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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에 등장하는 바텐더는 허구의 인물이다. 허구의 인물을 이용하여 기사 속에 정신분석학, 심리학적 요소를 담았다.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당신이 무엇을 이루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잘 대해야 한다. 고시 공부와 같이 온전히 나 자신과의 싸움인 것도 있지만, 세상일의 대부분은 나 자신만 잘하면 되는 단순한 로직이 아니다. 그래서 타인을 잘 대해야지 화목한 가정을 이루든, 고객 영업을 잘하든, 팀 동료들끼리 협업을 잘하든 그 외의 다른 것이든 잘할 수 있는 확률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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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상대방을 잘 대하는 것이란 무엇일까? 그 사람에게 맞춤형으로 대하는 것이다. 단적인 예로, 우리가 어느 나라 바이어와 계약을 하는가에 따라서 해당 나라 사람들의 심리 바탕에 깔려 있는 그들의 문화, 가치관 등을 신경 써서 대접하지 않나. 

 

그래서 사람들 각각의 특성에 따라 어떤 부분을 건드려야 나의 편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인가. 이 처세의 심리학을 말해보려 한다.

 

 

나르시시스트를 대하는 바텐더의 심리학  

 

나는 바텐더다. 학부 때는 심리학을 전공했는데, 전공을 살려 일할 만한 곳을 찾지 못했다. 지금은 조그맣게 내 가게를 꾸려서 운영하고 있는 중이다. 최근 수입은 줄었지만, 여차여차 생계를 이어나가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장사가 안돼 우울해하는 찰나 남자 손님 한 분이 들어오신다. 

 

대부분 손님들은 인사를 잘 안 하는데, 공손하게 먼저 인사를 하신다. 머리 스타일이 눈에 띤다. 흔히 여자들이 좋아하는 스타일과는 멀어 보인다. 약간 단발식으로 기르고 있는데, 그리 잘 어울리는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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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이 들어오면 그 차림새가 ‘요즘 유행을 따르는지 아닌지’부터 보는 습관이 있다. 전자는 다른 사람 시선을 좀 신경 쓴다는 의미다. 후자는 물론, 그런 거 상관없이 ‘자기 좋은 거’ 입는 사람이다. 이 손님은 아마도 후자에 가까운 것 같다.

 

“여기 칵테일 같은 거 뭐 잘하나요?” 

 

자리에 앉자마자 손님이 묻는다. 조금 위압 당하는 느낌이다. 이 사람은 내성적일까 외향적일까? 갑자기 궁금해진다. 이런 질문은 바텐더에게 상당히 중요하다. 손님에 따라 스탠스를 달리 취해야 하기 때문이다.

 

혹자 중에 바텐더가 말발이 좋아서 이런저런 말을 많이 해야 한다는 사람이 있는데, 그게 항상 좋은 것만도 아니다. 말 많은 사람 앞에서는 들어주는 게 중요하고, 다른 사람 의견을 갈구하는 사람에게는 말을 많이 해야 하는 법이다.

 

더구나 손님의 질문에 무조건 대답을 하는 게 중요한 것도 아니다. 질문은 항상 그 배경과 문맥을 읽어야 한다. 

 

이 손님의 경우 아직 질문의 의도가 정확히 파악되지는 않지만, 어쨌든 이 바닥에 오래 있다 보면 저런 질문 하는 사람들 중 진짜 ‘여기가 뭘 잘하는지’ 알고 싶어서 물어보는 사람은 드물다는 걸 알게 된다.

 

“혹시 어떤 종류를 좋아하시나요?”

 

개방형 질문을 역으로 밀고 나가본다. 손님이 말한다. 

 

“전 주로 버번을 마시는데, 혹시 버번 베이스로 추천해주실 만한 거 있나요?” 

 

아 버번을 좋아하시는구나. 

 

사람들 중에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도 있고, 애초에 뭘 좋아하는지 모르는 사람도 있다. 반면 이렇게 노골적으로 자기 좋아하는 것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조금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이번에 저희 가게에 들어온 술 중에 OOO라고 우리나라에서 흔하지 않은 버번이 있는데 이거 베이스로 한 번 드셔보시겠어요?” 

 

찬장에서 술을 꺼내 보여준다. 손님은 썩 만족스럽지 않은 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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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그건 전에 한 번 마셔봤는데... 그거 말고 다른 거 없을까요?”

