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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를 전후해서 우리나라에 전통문화 바람이 일면서 전통과 관련된 여러 형태의 상품들이 한동안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었다. 신토불이(身土不二)라는 단어가 유행했고, 우리 먹거리를 비롯해서 생활한복 또는 개량한복이라는 한복 풍의 옷들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을 쉽게 접할 수 있었다.  

 

그 여파로 전통무예도 호황을 맞이했다. 택견뿐만이 아니라 경당의 24반 무예, 기천문, 본국검, 수벽치기, 해동검도 등 여러 전통무예들이 TV나 신문 잡지 등의 언론 매체에 소개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전통무예를 수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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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구 대학로에 위치한 (사)결련택견협회의 택견전수관 모습

 

택견의 예만 들더라도 2000년대 근처에는 전국적으로 택견전수관이 300여 개에 이를 만큼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점점 시간이 흐르면서 전통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줄어들고 기타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전통무예도 차츰 인기를 잃어가기 시작했다.   

 

다른 전통무예들도 마찬가지겠지만, 택견전수관은 급속히 수가 줄어 현재는 전국적으로 50개도 채 되지 않는다. 그중에서도 그나마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곳은 손에 꼽을 정도이고, 대다수의 전통무예 지도자들은 투잡을 뛰며 어렵게 도장을 운영해 나가고 있는 안타까운 실정이다. 

 

지금 당장은 “이 코로나 위기가 지나면 좋아지겠지”라고 자위하면서 희망을 걸고 있지만 실상 현실은 녹록지 않다. 너무나 많은 변수들이 전통무예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는 절대절명의 위기를 맞이한 것이다. 그래서 전통무예 지도자들의 한숨은 날로 커져만 가고 있다.  

 

전통무예의 쇠퇴에는 전통문화의 관심이 줄어든 것과 코로나19 외에도 더욱 근본적으로 훨씬 심각한 문제 원인들이 있다. 전통무예가 직면한 문제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전통무예 지도자의 고민, 문제 

 

①지도 방법

 

전통무예 지도자들의 가장 큰 고민은 지도 방법, 즉 커리큘럼(Curriculum) 문제에 직면해 있다. 전에는 스승에게 배운 대로 열심히 가르치면 됐지만, 종합격투기의 등장으로 전통무예의 위상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필자가 시리즈 16번째 기사 <무예에서 진짜 실전이란 00이다 링크> 에서 죽을 때까지 맨손으로 싸우는 맨손무예의 실전이란 것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니, 자신의 무예 스타일에서 가장 잘 싸우는 것이 실전이라고 열심히 역설해 보지만 그건 그냥 몇몇 전문가들의 얘기가 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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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들은 그런 복잡한 이론에 관심이 없고, 애랑 얘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라는 단순한 의문이 무술에 대한 주된 관점이고, 솔직히 대중들의 그런 생각을 탓할 수만은 없다. 이말 저말 다 필요 없고 근본적으로 소위 ‘실전력’이라고 하는 강한 무술에 대한 갈증을 해소해 주지 못하면, 기본적으로 관원들이 모이질 않는다. 인간의 본능이며, 당연한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무예를 좀 더 강하게 보이기 위해 전통무예도 글로브(Glove)와 마우스피스(Mouthpiece)를 착용하고 기술의 허용 범위를 넓혀 종합격투기 형태로 지도해야 하는가라는 현실적인 고민에 직면해 있다. 

 

택견전수관이 300여 개에서 이젠 50개도 채 남지 않은 이유는 전통문화 바람이 시들해져서만이 아니라 택견이 그런 강력한 무예적인 이미지에서 존재감을 상실했던 것이 큰 이유 중의 하나다. 

 

개그 프로에서 “이크, 에크~” 하면서 택견을 희화화하는 소재로 활용하는 것은 개그맨들의 잘못이 아니라 그렇게 웃기는 소재로 사용될 수 있을 만큼 택견의 강력한 무예적인 이미지가 무너진 탓이다. 

 

이는 비단 택견뿐만이 아니라 실전성에 대한 끊임없는 의심을 받고 있는 전통무예 전반에 걸쳐 일어나는 현실적인 고민이다. 국내의 사정은 물론이고, 과거에는 그토록 멋지고 화려하다고 인정받던 중국 전통무예들도 이제는 북경이나 상하이 등의 대도시에서 거의 도장을 찾아보기 힘든 지경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전통무예는 변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이미 필자가 시리즈 13번째 기사 <변하지 않으면 전통무예도 없다 링크> 에서 역설했듯이 전통무예도 변해야만 하는 것이지만, 그러면 도대체 과연 어디까지 어떻게 변하는 것이 자신들 무예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이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을지 정말 심각한 고민해 봉착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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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 엽문과 제자 이소룡이 치사오를 하고 있다.

