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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18.목요일


필독


 


 


 


1


 


화산논검(論劍)을 아시는가. 그 옛날 무림의 고수들이 화산에서 검을 논하며 천하제일을 가렸다 하여 화산논검이라 한다. 어린 시절 필자는 그럼 철퇴나 창을 쓰는 호걸은 어찌 제 실력을 논하나 싶어 무척 고민했던 기억이 있다. 논퇴, 논창이라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 의문은 아직까지도 해소되지 않고 있다.


 


논검의 시대는 가고, 이제 바야흐로 논병의 시대다. 


 


논병(論病) - 병맛을 논함.


 


병맛(a taste of byubjin, a byubjinish taste)에 대한 사전적 정의는 링크 를 참조하도록 하고, 여기서는 그 일상적 의미를 간추려보도록 하자. 혹자는 병맛이란 곧 아스트랄(astral)함이라고 쉽게 말한다. 그러나 이 경우 우리는 아스트랄의 시니피에란 과연 무언인가를 다시 논해야 하는 번거로움에 처하고 만다. 병맛이 문자 그대로의 '별나라의 맛'은 아니지 않은가.


 


무릇 병맛이란 상식의 언어에서 출발하여 상식을 넘어서는 아방가르드적 취향이라 해야 할 것이다. 마치 보쌈에 마늘 대신 딸기를 넣은 듯, 삼겹살을 쌈장 아닌 마요네즈에 찍은 듯한 맛이 병맛일 것이다. 이러한 전위적 시도에 인도되어 지상의 중력을 벗어나 진공을 떠다니는 우주적 체험을 제공하는 것이 병맛이 아닐까, 본 기자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좋은 병맛의 예


(2009년 대한민국 경찰 관리대상 조폭 현황에서 발췌)


 


이제 본 기자는 논검의 경우에서와 같은 고민을 하지 않는다. 논병은 무기와 수단에 차별을 두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딴지는 오랫동안 논병의 우열을 가리는 심판대였다. '딴지 선정 이달의 삽질인물' 등이 그 증거다. 허나 영웅은 강가의 갈대처럼 자라나고 호걸은 때아닌 우박처럼 갑자기 쏟아진다고 했던가. 굳이 본지가 나서지 않더라도 2010년 대한민국은 이미 논병의 치열한 각축장이다.


 


유족까지 개그의 소재로 끌어들이는 정운찬의 병맛에 질세라(관련기사 링크), 안상수는 없는 아이 밥이라도 먹이자는 무상급식에 대해 "국민 혈세로 부자 아이 무상급식 안 돼."라는, 안드로메다 쌈싸먹는 병맛을 시전했다. 


 



 


심지어 성범죄 증가가 지난 십년의 좌파교육 때문이라는 삽언을 날리기도 했는데 이는 김길태(33), 조두순(57), 강호순(41)이 몇 년도에 의무교육을 받았는지를 계산해보면 곧 그 내실이 드러다는 퀴즈성 병맛이라 하겠다.


 


문이 무를 제압한다고 했던가. 자칭 논객까지도 논병에 가세하고 있다. 별명마저도 병맛인 듣보잡 아무개는 목욕재계하고 소장을 쓸 때 가장 행복하다고 고백했다. 그는 오랜 세월 한결같이 애증의 마음으로 스토킹해온 진중권을 법정에 끌어들여 합법적으로 재회하는 데 성공, 논병 행보에 굵은 이정표를 찍었다. 그러나 강호는 윗물이 아랫물을 밀어내는 강줄기라던가. 이제 그는 논병에서도 듣보가 되어 듣보병이 될 위기에 처해 있다.


 


PD수첩 법정공방 병맛진술로 혜성처럼 등장한 천상 인문학도 정지민이 그의 자리를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정지민은 자신의 저서에서 현대영어는 물론이고 중세영어, 고대영어까지 마스터했다고 일갈했다. 사실 고대엔 영어가 없었다. 굳이 중세영어와 비교하기 위해 대략 9세기경의 영어를 고대영어로 지칭하기는 한다. 그런데 이 고대영어란 게 '서게르만어 앵글로프리지아어군에 속한 앵글로 색슨어의 남부/남서부 서섹스 방언'...


