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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에서 국정원의 폐해, 개혁 진행 상황, 개혁의 궁극적 도달점까지 다루었다. 이번엔 좀 더 피부에 와닿는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한때 그런 적이 있었다. 누군가 권력을 비판한다. 듣고 있던 그의 지인은 그의 안부를 걱정하게 된다.

 

“요새 그런 말 하고 다녀도 괜찮니?”

 

쌍팔년도 민주화운동 시절 이야기가 아니다. 어떤 직장들이 감시당하고, 어떤 이는 블랙리스트에 올랐으며, 누군가 당신의 SNS를 염탐하고, 거기에 정체 모를 댓글들이 달리던 그 때로부터 멀리 오지 않았다. 광화문에 명박산성이 치워진 지 10년이 채 지나지 않았다. 지난 MB 정부에서 국정원의 사찰에 시달리던 사람들 그 엄혹함을 몸으로 겪던 사람들이 우리 곁에 고스란히 있다.

 

친애하는 우리 MB가카께서 국정원을 정적 제거용으로 집요하게 활용했다는 사실은 이미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다. 집요했으나 치밀하지는 못했다. 요원이 남의 노트북을 훔치다 걸리거나, 사찰 대상에게 사찰 보고 문자를 보내는 웃지 못할 촌극들이 언론을 틀어쥐고 있던 와중에도 종종 새어 나오곤 했으니까.

 

그 증거가 불과 10년이 채 되지 않아 세상에 명명백백히 드러났다. 곽노현 전 서울시 교육감의 주도로, 이명박 정부 사찰 대상이었던 이들이 ‘내놔라 내 파일’이라는 운동을 벌였다. 운동 3년 만에 국정원으로부터 본인의 사찰 문건을 건네받은 이들의 소감을 들어봤다.

 

사찰의 추억1: 명진 스님

 

명진스님은 이명박 정권 시절 서울 강남 한복판에 자리한 봉은사 주지 스님이었다. 그는 법회 때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4대강 사업 등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그러다 봉은사 주지뿐만 아니라 조계종에서도 승적이 박탈되는 일을 겪는다. 명진스님은 이번 국정원 사찰 문건을 통해 그때 자신에게 벌어진 일련의 일들이 모두 국정원의 공작, 작전이었음을 확인했다. 그의 첫 마디는 검찰 문제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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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진 스님(이하 ‘명’) ; 지금 제일 큰 문제는 검찰이다. 검찰을 비롯한 대한민국 권력기관은 전형적인 조폭집단의 문화가 있다. 보스로부터 상명하복으로 내려오는 구조. 그중 으뜸은 단연 검찰 조직이다. 뭐 국정원도 있고 군대도 있고 하지마는 검찰 조직, 저놈들은…

 

국정원 사찰 문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자고 마주 앉은 자리가 검찰에 대한 비판으로 시작된다. 이는 스님의 선문답이 아니다. 사찰 문건 곳곳에서 국정원과 검찰의 유려한 호흡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찰에 있어서, 검찰과 국정원은 원팀이었다.

 

헤르메스 아이(이하 ‘헤’) ; ‘내놔라 내 파일’에서 본인의 사찰 문건은 분량이 어느 정도나 되나?

 

 ; 문건이 30개 중에 13개 정도 된다. 물론, 그것도 특별한 경우에만 사찰했던 그 기간이 한정돼 있다. 봉은사 주지를 하던, MB 정권 기간 중에 있던 30건 중 13건을 받은 것이다.

 

 ; 나머지 17건은 왜 안 준다고 하나?

 

 ; 그것은 잘 모르겠다. 1심 판결에서 13건만 주기에 항소를 하려고 했는데, 항소는 또 비용이 들어서, 못했다. 요즘은 나도 어렵고 해서. 그래서 1심 판결을 근거로 문건을 받았고, 박재동 화백과 곽노현 교육감은 항소를 해서 파일을 받은 걸로 알고 있다.

