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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03. 19. 금요일

 

체육불패 갱생청년

 

 

 

 

 

 

 

 

 

 

가장 맛 좋은 과일이나 과자는 맨 나중에 천천히 음미하면서 먹고 싶은 심리가 있다. 게다가 그 과일이 그 환상적인 맛에 비해서 타인들의 무관심으로 방치 상태에 있다면 그 과일을 혼자 몰래 먹는 맛은 황홀하기까지 하다.

 

 

 

 

 

'김지훈'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권투 선수는 아직 어떤 의미에서 복싱 인생의 반에 반도 도달하지 못한 미완성의 대기이지만 짧은 복싱 경력에도 불구하고 이야기 풀고 싶은 욕구가 강하게 드는 맛 좋은 과일 격인 선수다.

 

 

 

 

 

이 선수가 나중에, 피겨 스케이팅 불모지에서 자라나서 결국 세계 피겨 여왕으로 등극한 '김연아'만큼 유명세를 치룬다고 보장할 순 없지만, 오기를 부려서라도 '꼭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라고 말하고 밀어 주고 싶을 만큼 굉장히 매력적인 복서다.

 

 

 

 

 

지금도 서서히 언론에 노출되며 인지도를 높여가고 있지만 대중들의 입에서 쉽게 들먹여지는 전세계의 스타가 되기전에 숨겨진 맛 좋은 과일을 먼저 선점한 듯 착각(?)하며 부족하나마 글을 시작하도록 하겠다.

 

 

 

 

 

 

 

 

지금은 스물 세살의 김지훈이 처음 복싱 글러브를 낀건 16살 무렵이었다.

 

 

친구따라 호기심에 일산의 모 체육관을 찾았다가 김형렬 관장의 눈에 띄어 본격적으로 복싱을 시작하게 됐다고 한다.

 

 

 

 

 

몇개월 연습해서 아마추어를 거치지 않고 바로 프로 무대에 올랐는데 경력도 짧고 체계적인 체력관리가 지금보다 엄격하지 않았던 그 시절 설익은 김지훈은 2승 3패의 초라한 성적으로 링 커리어를 시작한다.

 

 

 

 

 

체중 관리 개념이 별로 없던 때라 연습 뒤 피자도 먹곤 했다고 한다.

 

 

멋 모르고 링에 올라서 전체적인 밸런스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공이 울리면 뒤도 생각 않고 주먹을 마구 휘두르면서 상대 선수를 다운을 시키다가도 나중에 힘이 딸려 역전 패 당하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요즘 아이 답지 않게 복싱만을 위해 진지하게 연습에만 임한, 체격 조건이 상대적으로 좋은 김지훈은 국내에서 서서히 두각을 나타냈다.

 

 

 

 

 

그 당시 유달리 공격적인 성향으로 인해 가드가 상대적으로 부실해서 몇 번 패하기도 했었지만 라이트 급이라는 경량 체급치고 ko율이 상당히 높았던 김지훈은 싹수가 보이는 선수였다.

 

 

 

 

 

연습할 때 땀을 흘린 만큼 링에서 결실로 맺어진다는 생각을 철저히 신봉한 이 볼케이노 ko펀처에게 제대로 된 기회만 주어진다면 뭔가 일을 낼 분위기가 서서히 무르 익었다.

 

 

 

 

 

하지만 국내 복싱계가 너무 침체기인 것이 문제였다.

 

 

 

 

 

국내에서 배출된 세계 챔피언마저 국내 복싱계의 침체 때문에 파이터 머니가 너무 헐값에 가까웠고 스폰서도 구하기 쉽지 않았다. 생활고를 들어 챔피언마저 복싱계를 떠나며, 언젠가부터 유행처럼 번진 K1 무대를 노크하고 있는 실정이었으니 링에서 눈두덩이 부어가면서 매를 맞아봤자 돌아오는 것도 없는 무명 선수들은 열악한 국내 복싱 환경에서 얼마나 춥고 배고플지는 안 봐도 비디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지훈을 키운 김형렬 단장은 김지훈에 대한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누구라도 상관없이 붙여만 주면 김지훈이 다 이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강했다.

 

 

 

 

 

일이 잘 풀릴려고 그랬는지 미국에서 직장을 다니며, 좋은 복서가 보이면 링에 세우는 일을 하는 사람에게 국내의 모 지인이 김지훈을 소개해줬다고 한다.

