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는 13일부터 7부현에 비상사태를 내리겠고 발표했다. 토치기, 기후, 아이치, 교토, 오사카, 효고, 후쿠오카가 대상이 된다. 이 비상사태는 전국으로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작년 4월 7일에 수도권과 오사카, 효고, 후쿠오카에 대해서 내렸던 비상사태도 4월 16일 전국적으로 확대된 바 있기 때문이다.
이번 결정을 두고 일본 정부가 늦장을 부리는 바람에 여론이 상당히 나빠졌다. 12월보다 지지율이 더 하락한 영향도 있다고 본다.
한편 폭설로 많은 지역이 곤란을 겪고 있다.
호쿠리쿠 자동차도에서 1,000대 이상의 차량이 장시간 이동하지 못했고, 물류대란이 일어나 100군데가 넘는 편의점 선반이 텅텅 비었다. 물건을 채우지 못해서다.
기후현에서는 스키장 손님과 지역주민 500명이 고립되는 사태가 벌어졌으며,
도야마에서는 나무와 전신주가 쓰러져서 153명의 주민이 고립되었다.
지리적 특성상 원래 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도 있지만, 올해는 특히 재해급이라고 한다. 3미터나 눈이 쌓인 상태에서 다시 80센티가 내릴 거라는데, 그 눈은 봄까지 녹지 않을 것이다. 눈의 계곡 사이로 차가 달리는 생활이 되겠다. 폭설로 인해 사고가 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코로나와 폭설에도 성인식
1월 11일은 일본의 '성인의 날'이었다. 매년 1월 둘째 주 월요일로, 공휴일로 지정되어 있다. 이 날은 지자체가 성인이 된 이들을 위해 큰 회장을 빌려 거한 '성인식'을 연다.
참가자(신(新)성인, 성인이 된 사람들)는 정장 아니면 기모노를 입는다. 기모노의 경우 렌탈만 해도 가격이 최소 몇 십 만 엔으로, 맘에 드는 옷을 빌리기 위해선 길면 1년 전, 짧게는 몇 달 전부터 예약을 해야 한다. 여기에 머리에, 화장에, 전부 합하면 기백만 원은 가볍게 든다. 요즘은 지역에 따라 이 전통을 따르지 않고 코스프레를 하기도 하는데, 나라 전체에서 신경을 쓰는 날이라는 건 다르지 않다. (해마다 성인식에서 벌어진 사건사고 뉴스가 도배되는 날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은 코로나 감염 확대로 비상사태가 선포된 상태에, 폭설로 여기저기가 말썽이다. 상식적으로 성인식을 개최하면 안되지만, 일부 지역 지자체는 성인식을 강행했다.
타나카 료 스기나미 구청장은 "정부와 동경도에서 강경하게 중지를 요청했지만 예정대로 성인식을 강행한다"라고 했다. 그가 하는 말을 보면 코로나에 대한 인식이 드러난다.
"중지를 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하지 않은 것은 '과학적 근거'가 확실하지 않아서다. 만약 중지하면 영화관은 괜찮고 성인식은 안된다, 학교에는 매일 학생이 모이는데 성인식은 안되냐고 의문이 생긴다"
"정부와 동경도에서는 성인식 후에 술을 마시지 않게 하고 싶었겠지만, 나는 (그러지 않을 것이라) 여러분을 신뢰하고 싶다"
지자체장이 이 시국에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모양이다. 코로나 감염 확대로 비상사태 선언까지 한 상황에서 이런 일을 벌이고 데이터를 수집한 사례가 없으니까 당연히 '과학적인 근거'는 없다.
비상사태 선언을 한 상황에서 예년과 다름없는 행사를 강행하는 게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지만, 성인식을 거행한 곳은 다 이런 식이다.
스기나미구처럼 실내에서 한 건 아니지만, 신주쿠구에서도 식을 했다. '기념촬영을 하고 회식하러 가지 않겠다'는 문장을 확인하고 주소와 이름을 쓰고 사인을 하는 서약서를 쓰게 하는 조건 아래서 말이다.
신주쿠구의 기념촬영회장에서 배포된 서약서
지자체가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서 생각해낸 묘안(?)으로 보인다. 어른들이 젊은이에게 책임을 맡기고 있는 건 아닐까 싶다.
기타큐슈시도 성인식을 개최했다.
부채에 프린트한 건 본인들의 이름이다
식장도 있지만 그곳에 들어간 사람이 거의 없고, 코스프레 혹은 코스프레에 가까운 의상을 입은 젊은이들이 야외에 모였다. 이를 알리는 기사에 달린 댓글이 눈길을 끈다.
"마스크 하지 않은 참가자가 절반 정도"
야외라고 해도 마스크를 하지 않은 사람이 반이었다는 것이다. 이 날을 위해 짧게는 몇 달, 길게는 1년 전부터 기모노를 렌탈하고 미용실을 예약했을 테니 마스크를 끼려하지 않았겠지. 가까운 시일에 기타큐슈시에 감염 확대가 일어날 확률이 크다.
