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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용인시 수지구, 성심원이라는 아동복지 시설에 봉사를 다니고 있습니다. 2007년, 다니던 회사에서 단체로 방문했던 것이 계기가 되어 시작된 인연 입니다. 2020년 2월부터는 코로나로 인해 아이들을 만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인이 뉴스를 보고, 16개월 아이들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바로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성심원 아이들 사진첩을 뒤적였습니다. 기저귀를 차고 뒤뚱뒤뚱 걸었으며, 간이 세고 거친 음식은 먹지 못했고, 밤에 잘 땐 분유를 먹었습니다. 호기심이 많았고, 자주 웃었습니다. 대부분의 말은 알아들었고, 서로 간단하게 의사소통을 했습니다. 제가 본 아이들은 주로 남자아이들이었는데, 허벅지만큼 오는 관상용 화분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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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렵 아이들은 겁이 많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본인이 작고 약한 존재라는 걸 인지하는 시기라 어른들이 함부로 다가가 아이를 덥석 안아 들면, 자지러지게 울었습니다. 해서 이맘때 아이들한테 다가갈 때는 몸을 낮춰야 합니다. 그러면 아이들이 이내 경계를 풀고 두 팔을 벌려 먼저 다가왔습니다. 입장 바꿔 생각해 보니 그렇습니다. 나보다 네다섯 배는 큰 사람이 나를 덥석 안아 올린다는 게 얼마나 무서운 일이겠습니까.

 

그 생각을 하니 정인이는 혼자서 얼마나 무섭고 두려웠을까 싶어 가슴이 내려앉았습니다. 양부모라는 사람들은 이 시기의 정인이를 지속적으로 감금하고 폭행했으며, 인스턴트 이유식을 식히지 않고 뜨거운 채로 먹였고, 매운 고추장을 먹이며 동영상을 찍고 낄낄거렸습니다. 그러다 끝내 그들은 정인이를 때려 죽였습니다.

 

정인이의 사인은 복합골절과 장기 파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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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했습니다. 우리 사회는 어째서 이 작은 아이를 지켜내지 못했을까요. 단순히 아동학대의 양형기준이 낮아서가 아닙니다. 세월호가 보여주듯, 하나의 끔찍한 사건이 벌어지기까지는 수십 가지 잘못된 일들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일어나는 법이니까요.

 

해서 10년 넘게 봉사를 다니며 그 동안 시설 분들과 교류하며 나눈 이야기를 근거로, 정인이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생각해 봤습니다. 이 글에서는 양천 경찰서 얘기는 따로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 이미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고 분노하셨으니까요.

 

문턱 낮은 국내 입양 심사 그리고 세계 최하위의 입양률

 

국내 입양 조건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요구 조건이 그리 까다롭지 않습니다. 단적으로 미국에서는, 집에 소화기까지 비치되어 있어야 아이를 입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국내의 경우엔 다소 느슨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국내 입양률이 너무 낮기 때문입니다.

 

보건복지부 통계 자료에 따르면 2018년도 말 기준 국내 입양은 인구 오천만인 나라에서 465명이 전부입니다. 같은 기간 미국에서는 3억 인구가 13만 5천 명의 아이를 입양했습니다. 독일의 경우에는 아이 하나당 입양 경쟁률이 14 대 1입니다. 국내 입양 조건이 느슨한 이유, 슬슬 감이 오지요.

 

입양 이후 추적 관리 시스템의 부재

 

현재 국내에서는 입양 결정 후 8시간의 교육 이수 외에 다른 어떤 교육도 진행하지 않습니다. 좋습니다. 백번 양보해서 한국은 공개 입양보다 비밀 입양이 많아, 다른 국가들처럼 가정 방문 등의 관리 감독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칩시다. 그럼 각 구청 담당자가 해당 아동의 거주 지역 소아과를 통해 정기적으로 아이들의 영양상태 및 발달 정도만 체크해 봐도 좋으련만, 이만한 시스템마저 없는 게, 오늘날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

 

아동학대 전담기관의 부재

 

사실 정인이 이전에도 많은 아이들이 지속적으로 학대, 유기, 방치, 죽임을 당해왔습니다. 지난 여름, 전 국민의 공분을 샀던 천안 계모 사건 기억하십니까. 9살 아이를 여행용 캐리어에 넣고 그 위에서 계모가 7시간을 뛰었다고 하지요. 검찰은 이례적으로 그에게 '살인 혐의'를 적용해 무기징역을 구형했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이 무렵에도 정인이는 양부모에게 꾸준히 학대를 당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의사, 이웃, 어린이집에서 정인이의 학대 정황을 확보해 3차례나 관계 당국에 신고했지만, 이들의 대처는 미흡했습니다.