 

 

 

 

 

그 사람이 처음엔 김지훈이 설익었을 때의 경기를 비디오로 보고 실망을 한 나머지 소개해준 지인을 원망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나중에 전화 통화로 뭔가 강하게 믿는 구석이 있어 보이는 김형렬 관장의 확신에 찬 어조를 듣고 김지훈에게 미국에서의 경기를 주선해 주기로 했는데

 

 

일이 이렇게 저렇게 꼬이다가 라스베거스에서 경기를 결국 잡게 된다.

 

 

 

 

 

 

 

 

 

 

김형렬 관장과 김지훈
 

 

 

그런데 문제는 상대 선수였다.

 

 

코바 고골라제라는 그루지아 올림픽 대표 출신의 선수였는데, 원정 경험이 일천한 김지훈이 상대하긴 너무 레벨이 높은 선수였다.

 

 

 

 

 

올림픽 대표 출신이란 건 기본적으로 재능을 타고난 체육 우등생이라는 소리다.

 

 

4라운드를 숨가프게 달려야 하고 컴퓨터로 체점되는 올림픽 경기 특성상 강한 주먹을 가진 선수보다 경쾌하게 주먹을 부지런히 뻗으면서도 효과적으로 잘 맞추는 기본기 좋고 스피드가 뛰어난 테크니컬한 유형의 선수들이 많이 유리하다.

 

 

 

 

 

헤드기어를 착용하고 4회전을 뛰기 때문에 경량급에서는 큰 대자로 뻗어버리는

 

 

다운이 나올 확률이 낮아서 파괴력보다는 순발력이 더 높은 가치를 가진다.

 

 

 

 

 

코바 고골라제는 아마전적이 풍부한, 전형적인 올림픽 대표 유형의 선수였다.

 

 

그 풍부한 아마전적을 가지고 프로로 데뷔하면 잘 풀리면 세계 챔피언,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순조롭게 나아간다면, 항상 월드 상위 랭커에 머물면서 대권을 노릴만한 실력을 갖추는 수준은 된다.

 

 

 

 

 

고골라제는 게다가 까다로운 왼손잡이였다.

 

 

 

 

 

ko율이 높은 선수는 아니지만 챔피언들도 경기 하기를 기피 하는 까다로운 타입의 선수였다.

 

 

 

 

 

그런 코바 고골라제를 상대로 미국 원정 경험이 전무하고, 국내에서도 표면적으로 보기에 패가 많은 지저분한(?) 전적을 가진 김지훈이 라스베가스 링에 올라 경기를 해야 한다는 건 대단히 불행한 첫 출발에 해당됐다.

 

 

 

 

 

특히 라스베가스 원정 길은 아시아 선수들에게 험란하기만 하다. 내 기억으로 한국 복서 중에 누구라도 라스베가스 원정 길에 올라 시원한 승리를 거둔 기억이 없다.

 

 

 

 

 

원정 몇십 번째 패만 기록하고 있는 실정에서 스물 한살의 김지훈이 코바 고골라제를 만나 승리를 한다는 건 기적에 가까워 보였다.

 

 

 

 

 

김지훈의 원정 경기를 주선 해준 사람의 미국 지인들도 코바 고골라제는 절대 못 이긴다, 실수한 거다라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김형렬 단장과 김지훈은 승리에 대한 확신이 대단했다.

 

 

 

 

 

적은 파이터 머니를 받고 링에 오르는 처지라  미국 원정에 대한 경제적 비용을 최소화 하기 위해 경기가 열리기 얼마전에야 라스베가스에 도착한 이 한국인들은 시차 적응의 걱정도 잊은 체 마지막 연습을 가졌고 결국 링에 오르게 된다.

 

 

 

 

 

코바 고골라제는 챔피언에게 도전할 자격을 갖추는 결정전에서 비교적 잘 싸우다가 마지막에 아쉽게 ko패 하고 말았는데 그 후유증을 잊고 다시 출발하기 위해 몸 풀기 상대를 원했고, 그게 바로 김지훈인 듯 했다.

 

 

 

 

 

국내 언론들은 김지훈의 라스베가스 데뷔 경기에 별 관심도 없는 듯 보였고 이길거라고 예상한 사람도 아주 드물었을 것이다.

 

 

 

 

 

어쨌든 한국의 한 헝거리 복서가 라스베가스 링에서 그루지아의 엘리트 복서와

 

 

마주쳤다.

 

 

 

 

 

공이 울리자 기선 제압을 위해서 용수철처럼 튀어나간 김지훈이 곧바로 주먹을 휘둘렀지만 노련한 고골라제가 야생마를 길들이려는 듯 클린치를 해버린다.

