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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3.18.목요일

 

문화불패 Tomek

 

 

 

 

 

편집자 주 :

 

 

 

 

 

3월 11일 <경계도시2>의 딴지 떼검단 시사가 열렸다. 다음은 문화불패에 올라온 Tomek님의 검열기. 

 

 

 

 

 

 

 

 

 

 

<경계도시 2>를 봤어. 어제 3월 11일. 평소에는 쥐뿔도 없더구만, 이날은 왠일인지 시사회가 두 개나 당첨이 됐어. 하나는 익무에서 진행한 <크레이지(The Crazies)>라는 영화고, 다른 하나는 딴지에서 진행한 <경계도시2>였어. 내 취향으로는 <크레이지>를 보는 게 맞지만, 눈물을 머금고 <경계도시2>를 선택했어. 딴지 당첨이 먼저 발표되서 그런 것도 있지만, 이 영화의 주인공인 송두율 교수에 대해 관심이 있기도 했었거든. 

 

 

 

 

 

난 철학과를 나왔어. 대학은 요즘 총학 부정선거로 이름을 드높이고 있는 명지대학교야. 영화 얘기하는데, 왜 적을 이야기하냐고? 왜냐하면, 난 철학을 임석진 교수님한테서 배웠거든.  

 

 

 

 

 

 

 

 

 

 

임석진 교수님의 헤겔에 관한 업적은 전 세계적으로도 놀랄만한 성과를 이루셨어(다들 그렇다고 하더라고. 난 워낙 공부를 안해서 잘 모르겠지만. 반성하는 부분이야). 그래서 어디가서 같잖은 철학논쟁 같은 것 하다가 말이 막힐때, "내가 임교수님께 배웠을 때, 그런 말씀 없으셨는데" 이렇게 한마디 해버리면 그냥 깨갱할 정도로 학문적으로 엄청난 권위가 있지. 하지만 대부분 '임석진'이란 이름을 들으면 "동백림 사건"이 떠오를거야. 

 

 

 

 

 

2000년인가 『월간조선』에 기고하신 글을 읽어보니, 대한민국의 청년들이 북한 영사관에 들락날락 거리고 같이 이야기하는 것을 보시고 그 당시에 굉장히 충격을 받으신 것 같아. 몇 번 북한에도 왔다갔다 하셨지만, 그것은 순수하게 학문적인 관심이었다고 쓰셨고. 유학생들이 북한과 교류하는 것도 학문적인 관심으로 봤기 때문에, 신고해도 면책받을 거라 생각하셨나봐. 세상물정 모르신 학자다운 순수함이지.  

 

 

 

 

 

그런데 그 결과는 어땠지? 참혹했잖아. 교수님은 교수님대로, 간첩 혐의를 받은 사람들은 그들대로. 다들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었지. 그 엄청난 학문적 업적에도 임 교수님은 철학과 정교수로 채용되지 못하고 교양학부 교수로 지내셨어. 자신의 학과를 세운 게 1995년도 일이야. 정교수로 퇴임하시기 고작 3년 전 일이지. 그럼 간첩으로 몰려 고문당하고 추방당한 사람들은? 1999년엔가 <이제는 말할 수 있다>라는 프로그램에서 동백림 사건으로 추방당한 사람들의 인터뷰가 있는데, "임석진이..." 하면서 말을 못잇는 장면이 있었어. 그러니 더이상 말해 뭣해? 

 

 

 

 

 

 

 

 

 

 

 

 

 

내가 송두율 교수에게 관심이 생긴 것은 내가 적을 둔 학과의 이런 특성 때문이었어. 그럼 우리학과의 교수님들 분위기 또한 알만하겠지? 난 정말 궁금했었어. 정확히 임석진 교수님과 반대의 위치에 있는 송두율 교수에 대해 우리 교수님들은 어떤 코멘트를 할까? 교수님들은 거의 침묵을 지켰었는데, 딱 한 교수님이 송 교수에 대해 말을 하셨어. "그거 독일에서 교수로 쳐주지 않습니다. 교수 아닙니다."

 

 

 

 

 

무슨 얘기냐면, 영화에 나오지 않아서 아쉬운 장면이기도 했는데, 2003년 송두율 교수가 37년만에 귀국을 하고 기자회견에서 소회를 밝힐 때, 조선일보 기자가 질문을 했어. "교수라고 하시는데 정교수 맞습니까?" 참 치졸한 질문이지. 아마 조선일보쪽에선 그때부터 도덕성 시비를 걸 생각이었던 것 같았어. 정교수가 아닌데 어디서 감히 교수라고 사칭하느냐 식의 뭐 그런 것들. 기가막혀서. 유치하지? 하지만 조선일보가 그런 의제를 만들어 내는 것만은 어떤 면에서 참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해. 어차피 세상 유치하게 돌아가잖아. 