설마 지자체가 비상사태 선언의 의미를 모르는 것은 아닐까? 아니다, 정치가들은 비상사태보다, 코로나 감염보다 자신들의 얼굴을 팔고, 연설을 통해 표를 얻는 게 중요한 것이다. 여기에 비상사태 선언으로 인해 성인식이 갑자기 취소되면 성인식을 위해서 기모노를 구입했던 사람이나, 기모노 업계, 미용실 등 관련 업종이 타격을 받는다. 참가자와 그 가족들의 개인적인 비용 지출도 크다. 이 모든 것들은 재선에 위험요소가 될 테니, 이런 이유에서도 성인식을 취소하지 않는 것이다.
일본 전국에서 가장 많은 수인 약 3만 7천 명이 성인을 맞이하는 요코하마시가 성인식을 강행한 것도 비슷한 연유에서일 것이다. 신규 확진자가 폭발하는 곳이지만, '식장이나 횟수를 늘리는 등 감염대책'을 통해 행사를 열었다. 대상자 3만 7천 명 중 1만 5307명이 출석했다고 한다.
요코하마시의 성인식, '요코하마 아리나'에서
자리에 간격을 두어 앉은 참가자들
정작 요코하마 시장은 대상포진으로 입원해서 성인식에 출석하지 않았다. 일본에서 정치가를 하려면 일을 크게 벌여놓고 결정적일 때 발 빼는 스킬이 필요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요코하마시에서 노상에서 낮부터 됫병 술을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같은 술병에 입을 대어 마시고 술병을 깨는 등 난동을 부렸다는 모양이다.
이건 그전에 춤을 추는 사진이다.
사진 옆에 비닐봉지에 담긴 술병도 대단히 많다.
마스크와 감염 방지 대책 같은 건 없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일본에서 일어나는 일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동경에서 몇십 년 살고 있는 나도 이해하기 힘들다.
비상사태 선언은 한국에서 말하면 3단계보다 더 강력한 것이다. 일본 정부에서는 음식점에 영업시간 단축을 요청하고 이에 대한 보상금을 지불하고 있다. 여기에 협력하지 않으면 가게 이름을 공표하고 벌금을 내게 하는 법 개정도 서두르는 판이다. 그런데 지자체에서는 성인식을 열고 젊은이를 모은다. 그것도 가장 감염이 확대되는 지역에서 말이다.
코로나 악순환
최근 아사히 신문이 신형 코로나 바이러스를 테마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이에 따르면 67%가 '신형 코로나에 감염되면, 건강보다 인근, 직장 등 주변의 시선이 걱정된다'고 한다.
코로나 감염 확대가 된 일본의 현실을 말해주고 있다. 일본에서 코로나 감염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 극심해서 증상이 있어도 웬만하면 그대로 직장에 출근한다. 코로나 감염되면 죄인 취급을 받기 때문에 증상이나 감염에 대해 감추는 것이다.
이런 경향은 대도시보다 지방에 가면 갈수록 강해진다. 지방, 시골에서는 완전히 매장당하는 수준이다. 이번 성인식에 참가하려고 귀성한 학생들이 고향에서 반갑지 않은 손님 취급을 받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일본 정부가 국민을 '이지메'하고 지역 사람들이 외부 사람을 '차별'한다. 확진자를 '차별'한다는 걸 너무나 잘 알기에 어쨌든 감춰야 한다는 인식이 강해진다.
코로나에 감염되면 감염 그 자체 말고도 다른 문제가 기다리고 있다. 코로나에 감염이 되어도 의사가 입원시키지 않으면 거의 입원할 수가 없다. 운이 좋아야 요양시설에 가고 대부분은 자택 요양을 해야 한다. 동경도의 경우는 (입원 전까지) 자택 대기가 7천 건 가까워서 자택 요양을 하는 수치와 비슷하다. 입원 대기 중인 사람 중에 식량이 떨어져서 '코로나로 죽든지 굶어서 죽게 생겼다'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자택 대기를 시키거나 자택 요양을 하면 식료품을 사러 밖에 나갈 수가 없다. 이를 위해 케어가 동반되어야 하는데, 한국처럼 자가격리자에게 식료품과 필요한 용품을 지원하거나 돌보는 제도가 일본에는 거의 없다. 그런 걸 바라는 것 자체가 사치라고 볼 정도다.
모든 것이 맞물려서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다. 왜 이렇게 서로를 힘들게 하는지 모르겠다. 힘든 상황에서 조금씩만 서로 배려할 수 있다면 훨씬 좋아질 것 같은데 말이다. 하지만 이런 말을 했다가 눈치 없다고 미움을 받기 때문에 또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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