 


천상 인문학도인 그녀이지 않은가. 크로이츠펠트 야콥(Creutzfeldt-Jakob)병을 현대어 어디에도 없는 '쿱스펠트 야커' 병(관련기사 링크)으로, 오역 아닌 오역을 한 것은 분명 그녀가 9세기 서섹스어를 사용하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정지민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다음의 말로 기어이 병맛의 마침표를 찍고야 만다.


 


"초등학교 시절 영어가 미숙한 영국 아이들과 공부하면서..."


 


그런가 하면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인 유인촌도 성질이 뻗쳐서 정말 "찍지마 씨발"을 외친 지 언제라고, 연아 회피 동영상을 만든 네티즌을 고소하는 초유의 찌질함을 보임으로써 대체 나이는 어디로 쳐먹었는지 의심케 하는 병맛을 과시했다. 사실 부처의 명칭 자체가 엄하게도 문화와 체육과 관광을 한통속으로 이해하고 있음을 뜻하니, 옥토에서 양곡이 나오는 이치가 이와 같다.


 


이제 논병은 더 이상 개인만의 도전은 아니다. 한나라당 문파가 배출한 호걸들의 위용에 자극받아서일까. 민주당은 성추행 전과가 있는 범법자를 재입당시키면서 당 전체가 힘을 모았다. 본 기자는 이 거사를 떼거지 다구리의 대명사인 소림 십팔나한진을 능가하는 씨발나볍진이라 부르고 싶다. 그러나 시민들의 반대에 결국 영입을 취소한 나약함을 보면 아직 한나라당에 비해 병공이 스무 갑자는 모자란 게 분명하다.  


 


그러나 2010년 봄 현재 누구도 바로 그분, 가카의 병맛을 능가할 수는 없다는 게 본 기자의 판단이다. 그는 법정스님 열반 후 <조화로운 삶>을  "산중에 생활하며 느끼는 소소한 감성과 깊은 사색을 편안한 언어로 써서 쉽게 읽히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며 추천했다. 앗 그런데 <조화로운 삶>은 법정스님의 저서가 아니라 저서를 출판한 출판사...


 


가카는 '출판사'를 읽고 감동을 받을 수 있는 분인 것이다. 이는 마치 아르헨티나를 잘못 먹어 배탈이 나고 쌀 한 마리가 보리 두 마리를 임신시켰다는 수준의 병맛이다. 그러나 이 정도 삽질은 그분께는 일상의 자연스런 병맛에 불과하다. 이제는 고전이 되어버린 다음의 사진을 보라.


 



 


기관총 조준간과 견착대의 거리는 불과 30cm 가량. 조준간이라 해서 눈알을 찰떡쿵 갖다붙이지지는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단지 안면을 약 20cm 후퇴시키는 것만으로 가공할 병맛을 과시한 것이다. 이에 국민들은 굳이 가카의 이력을 살펴보지 않더라도 그가 군면제를 받은 신의 아들이었음을 자연스레 알 수 있다.


 


영웅호걸이 들의 꽃처럼 하늘의 별처럼 많다 한들 가카에 주변에 근접할 수조차 없다. 그저 표현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다. 가카의 신변을 국민삼상(세 명의 국민상녀. 관련기사 : 누가 진정한 국민상녀인가)이 호위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어 문법강좌의 나경원, 사자후의 송영선... 그리고 전여옥의 병공은 다시 말해 무엇하랴.


 



가카와 국민삼상


 


 


2


 


"지금은 곤란하다. 기다려달라."


 


가카가 저런 말을 했다고 한 요미우리의 보도가 없었다면 본 기자는 황금빛으로 자라나는 싹수 새싹 하나를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요미우리가 무슨 믿는 구석이 있는지 강력히 주장하는 바대로 가카가 실제 저런 말을 했다면, 가카의 상태는 단 두 문장으로 매국이라는 어마어마한 사고를 치는 궁극, 극강의 병맛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본 기자가 주목하고 싶은 이는 사고를 수습한답시고 뛰어든 한나라당 신임 대변인, 정미경이다.


 



바로 이 분


 


그녀가 말하기를 독도관련 문제제기와 요미우리를 상대로 한 소송은 국익에 반한다는 것이다. 이게 뭔 병소린가 싶어 그녀가 쓴 전문을 찾아보았다.


 



독도마저 선거 수단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민주당은 2008년 7월 요미우리가 잘못 보도한 이른바 “MB 독도 발언”을 다시 도마 위에 올려놓고 국익에 반하는 위험한 정치게임을 벌이고 있다.