 

ㅎㄷㄷ 화난 표정, 너무 무섭다. 침착하자. 이런 사람들... 상당히 까다로운 타입이다. 상담 치료 하는 사람들은 이런 부류를 수줍은 형태의 자기애성 성격(흔히들 나르시시스트라고들 부르는)이라고 부른다. 대놓고 노골적이지는 않은데 자기 고집은 있는 사람들. 다른 사람 눈치를 봐서 대놓고 노골적으로 하지는 못하지만 자기 고집은 있는 사람들.

 

겉으로는 ‘추천해주시는 거 아무거나 마실게요’라고 하지만, 정작 뭘 추천해주면 ‘뭐는 없나요?’라고 물어보다가 자기 성에 안 차면 그냥 안 먹겠다고 말하는 식이다. 그래서 바텐더 입장에서는 기분이 상할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은 그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뭔지를 알기 위해 스무고개 정도를 진행할 각오를 해야 한다. 조급하게 ‘그래서 원하는 게 뭔데요?’라고 추궁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예의 바르길 원하는’ 이들의 요구를 묵살하는 게 되기 때문에 불쾌감을 줄 수 있다.

 

“아! 그럼 전에 마시던 것 중 괜찮으셨던 거 있으면 혹시 알려주실 수 있나요?”

 

다시 개방형 질문을 밀고 가본다. 손님은 때를 기다렸다는 듯 말하기 시작한다. 

 

“아 제가 사실 원래 다니던 바가 있는데 오늘 거기가 문을 닫아서요. OOO 바라고 아실지 모르겠네요. 저번에 신문 기사에도 났던데. 제가 위스키 사워를 즐겨 마시는 편인데 거기 사장님이 너무 시지도 않고 너무 달지도 않게 균형을 잘 맞춰주곤 하셨어요. 그분은 주로 OOO이나 OOO를 베이스로 해서 만들어주곤 하셨는데, 오늘 좀 새로운 걸 시도해보고 싶어서요”

 

슬슬 말이 많아지기 시작한다. 이런 사람들은 아까 말한 두 부류 중 말 많은 사람, 말 하고 싶어 하는 쪽에 속한다. 그나저나 남의 가게 와서 다른 동종업계를 칭찬하는 이 태도는 뭐란 말인가. 내가 어떻게 느낄지는 신경이 쓰이지 않나?

 

“아 술을 즐길 줄 아시는 분인가 봐요?”

 

분위기를 살짝 띄워 준 뒤 손님의 표정을 살핀다. 짧은 찰나 옅은 미소가 훑고 지나간다. 이런 비언어적인 요소들을 재빨리 파악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네 뭐 즐기기도 하고요, 가끔 집에서 만들어 먹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하하” 

 

대충 파악은 끝났다. 바텐더 앞에서 술을 만들어 먹는다는 걸 자랑하는 패기라니. 과시하길 좋아하고, 남의 감정 파악하는 데 눈치가 없고, 자기한테 잘 맞춰주는 사람을 좋아하는 거로 봐서 이 사람은 자기애성 성격일 확률이 높아 보인다.

 

이런 사람들의 과시적인 욕구 너머에는 취약한 자존감이 있다. 즉 이들의 무의식은 자신에 대해 완전히 만족하지 못하고, 스스로가 초라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끊임없이 과시적인 모습을 취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들은 실제로 취약하고 초라한 자기 자신이 노출되는 경험을 할 경우, 일반인에 비해 훨씬 강력한 수치감과 분노를 느낀다. 이들은 이불킥을 가장 많이 하는 성격 타입이기도 하다.

 

항상 그런 건 아니지만, 이런 사람들은 어릴 적 부모의 공감을 잘 받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심리 치료자는 그런 ‘박탈된 공감’을 지속적으로 제공해줘야 한다(난 치료자는 아니지만). 이들이 뻐기고 잘난 척하거나, 심지어 치료자를 까내리는 발언을 해도 그런 것에 흔들리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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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진짜요? 집에서까지 만들어 드시다니 술을 정말 좋아하시는 분이군요?”

 

분위기를 띄우며 웃음을 지어 보인다. 자기가 만들어 마셔봤자 얼마나 대단한 걸 마시는지 한편으로 궁금하기도 하지만 굳이 물어보지 않기로 한다. 술 만드는 걸 업으로 하는 바텐더가 꼬치꼬치 묻기 시작하면 따진다고 느낄지도 모르니까.