 

 ; 그럼 13건의 내용들은 어떤 내용들인가?

 

 ; 봉은사 주지로 있으면서 4대강 사업 등 대통령에 대한 비판한 것들이 대상이 되었다. 좀 희한한 게, MB가 퇴임하고 난 다음에 청와대에서 영포빌딩으로 문건을 좀 옮겨간 게 있었다. 그 빌딩 지하에서 나온 대통령 기록물 중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강남 한복판에서 저렇게 뭐 하는 좌파의 명진을 저대로 놔둬서 쓰냐?’

 

그런데 이 내용은 국정원 파일에는 또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 13건의 사찰 문건이 A4용지로 몇 페이지 정도 되나?

 

 ; 간단간단하다. 제목 같은 것만 있다. 영포빌딩에서 나온 문건에는

 

‘명진의 막가파식 행태에 대한 전략적 대응을 강구하라’

 

라고 나와있었다. 당시 이명박 청와대 민정수석, 국가정보원, 경찰청 등이 대통령한테 보고했던 불법사찰 문건 중의 하나였다. 이 문건은 2018년 3월 검찰이 대통령 기록물 유출 사건으로 영포빌딩을 압수수색했을 때 나온 거다. ‘강남 한복판에서 막가파식 행태를 하는 명진에 대한 전략적 대응’. 너무 웃기지 않나? 절간의 스님이 ‘전략적 대응까지’ 필요한 인물이라니. 이것이 공식 기록물이라는 점이 가장 코미디다.

 

봉은사에는 지하주차장이 없다

 

 ; 13건 중에 스님에 대한 평은 어떤가?

 

 ; 나를 봉은사 주지직에서 끌어내리는 것이 그들의 목표였다. 그들의 사찰 업무는 내용들이 아주 추접스러웠다. 문건에는 ‘명진에 대한 비리, 추문 등을 신도들과 보수 매체에 알려서’ 뭐 이런 식으로 나온다. 내 인격을 모독하는 게 국가 정보기관의 작전이다. 세부사항은 더 가관이다. 내가 벤틀리를 타고 다닌다고 한다던가. 뭐 그런 조잡스러운 모함들.

 

가장 터무니없는 매도는 내가 천일기도로 봉은사에서 삼 년 동안 밖에 나가지 않았었는데, ‘신도들에게는 그렇게 안 나간다고 해놓고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서 몰래 밖에 나가서 술 먹고 어쩌고’ 이런 내용이 나온다. 봉은사에는 지하주차장이 없다.

 

 ; 지하주차장 존재 여부도 확인하지 않고 보고 문건을 썼다는 것인가? 봉은사가 무슨 호그와트도 아니고..

 

 ; 그 와중에 업무태만인 것이지. 하하하하. 뭐 보고는 하라고 하니까 억지로 뭘 쓰긴 해야겠고 지어내다 보니 그런 헛소리들이 나온 것으로 본다. 심지어 내 재산은 몇 백억이라더라.

 

 ; 그건 확실히 개소리인가 보다. 지금 돈이 없어서 항소를 못하고 있는 거 보니.

 

 ; 그러니까 말이다. 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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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때 당시에 사찰 당하고 있다는 낌새가 있었나?

 

 ; 나는 그런 쪽으로는 좀 둔감해다. 봉은사 신도중에 소위 보수 언론매체의 간부가 와서 하는 말이 혼자 다니지 말고, 혼자 산에도 가지 말고, 항상 옆에 누가 사람 있어야 된다고 말한 적은 있다.

 

한 번은 내가 강원도 대관령에 있었다. 누가 찾아와서 그 지역 경찰서장하고 밥을 사겠다고 하기에, 내가 여기 와 있는 것을 어떻게 알았느냐 물었다. 하는 말이, 몇몇 사람들에 대해서는 고속도로 톨 게이트 하이패스에 통과할 때 이동을 체크한다고 하더라.

