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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V의 추억

 

아저씨들이 질풍노도의 청소년기를 질주하던 80년대. SUV라는 장르가 막 열리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혼라이프 SUV가 나올 정도로 시장이 엄청 세분화되었지만, 당시의 제조사들은 소형-중소형-중형-대형 정도의 심플한 라인업을 갖추고 있었다. 막 자동차 산업의 중흥기에 들어선 제조사들은 신차를 경쟁하듯 출시했는데,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이런저런 자동차들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생활 속 볼거리가 될 정도였다. 어쩌다 날렵하게 잘 빠진 외제차라도 마주치는 날이면 마치 심마니가 산삼을 본듯 이리저리 뜯어보고 디자인을 눈에 담기 바빴다.

 

그러던 어느 날, 청춘영화에서 막 뛰어나온 듯 울퉁불퉁 반짝반짝 멋진 차를 만났다. 보통의 승용차보다 차체가 훨씬 높고, 잔뜩 성난 진돗개 마냥 부르르르 하던 엔진 공회전 소리는 꽤 시끄러웠다. 옆에 있는 다른 차를 몽땅 오징어로 만드는 독보적인 비쥬얼에 눈을 못떼고 있는데, 세상에!

 

지붕! 지붕이 없다!

 

오우. 이거슨 영화에서만 봤던 바로 ‘오픈카’였던 것이다. 비록 앞모습은 관용 지프와 흡사했지만, 차체의 반짝이는 와인색은 왠지 ‘나 완전 고급차에요’라고 하는 것 같았다. 엄청 크고 두꺼운 바퀴가 떠받치고 있는 우락부락 근육질의 차체는 어깨 떡벌어진 운동선수처럼 당당하고 안정감 있어 보였다. 무엇보다도 뚜껑을 착착 접어 오픈카로 변신한 소프트탑! 신문물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지붕을 열고 시원한 바람을 가르며 달리면 자유와 해방감이 온 몸을 휘감을 것만 같았다. 그 때였다. 나도 저렇게 멋진 차를 타고 터프하고 섹시한 남자로 거듭나서 온 세상 여인네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겠다는 옴팡진 꿈을 품게 된 것이.

 

90년대, 우리나라가 세계를 호령할 아시아의 4룡으로 추켜세워지던 시절(IMF구제금융의 신세를 지기 직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이 있었다. 자동차 제조사들은 상품성이라는 것에 눈을 뜨고 본격적인 시장공략을 위해 디자인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캘리포니아에 디자인 스튜디오를 만들어 수년 간 갈고 닦은 디자인을 공개한 회사도 있었고, 영국의 스포츠카 브랜드를 인수해 국내에 선보이는 회사도 있었다.

 

1992년, 현대정공(현대자동차가 아니다)은 미쯔비시의 파제로를 들여와 갤로퍼라는 이름으로 출시, 빠르게 국내 SUV시장을 장악해갔다. (무슨 짓을 하든 1등 먼저 먹고보자는 철학은 언제 어디서든 잘 먹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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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이면 전범기업의 자동차를 들여왔을까 의구심을 갖던 시점, 자동차는 1도 모르는 필자를 감동시킨 으마으마한 자동차가 출시되었다. 승용차는 분명 아니고 짚차 같긴 한데, 기존의 박스스타일을 벗어난 날렵하고 매끄러운 디자인이 신선을 넘어 충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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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메르세데스-벤츠와의 ‘기술제휴’라는 당시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파격적인 사건은, 고급스러운 디자인에 걸맞는 성능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담보하기 충분했다. 심지어 초기에는 직수입한 벤츠 엔진을 그대로 탑재한 차들이 출시되어 어떤 아저씨들은 쌍용 마크를 떼고 당당히 벤츠 마크를 달고 다니기도 했다. 벤츠 엔진이니까 벤츠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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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년 파라오 랠리 종합 2위, 디젤 부문 1위, 95년 다카르 랠리에서 완전 개조 7위, 디젤 부문 1위라는 어마어마한 성적을 거두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다카르 랠리라고? 완주도 어렵다는 그 죽음의 경주에서 패기와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루키로 우뚝 선 ‘우리나라 차’는 청년의 비교적 현실적인 드림카가 되기에 차고도 넘쳤다. (뭐 기업의 마케팅의 일환이었지만, 멋진 건 멋진 거 아닌가)

 

그러나 자동차를 열망하던 청년에게 가격은 넘사벽, 그냥 그림의 떡이었다.

 

갤로퍼, 무쏘, 그리고 스포티지, 록스타… SUV의 시장성을 확인한 자동차 회사들의 각축전이 시작됐다. 고성능 터보엔진도 얹어보고, 승합차처럼 좌석도 늘려보고, 젊은 층을 겨냥한 숏바디 차량도 만들었다. 한참 뒤의 일이지만, 나중에는 SUT(스포츠 유틸리티 트럭)이라는 카테고리도 생겼다. 그런데 가만보자. 랠리에서 달리고 있는 무쏘를 보니 뭔가 좀 짧다. 무쏘도 숏바디를 출시하려나 보다 싶었다.

 

자동차에 대해 1도 모르는 필자는 자동차야말로 디자인 상품이라고 생각한다. 성능이나 실내 공간, 세금, 정비 용이성, 편의성 등 소비자가 고려하는 수많은 요소들이 있겠지만, 구매를 결정하는데 있어 제일 큰 요소는 디자인, 그리고 가격이라고 생각한다.

