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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의 두더지 게임

2010-03-16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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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16.화요일
산하
 
 
"한 아홉살 된 애가 놀이터에서 자요.  근데 누가 걔한테 이불도 갖다 주고 밥도 먹이는 거 같아요. 영문을 알 수가 없어요."  
 



 
딱 들었을 때 영문을 짐작하기가 쉽지 않지?  가출한 애라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놀이터에 이불 깔고 자는 건 뭐고 밥을 갖다 주는 건 또 누구냐고.   한참을 고개 갸웃거리면서 주변을 취재해 보니 곧 답이 나왔어.  가출한 아이와 밥 갖다주는 사람은 남매지간이었던 거야,   초6 누나와 초 3 동생의 남매.  근데 둘은 같이 살고 있지 않았어.  무슨 형편 때문인지 딸은 아버지의 친척집에 맡겨져 있었고, 아들은 아버지와 새엄마와 함께 살았지.
 
동생은 가출을 했다고 했어. 하지만 종적을 알 수 없었지. 누나를 만났을 때 걔는 이렇게 말하더군.  "며칠 전 만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설득해서 집에 돌려 보냈다. 전철까지 태워 줬는데 집에 안들어갔다면 나도 모르겠다."는 것이야. 그게 나를 만나기 3일 전이었으니 그럼 열 살짜리 꼬마가 3일 동안이나 거리를 헤매고 있다는 거 아니야.  더구나 아이는 아빠 물건에 손을 댔다가 온몸에 "뱀이 기어가듯 한" 상처를 입고 있다고 했어. 그렇게 심신이 고달픈 아이가 어디 가서 뭘 하고 있는지 이 여린 가슴 미어지더군.
 
누나는 보기드물게 똑부러진 아이였어.  동생과 몇 시에 어디에서 만나서 돈 얼마를 쥐어 주고 들어가라고 설득하고 전철을 타는  것까지 보고 돌아섰는데 그때 집에 오니까 티븨에서 어떤 드라마를 하고 있었으니 몇 시쯤 되었을 거라고 얘기하는데 야 참 야무진 애구나 싶더군.  종적없는 동생 얘기를 하니 금새 눈물이 그렁그렁해지면서 나더러 "얘는 도대체 어디 있는 걸까요?" 물을 때는 "내가 꼭 찾아 줄께 걱정하지 마라."고 섣부른 장담까지 늘어놓으며 두 손을 꼬옥 잡게 되더라니까.
 
그 누나는 며칠 동안 우리를 여기 저기로 끌고 다녔어.  동생 살던 동네의 으슥한 공원도 찾아 봤고 그 뒷산에서도 잔 적이 있다고 해서 오밤중에 플래쉬 켜고 산길을 누비다가 도둑괭이한테 놀래서 자빠지기도 하고, 하다못해 노숙자들 있는 데까지 샅샅이 훑고 다녔지.  누나 왈 "이런 곳에서 애가 발견되기도 했어요."라니 그 말이 하느님일밖에. 
 
신발 뒤축 각도가 45도가 되도록 돌아다니다가 녹초가 된 어느 날, 누나를 집에 바래다 주고 돌아오는데 슈퍼 아주머니가 나를 불러.   "지금 누굴 찾아다니는 건데요?"
"쟤 동생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서요. 걔 찾고 있어요."
"참 딱한 양반들이네.   저년이 지 동생 숨겨놓고 도둑질 시키고 있구만."


 


아줌마도 동생이 어디 있는지는 모르지만 둘의 행적은 익히 안다고 했어.   누나가 동생을 불러서 만나서는 날렵한 동생으로 하여금 여기 저기 담을 넘고 물건을 쓱싹해 오게 시킨다는 거야. 자기는 망을 보고 말이지.  그리고 놀이터나 동네 옥상 같은 곳에서 이불 갖다 주고 김밥 사 먹이면서 건사(?)한다는 거야.  결정적인 건 어제 우리가 누나와 작별한 후 문제의 동생과 밤거리를 쏘다니는 걸 봤다는 거야. 아니 이게 무슨 스토리야. 어제 우리 앞에서 물기 철철 넘치는 눈망울로 "얘는 어디에 있는 걸까요."라고 울먹이던 그 아이는 대체 누구며, 동생을 숨겨두고 도둑질을 시킨다는 아이와 과연 동일인물일 수가 있단 말이야? 



