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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쯤 전에 둘째 아이가 안경을 쓰게 되었습니다.

올해 초등학교 2학년으로 올라간 둘째는 아빠가 그랬듯이, 또 언니가 그랬듯이 정확하게 ‘초등학교 2학년 봄’이라는 시절에 안경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아빠와 언니가 눈이 나빠진 거야 늘 엎드려서 책을 읽고, 들고 다니면서 책을 읽고, 화장실에서 책을 읽는 버릇 때문이었지만, 둘째의 경우에는 책을 많이 읽는 편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컴퓨터 게임이나 언니 휴대폰 몰래 훔쳐다 게임 하기 등등 ‘몰래 한 게임’ 덕분이겠죠.




아이엄마는 나에게 ‘당신 닮아서 눈이 나쁘다’고 주장했지만 그런 힐난을 할머니로부터 평생 들으면서도 처녀적부터 안경을 쓰신 탓에 감히 ‘시력은 유전이 아니다! 100% 환경이다!’라고 대놓고 말하지 못했던 어머니를 대신해서, 제가 감히(!) 아이엄마에게 일갈을 해버렸습니다.




어쨌거나 유전이든 아니든 아이의 시력이 더 떨어지면 안되는 일이기에, 집안의 컴퓨터에는 서둘러 지킴이 프로그램을 통해 컴퓨터 사용시간에 제한을 해두었으며, 일체의 게임 사이트에는 접근되지 않도록 하고-심지어는 윈도에 내장된 지뢰찾기도 못하도록- 큰 딸도 게임의 공범임을 다그쳐 연좌제 처벌조치를 취하면서 핸드폰도 점검해서 라테일, 메이플스토리 등 모든 휴대폰 게임을 삭제하고 아예 무선인터넷(WAP) 접속 자체가 안되도록 꽁꽁 틀어 막았습니다. 거기에는 아직 할부도 끝나지 않은 닌텐도 DS 압수 명령도 포함되었습니다. VOD 덕분에 밀린 드라마를 챙겨보았던 인터넷 TV는 위약금을 물면서까지 해지했고, TV 역시 가급적이면 틀지 않게 되었습니다. 

예. 둘째 아이마저 안경을 쓰게 되면서부터 언니와 아빠까지 공동으로 그간의 생활에 제약을 받은 겁니다.




덕분에 아빠는 지하철 출퇴근 길에 꽃분홍색 닌텐도를 들고 쿵짝짝~쿵짝짝~ 하면서 고현정과 똑같은(!) 미소를 짓고 있습니다. (혹시 지하철 4호선 안에서 꽃분홍색 닌텐도 들고 노는 40대를 보신다면 그냥 슬며시 썩소 정도 날려주시면 되겠습니다) 




며칠간 금단현상에 시달리던 아이들은 평온한 일상을 찾은 듯 보였습니다. 아이들의 방은 다시 만화책으로 어지러워지기 시작했고, 놀이터에서 묻혀 들어온 흙덩이가 현관문 앞에 너저분하게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정 심심하니까 숙제도 빨리 해치웁니다. 아빠가 돌아오면 같이 놀아야 되는데 그때까지 숙제 안 해 두었다가 딱 걸리면 그나마 놀지도 못한다는 걸 깨달은 모양입니다.




그런데…

며칠 전에 아빠의 블로그에 장착한 슛 위젯을 보니 이상한, 확실히 이상한 제목의 슛이 나타났습니다. 제목은 ‘헐 진짜 재미있어요 똥침’으로 되어 있고… 이 아이가 뭘 하고 있었는지 딱 찍혀 있습니다.








아이가… 아빠 몰래 이불 속에 숨어서… 슛을 쏘고 있었습니다.

처음엔 시스템의 오류인가 했습니다만 저 실루엣은 초등학교 2학년짜리 제 둘째 딸아이가 틀림없었습니다. 아이는 아빠의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가, 기왕에 습득한 휴대폰에 관한 기본지식과 직관적인 인터페이스를 통해서 그냥 슛을 쏴버리고는 제목까지 답장으로 회신해주는 작업을 해버렸던 겁니다. (물론 제 휴대폰에는 슛 전화번호 070-7777-4321이 저장되어 있었기에 가능했겠죠)




한때 제 직업이 카메라맨이었고, 몇 년간 렌즈 뒤쪽에서만 일하다 보니 아이들을 포함해서 다른 사람들을 찍는 것에는 자연스럽습니다만, 스스로 제 얼굴을 찍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얼짱 각도로 눈도 좀 치켜 뜨고 볼에 바람도 좀 넣어 V라인 얼굴을 만들어 사진 찍는 아가씨도 아닌데다, 세월이 좀 지나고 하루하루가 다르게 주름살 늘고 기미인지 검버섯인지 모를 야산(野山)형 피부가 되다 보니 더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제가 슛을 찍을 때도 뭔가 눈앞의 대상을 찍는데서 머물렀었나 봅니다. 




그런데 이 녀석이 제 얼굴을 찍은 앵글은, 비록 이불을 덮고 몰래 찍어서 어둡게는 나왔을지언정, 다시 봐도 아빠의 입에 흐뭇한 미소가 번지도록 뽀송뽀송한 얼굴과 해맑은 미소를 보여줍니다.

 








하아… 전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아이에게 휴대폰을 잠깐 줘보시겠습니까? 그리고 영상통화로 전화번호만 눌러줘 보십시오. 

그리고 한 발 떨어져 가만히 아이를 관찰해 보면 어떨까요?

아이의 동그래진 눈, 신기해 하는 얼굴, 헤헤 웃는 해맑은 표정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찍힌 아이의 얼굴은 또다시 웹페이지에서, 아빠의 블로그에서 늘 보일 겁니다. 바로 이런 위젯을 통해서 말이죠.




이 글을 읽으시면서 아이들이 있으신 아빠, 또는 엄마는 몇 분이나 될까요? 꼭 내 아이가 아니더라도 (부모의 허락만 있다면) 예뻐하는 아이의 미소와 목소리를 함께 담아 보세요. 그리고 나누어 보세요. 블로그 한 켠에서 보여 주세요.




아참, 훌라후프 신동의 아빠께서 이번에는 (답답)스피드퀴즈를 보내주셨어요. 언제나 가장 흐믓하고 따스한 촬영 오브제는 아이들인 것 같습니다. 




모두의 가정이 늘 화목하길 바랍니다. 

그리고 화목한 가정의 모습이 더욱 많이 담기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