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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18.목요일


충용무쌍


 


 


 



기사에 앞서 :


공장의 불빛 제작 과정에 대한 증언을 남겨주신 독투의 알바사마님과 일본군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주신 hatecore(hatecore@naver.com)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금번 골방취재는  [집중역사탐구] 구전가요를 파헤쳐 주마  이후 10여년만에 이루어진 후속취재 입니다.  시간이 얼마를 지나건 상관없이 한 번 물었다 하면 놓지 않는 본지의 뽕빨정신을 높이 기려주십사 하는 작은 바람과 함께 보도에 들어 갑니다.


 


먼저 앞선 기사를 통해 80년대 구전가요 대표로 소개된 '김일병 송'을 감상해 보시죠. 노골적인 풍자와 해학을 한꺼풀 벗기면 절절한 애환이 뚝뚝 묻어 나오는 곡입니다. 


 


※직장, 학교, 공공장소에서의 재생시 주의하십시오


http://old.ddanzi.com/media/200107/private_lee.asf



 


 김일병 송 (작사, 작곡 미상)


 


소령 중령 대령은 양주 처먹고
소위 중위 대위는 맥주 처먹고
하사 중사 상사는 소주 처먹고
불쌍하다 김일병은 막걸리 처먹고


 


후렴


(예, 예, 예, 예)


 


소령 중령 대령은 호텔방에서
소위 중위 대위는 여관방에서
하사 중사 상사는 여인숙에서
불쌍하다 김일병은 화장실에서


 


후렴 반복


 


소령 중령 대령은 미제콘돔을
소위 중위 대위는 일제콘돔을
하사 중사 상사는 국산콘돔을
불쌍하다 김일병은 쭈쭈바 껍데기


 


후렴 반복


 


소령 중령 대령은 아가씨하고
소위 중위 대위는 아줌마하고
하사 중사 상사는 할머니하고
불쌍하다 김일병은 평생딸딸이


 


 


 


80년대 후반에 유행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김일병 송. 입에 착착 감기는 감칠맛은 비단 재밌다 못해 슬프기까지한 가사의 힘만은 아닙니다. 단조롭게 반복되지만 묘하게 잡아끄는 멜로디 또한 왠지 모를 기시감이 느껴집니다. 사실 김일병 송과 가사만 다르지 멜로디는 똑같은 노래가 한곡 더 있는데 바로 민중가요사에 전설이 된 음반 "공장의 불빛" 중의 한 곡 입니다. 비교해 들어보시죠.


  


 


 


 


 야근  ( 김민기 작사)

  -공장의 불빛(1978년) 4번 트랙- 

 

여공들


서방님의 손가락은 여섯 개래요


시퍼런 절단기에 뚝뚝 잘려서


한 개에 오만 원씩 이십만 원을
술 퍼먹고 돌아오니 빈털터리래


 


 


일동 (후렴)


야~ 야~ 야~ 야~
          


여공들 


울고 짜고 해봐야 소용 있나요


막노동판에라도 나가봐야죠


불쌍한 언니는 어떡하나요
오늘도 철야 명단 올렸겠지요


 


(후렴 반복) 


 


여공들 


돈 벌어 대는 것도 좋긴 하지만


무슨 통뼈 깡다구로 맨날 철야유
 "누구든 하고 싶어 하느냐"면서
힘없이 하는 말이 폐병 삼기래


 


(후렴 반복) 


 


일동 


남 좋은 일 해 봐야 헛거지
고생하는 사람들만 손해야


 


옥이 


그거야 특별한 경우겠죠


병 걸려 있으니까 그런 거죠


 


영자 


삼 년만 지내보면 알게 될 거다
귀머거리 폐병쟁이 누구 누군지


 


옥이 


일하기 싫으면 관두래지


뭣하러 공순이는 되었남


 


여공들 


누구는 좋아서 되었나
가난한 집에서 난 죄지


 


옥이 


그거야 순전히 댁 사정이죠
공연히 남들 핑계 대지 말아요
묵묵히 참으면서 일만 하세요
윗분들이 잘 알아서 해줄 거예요


 


일동 


야!


 


여공들 


세상 물정 하나도 모르네
시골에서 갓 올라온 촌뜨기


 


남자들 


사장님네 강아지는 감기 걸려서


포니 타고 병원까지 가신다는데


 


여공들 


우리들은 타이밍 약 사다 먹고요


시다 신세 면할 날만 기다리누나


 


남녀모두 


월급 봉투 누런 봉투 빈 봉투
구멍가게 지나갈 땐 돌아가지


내일이면 선거날 노동조합 만드는 날
날만 새봐라 선거날 노동조합 만드는 날
우쭐우쭐 들먹들먹 신 바람나네
날만 새봐라 선거날 노동조합 만드는 날
      


세워 세워 세워 세워 세워
             


옥이 


야 이 불평밖에 할 줄 모르는 천치들아


너희들이 뭘 안다구 그래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될 것 아냐
노조는 무슨 놈의 얼어죽을 노조야


 


 


 




 


* 공장의 불빛이란?


