과 전설의 사나이를 보며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 더 이상 해결하지 못할 문제의 답을 찾는 데에 헛힘을 쓰지 말라는 것이다. 그게 2020년의 내가 2021년의 나에게 주는 미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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