 

일단 이를 관리 감독할 공공기관의 인력이 부족합니다. 지난 2019년 서울시에서만 한 해 아동학대 신고 건수가 3,571건에 달했고, 전담 공무원에게 배당된 사건은 인당 평균 59건이었습니다. 일반적인 민원 건수가 아니라 아동학대 건수 처리만 59건이었습니다. 한 사람이 주 5일, 한 달에 20일씩 일해서, 59명의 아동이 어떻게 학대당하는지 조사해야 합니다. 결코 현실적이지 않은 숫자입니다. 우연일까요? 정인이가 살았던 양천구청에는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이 1명이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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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끼친 가장 나쁜 형태의 영향력

 

불행한 사고에 대처하는 가장 쉬운 해결 방식은 그 일 자체를 애초에 하지 않는 것입니다. 세월호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아이들이 단체로 수학여행 가다 사고가 나니까, 이제 학교에서 아예 수학여행을 보내지 않습니다. 현장학습도 반 단위의 소규모로 진행하며, 그마저도 학부모 과반수 찬성이 있을 때만 진행합니다. 입양에 관련된 문제가 뉴스에 나오면 정부 당국은 어떻게 대처할까요, 분명히 입양 조건을 까다롭게 할 것입니다. (입양 특례법 개정에 반대하는 건 아닙니다. 그게 최선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럼 이제 우리 사회에 어떤 현상이 벌어질까요. 기존 입양 가족들도 평생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정인이 양부모 역시 겉으로 보기에는 다들 멀쩡한 사람들이었으니까요. 앞으로 대한민국에서 공개 입양은 더더욱 줄어들 것입니다. 입양을 고민하던 사람들은 남의 자식 키우는 게 이 정도로 어려운 일인가 싶어, 전보다 쉽게 입양을 포기할 것입니다. 결국 그나마 얼마 되지 않던 입양률은 더 떨어지겠지요.

 

안 됩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이건 정인이 양부모가 시민 사회에 끼칠 수 있는 가장 나쁜 형태의 영향력입니다. 

 

현재 국내 입양률은, (2018년 12월 기준)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라, 시설 아동 12,193명 중 대략 500명 정도만 입양되고 있습니다. 이는 카지노에서 잭팟을 터트릴 확률과 맞먹는 수치죠. 그런데 이번 일로 입양가족에 대해 편견이 생긴다면, 국내 입양은 지금보다 훨씬 더 줄어들 것입니다. 그 말은, 그럼 입양을 기다리는 아이들의 그 쥐톨만한 기회마저 사라져 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번 사태를 지켜본 혹자는 이런 말을 합니다. 아이들을 속 모르는 입양가정에 보내 학대당하게 하느니, 차라리 믿을만한 보육원에서 한데 모아 키우는 게 낫지 않겠냐고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건 그렇게 간단한 얘기가 아닙니다. 시설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부모에게 버림받았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그 순간부터, 퇴소하는 날까지 입양을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사족입니다만, 전에 딴지일보 죽지않는돌고래 편집장과 봉사 활동을 가는 성심원에 간 적 있습니다. 그가 가는 길에 말했습니다.

 

'그래도 보육원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친구가 많아서 좋지 않습니까'

 

저는 이렇게 말해 주었습니다.

 

'아니요. 그렇지 않아요. 여기 생활이 그렇게 낭만적이지만은 않습니다. 편집장님 군대 다녀오셨지요. 군대 갔다 온 사람한테는 설명하기 더 쉬워요. 이곳 아이들은 태어나자마자 군대에 입소하는 것과 같습니다. 정해진 시간에 맞춰 다 같이 일어나고 밥 먹고 씻고 자야 하니까요.'