 

사실 나는 사찰보다는 공작에 과녁이 맞춰져있었다. 봉은사에서 내쫓기 위한 공작. 그런 공작은 국정원 차원에서만 이루어진 게 아니었다. 국정원과 종단의 권력, 조계종의 총무원장하고 밀접하게 서로 연결돼 있었다. 그래서 내가 뭐 승적이 박탈되는 과정에 그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2010년 3월 31일에 작성한 명진 봉은사 주지 관련 각종 추문 확인 및 결과 및 평가 문건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종단 차원의 주지직 퇴출 유도와 함께 면밀한 동향 점검 및 보수언론을 통한 부조리 실태 부각 등 입체적인 압박 전개가 바람직하다. 영령에게 직영사찰 조기 집행은 물론 종의 의결 사항에 대한 항명을 들어 호법부를 통한 승적 박탈 등 징계 절차에 착수토록 주지.” 이게 나오는 거다.

 

 ; 2010년에 국정원이 종교인 사찰과 공작을 벌이고 있다는 것을 꿈이라도 생각해 보셨나?

 

 ; MB가 대통령 될 때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재밌는 사실이 있는데, 원세훈도 봉은사 신도였다. 원세훈 부인은 정말 열성적인 신도였고. 이명박 정권 초기에 원세훈이 행자부 장관으로 갈 때 ‘국정원으로 가야 하는 거 아니야?’라고 말한 적이 있다. ‘아, 스님 제가 무슨 국정원입니까?’고 기겁하던데. 거기다 대고 내가 ‘조만간 국정원으로 갈 거 같은데’라고 이야기했었다.

 

 ; 어떻게 알았나?

 

 ; MB라는 사람이 그렇잖나. 그 당시에 국정원 원장은 노무현 정권 끝물에 된 사람이라 분명 교체를 할 것이고, 틀림없이 원세훈이라고 생각했다. 최측근을 앉혀놓고 나라를 한바탕 쓰레기통으로 헤집어 놓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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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원세훈 원장 취임 이후 활약은 눈부셨다.

 

“종북좌파 세력들이 국회에 다수 진출하는 등 사회 전분야에서 활개치고 있는 데 대해 우리 모두는 부끄럽게 생각하고 반성해야 함(2012.6.15.)”

 

“좌파 교육감들이 주장하는 무상급식 문제(2010.7.19.)

 

와 같은 국정원장의 발언은 당시 국가 정보기관의 지향점이 어디에 있었는지 바로 알 수 있다. 당시 국정원은 북한-종북세력-야당 정치인-정권 비판세력을 하나의 묶음으로 취급했다.

 

병든 권력

 

 ; 문건이라는 실체가 쏟아져 나온 것 봤을 때는 무슨 생각이 들었나?

 

 ; 그 옛날 중정부터 안기부를 거쳐 국정원까지 내려오면서부터 민간인 사찰에 관련된 이야기들은 많이 있었다. 내가 받은 것은 대한민국 정보기관에서 민간인 사찰했다는 최초의 공식적인 기록이다. 그 역사적인 문건에는 흥신소 수준의 조잡함으로 가득 차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참담함을 느낀다. 종교인인 나에게 이 정도면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땠을까 싶다.

 

 ; 국정원이 대공수사권 이전도 하고 다시 태어나겠다는 선언을 했다. 믿음은 가나?

 

 ; 다른 권력기관과 마찬가지로 국정원이라는 조직은 오랫동안 기득권과 정보를 독점해왔다. 그렇게 쉽지 않을 것이다.

 

 ; 그래도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기도 했는데.

 

 ; 이전보다야 희망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경찰로 넘어간 대공수사권도 우려스럽긴 마찬가지다. 그들도 진급과 업무 성과가 중요한 권력기관이다. 억울한 사람에게 무언가를 뒤집어 씌울 수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안전장치는 부족하다.