그렇게 맹랑한 아이라면 "너 이리 와~ 빨리 불어." 해 봐야 또 눈물 흘리면서 무슨 말씀이세요 하며 사람을 홀릴 것이 100퍼센트 확실하지 않겠어. 그래서 좀 설레발을 쳤어. 누나가 동생과 함께 살고 싶어하는 마음만큼은 진심으로 보였고 그걸 이용한 거지.  "동생이 어서 발견되어야 그 몸의 멍자국 같은 게 아동학대 증거가 되어서 딴 데로 갈 수 있을 텐데. 그러면 너도 같이 갈 수 있을 텐데....." 하면서 슬슬 간지럽혀 줬더니 그래도 애는 애더군.  갑자기 동생에게 연락이 왔다는 거야.  그리고는 몇 시간만에 애를 우리 앞에 데려다 놨었어. 나는 지금도 그 순간의 누나의 연극을 공포로 추억하고 있어.



"훌쩍 훌쩍.  이 불쌍한 애가.... 동네 시장 처마 밑에서 지냈대요.   아빠도 무섭고 저도 무서워서 연락을 못했대요.  밥도 못먹었대요.   미치겠어요.  아빠는 왜 이런 불쌍한 애를 때리는 거죠? " 
 
어색하여 고개 숙임도 없이, 일말의 더듬거림도 없이, 하다못해 한 점 붉어짐도 없이 녀석은 새빨간 거짓말을 기막힌 구성과 유려한 언변으로 늘어놓고 있었어.   그 거짓말에 놀아나서 산길 헤매다가 비탈을 구르는 피디 아저씨를 보고 녀석은 속으로 얼마나 웃어 댔을까.  "저기쯤 숨어 있을 거 같아요."라는 말에 목이 쉬어라 "아무개야 누나 왔다 나와라."를 외치는 어른들을 보고 누나는 웃음을 참느라 어금니가 깨지지 않았을까. 


 


여러 모로 끔찍하고 사나운 풍경들에 단련된 직업이기는 하지만 그때 그 아이의 동그란 얼굴과 말똥거리는 눈과 또랑또랑한 언변은 불현듯 가위처럼 몸을 덮치곤 해.  그 자리를 벗어나서 가진 술자리에서 "도대체 얘들 커서 뭐가 될까?"를 수십 번도 더 주문같이 외웠었어.  아마도 지금 대한민국 최고의 유명인사가 된 김길태의 담임 선생도 20년쯤 전 그렇게 암담해 했을 듯 해.   그 이름을 "작은 일에도 술술 거짓말을 하는"  녀석으로 회고하는 기사를 보고 나도 그 남매를 떠올렸으니까.
 
그래 애들 되바라진 거야 인류가 집단을 이루고 세대를 형성한 역사 이래 항상 있어 왔던 일이라고 치자. 얘들 커서 뭐가 될까? 하는 한탄이 비단 나나 우리 세대만의 것이 아니라고 치부해 보자. 하지만 애들은 콩나물과는 다르잖아. 물과 밥만 먹고 크는 건 아니잖아. 될 성부를 떡잎만 골라 키울 수도 없는 거잖아.  
 
거짓말을 숨쉬듯이 하던 그 여자 아이와 누나를 정신적 지주로 삼아 벌써 도둑질에 이력이 났던 아이가 무엇이 될까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그 부모에게만 돌아갈까?  남매의 아빠와 새엄마는 새벽 6시에 나가서 밤 11시에 들어오는 가내수공업 노동자였어.  들어와 보면 서랍에서 납부금 낼 돈이 없어지고, 시계가 사라지는 일을 몇 번 당했고 그때마다 버릇을 고친다고 아이를 쥐잡듯이 잡았어. 그리고 애 밥 차려 주고 출근해야 했고 애는 학교 이후 내내 혼자서 컴퓨터만 해야 했어. 그래서 버디버디에서 누나를 만나고.......


 


누가 누가 잘 자라나 경쟁이 붙은 정원에서 곁가지나 쭉정이는 어떤 취급을 받게 되는지를 우리 한 번만 생각해 봤으면 좋겠어. 나이 열 두 살에 게임 중독에 빠져 엄마를 패고 다니는 아이는 물론 미친 넘이지.  하지만 대한민국에 그런 아이들에게 치료와 교육을 병행하는 기관이 단 하나도 없다고 한다면, 하나 있긴 하지만 서울 시민만 들어갈 수 있고, 그조차 대기자 줄이 칠레만큼 길다면 이건 뭘 뜻하는 거겠어.  
 