당시 청와대가 사실무근이라고 명확한 입장을 밝혔고, 일본 외무성도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확실하게 부인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이를 계속 쟁점화하려 하고 있다. (당시 요미우리 신문도 인터넷 판에서 해당 기사를 바로 삭제한 바 있다)





민주당은 자신들의 문제제기를 독도수호를 위한 애국적 헌신으로 미화하고 있으나 이것은 명백한 반 국익적 행동이다.




‘대통령이 대한민국 영토(독도)를 포기하려 했다’는 식의 상상할 수도 없는 주장을 펼치는 것은 우리가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는 독도를 마치 분쟁지역인 것처럼 비치게 하는 위험천만한 행위이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네티즌의 정서를 자극하려는 정략적 계산이 독도문제에 큰 해악을 불러오고 있음을 민주당은 깨달아야 한다. 오히려 요미우리 신문사의 논리에 이용당하고 있음을 제발 깨닫기 바란다.




애국이라는 명분을 내걸고 선거를 이기겠다는 전략으로 독도를 이용해서는 안된다. 독도는 우리 선조들의 피와 눈물까지 담겨있는 우리의 집이기 때문이다.




한국정부가 당시 일본 요미우리 신문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것은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였다. 외교문제에 있어 무작정 큰 소리치고 논란을 만든다고 해서 반드시 이익이 되지 않음을 민주당도 알 것으로 생각한다.




민주당에게 묻고 싶다.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지방선거의 승리인가. 아니면 독도인가.


 


물론, 기본적으로 평이해 보이는 것이 위에서 소개한 병객(病客)들과 같은 직관성과 창조성은 없다. 그러나 이 경우 얼핏 맞는 말처럼 보이기도 하는 것 같기도 한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는 데 바로 병맛의 핵심이 있다. 씹을수록 풍미가 피어오르는 봄나물을 만난 느낌이랄까.


 


씹어보자. 봄나물처럼.


 


우리같은 범인은 왜 요미우리가 저지른 일을 외무성이 해명하며, 외무성의 발표가 정작 당사자인 요미우리의 주장과 뭔 상관이 있는지 의아할 수밖에 없다. 오히려 외무성이 공식 발표를 할만큼 중차대한 상황이라면 청와대가 나서서 요미우리를 상대해야 하지 않는가.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가 국익 때문이라고 한다. 독도는 우리땅이므로 공연히 쟁점화되면 안 되니까, 논란을 만드는 행위를 자제한다는 것이다. 헌데 가카가 정말 저런 말을 한 적이 없다면 요미우리를 소송하고 정정보도를 요구하는 것이야말로 불필요한 논란을 없애는 게 아닐까 하고, 우리는 생각할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영토를 포기하려 했다'는 상상할 수도 없는 주장"에 대해 우리같은 범인은 아니 상상한 게 아니라 요미우리가 그랬다고 하잖아...를 되씹으며 고개를 갸우뚱거릴 수밖에 없다.


 


읽으면 읽을수록, 그녀의 말은 우리가 미처 닿을 수 없는 병맛으로 소급되는 것이다. 대통령이 과연 국토를 분쟁지역화하는 발언을 했는지 가려, 아니라면 요미우리의 책동을 잠재우고 만약 그렇다면 대통령을 탄핵해 그의 발언을 무효화하는 게 국익이라고 생각하는 평범한 국민들도 있겠지만, 정미경은 다르다. 그녀의 주장에 따르면 결국 국익이란 가카에 대해 입닥치는 것이다.


 


즉 가카 개인의 대통령직과 국익의 개념을 마치 일부러 혼동하듯 뒤섞는 데에 이르러서야 비로서 병맛의 풍미가 드러나는 것이다. 게다가 정치활동을 목적으로 존재하는 정당에 대해 마치 지방선거 승리를 바라면 안된다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는 아스트랄함까지, 가히 명문 아니 병문(病文)이랄 수 있다.  


 



 


제목에서부터 "독도마저..."라 절규한 것을 보면 이분이 독도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있다. 사실, 그렇다, 이분은, 그 이름도 열 세 글자인 '독도영토수호대책특별위원회"에 속해있는 분이다. 대채 구체적으로 무엇을 위한 위원회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름의 길이만큼이나 무언가 중요한 임무를 띤 조직임이 분명하다.


