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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월세 2억 원의 임대료 감당 못해 폐업?

 

정초부터 눈을 의심케 하는 기사를 보았다.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위치한 34년된 중식당 ‘하림각’이 코로나19로 장기화된 경기침체로 2021년 1월 1일부터 영업을 종료한다는 내용이었다. 월 2억 원의 고액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한다는 이유에서다.

 

연합뉴스와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국경제TV, 매일경제 등의 기사 제목은 이렇다.

 

‘서울 종로 유명 중식당 하림각 영업 중단…“적자 못 버텨”’

‘34년 서울 유명 중식당 하림각 코로나로 문닫았다’

‘34년 중식당 하림각 눈물의 폐업 “월 2억 임대료, 못 버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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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19로 경영난이 계속되는 바람에 임대료도 못 내고, 직원들도 모두 퇴사하고, 문을 닫는다는 천편일률적인 내용인데, 기사를 보는 순간 ‘내가 아는 그 하림각이 맞나?’ 하는 의심이 들었다.

 

5년 전인가, 누가 서울에서 제일 맛있는 짜장면과 짬뽕을 사주겠다고 해서 하림각에서 짜장면과 짬뽕을 먹었다. 테이블 벽면에 커다란 수족관이 놓여 있어, 한 마리에 족히 30만 원은 넘어 보이는 팔뚝만 한 금붕어들과 눈을 마주쳐가며 짜장면 반 그릇, 짬뽕 반 그릇을 먹었다. 그런 중식당이 임대료를 못 내서 30년 넘게 운영해 온 가업이나 다름없는 식당을 폐업한다? 쉽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2. 하림각 눈물의 폐업? 진짜 눈물 맞아?

 

하림각의 설립자 남상해 회장은 하림각의 성공과 함께 유명세를 탔고, ‘나는 오늘도 희망의 자장면을 만든다(명진출판사, 2000)’, ‘절망을 희망으로 만든 기적의 자장면(명진출판사, 2009)’, ‘역전의 명수, 남상해를 아십니까? 마스, 2006)’, ‘식경(자유문고, 2002)’ 등 여러 권의 저서를 출간했다.

 

이를 바탕으로 정계진출도 상당히 오랫동안, 꾸준히, 시도하였다. 2014년 전국동시지방선거 종로구 의원 출마 뿐만 아니라, 2020년에는 국민의힘 전신인 미래통합당의 비례위성정당 미래한국당에 비례대표 공천 신청도 했다. 이 때 당시 남 회장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한 재산만 해도 서울 종로구 부암동 일대 부동산 가액으로 180억이 넘었다.

 

2000년 한 공중파 뉴스에서 자장면 팔아 30억의 재산을 모은 성공의 대표적인 인물로 소개되기도 한 남상해가, 월세 2억 원을 감당하지 못해 평생을 일궈온 요식업을 접는다? 1년 가까이 계속되는 감염병으로 요식업을 비롯한 모든 자영업의 타격이 큰 건 사실이고, 하림각도 예외일 순 없다지만, 그래도 34년을 일궈온 저력이 있고, 자산도 상당한데, 하루아침에 접는다? 이상했다. 

 

기사에 남상해 회장이 “아예 폐업은 아니고 잠정 영업 중단이다”라고 말했다고 되어있긴 하나, '하림각 조차도 고액의 임대료와 코로나19로 인한 경영난을 이기지 못해 무너졌다'는 내용만 부각됐기에 다른 내용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기자들은 남상해 회장에게 “잠정 영업중단”이라고 들었으면서, ‘건물주와 임대료 합의는 해보았는지’, ‘건물주는 누구인지’, ‘경영난을 이겨낼 다른 방안은 강구해보았는지’, ‘영업을 중단해야 하는 다른 원인이 있었던 건 아닌지’와 같은 마땅히 해야 할 질문은 던지지 않은 걸까? 다른 취재는 해보지 않은 걸까? 하림각 측에서 밝힌 내용만을 그대로 믿고 보도했으니 말이다. 다른 의도가 있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하림각은 우리가 아는 좀 유명한 맛집, 중식당이 아니다. 종로구 부암동 자하문 일대 대로변에 위치한, 한번에 3000명의 손님을 수용할 수 있는 지하2층, 지상3층 건물의 중식당이다. 뿐만 아니라 양 옆에는 웨딩홀(AW컨벤션 센터)과 하림각 설립자인 남상해 회장의 박물관(‘구암 남상해 역사관’)까지 위치해 있다. 뒷쪽에는 ‘사단법인 한국외식업중앙회 종로구지구회’ 사무실도 있다. 드넓은 주차공간까지 완비한, 어지간한 중소기업 보다 더한 규모의 중식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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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와 건물 모두 설립자인 남상해 회장의 일가 소유인 것으로 익히 알려져 있다. 남의 건물, 남의 땅에서 장사하면서 어느 누가 자기 박물관까지 만들어 전시해놓겠는가. 입장료도 무료인데. 그들 입장에서는 '고작'이라고 말할 수도 있는 월 2억 원의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34년이나 된 중식당을 폐업한다? 마치 어느 건물에 세들어 장사를 하고 있는 고만고만한 자영업자가 코로나19로 경영악화가 심각해져, 월세와 인건비를 더는 감당하지 못하고 생업을 접었다는 사정과 동급으로 받아들여지게 하는 이 언론 보도는, 쉽게 동의하기 힘들고 상식적으로도 믿어지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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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림각 옆에 위치한 남상해 역사관과

