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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간을 돌려 1933년 독일 땅으로 가보자. 당신이 유권자라면, 그러니까 독일 서민이라면 히틀러를 어떻게 바라볼까? 제1차 세계대전 직후의 독일인들의 허탈감을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가 이기고 있다."

 

란 것이 1차 대전 당시 독일인들의 생각이었다.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피폐해진 건 맞다. 그러나 독일을 실질적으로 지배했던 독재자 루덴도르프가 사회를 완벽히 통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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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전통적으로 군부에 대한 사회적인 시선이 여타 다른 국가의 그것과 달랐다. 특히나 ‘장군참모’에 대한 것들이다. 엘리트 중의 엘리트라고 해야 할까? 루덴도르프는 힌덴부르크의 참모였는데, 둘이 탄넨베르크 회전에서 러시아에 대승을 거두고 일약 독일의 영웅이 된다. 이걸 발판으로 독일 참모본부를 장악하게 됐고, 나라를 이끌게 됐다. 당시 힌덴부르크는 너무 노령이었고, 실질적으로 독일을 통치한 건 루덴도르프였다.

 

원래 독일의 군부는 내각의 통제를 받지 않았다. 이들은 황제에 대해서만 충성을 다했다. 그걸로 그들이 독일 사회에 져야 할 의무를 다한 거였다. 문제는 ‘빌헬름 2세’가 군부를 통제할 만큼 똑똑하거나 카리스마가 있지 않았다는 거다. 여기에 루덴도르프가 치고 나왔다.

 

영화 <원더우먼>에서 보면, 히틀러에 버금가는 사악한 독재자의 뉘앙스를 풍기는데, 실제로 루덴도르프가 독재를 단행했던 건 ‘효율성’ 때문이었다. 3대 강국이었던 프랑스, 영국, 러시아와 맞서 싸워야 했던 독일은 국가의 모든 역량을 쥐어짜낸 총력전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해야 했고, 이를 위해서 사회를 모두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힌덴부르크는 훗날 바이마르 공화국의 대통령이 됐지만, 그는 그때까지도 빌헬름 2세에 대한 향수를 잊지 못했다. 당시 많은 독일군이 그러했다. 그들은 충성을 받쳐야 할 대상을 찾았다)

 

장황하게 루덴도르프 이야기를 했는데(루덴도르프와 히틀러 사이의 접점이 있긴 있었다), 핵심은 당시 독일은 꽤 잘 싸웠고, 루덴도르프의 효과적인 통제 덕분에

 

“우리가 이기고 있다.”

 

라는 착각(?!)을 하고 있었다. 경제지표나 몇 년 간의 해상봉쇄에 의해 순무나 먹어야 했던 시간들에 대해선 잊어버렸다. 전쟁은 다른 나라 땅에서 벌였고, 독일 땅은 침범 당한 적이 없었다. 적국을 점령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항복을 했다. 독일 병사들에게 심각한 문제가 있었을까? 아니다. 그들은 질서정연하게 본국으로 돌아왔다.

 

패전의 책임을 어디에 물어야 할까? 루덴도르프가 들고 나온 게 배후중상설이다. 내부의 배신자가 등 뒤에서 칼을 찔렀다는 것이다. 배신자들로 지목된 게 사회주의자와 유대인이었다. 일종의 정신승리라고 해야 할까? 그러나 겉으로만 보면 완벽했다. 독일이 이길 수 있었는데, 내부의 배신자 때문에 졌다는 논리.

 

우리는 교과서에서 독일이 과도한 배상금 때문에 힘들었다고만 알고 있는데, 이 당시 독일이 물어야 할 배상금, 그러니까 1320억 금마르크는 잘 알려져 있지만, 이전에 빼앗겼던 수많은 ‘현물자산’에 대해선 잘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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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전 직후 독일은 선박, 철도, 석탄 등의 원자재, 군수용품 등의 현물 배상금을 연합국에 지불해야 했다. 이른바 ‘예비배상금’이라 불렸던 건데, 그 금액을 정확히 책정할 순 없으나(막 떼어갔으니 말이다) 독일 전체 국민소득의 1/5 정도라 추정하고 있다.

 

현물배상은 독일 경제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끼쳤는데, 잠재적 성장능력을 망가뜨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당장 돈을 벌어서 배상금을 지불하고 싶어도 그 수단이 되는 생산시설, 원자재, 유통 인프라를 떼어갔으니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겠는가?

 

눈에 불을 켜고 독일을 압박했던 프랑스, 그들의 심정도 이해가 가는 게, 전쟁 때문에 프랑스 농경지의 거의 대부분이 황폐화됐고, 1백만 동의 건물과 9천여 개의 공장이 대부분 파괴됐다. 여기에 석탄광과 철광은 황폐화가 됐고 6천 개의 교량이 파괴됐으며, 600km의 철도가 사용할 수 없게 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던 러시아가 사회주의 혁명으로 무너졌다. 독일을 견제하기 위해 러시아에 철도도 깔아주었는데, 그 투자금 회수가 요원해진 거다.