 

화려한 손기술을 자랑하는 영춘권(詠春拳)이 글러브를 끼고 겨루면 영춘권이 자랑하는 치사오(黐手:두 사람이 가까이 마주 보고 손을 맞대어 손기술을 연습하는 수련법)는 한낱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권투선수가 경기 중 상대가 클린치(Clinch:권투경기 중 두 선수가 껴안는 상태)를 했을 때 유술기(柔術技)로 잡아 넘기면 좀 웃기지 않을까? 태권도 선수가 발차기하다 넘어진 상대의 몸에 올라타 파운딩(Pounding:종합 격투기에서 넘어뜨린 상대편을 주먹이나 팔꿈치로 가격하는 기술)을 하면 그걸 과연 태권도라고 할 수 있을까?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자신들 무예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발전이라는 시도를 하는 것이 생각보다 간단하지가 않다. 또 함부로 커리큘럼을 바꿨다가는 협회에서 제재를 당할 수도 있고, 협회 자체에서 바꾼다 해도 무예계에서는 사이비로 몰릴 수도 있으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그야말로 진퇴양난에서 전통무예 지도자들의 고민을 커져만 가고 있다. 

 

②복장

 

지도 방법과 더불어 전통무예 지도자들의 또 다른 고민은 복장이다. 도복의 문제이다. 전통무예는 기본적으로 전통적인 복장을 착용하고 있는데, 전통의 옷이라는 것이 대부분 입고 벗기가 불편하고 활동하기에 비효율적인 면이 많다. 

 

나름대로 알록달록 멋을 부린 전통도복도 있지만, 현대적 디자인 시선으로는 촌스럽게 느끼는 사람이 많고 특히, 기능성에서 뒤떨어지니 세련된 요즘의 젊은이들에게 외면당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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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견 수련복을 입고 택견 시범을 선보이고 있는 황인무 선생

 

택견의 예만 들더라도, 택견은 발차기 중심의 무예이고 우리의 한복은 어느 나라의 옷보다도 발차기에 용이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한복이 아무리 편하다 하더라도 발차기를 하려면 역시 반바지가 가장 효과적이다. 그러면 택견의 복장을 반바지로 바꾸면 어떨까? 

 

엄격한 유교(儒敎) 국가였던 조선시대에는 남자들이 털이 수북한 정강이가 드러나는 반바지를 입는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하는 일이었겠지만, 완전히 시대가 바뀐 현대에도 반바지를 입고 택견을 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전통과 괴리가 있다고 느낄 것이다. 

 

얼마 전 태권도계에서 보다 효과적인 발차기를 위해 태권도 경기에 레깅스 도복을 입으면 어떨까 하는 의견이 제시된 적이 있었다. 대부분의 스포츠 복장이 그 종목의 특성에 맞게 변하고 있는 실정이니 필자는 무척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으나 태권도인들 스스로의 엄청난 반대 여론에 밀려 쏙 들어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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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깅스 경기복을 입고 있는 브라질 태권도 선수

 

올림픽까지 입성하며 최고의 현대스포츠로 발전한 태권도가 이런 지경이니 다른 전통무예들은 도복을 바꿀 엄두를 내기 쉽지 않다. 

 

요즘 젊은이들은 땀 흡수도 뛰어나고 고탄성의 기능성에 입고 벗기 편리한 운동복을 선호한다. 특히, 무엇보다도 세련되고 멋진 디자인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고리타분하게 보이면서 기능성도 떨어지고 입고 벗기도 불편한 전통도복의 착용도 젊은 사람들이 전통무예를 회피하는 큰 이유 중의 하나다. 

 

그러면 도복을 현대적으로 바꾸는 것이 최선일까? 레깅스나 반바지를 착용하고 고탄성의 웃옷을 입으면서도 자신들의 정통성과 전통성을 유지할 수 있을까? 

 

도복을 바꾸려면 이 역시 협회 차원의 기획이 필요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전통무예단체들은 앞서 말한 것과 같은 이유로 아직도 전통의 틀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으며, 무엇보다도 그런 것을 기획하고 준비할 절대적인 예산이 부족하다. 

 

그러니 일선의 전통무예 지도자들의 고민은 점점 커져만 간다. 