역사관 안에 놓여져 있는 사진 및 앨범들

 

 

3. 아들, 손자가 ‘갓’물주?

 

그래서 부동산 등기를 떼 보았다. 등기를 보니 모두 7명의 남씨가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네이버에 남상해 회장을 검색하면 나오는 자녀 2명과 동일한 명의라는 것이 확인되었고(남광O, 남정O), 그 자녀들로 추정되는 5명(남O완, 남O원, 남O한, 남O현, 남O주)이 일정 지분을 나누어 공동 소유하는 형태였다.

 

등기사항전부증명서를 통해 건물 소유 등기 변경사항을 확인해보았다. 1990년대 중반 남상해 회장과 두 자녀가 공유하였으나, 2013년에 남상해 회장 소유의 지분 일부를 손자로 추정되는 남O완(93년생)에 증여하였고, 2014년 4월 30일 나머지 지분마저 4명의 손자로 추정되는 남O현(94년생), 남O원(97년생), 남O한(00년생), 남O주(02년생)에게 증여한 것으로 확인됐다. 즉, 건물을 지은 후 지분 절반을 자식 2명에게 각각 4분의 1씩 공유해주고, 2013년과 2014년에 손주 5명에게 자기 소유의 부동산 지분 절반을 모두 증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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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기부에 나타난 주소지와 출생년도로 추정컨대, 하림각, 컨벤션홀 건물과 일대 대지는 남상해 회장의 두 아들과 다섯 명의 손주가 공동 소유하고 있는 게 확실했다. 심지어 2014년 4월 30일 증여 직전인 2014년 3월 21일 하림각 건물을 담보로 신O은행에 36억 원의 근저당을 설정해 물려준다. 이를 그해 12월, 증여 받은 손주들로 추정되는 이들의 지분에 또 다시 최소 2억 5천만 원에서 2억 8천 7백여 만 원의 근저당을 설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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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에는 손주 중 한 사람이 2014년 3월 21일 남상해 회장이 대출 받고 설정한 근저당 계약을 인수 받는다. 건물도 받고, 대출 채무도 물려받았으니, 손주들은 빚 좋은 개살구 물려받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 독자들은 그렇게 곧이곧대로 살아서 부자가 되지 못했음을 원망하라. 최근 증여세나 상속세를 줄이는, 있는 자들의 꼼꼼한 꿀팁 중 하나다. 물려주는 재산을 담보로 대출을 받은 뒤 그대로 물려주는 방식이다. 그럼 채무까지 승계 받아 실이익을 기준으로 세금을 매기니 세금이 확 낮아진다.

 

토지+자유연구소 이태경 부대표는 “증여 직전에 36억 원을 근저당 설정하고 채무인수 했다. (증여세를 낮추기 위한 수법이라는) 충분히 가능한 추정”이라고 설명했다. 거기다 건물 같은 경우 가족에게 증여하고 그 건물에 임대하면서 임대료를 고가로 산정하면 소득세니 뭐니 하는 기타 세금까지 낮출 수 있다. 뭐, 그렇다는 소리다. 꼭 하림각이 그 경우라고 하진 않겠다.

 

그렇다면 남상해 회장은 자녀들에게 건물도 주고, 그 건물에 세 들어 사업하면서 2014년부터 자녀와 손주들에게 매월 2억 원의 월세까지 꽂아주었다는 소리다(뭐, 2억 원의 월세를 감당하지 못했다고 하니 자신이 증여한 건물의 건물주인 손주들에게 월세까지 줬다고 믿어주자. 최근에는 어린 자녀들에게 건물을 증여하면서 증여세를 대납하기 위해 이런 방식을 많이 쓴다고 한다. 남 회장이 그렇다는 소리는 아니다!).