 

정보기관의 기능과 역할에 대해 오래도록 연구한 한 학자는 민주 정부 28년 동안 부르짖어 왔던 국정원 개혁과 국정원의 병폐를 ‘루프스’에 비교했다

 

“‘루프스’라는 질병과 닮아있다. 꼭 필요한 기능이기에 제거하거나 포기할 수 없으나 이렇듯 탈이 나면 치명상을 입는다는 점이 그러하고, 워낙에 잘 알려지지 않은 특별한 경우라 다른 인력이나 방법으로 대체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도 그러하고, 처치를 하고 퇴원을 해봐도 재발하여 끊임없이 입‧퇴원을 반복해야 한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그러나 가장 큰 유사점은 ‘자가면역질환’이라는 점에 있다. 즉 외부로부터의 침입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시스템 스스로가 자꾸만 문제를 일으킨다는 점, 이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병균을 박멸하듯 대응할 수 없는 이유가 자신의 신체를 박멸할 수 없기 때문이듯, 국가정보원을 개혁한다는 것은 결국 국가 스스로가 자신의 운영체제에 칼을 대는 일이라 항상 쉽지가 않다

 

(오길영,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본 국가정보원 통제방안”, 민주법학 제66호, 민주주의법학연구회, 2018,03, 153면).

 

사찰의 추억2: 박재동 화백

 

박재동 화백은 지난해 11월부터 경기신문에서 다시 만평을 연재하고 있다. 박 화백은 최근에도 윤석열 총장의 목을 날리는 만평을 그려 조중동으로부터 십자포화를 받은 바 있다. 박 화백도 명진 스님과 함께 국정원에 사찰 문건을 요청해 받아냈다. 박 화백은 MB 정부 시절에 소위 잘나가지 못해, 국정원 사찰 및 공작의 피해를 덜 입은 편이라고 덤덤히 인터뷰를 시작했다.

 

 ; 국정원 문건 받은 게 몇 건 정도 되나?

 

박(박재동 화백 이하 '박') ; 많지 않다. 나는 그때 무슨 관직에 앉아 있거나 영향력 있는 자리에 있지 않았다. 나는 그 시절 그저 한 명의 시민이었다.

 

 ; 그렇다면 더욱 심각한 일 아닌가. 시민을 이유 없이 사찰했다는 게.

 

 ; (웃음) 하여튼 문건을 보면, 내가 EBS 세계테마기행인가 출연했는데 ‘출연했다. 그런데 별다른 위험성 있는 거는 아닌 거 같다’ 뭐 그렇게 돼 있다.

 

 ; 받았던 문건은 모두 이명박근혜 정권 때 문건이었나

 

박 ; 이거는 ‘박재동 화가 EBS 출연 동향’, ‘문화예술계 내 좌파 인물 탐색 현황 및 활동’. 자신의 세력에 뭐 내가 들어있다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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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동 화백이 국정원으로부터 받은 사찰 파일 문건

 

 ; 문건 분량과 사찰의 내용은 어떤가?

 

 ; 네 댓 페이지 정도다. 내 성향 같은 것을 평했는데, 평을 좋게 했다. 하하하하.

 

역행하는 권력

 

 ; 당시 사찰 당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나

 

 ; 그때는 다 사찰할 거라고 생각을 하고 살았다.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점이 이 부분이다. 이명박(정권)이 들어서서 광화문에 광우병 촛불시위가 열리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많은 시민들이 나왔다. 이명박은 중학교 아이들한테까지 벌금을 물렸다. 그 아이들의 교사한테도 탄압을 가했다. 역행하는 권력은 시민사회를 서서히 옥죄었다.

 

‘미네르바’라는 사건이 있었다. 익명의 작성자가 경제에 대한 통찰을 인터넷에 올린 것을 보고 검찰이 체포해갔다. 끔찍한 일이었다. 용산참사는 어떤가. 세상이 으스스 해지고 깜깜해지고, 변했다.