 

“제가 사실 OO기업에서 일하는데 직장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서... 집에 오면 술 생각이 참 많이 나요”

 

이런 사람들은 굳이 대화 주제를 잡을 필요도 없다. 이렇게 알아서 술술 이야기한다.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직장 이야기를, 심지어 자기가 어느 기업에 다니는지 이름까지 말한다. 이건 이 사람이 자신의 직장에 대해서는 어딘가 내세울 만하다고, 그래서 ‘기꺼이 이에 대해서는 너에게 이야기할 수 있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공감의 기술

 

여기서 어떻게 치고 들어가야 하느냐 하는 문제가 생긴다. 가끔 바텐더 중에서는 이럴 때 공감을 한답시고 ‘아 거기 저도 잘 알아요’라고 하거나 ‘아 저 아는 누구누구도 거기서 일하는데’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두 가지 다 피해야 할 반응이다.

 

첫 번째 종류의 대답을 피해야 하는 이유는 사실 간단하다. 이런 사람 앞에서 섣불리 아는 척은 금물이다. 이들은 아는 척을 하러 온 거지, 남의 아는 척을 들어주러 온 사람들이 아니다. 굳이 바텐더가, 그것도 남자인 바텐더가 있는 곳에 술을 마시러 온 게 아니다.

 

두 번째 대답은 좀 어려울 수가 있고, 실수도 많이 하는 부분이다. 여기서 공감의 팁에 대해 한마디 해주는 게 좋다. 사실 ‘공감이 중요하다’고 많이들 하는데, 말이 쉽지 굉장히 어렵다.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나도 항상 노력하지만 실수하는 경우가 많다. 공감의 제1원칙은 절대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가령 누군가 ‘OOO 하는 일을 합니다’라고 말했을 때, ‘와 제 지인도 그런 일을 하는데’라고 하는 게 공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거 실패할 확률이 꽤 높다.

 

대화의 주제가 말하는 손님 쪽에서 나의 지인 쪽으로 옮겨져 버리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는 경우 나름 예의 지키는 손님은 ‘아 그분은 어디에서 일하시는데요?’라고 하다가 결국 자기 이야기를 하지 못하게 된다. 오히려 손님 쪽이 공감을 해주는 구도로 넘어가 버리는 것이다.

 

공감의 가장 쉬운 팁을 하나 알려주겠다. 단지 상대방이 한 말을 그대로 되돌려주되, 감정 부분에 포커스를 맞추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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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스트레스가 굉장히 심하시군요”

 

나는 다소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손님의 말을 되돌려준다. 손님은 말없이 술잔을 바라보더니 이야기를 시작한다. 

 

“사실 이번에 저희가 프로젝트 진행하는 게 있었는데... 그게 잘 풀리지 않아서 상사한테 쿠사리 좀 먹었어요. 하하”

 

손님은 그날 약 한 시간 가량 자신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다가 집으로 돌아갔다. 사실 좀 따분하고 지루한 부분도 있었지만, 지금처럼 손님도 없는 시기에 단골 하나라도 더 만드는 게 중요하겠다는 생각에 끝까지 손님 옆을 지켰다.

 

“아이고 진짜 잘 마셨습니다. 다음에 또 와야겠네요. 하하”

 

손님은 감사하다면서, 또다시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나간다. 저분은 오늘 술을 마시러 온 것이기도 하지만, 술을 중심으로 얽힌 이 분위기, 우쭈쭈 해주는 이 분위기를 마시러 왔을 것이다. 

 

이런 손님들은 대부분 다음번에 다시 가게를 방문해 주신다. ‘앗싸 단골이 하나 더 늘었구나’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내가 너무 사람을 이용해먹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든다. 하하.

 

바 안에는 또다시 적막이 흐른다. 막상 말 많은 손님이 가고 나니 어딘가 허전한 느낌이 든다. 나도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내 말은 누가 들어준단 말인가. 지독히도 외로운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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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빙 포인트

 

1. 겉으로 티 나는 오만한 타입의 나르시시스트도 있지만, 겸손한 타입의 나르시시스트도 있다는 걸 잊지 말자.

2. 절대 나르시시스트의 열등감을 자극하지 말자.

3. 공감할 때는 대화 주제가 나나 다른 사람 쪽으로 넘어오지 않게 주의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