 

 

 

 

 

이 문제는 『시사저널』(지금 시사저널 말고, 『시사IN』의 전신)에서 속시원하게 풀어줬었어. 독일의 교수 시스템은 내가 이해하기에 복잡했는데, 뭐 하여튼 정교수가 맞다고 확실히 증명한 기사였어. 난 그 기사를 포스팅해서 그 교수님 홈피에 올렸고. 

 

 

 

 

 

남한 사회가 제일 처음 송두율 교수에게 들이민 잣대는 진실게임이었어. 교수 맞냐 아니냐로 시작해서, 북조선의 서열 23위 김철수가 맞냐 아니냐로 번져간 진실게임. 

 

 

 

 

 

영화를 보면 "송 교수가 김철수가 맞냐 아니냐"에 대한 공방이 굉장히 많이 나와. 난 이걸 보고 『칼의 노래』에서 읽었던 '길삼봉' 이야기가 떠오르더라고. 조선시대 겁많은 선조가 임진왜란 때 길삼봉이란 의장의 세력이 두려워 다른 의장들을 여럿 죽이잖아. 실제로 길삼봉이란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인물이었지만, 길삼봉이란 허깨비가 실체가 된 순간, 길삼봉이 누구냐란 질문은 누가 길삼봉이냐란 질문으로 바뀌고 수많은 길삼봉들이 잡히고 목숨을 잃지. 다섯 살 짜리 아이들도 주리를 틀고 무릎이 깨지고 비명이 터지고. 그 때 취조를 한 관리를 작가 김훈은 이렇게 묘사했지. 농부가 벼를 베듯, "근면하게 살육했다". 이 부분에 이르니 김남주 시인의 「어떤 관료」가 떠오르네. 신경쓰지마. 생각이 자꾸 꼬리에 꼬리를 물어서 생기는 병이야. 

 

 

 

 

 

송 교수가 김철수가 맞냐 아니냐는 질문은 송 교수가 북에서 김철수로 불린다는 것을 알았냐 몰랐냐라는 질문으로 바뀌어. 이 부분에서 송교수는 자신의 말을 번복을 해. 귀국하기 전에는 전혀 몰랐다고 했는데, 귀국하고 나서는 알고 있었다고 하지. 여기서부터 송 교수는 수세에 몰리기 시작해. 그리고 지리한 법정공방이 시작되지. 

 

 

 

 

 

문제는 송 교수를 옹호하는 쪽에서도 오류에 빠지게 되는데, 피의자 신분인데도, 이미 죄를 진 것으로 간주하고 따뜻하게 감싸안자는 얘기를 해. 그를 옹호하는 진보나, 적대시하는 보수나 둘 다 국가보안법이라는 테두리에서 벗어나서 생각을 못한다는 것이지. 우리는 항상 남한만이 정당한 국가고 북한은 불법단체라는 '대전제' 안에서 생각을 해왔고, 벗어나지 못했잖아. 이런 대전제를 깨뜨린 사람은 리영희 선생님 뿐이지.  

 

 

 

 

 

이 국가보안법 때문에 남한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북을 적으로 규정하고 살 수 밖에 없어. 남한에 태어난 이상, 사상을 선택할 자유란 사실상 없다고 봐도 돼. 이런 상황 아래서 어떻게 균형적인 시각을 유지할 수 있겠어? 냉전이 끝났다지만, 대한민국에선 아직도 현재진행형이야.

 

 

 

 

 

송 교수는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고 37년을 대한민국이 아닌 곳에서 살았어. '전향'을 하면 남한에서 살 수 있게 해준다고 해도, 그는 그 오랜시간을 '경계인'으로 살았어. 북의 체제에 들어가지도, 남의 체제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그 주위를 계속 맴돈 경계인.  

 

 

 

 

 

남한은 그에게 백기를 들고 투항하라고 요구했어. 결국 송 교수는 독일 국적도 포기하고, 노동당 탈당하고, 남한의 모든 법(국가보안법을 포함한 모든 법)을 준수하고,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가겠다고 말하지. 무엇이 그의 학문적 자존심을 다 버리면서까지 이런 전향서를 낭독하게 했는지는 모르겠어. 하지만, 조국이 그에게 돌려준 것은 '거물 간첩'이란 거창한 타이틀이였어. 