 

③외부환경

 

전통무예는 외부환경에 크게 흔들리고 만다. 불과 10~20년 전만 해도 사람들이 운동 좀 할까 생각하면 동네 가까이에 있는 태권도나 합기도 등의 도장을 찾아서 운동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지역마다 초현대적인 스포츠센터가 즐비하고 배울 수 있는 종목도 너무나 다양하다. 특히 요즘 들어 유행하는 종합격투기나 헬스장들은 수요가 많으니 애초에 엄청난 물량 공세로 시작을 한다. 

 

기본적으로 넓은 운동 공간과 질 좋은 장비를 갖추고 탈의실은 물론이고 온수가 잘 나오는 샤워장에 파우더룸(Powder room)까지 구비해 놓았으며, 운동복도 빌려주고 세탁해 주는 것은 기본이고 그 외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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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 시설의 파우더룸

 

대부분의 전통무예 도장은 이런 양질의 서비스는커녕 위치부터 외진 곳에 시설도 열악하니 젊은 친구들이 좋아할 리가 없다. 애초에 큰돈을 가진 전통무예 지도자들도 드물지만, 혹 있다 하더라도 수요가 없으니 과감히 투자할 용기도 나지 않는다. 돈 많은 사람들도 인기 있는 종합격투기체육관이나 헬스장은 몰라도 전통무예 도장에는 절대 투자하지 않는다. 

 

환경과 시설의 중요성을 잘 알지만, 경제적인 부분에서 열악하여 현대적인 감각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으니 전통무예 지도자들도 답답하기만 할 뿐이다. 

 

전통무예는 실전력이 떨어지고, 복장은 꾸리꾸리하고, 도장의 환경은 열악하다 보니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 외면당하는 것이 이상한 일만은 아니다. 

 

이런 모든 문제점들을 대부분의 전통무예 지도자들도 잘 알고 있으나 타개책이 쉽지 않다는 것이 전통무예 지도자들의 고민이다.  

 

 

전통무예를 위한 다짐과 부탁  

 

전통무예는 이대로 몰락하고 마는가? 문화가 생기고 사라지는 현상이 인류의 역사에서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하지만 우리의 전통무예가 이대로 사라져야만 하는 것인가.  

 

전통무예는 한 민족이 오랜 세월 동안 이렇게도 싸워보고 저렇게도 싸워보면서 자기 민족의 체질에 가장 적합한 움직임으로 체계화시킨 살아있는 전통문화이다. 그런 문화유산이 현대에 들어 갑작스러운 변화의 바람을 타지 못했다고 해서 그냥 사라지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우선 전통무예 지도자들 스스로가 더욱 분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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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택견을 더 알리기 위해 서울시와 함께했던 무관중 라이브 스트리밍 택견 공연 포스터

 

전통무예를 계승하겠다고 처음 마음먹었을 때 큰돈을 벌려고 시작한 전통무예인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애초에 어려운 상황을 각오하고 시작한 만큼 초심(初心)으로 돌아가 이런 시련에 뒤지지 말고 더욱 각고의 노력을 하자고... 스스로 다독이며 다짐해 본다. 

 

여기에 하나 더 정부의 후원을 촉구한다. 지난 2008년 국가에서는 「전통무예진흥법」을 제정하였으나 1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실질적으로 전통무예를 제대로 후원한 사례는 없다. 이러한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전통무예 지도자들이 스스로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 가장 우선이겠지만, 국가에서도 전통무예를 지원하기 위해 좀 더 적극적으로 발 벗고 나서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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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5월, 전통무예진흥법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이로 인해, 전통무예인들이 경제적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더 마련되었다고는 하지만, 전통무예인들은 아직 달라진 바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이 땅의 전통무예 지도자들이 다 사라져 우리 무예가 끊기고 외래의 스포츠 문화만 존재하는 문화적 속국이 되지 않도록 지금이라도 정부가 나서서 전통무예의 보존과 계승을 위해 보다 적극적인 후원이 필요하다.

 

 

덧) 본 칼럼 기사에서 다룬 고민들은 코로나 시점에서만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에 걸쳐 전통무예 지도자로서 전통무예계에 종사하며 느꼈던 부분들이다. 현재의 코로나 시국에서는 전통무예계뿐만 아니라 피트니스 종사자들을 포함하여 체육계에 종사하는 모든 이들이 큰 고통을 겪고 있다. 체육계에 종사하는 이들에게 '조금만 더 힘내보자'라는 말과 함께 심심한 위로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