공장의 불빛은 처음부터 끝까지 유기적으로 연결된 곡들과 이를 관통하는 서사구조를 갖춘 일종의 "컨셉앨범" 이다. 78년 있었던 인천 동일 방직 오물 투척 사건을 바탕에 둔 가사는 부당한 처우에 맞서 노조 설립을 시도하다 좌절하는 근로자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앨범 첫머리에 녹음된 기획자(김민기)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노래에 맞춘 율동까지 만들어졌고 테이프 뒷면에는 가사없는 연주곡을 추가로 수록해 이를 반주삼아 한편의 뮤지컬처럼 상연이 가능 하도록했다. 이러한 신선한 시도를 스스로 "노래굿"이라 이름 붙였다.


 


가사는 전혀 다르지만 멜로디는 똑같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떠오르는 의문 하나. <김일병 송>과 <공장의 불빛>중에 과연 누가 먼저란 말인가? 과연 지난 기사대로 <공장의 불빛>이 처음 녹음된 시기(78년)가 <김일병 송>이 유행한 시기(80년대말)보다 앞선게 사실이라면 공장의 불빛을 알고있는 어느 무명씨가 군에 들어가 뿌린 씨앗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실은 그 반대였습니다. 김일병송이 공장의 불빛보다 우선하며 공장의 불빛이 그 영향을 받았음이 제보를 통해 확인되었기 때문이죠. 공장의 불빛은 공동작업 형태로 제작되었는데 노래를 부르게될 이들이 쉽고 익숙하게 따라부를 수 있도록 널리 유행했던 만요, 속요, 구전가요의 멜로디를 상당수 차용했다는 것 입니다. 공장의 불빛을 밝히던 어느 노동자가 군대에가서 김일병이 된게 아니라 김일병이 전역해 공장에 갔던 겁니다.


 


 


한번 더 거슬러 올라가 보지요.


그렇다면 김일병은 입대전에는 전에는 뭘 하던 사람이었을까요?


이 물음에 도움을 줄 노래 한 곡 듣고 가겠습니다. 이번건 상당히 '앤띠끄' 합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nrwVNWIx43A


 


軍隊小唄 (쿤타이고우타)


작사:작사자 불명


작곡:倉若晴生


 


小唄(코우타)


에도말기에 유행한 짧은 속요의 형식.


샤미센등을 연주하며 이에 맞춰 부른다.


 


1. 


いやじゃありませんか 軍隊は
カネのお椀に 竹のはし
佛さまでも あるまいに
一ぜん飯とは なさけなや


싫지 않습니까 군대는


쇠 밥그릇에 대나무젓가락


부처님과 있는 것도 아닌데


1식1찬이라니 한스럽구나


 


2. 


腰の軍刀に すがりつき
連れてゆきゃんせ どこまでも
連れてゆくのは やすけれど
女は?せない 輸送船


허리의 군도에 달라붙어서


따라갈래요 어디까지나


따라가는거야 쉽지만


여자는 싣지 않는 수송선


 


3.


女せない 


みどりの黑髮 裁ち切って
男姿に 身をやつし
ついて行きます どこまでも



여자를 싣지 않는 배라면


푸르른 흑발은 잘라버리고


남장을 해서라도


따라갈래요 어디까지나


 


4. 


七つボタンを 脫ぎ捨てて
いきなマフラ 特攻服
飛行機枕に 見る夢は
可愛いス-チャンのなきぼくろ


일곱 단추를 벗어버리고


멋진 마후라의 특공복


비행기베개에서 본 꿈은


귀여운 스짱의 눈물점


 


 


징집된 애인을 향한 애통한 마음으로 운을 뗀 노래는 세븐버튼(단추가 7개 달린 일본식 육군복)대신 특공복을 입고 가미가제가 된 일본군의 이야기로 마무리 됩니다. '군대속요' 라는 이름으로 흔히 불리는 이 노래는 2차 세계 대전이 한창 막바지로 접어들던 1944년 일본군 내에서 크게 유행한 노래 입니다. 육,해,공,군 병종과 병과에 상관없이 이 노래가 크게 유행해서 다양한 변형이 존재합니다. 바로 위의 곡은  해군버젼으로 2절에 "여자는 싣지 않는 수송선" 이 등장하지만 공군은 수송선 대신 비행기, 육군은 전차대등으로 로 개사해 불렀습니다. 어휘 단계에서 개사가 이루어진 것 뿐 아니라 아예 가사가 통째로 다른 형태도 존재하는 것으로 보아 정말 널리 퍼졌던 노래임을 짐작해 볼 수 있지요. 


 


 


http://www.youtube.com/watch?v=aLZYS7kt2VE&feature=related


トコズンドコ 하는 후렴구가 들어간 또 다른 버젼.