내가 만났던 그 사기꾼(?) 누나와 날랜 도둑 동생의 콤비에 누가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을까?  담임교사?  물론 성자에 가까운 스승님이시라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건 신문이나 위인전에 실릴 일이고, 일반적인 시스템상으로도 불가능에 가까와.  그런 필요에 의해 도입된 것이 상담교사 제도이지만 그나마 올해 인턴 교사 관련 예산이 끊겨 버렸잖아. 네가 알고 있다시피 말이지.   (
http://www.ytn.co.kr/_ln/0103_201003040640324983) 대체 멀쩡한 강바닥 파헤치는 돈이 이거보다 더 급한 이유가 뭐냐고. 염병허고.....


 


일제 고사 봐서 성적 나쁘면 해당학교에게 불이익 주겠다고 눈 부라리면, 학교는 성적 나쁜 것들을 묶음으로 "학교의 적"으로 볼 수 밖에 없을 거야. 가뜩이나 돈 바쳐 가며 교장 교감 자리에 눈이 빨갱이가 된 것들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고, 별 욕심 없는 선생님이라도 당장 반 평균 깎아먹고 말 안들어 처먹는 애들한테 정이 가겠냐고. 그래서 걔들이 어두운 뒷골목에서 담배나 피우고 삥이나 뜯으면 저 싸가지없는 새끼들 욕하느라 입에 침이 마르지.
 




그리고 바늘 도둑이 소도둑이 되어 사람 목숨 앗아가는 진짜 악마가 되고 나면 당장 목매달라고 난리지. 나부터 그래. 김길태가 내 딸에게 그런 행동을 했다면 나는 김길태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을 찾아 찌른다고 거품 물었었거든.  


 


그런데 생각해 보자. 길태가 소년원에 가고 징역 쌓는 동안 우리 사회가 11년간 콩밥을 제공한 거 말고는 어떤 지원을 했을지 말이야. 물론 여기서 사회적 책임 운운 하지 말라는 고함이 들릴 듯도 해. 그런 환경에서 아니 더 안좋은 환경에서도 얼마든지 훌륭하게 자란 애들 많은데 그럼 그 사람들은 뭐냐고 우렁우렁 호령으로 귀가 울릴 듯도 해.
 
그런데 말이야. 똑같은 병균이 있는 환경에서도 어떤 애들은 중병에 들기도 하고 어떤 애는 멀쩡하기도 해. 그럼 우리가 탓해야 할 것은 병에 걸린 아이들의 "약골"일까? 아니면 아이들의 방에서 병균을 없애는 일일까. 똑같이 열악한 작업장에서도 어떤 이들은 돈 벌어 나가고 어떤 이들은 산재를 입어. 그럼 우리는 다친 이들의 '부주의'를 꾸짖기보다는 작업 현장의 안정성을 높여 나가야 하는 게 상식 아닐까.  없앨 수는 없다 해도 최소한 줄여 나갈 수는 있지 않겠어?


 


김길태 욕하기는 참 쉬워.  세상 무섭다는 한탄만큼 좋은 술안주도 없어.  사형시켜야 한다고 목청 돋우고 광화문 네거리에서 어쩌고, 톱으로 썰어서 어쩌고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도 나름 재미있을 거야.  그런데 유영찰 정남규 강호순 정성현.......조두순 김길태...  저 끔찍한 이름들의 연속 출연에 그저 연속 분노만 하면 좀 허무할 거 같아서 말이지.   
 
언젠가 그런 사람 본 적 있어. 두더지 때려잡기 게임기 앞에서 연신 방망이를 휘둘러 두더지 머리를 때리다가 제풀에 넘어져서는 소리를 지르더군 "와 두더지들이 끝이 없이 나오네." 자기가 돈 안 넣으면 나올 리가 없는데 말이지. 우린 지금 두더지 게임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계속 고개를 디밀게 시스템되어 있는 두더지 게임기 앞에서 "이 새끼들이 왜 자꾸 기어 나와?" 하면서 뿅망치를 헉헉대며 휘두르는 그런 멍청한 짓을 하고 있는 거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