 

식당 영업이 어려워지자 자식과 손주들에게 주던 월세 2억 원을 감당하지 못해 식당 사업을 일순간에 접었다고 하니, 자식 손주들과 쇼부도 보지 못한 남 회장을 탓해야 할까, 아니면 물려받은 건물로 누리고 살면서 할아버지(혹은 아버지)의 사업이 어려운 사정을 뻔히 알면서도 그깟 월세를 깎아주지 않은 손주와 자식들의 비정함을 탓해야 할까.

 

물론 코로나19로 인한 타격이 하림각에도 미쳤을 것이다. 그렇다고 곧 백신도 들여오고, 어느 정도 터널의 끝이 보이는 상황에서, 순전히 월세 2억 원이 부담되어서 34년 동안 일궈온 가업을 하루아침에 접는다는 핑계를 그대로 믿는 게 맞나? 누가 봐도 코웃음 쳐야 하는 상황 아닌가? 기자가 꼬인 걸까?

 

혹시나 기자가 알지 못하는 사정이 있을까 싶어 하림각 대표번호로 전화를 해보았다. 여러 번을 해도 부재중이었다.

 

그래서 직접 하림각을 5년 만에 다시 찾아가 보았다. 정말로 일가가 소유하고 있는 건물의 월세 2억 원을 감당하기 어려워 34년이나 운영해온 가업을 접는 것일까?

 

 

4. 금붕어는 말이 없다!

 

하림각 일대는 여전했다. 버스정류장 이름이 ‘하림각’일 정도로 위용은 남달랐고, 규모도 어지간한 중소기업을 능가했다. 언론에서는 중식당인 하림각 운영만 접고 웨딩컨벤션홀 영업은 그대로 계속한다고 했는데, 문이 닫혀 있기는 하림각이나 웨딩컨벤션홀이나 마찬가지였다.

 

하림각 정문에 붙은 “월 2억 원의 고액임대료와 심각한 코로나19로 인한 경영악화로 2021.01.01.부터 하림각 영업을 종료합니다. 그동안 저희 하림각을 애용해주신 고객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라는 영업종료 안내는 여전했다. ‘용무가 있으신 분은 010-7OOO-2OOO로 전화주세요’라고 적혀 있어 전화해봤지만, 이 번호 또한 받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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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하림각 정문에 붙어있는 영업종료 안내

 

한참 하림각 일대를 살펴보다가 관계자를 찾았다. 웨딩컨벤션홀 건물에서 종이컵에 믹스 커피를 타서 나오는 관리인으로 보이는 듯한 어르신. “여기 영업 안 하나요? 사람 없나요?”라고 물으니 “안합니다!”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왜 안하나요?”라고 물으니 “거기 적힌 대로에요!”라고 해서 “임대료가 많이 비싸나요?”라고 다시 물었다. 그랬더니 “저희는 모릅니다. 아무 것도 몰라요”라고 하고는 맞은편 가건물로 다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남상해 회장 박물관의 문도 굳게 잠겨 있긴 마찬가지였다. 유리문을 통해 안을 들여다보니 남상해 회장 사진들로 보이는 액자들이 빼곡했고, 한켠에는 2020년 3월에 다녀간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사인과 덕담이 적힌 액자가 있었다.

 

하림각 뒷쪽 ‘한국외식업중앙회 종로지구회’ 건물 앞에 관계자로 추정되는 듯한 어르신이 담배를 피고 있어 말을 걸어보았다. “하림각 영업 안 하나요?”라고 물으니 “거기 이제 영업 안해요”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컨벤션홀도 영업 안 해요?”, “거기도 안 해요!”. “왜 안 하는지 아세요 혹시?”라고 다시 물으니 “우리는 하나도 모릅니다. 아무것도 몰라요!”라는 답만 돌아왔다.

 

아무도 없는 노상 수족관에 기자가 다가가자 금붕어들이 밥을 주는 줄 알고 까맣게 몰려들었다. 아무런 대답도 듣지 못한 기자는 금붕어한테라도 묻고 싶은 심정이었다. "느그 회장님, 사장님 뭐 하시노?" 언론사들은 왜 등기부도 안 떼보고, 하림각 사정도 안 알아  보고, 와보지도 않고 그런 기사를 써댄 걸까? 무슨 의도였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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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가자 금붕어 떼들이 일제히 몰려들었다

폐업하면 밥은 누가 주는 걸까?

 

종로구 부암동 토박이 주민과 부동산 전문가에게 물었지만, 모두 같은 말만 했다.

 

“종로구 대로변 가운데 그 드넓은 땅과 건물주가 월세 2억 원 때문에 가업을 접는다,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 누가 있겠나? 광화문 건물 1층 한 켠에서 아줌마 하나 두고 하는 김밥집도 아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