 

 

 

 

 

당시 재판에서 15년의 징역을 선고받았을 때, 난 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을 다시 읽었어. 그게 한 4번째 읽은 걸거야. 내 꿈이 있다면, 『아리랑』, 『태백산맥』, 『한강』을 시대순으로 쭉 읽는 게 그 중 한 가지인데, 2003년 졸업을 앞두고 시도해보려다 실패했어. 『태백산맥』을 다시 집었으니까. 읽은 이유는 한 가지야.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생길까, 이념, 빨갱이 이런 게 우리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물론 돌베게에서 나온 『다현사』시리즈를 읽으면 해결될 일이었겠지만, 난 정보를 원한 게 아니라 그 당시 사람들의 정서를 느끼고 싶었거든. 문학으로 역사를 배울 수는 없겠지만, 정서는 느낄 수 있을 거라 생각해. 그래서 내가 그 때 『태백산맥』을 읽은 것이고. 그리고 1년 후에는 『아리랑』을 다시 읽었어. 왜 읽었냐고?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때문이었지. 그러고보니 21세기는 나에게 독서를 강요한 것 같아.

 

 

 

 

 

각설하고, 난 송교수가 마지막으로 한 기자회견에서, 김연수 작가의『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에 나오는 이길용/강시우처럼, 남한의 애국가와 북한의 애국가를 같이 불렀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해봤어. 그만큼 당시의 송 교수는 너무나 힘들고 지쳐 보였어.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기 보다는 그저 변명하기에 급급했던 모습. 그의 그런 모습은 우리 사회가 강요한 것이야.  

 

 

 

 

 

영화에 대해 별로 얘기를 안했는데, 이런말 하기 뭣하지만, 영화 진짜 재밌어. 이거 페이크 다큐 아닌가 싶을정도로 기막힌 장면들이 너무 많이 나와. 장르를 따지자면 코미디가 될거야. 하지만, 긍정의 카타르시스가 배출되지 않으니 블랙 코미디로 해야겠지. 아마 홍상수 감독이 정치 영화를 찍으면 이런 느낌의 영화가 나오지 않을까?   

 

 

 

 

 

 

 

 

 

 

얼마 전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봤는데, 왜 트위들 디 & 덤 형제들 있잖아. 이 영화에도 그와 비슷한 캐릭터가 나오더라고. 송 교수 1차 공판할 때 인터뷰한 사람들인데, 진짜 코미디였어. 극영화였으면 좋았을뻔 했어. 그럼 웃고 잊어버렸을텐데. 사실이라는 점이 서글펐어. 

 

 

 

 

 

다들 알다시피, 2004년 송 교수는 9개월만에 집행유예로 풀려나. 그가 제일 처음 간 곳은 고향 제주도의 바닷가였어. 어쩌면 그는 이 한 순간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것을 포기했던 게 아니었을까? 그래서 그가 바닷가를 거니는 모습은 참 쓸쓸해 보였어. 그리고 그는 출국했고 그로부터 6년이 지났어. 영화의 카피대로 "2003년 그는 스파이였고, 2010년 지금 그는 스파이가 아니다". 아니, 관심 자체가 없어진 거겠지. 이런 지난 사건 말고도 대한민국은 항상 뜨끄한 사건들로 넘치고 있잖아? 요미우리 신문과 관련된 일이랄지 뭐 그런 것들.  

 

 

 

 

 

 

 

 

 

 

하지만 2003년 그가 한국사회에 던진 파장은 아직도 유효해. 1998년 이후, 이 땅을 지배하는 것은 이념이 아니라 자본이라 생각했지만, 아직도 이념의 벽은 공고해. 그리고 이 모든 것은 국가보안법이란 괴물이 없어지지 않는 한, 우리는 송 교수같은 경계인을 절대로 포용하지 못할 거야. 송 교수가 남한에서 살 수 있는 방법은 임석진 교수님처럼, 그에 상응하는 댓가를 지불하는 것 뿐이야. 그런데 그런 게 있을리 없잖아?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한, 이 잔인한 '길삼봉 놀이'는 시지프스의 돌처럼 계속 반복될거야.  

 

 

 

 

 

이 영화 전국 7개 관(서울이 아니야!)에서 3월 18일에 개봉한다고 해. 고작 1시간 40분짜리 영화인데도, 나같은 놈이 이렇게 많은 말을 뱉을 정도로 나를 뒤돌아볼 수 있는 영화였어. 정말이지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어. 그리고 한 번 뒤돌아봤으면 좋겠어. 우리를, 이 사회를, 송 교수를. 그래도 우린 인간이잖아? 우리 괴물은 되지 말자고. 아니, 어쩌면 이미 괴물일런지도...

 

 

 

 

 














 
   
   

인간의 범주가 얼마나 넓은 것일가를, 머리채를 잡히고 폭행을 당하던 바로 그 순간 똑똑히 알게 되었다. 이 세상은 주민등록증을 가진 괴물, 학생증이며 졸업증명서며 명함을 가진 괴물들이 가득하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서로를 괴물이라 부르긴 좀 그렇잖아? 그래서 만들어낸 단어가 인간이 아닐까, 그녀는 생각했었다.  

 

- 박민규 「아침의 문」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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