 


실은 이 군대속요도 한번 더 거슬러 올라간 원형이 존재 합니다. 1939년 나온 ほんとにほんとに御苦勞ね(정말로 정말로 고생입니다) 라는 전쟁가요가 그 원곡이지요. 작곡자는 당연히 위의 군대속요와 같고 작사자도 野村俊夫로 명확히 밝혀져 있습니다. '전쟁 뉴스속의 나온 용사의 모습에 눈물이 납니다. 정말로 고생이 많습니다. 전방에서 온 편지. 아내여 걱정하지 말라며 나라를 위해서 정말로 고생이 많습니다.' 이런 가사로 가득찬 구슬픈 여자 목소리. 그러니까 이 "정말로 정말로 고생 입니다"라는 제목의 전쟁가요가 후방에서 인기를 끌자 입에서 입을 타고 전방까지 퍼져 병사들의 애창곡까지 되었던 것이지요. 후에 누군가 이걸 개사해서 불렀고 그게'여자는 태우지 않는 무엇무엇' 이 등장하는 '군대속요' 가 되었습니다. 곡의 인기는 전후에도 이어졌고 가사를 바꿔 부르는 전통또한 그대로 이어진 것인지 응원가나 노동조합 단가 등으로 줄곧 불렸다고 합니다. 따라서 지금도 이 노래를 기억하는 일본인들의 수가 상당하다니 대단한 인기였던 것 같군요.


 


 


ほんとにほんとに御苦勞ね


(정말로 정말로 고생입니다)


 


작사:野村俊夫
작곡:倉若晴生 
노래:山中みゆき 


http://www.youtube.com/watch?v=ryuyI09ufsA


 


 


뽕끼와 꺾기가 구슬프게 노래를 잡아끌지만 빠르기를 조금 바꿔 불러보면 김일병 송과 같은 노래가 분명합니다. 몇 번 듣고나서 '소령, 중령, 대령은...' 하고 가사를 바꿔 불러 보시면 깜짝 놀랄 정도로 딱딱 맞아 떨어집니다. 더 재밌는 사실은 음원으로 남아있는 2분 짜리 공식 버젼은 가미가제 이야기가 나오는 4절로 끝나지만, 실제 병사들 사이에서는 가사를 바꾼 5절도 인기를 끌었다는 점. 그 5절의 가사를 주목해 볼 만 합니다.


 


 


大佐,中佐,小佐は老いぼれで  


といって大尉にゃ妻がある


若い小尉さんにゃ金がない


女泣かせの 中尉どの


 


대좌, 중좌, 소좌는 늙었고


그렇다고 대위는 아내가 있고


아직 젊은 소위는 돈이 없고


여자를울리는 중위님


 


 


좌는 한국군의로 치면 령급입니다. 그러니까 5절은 이렇게 해석해도 무방하겠지요. 


 


대령,중령,소령은 늙어빠졌고~ 


대위니~임은 일찌감치 아내가 있고~


젊디 젊은 소위님은 빈털털이고~


남은것은 여자울리는 나쁜 중위님~


 


찾았습니다.


 


우리의 김일병은 쇼와(昭和) 14년(1939년), 일본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니까,


 


"2차대전 초 일본에서 만들어진 전시가요가 인기를 끌어


전방의 군인들 사이에서 가사를 바꾼 속요가 되었고


가사와 멜로디가 그 영향을 받은 '김일병송'이 2차대전 이후 한국에 남았고


78년 공장을 불빛을 위해 만요 속요를 수집하던 김민기 선생의 손에 의해


'야근' 으로 리메이크 되었다."


 


이것이 김일병송의 역사였던 것입니다.


 


 


 


 





마무리


 


'몰랐는데 알고보니 정체가 Made in Japan' 이었던 노래들은 김일병송 만의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횡성]“일본군가 버젓이 초교 교가로” (강원일보)


[문화] 성스런 찬송가가 ‘일제군가’였다니…(한겨례)


[단독] 친일 가요가 추억의 군가? (YTN)


 


오랜 시간 우리는 인접국인 일본과 문화적 영향을 주고받은 결과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이 일제 36년간 집중적으로 뿌리내린 유습임을 잊어선 안되겠지요. 일본군가나 친일가요가 버젓히'추억의 군가'로 탈바꿈 하는 웃지못할 일들도 있었습니다. 발본색원해 청산해도 모자랄 식민지 시대의 잔재가 버젓히 활약하고 있는 사실은 애석한 일이죠. 그러나 김일병송에는 이런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는 일이 별다른 의미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냥 하나의 흥미로운 민속학적 자료로, 알고보니 이런것도 있었다더라 하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2차대전때 일본에서 태어난 김일병은 공장을 거쳐 아직 대한민국에 살고 있습니다.


 


오늘의 골방취재, 여기서 마칩니다.


 


 


P.S.


공장의 불빛은 정식발매되지 못했습니다. 당시의 시대상을 감안해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만 아쉬움이 남는 구석입니다. 그렇게 수십년 넘게 테이프로만 떠돌던 물건이 2005년 정식 발매 되었습니다. 78년전의 마스터테잎 버젼을 손봐서 이소은, 이적, 전인권씨등 유명 뮤지션이 대거 참여해 새로 녹음한 리뉴얼 버젼으로 말입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공장의 불빛(2005) 음반 정보


http://music.naver.com/album.nhn?tubeid=2kk7000023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