 

나 같은 경우는 그전에 나가던 TV, 방송들이 딱 끊겼다. 느낄 수가 있었다. 방송에서 나를 부르지 않는다는걸. 말하는 게 조심스럽고 눈치 보이는 분위기가 사회 전체를 덮고 있었다. 박근혜 정권 들어서는 더 극악스러워졌다. 당연히 느낄 수 있었다. 누군가 우리를 들여다보고 있다는 것을. 친구들이 모이면 모두 그 이야기를 했다.

 

 ; 사적인 모임에서?

 

 ; 우리 친구들은 주로 좀 진보적인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었고. 그래서 사찰의 흔적들이 주변에 많았다. 문화계에 먹구름이 좌악 깔려 온 것 같았다. 사는 데 특별히 불편이 없을 수 있는데, 어떤 새로운 일을 하려고 한다든가 할 때는 확실히 불편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라는 것이 작성될 즈음 그것은 더욱 선명해졌다. 문성근, 명계남 이런 사람들 완전히 사라졌다. 영화배우 김규리 씨는 광우병 때 뭐 한마디 이야기했다가 완전히 잘려 버렸잖나.

 

그때 내가 어느 방송에서 ‘지금 불편한 시대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때 앞에 있던 아나운서가 물었다. ‘화백님 그럼 이때 어떻게 해야 되죠?’라고. 내 대답은 이것이었다.

 

‘그렇지만 해야 되는 일이 있다. 그 일을 해야겠죠.’

 

그 뒤로 나도 방송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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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의 공기

 

 ; 근데 이전에 김대중, 노무현 10년의 민주 정권을 지나 자유와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자리 잡았다고 여긴 그때, 이런 권위주의 독재 시절 같은 사찰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나?

 

 ; 마음이 늘 어둡고 불안했다. 정부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직감적으로 느꼈다. 이명박 정부에 반대하는 사람들, 예를 들어서 봉은사 주지 하셨던 명진 스님 같은 경우, ‘좌파주지스님이다’ 뭐 이렇게 낙인찍히는 게 눈앞에서 벌어졌다.

 

명진 스님은 사찰 돈을 신도들한테 맡기고 ‘당신들 알아서 해라’하면서 하루에 천 배씩 계속 절을 올리던 분이다. 그런 분의 승적을 조계종 본부에서 박탈 시켰다. 당시에도 너무 이상한 일이었다. 명진 스님이 한 것이라곤, 열심히 부처님께 절을 올리는 것과 이명박 정권이 너무 싫어하는 말을 한 것밖에 없다. 뭔가 작용하지 않고서야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곽노현 전 교육감은 어떤가. 사문화된 법조문을 가지고 사람을 마지막 순간까지 기다리다가 기소를 해서, 억지로 교육감직에서 쫓아냈다. 황지우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김정은 문화 위원장, 김유지 박물관장 등 다 그랬다.

 

어느 날 곽노현 전 교육감이 모임 중에 우리의 사찰 파일을 요구하자고 제안했다. 명진 스님 사찰 파일이 가장 먼저 나왔는데, 내용을 보니 너무 기가 막혔다. 우리가 상상한 그대로였다. 설마 했는데 딱 그랬다. 국정원이 온갖 군데에 손을 써서 어떤 이들을 소위 좌파 인사로 분류시키고 잘라냈다.

 

 ; 화백님 어디 단체에 속해 있었나?

 

 ; 우리만화연대라는 만화가 단체다. 만화가들이 일본 만화를 답습하는 것을 지양하고 우리도 좀 줏대 있게 그려보자! 우리의 감각, 우리의 정서 그런 걸 살리자!라고 해서 모인 모임이다. 저들은 이걸 좌파로 본 것이다.