 

프랑스는 눈에 불을 켜고 독일의 호주머니를 털기로 결심했고, 실제로 그러했다(이렇게 독일의 호주머니를 털어서 미국에 빚을 갚아야 했다). 이러다 보니 독일에 대한 압박의 강도가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은 강했다는 게 문제다. 베르사유 조약으로 독일은 영토의 13.5%와 해외의 식민지 모두, 그리고 인구의 10%를 잃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에서 러시아 다음으로 큰 나라였다. 4년 반 동안 전쟁을 치렀다고 하지만, 독일 영토 내에서 치른 전쟁이 아니었기에 독일의 산업시설에 실질적인 타격을 입은 것도 아니었다.

 

“화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징벌적이었고, 독일의 회복을 막기에는 지나치게 관대했다.”

 

헨리 키신저가 했던 말이다. 너무 어정쩡했다. 독일의 발흥을 막겠다고 마음 먹었다면, 독일을 몇 개로 쪼개서 관리했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다. 프랑스는 라인란트 좌안을 몇 개 국이 공동으로 점령, 관리하자고 주장했었지만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에 위배된다고 부결됐다(프랑스는 나름 몇 달 동안 연구해서 내놓은 안이었는데 말이다).

 

여기서 독일인들의 감정 상태를 살펴봐야 한다.

 

“우리는 이길 수 있는 전쟁을 내부의 배신 때문에 졌다.”

“적들이 우리에게 과도한 보복을 하고 있다.”

 

승복할 수 없는 상황에서 과도한 보복을 당하고 있다는 불평불만이 터져나온 것이다. (영화 <친구>의 대사처럼 때릴 거라면 기어오르지 못할 정도로 패야 한다. 어설프게 패면 훗날 기어오른다). 당장 베르사유 조약과 민족자결주의로 잃은 땅덩어리를 생각해보라.

 

“민족자결주의란 거 알겠지만, 왜 패배한 우리에게서만 땅을 잘라나가나? 윌슨의 주장대로라면 영국과 프랑스의 그 광대한 식민지도 다 해방시켜야 하지 않는가?”

 

민족자결주의는 결국 패자들에 대한 보복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것도 아주 어설픈 보복.

 

여기서 또 다시 독일인들의 감정을 건드린 사건이 터진다. 폴란드가 독일을 침공했다.

 

독일의 병력은 10만으로 제한됐었다. 이 상황에서 독일 땅을 갈라 먹고 독립한 폴란드가 독일 국경을 침범했다. 폴란드로서는 150여 년 만의 독립이었고, 중부유럽에서 새로운 패권국가로 발돋움하겠다며 전간기 내내 주변국과 싸웠다. 러시아가 혁명으로 내홍을 겪고, 독일이 패전으로 정신이 없을 때 이 양 국가에게 덤벼든 것이다.

 

툭 까놓고 말해서 ‘멍청한 짓’이었다. 1920년대에는 어떻게 먹혔을지 모르지만, 정신을 차린 후의 독일과 소련의 눈에 폴란드는 갈아마셔도 시원찮을 존재였다. 평소에 끽 소리 못하던 게 내가 잠깐 힘들어졌다고 슬슬 시비걸며 주먹질을 한다? 강한 적이 나타나는 것과는 다른 성격의 ‘분노’가 치밀어 오를 수밖에 없다. 폴란드가 국경선에서 시비를 걸었을 때 독일인들은 시민군을 만들어서 대응했다. 군 병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민간인들이 들고 나온 것이다.

 

민족감정이 끓어오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물론, 독일이 암담하기만 한 건 절대 아니었다. 독일에겐 나름의 계획이 있었고, 슈트레제만 같은 이들이 차곡차곡 독일의 미래를 위해서 움직이고 있었다(외교적으로 국경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슈트레제만도 독일 동쪽의 국경선이 외교적으로 해결이 안 되면 군대를 끌고 와 이들을 정리하자는 생각까지 했었다. 서쪽의 영국, 프랑스 등과 싸울 순 없지만, 예전엔 아무것도 아닌 ‘x밥’들이 설치는 걸 바라보는 독일인들의 심정이 이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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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이지만, 히틀러가 폴란드 침공을 결정하고 군부에게 폴란드 침공 계획을 준비하라고 명령했을 때, 그리고 폴란드를 침공했을 때, 독일 군부는 ‘열광’했다. 이게 세계대전으로 이어질지 말지 따위의 고차원적인 논의 이전에,

 

“저 빌어먹을 폴란드 놈들을 박살내자.”

 

라는 ‘원초적인 감정’이 앞서 있었던 거다. 폴란드는 전간기 내내 주변국들의 인심을 너무 잃었고, 잠시 힘들어서 쓰러져 있는 독일과 소련의 배를 걷어차며 너무 기분을 냈던 거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