 

 

 

현실적 드림카

 

무쏘의 성공에 힘입은 쌍용자동차는 공격적으로 새 자동차를 출시했다. 원래 무쏘의 길이만 줄인 ‘무쏘 숏바디’를 준비하고 있었지만, 새 디자인이 너무 잘 나와서 계획을 전면적으로 수정했다는 소문이 들렸다. ‘뉴 코란도’라는 이름을 계승하고 아예 새로운 자동차로 출시한다는 얘기였다. (그 말이 사실인지는 확인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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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하지 않은 것은 이름 뿐이다.”

 

뉴 코란도의 출시광고 카피였다. (카피 한 줄로 이렇게 가슴을 후벼파다니.)

 

고급스러우면서도 스포티하고, 부드러우면서도 터프한 디자인에 매료되었다. 랭글러나 코란도에서 보아온 지프의 형태를 그대로 계승하면서도 또 전혀 새로운 방향으로 해석하고 전개한 디자인은 놀라울 만큼 성공적이었다. 이런 곡선이 가능하구나, 우리가 디자인을 이렇게 멋지게 소화해낼 수 있구나, 가슴이 설레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심지어 국내 디자이너의 작품이었다니, 이 차를 꼭 손에 넣고 오래오래 사랑해주어야 한다. 필자의 ‘머스트 해브’ 아이템으로 등극했다.

 

오로지 디자인! 눈에 콩깍지가 씌다보니 부품 값이 어떻다든가 승차감이 어떻다든가 주행안정성이 어떻다든가 하는 평들은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웬만한 단점은 디자인이 마구 커버했다. 뭐, 그에 못지 않은 장점도 있었다.

 

1) 승차 위치가 높아 도로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높은 차고에서 나오는 위압감은 다른 차들의 양보(?)를 이끌어내서 상대적으로 쉬운 운전을 선사해준다.

 

2) 제품마다 품질의 편차가 있어 완성도가 들쭉날쭉. 정비소의 서비스도 가성비가 그다지 좋은 편이 못돼서 동호회 사람들의 도움을 받는 일이 잦다. DIY를 하며 자연스럽게 친목을 도모하고 차량에 대한 잡다한 지식을 쌓는다.

 

3) 차가 인기 있다 보니 중고가격 방어가 뛰어났다. (단종되고 회사 사정이 나빠지면서 중고 가격도 추락했지만)

 

 

 

내 품에 안기어

 

2003년 12월, 드디어 필자는 꿈에 그리던 코란도를 사기로 했다. 새 차는 아니었고, 출고된 지 몇 달 된, 새 차 같은 중고차였다. 그래도 저렇게 멋진 차를 타고 터프하고 섹시한 남자로 거듭나겠다는 옴팡진 꿈을 펼쳐낼 역사적 순간이라는 건 변하지 않았다.

 

물론, 현실과 타협할 수밖에 없는 몇 가지 사안은 있었다. 마음은 2900cc 최고급형 소프트탑에 있었지만, 세상에 하고 싶은대로 다 하고 사는 사람은 없는 것이다. 디자인이 같은데 고배기량 아니면 뭐 어떤가. 소프트탑은 많이 비쌌다. 다 같은 코란도인데 뭐 하드탑이면 어떻고 소프트탑이면 어떤가.

 

코란도를 열망하던 필자의 마음을 잘 알기에 크게 반대는 하지 않았지만, 훗날 태어날 아기를 생각하면 뒷문이 있는 차가 어떻겠냐는 아내의 조언이 있었다. 뒷문이 있으면 편하긴 하겠지만, 코란도가 아니어서 내키지 않았다. 아기가 태어나면 차를 바꿀 수 있지 않겠냐며 설득했다. 도시를 벗어나 신나는 음악을 들으며 오프로드로 모험을 하고 젊은 날을 즐기는 멋진 라이프 스타일을 꿈꾸었다.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 신혼을 그렇게 즐기리라 마음 먹고 자동차 커뮤니티 사람들을 따라 이런저런 업그레이드를 시작했다. CD 플레이어 기능이 있는 오디오에 CD가 6장이나 더 들어가는 CD체인저까지 구해서 달았다. 나중에는 네비도 되고 인터넷도 되고 mp3와 동영상 플레이까지 되는 자동차용 PC까지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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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바퀴를 인치업하고 바디를 올리는 등의 구조 변경은 하지 않았다. 그것은 오리지날 디자인을 훼손하는 일이므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제 준비는 끝났다. 그런데 그게 다였다. 험로를 찾아 모험을 떠나는 일 따위는 애초부터 있을 수 없었다. 디자인 일을 하면서 더 공고해져버린 완벽한 조형에 대한 강박이랄까, 아니면 차를 사랑하게 된 가련한 남자의 민낯이랄까. 어디 찌그러지면 어쩌나, 까지면 어쩌나, 신경이 쓰여 곱게 포장된 아스팔트 도로만 골라다니는 자신의 낯선 모습을 발견하곤 문득문득 현자타임이 오곤 했다.

 

설상가상, 오프로드 모험을 즐기러 떠나자는 필자의 피끓는 제안에 아내는 ‘왜 돈 들여 비싼 차 부숴가며 그 고생을 하려는가’ 하는 반응으로 찬물 같은 걸 막 끼얹곤 했다. 뒷문 있는 차를 권했던 아내의 취향은 알고 보니 승차감 좋은 매끈한 세단이었던 것이었다.

 

그저 주말이면 세차장 가서 비누거품 세차하고 파리가 낙상할 만큼 반짝반짝 왁스칠하고 아름다운 코랭이(필자는 필자네 코란도를 코랭이라 불렀다)의 자태를 감상하는 것으로 모험을 대신했던 것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