 

이 얘기를 들은 그는, 아이들을 둘러보는 동안 한참을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시설이 아무리 훌륭하다해도 집보다 못한 백한 가지 이유 중, 한 가지만 말씀드려볼까요. 성심원을 포함한 대부분의 사회복지 시설에서는 아이들 담당 교사가 2년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바뀝니다. 이유는 여러 가지입니다. 담당 복지사 선생님의 퇴사, 시설 운영원칙, 직원 간 내부 갈등으로 인한 인력 재배치, 그리고 또 성심원처럼 종교시설에서 운영하는 경우, 수녀님들의 소임 이동 문제로 3년에 한 번씩 아이들의 주 양육자가 바뀝니다.

 

하지만 이런 결정을 아이들은 한참이나 납득하지 못합니다.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엄마가 2년에 한 번씩 계속 바뀌는 겁니다. 그때마다 양육방식도 달라지고요. 한때 나를 아끼고 사랑해줬던 엄마가 이제는 옆방에서 새로운 아기들을 안고 있습니다.

 

이때 아이들이 느끼는 좌절은 어떨까요. 평범한 이들이 생각할 수 있는 불행의 수준, 그저 학교에서 고아라고 놀림당하고 따돌림당하는 정도의 문제는, 시설에 사는 아이들이 겪는 고통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제 감이 오실 거라 생각합니다. 아이들 입장에서 입양이 어째서 잭팟인지 말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이 또한 사족이지만, 저 역시 어려서 아동학대를 당했습니다. 6살 때부터 6살 터울의 큰 오빠에게 얻어터졌으니까요. 한 번은 초등학교 때였습니다. 부모님이 안 계시던 어느 날, 자기가 낮잠 자는데 제가 단지 시끄럽게 했다는 이유로, 180이 넘는 거구의 오빠가 갑자기 방에서 나와 저를 번쩍 들더니, 주먹으로 복부를 세게 쳤습니다.

 

그때 어찌나 세게 맞았던지, 저는 한동안 숨을 제대로 쉬지 못했고, 밤새 복통과 고열에 시달렸습니다. 이튿날부터 얻어맞은 자리인 배꼽부터 한 바퀴 빙 둘러 물집이 잡혔습니다. 소아과에 가 진찰을 받고 약을 타 먹으니, 얼마 후 물집이 터지고, 상처에 딱지가 앉고, 진물이 흘렀습니다. 지금도 제 몸에는 그때 앓은 흉터가 마치 커다란 악어가죽 허리띠를 두른 것처럼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때 이 사실을 두렵고 무서워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습니다.

 

과연 제가 '삼풍사고' 단 하나의 사건만으로 지금까지 이렇게 끔찍한 불안증에 시달리는 걸까요? 아니요.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스트레스 상황에서 불안을 통제하지 못할 때, 제 자신까지 헤치는 저의 극한 폭력성은 이런 경험이 쌓여, 무의식중에 배운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 나이 올해로 마흔을 넘긴 지 한참이지만, 저는 여전히 이 일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또 가끔 그런 생각을 합니다. 그때 누군가 제게, 먼저 따뜻하게 손 내밀어 그 상황에서 구해줬다면, 그 후로도 제가 그런 참혹한 지옥에서 계속 살았을까요, 아니요.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해서 부탁드립니다. 아동학대를 막기 위해 시민사회에서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 주시기를, 이웃의 불행한 서사에 침묵하지 말아 주시기를, 또 정인이 같은 처지의 아이들이 공동체의 건강한 가정으로 더 많이 위탁이나 입양을 갈 수 있게 시민들께서 적극적으로 도와 주시기를.

 

정인이를 위해 여러분과 함께 진정서를 제출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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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에 비추어 말씀드립니다. 이런 식의 끔찍한 괴물은 아이 혼자, 어른 한 둘이 감당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저희가 연대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맞습니다. 한 아이를 키우는데 한마을이 필요하듯, 한 아이를 학대하는 데에도 마을 전체의 무관심이 필요합니다. 그러니 부탁드립니다. 정인이를 위해 끝까지 관심 갖고 싸워 주세요. 저 또한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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