 

그리고 민족미술인협회와 서울 민예총에 속해있는 내가 이런 좌파단체의 교집합으로 본 것 같다. 그런데 당시 내가 무슨 큰 권력이 없었다. 내가 만약 당시 무슨 예술위원회 회장이라든가, 무슨 박물관 관장 같은 것을 했으면, 나를 뽑아내려고 온갖 짓을 했을 것이다. 다만, 방송 나오고 이러면 늘 체크가 되고, 바로 보고 됐다. 그러고 보면 한겨레신문에서 만평 그릴 때부터 안기부 내 담당자가 있긴 했었다.

 

 ; 국정원 사찰 문건 받고 심경이 어땠나?

 

 ; 너무 적어서 조금 서운하다고 할까. 하하하하하. 제일 웃기고 허탈한 것은 곽 전 교육감 같은 경우 선거자금 관련해서 나쁜 놈으로 만들려 한 것이다. 당시에도 수작을 부리고 있고 느꼈다. 돈 써서 피켓시위하고, 또 귀성객들한테 찌라시 뿌려서 ‘곽노현 이렇게 나쁜 놈이다’ 모함하고. 그때 ‘야, 저거 설마 국정원에서 하는 거 아니야’라고 했던 게, 까보니 정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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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이 된 엘리트

 

 ; 얼마 전에 국정원장, 법무부장관, 행안부장관 3개 부처 장관이 합동발표도 했다. 우리 국정원 다시 태어나야겠다. 믿음 가나?

 

 ; (국정원 사찰 문건 공개 건이) 법적으로 승소를 했고, 실제로 사찰 문건을 받았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지금도 약간 꼼수를 부리는 거 같다. 우리가 다 보여 달라 하면, 내 친구도 옛날에 너무 탄압받고 한 거 있어서 보여 달라 하니까 확실한 사건 뭐 이런 거를 분명하게 적어내라 했다고 한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그들이 행한 모든 불법의 전말이다. 근데 자기들은 그렇게 다 줄 수는 없다. 무슨 사건에 있는 걸 특정해 달라고 나온다. 그러나 주도권은 이미 우리한테 넘어왔다. 그래서 국정원의 어두운 그림자의 마지막을 끊어버리는 것, 곽노현 전 교육감이 이끈 ‘내놔라 내 파일’이 그 포문을 연 것이다. 그다음에는 우리가 갈 길은 검찰개혁이다.

 

 ; 말씀 나온 김에. 윤석열 총장의 목이 날아가는 만평 그리셔서 화제 되었다. 안 무서운가? 다시 살아온 윤 총장이 복수할까봐?

 

 ; 재미있지 않았나? 만평을 재미로 봐야지. 물론 윤석열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기분 나빴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만평은 그 정도 할 수 있다. 광화문에서 문재인의 목을 따라는 사람도 있는데. 앞으로는 좀 더 화끈한 걸 그리려고 하는데. 아직 목이 안 날아가서 내가 안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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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과 더불어 검찰은 또 다른 괴물이다. 우리는 그동안 엘리트들을 양성해서 괴물 집단을 만들어 냈다.

 

내가 얼마 전에 끔찍한 이야기도 들었다. 지금도 생각하면 너무 가슴 아프다. 옛날에 ‘즐거운 사라’ 때 마광수 교수 이야기다. 그때 검찰이 마 교수 윗입술을 손가락으로 잡아당기면서 ‘네가 교수야? 책 많이 읽었어?’ 이랬단다. 마 교수가 그런 끔찍한 치욕을 당해서, 그 분노가, 그 치욕이 뼛속 깊이 사무쳐서 살면서 계속 우울증 앓다가 결국 자살했다. 그게 검찰이다. 국정원이 남산 밑에서 했던 일을 검찰이 한 거다. 국정원과 검찰은 쌍둥이처럼 늘 그렇게 괴물로 커왔다. 오도된 엘리트들.

 

우리 사회에 뿌리내린 왜곡된 엘리트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된다. 지금 그 시기가 온 것이다. 국민이 키웠지만 국민을 짓밟고 공포스럽게 하는 권력을 우리 손으로 거둬야 한다.

 

자, 다음 타자는 곽노현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