 


일례로 이 위원회는 해외시찰에 네 명의 의원을 보내, 단 48시간의 일정 동안 6129만원의 세금을 썼다. 짧은 시간에 어울리지 않는 고비용을 보아 무척 중요한 임무였음을 알 수 있다. 왜 시찰지가 일본이 아닌 미국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UFO가 지구를 침공하면 미군 전투기가 떠야 하는 이 팍스 아메리카나의 시대에, 세계 권력의 심장부를 강타하고 왔음은 짐작할 수 있다. 이게 다가 아니다. 이 위원회에선 지금껏 단 두 번의 회의에 3300만원 남짓이 소요되었다. 이로 미루어 얼마나 중요한 회의였는지, 상상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렇듯 그녀의 삶에서 독도와 영토수호, 국익이 가지는 의미는 실로 중하다.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정미경, 대체 그녀는 어떤 인물인가. 마침 그녀는 저서를 한 권 남겨놓고 있다.


 




정미경은 고대 법학과를 나온 여성검사 출신으로, 이 책은 그녀가 어떻게 검사시절을 보냈는지 알 수 있게 해준다. 악을 대했을 때 느꼈던 분노,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면서 끓어오르던 정의감... 이 책은 무척이나 평범한 축에 드나, 자세히 읽어보면 이미 병맛의 징후를 은밀히 드러내고 있다.


 


선배 검사가 너무 일을 잘한다고 칭찬했다는 대목(을 자기가 자기 입으로 자연스럽게 했다는 점), 남자친구와 헤어진 이유를 설명하는 부분이 그렇다. 너무나 정의롭고 오직 정의만 생각하는 그녀가 부담스러워 "너는 너무 정의로워."라는 말을 남기고 떠난 한 남자의 이야기...


 


보통 연인이 너는 내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착하다는 말을 남기고 떠나갈 때, 의심 많은 우리는 그(혹은 그녀)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못한다. 하지만 정미경, 그녀는 믿을 뿐만 아니라, 출판을 통해 본인의 입으로 공언하기까지 하는 솔직담백함을 가진 사람이다. 이러한 그녀를 본 기자는 다음과 같은 말로 표현하고자 한다.


 


정의의 정미경.


 


본 기자의 결심은, 책 본문의 다음 내용을 발견하고서 더욱 굳어졌다.


 


"악은 절대로 평범하지 않지만 인간은 평범한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어떠한 조건으로든 악과 흥정해서는 안 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악의 편에 서지 않겠다 일갈한 정의의 정미경. 다음 사진에서 나타난 순간에 이르러 비로소 병맛을 완성하려고, 그녀는 그렇게 썼던 걸까.


 




정의의 정미경, 그녀의 예민한 영혼은 선과 악 사이의 외줄을 타다가 마침내 사유의 끝에서 '선악의 피안(彼岸)'에 다다른 것이 아닐까. 니체가 광기에 휩싸여가며 도달했다는 바로 그곳에. 그래서 그녀는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는 정의를 니체식으로 재정립하고야 만 것이다.


 


- 힘이 곧 정의다.


 



그리고 정의는 쓰러지지 않는다.


 


본 기자의 추리가 비약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을 위해 그녀가 자신의 블로그에 직접 써 올린 글을 공개한다.


 


"대통령님!


어려운 시기에 이 나라를 반석위에 올려 놓으시려고


대통령이 되셨나 봅니다.


고맙습니다."


 


 


3


 


물론, 기성(旣星)들에 비한다면 그녀의 아우라는 아직 미미하다. 신성을 발견한 기쁨을 조절치 못해 균형을 잃지 않았는가 지적하는 독자가 있다면, 필자는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자성할 것이다.


 


그렇다. 아직은 이를 것이다.


 


가카를 위해 열심히도 썼을 저 글은 나경원의 '주어가 없다'는 단 한 문장의 위력에 초라해지고 만다. 그러나 절대로 악의 편에 서지 않는 동시에 가카의 곁을 지키는 모습에 필자는 또다시 그녀의 화려한 미래를 기대하고 만다. 게다가 병객으로서는 최고의 엘리트코스로 알려진 한나라당 대변인직을 맡고 있어, 더욱 전도가 양양하다 하겠다.


 


본 기자, 조심스레 상상해본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설레는 봄날 술잔에 진달래 꽃잎을 띄워놓듯 그녀의 이름을 네 번째 국민상녀 후보자리에 살포시 올려놓는 그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