 

 

첫 원정 길이라 다소 긴장한 김지훈이 팔을 껴안고 빼주지 않는 고골라제의 뒤통수를 때리다가 주심으로부터 주의를 받는다.

 

 

 

 

 

그 후 폼이 큰 김지훈의 주먹은 빗나가고 산전수전 다 겪은 테크니션인 고골라제의 주먹은 김지훈에게 정타로 먹힌다.

 

 

 

 

 

원래 약간 아웃복싱을 하는 고골라제가, 디펜스가 상대적으로 부실해서 고스란히 자신의 주먹을 맞으면서 휘청거리는 김지훈이 만만해 보였는지 확실히 초반에 ko로 끝내버려야 겠다는 생각으로 강공으로 밀어붙여버린다.

 

 

 

 

 

김지훈은 맞고 휘청거리면서도 정신적으로는 주눅들지 않았는지 어린선수 답지 않게 묘하게 중심을 잡고 기회를 엿본다. 고골라제는 자신의 주먹이 잘 먹힌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시간이 조금 지나자, 디펜스는 신경쓰지 않고 김지훈의 머리 한쪽을 자신의 손으로 고정시킨 체 반대편 주먹으로 김지훈의 머리를 난타한다.

 

 

 

 

 

역시 실력 차이를 노출하며 김지훈이 금방 무너지고 마는가 하는 생각이 들던 찰라 고골라제가 링 바닥으로 갑자기 고꾸라 진다. 고골라제가 제대로 한방 먹은 것 같은데 어떤 주먹에 당했는지 너무 빨라서 확인이 안 된다.

 

 

 

 

 

초장에 경기를 끝내려고 작심했던 고골라제는 김지훈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하고 겨우 일어나지만, 심판이 카운터 뒤에 싸울 의사를 묻자 충격에서 회복하지 못했는지 고개를 끄덕이지도 못하고 멍하다.

 

 

 

 

 

심판이 고골라제에게 기회를 주려는 듯 경기를 다시 속행시키지만 김지훈의 강편지에 예상치 못한 일격을 당해 데미지를 생각보다 크게 입은 고골라제는 맹수같은 김지훈의 큰 주먹을 다시 흡수하며 링 줄에 걸려 있다 뒤통수를 손으로 쥐고 바닥에 무너진다.

 

 

 

 

 

김지훈의 통쾌한 승리였다.

 

 

 

 

 

 

 

김지훈의 짧은 왼손 훅에 걸려 넘어지는 고골라제. "여기가 라스베가스냐, 홍콩이냐?"

 

 

 

 

 

김지훈 1R KO승 코바 고골라제 (슈퍼 페더급)  2008년 5월16일 미국 라스베가스

 

 

 

 

 

 

 

 

 

 

슬로우 비디오를 보니 고골라제의 소나기 주먹을 고스란히 흡수하면서도 그 주먹 사이를 뚫고 공격하려는 찰라를 엿보던 김지훈의 강력한 왼손 훅에 역시 끝장 낼려고 달려들던 고골라제가 완전히 걸려 넘어져버렸다.

 

 

 

 

 

미국 현지 해설자들도 놀라운지 감탄사를 연발했고, 김지훈이 겨우 스물 한살이라 앞으로 무지 기대된다는 말을 했다.

 

 

 

 

 

한국에서 급조해서 날아와서 시차 적응도 되지 않는 엉성한 복서를 간단히 셧 아웃 시키고 앞으로 나아가려 했던 35세의 코바 고골라제 입장에선 모든 계획이 틀어져버린 재앙 같은 경기였을 것이다.

 

 

 

 

 

반면에 비록 다섯 번의 패배가 눈에 걸렸지만 13승 중에 열번의 ko승을 가지고 있어서, 경량급 치고는 대단히 강한 주먹을 가졌던 김지훈에게는 자신의 공격 지향적인 익사이팅한 복싱을 무덤같은 원정 길 초반에 폭발시킴으로서 원정 첫 매듭을 대단히 인상적이고 성공적으로 풀어버렸다.

 

 

 

 

 

2008년 5월 16일에 라스베가스에서 열린 김지훈의 이 시합은 ESPN 방송을 타고 미국 전역에 생중계 될 정도로 대단히 중요한 시합이었지만 한국 언론들은 생각보다 크게 다루지 않았다.

 

 

 

 

 

한국 선수의 라스베거스 승전보는 유례를 찾아 보기 힘들지만 김지훈이 세계 챔피언을 원정 길에서 격침시킨 것도 아니어서 국내에서는 이미 남자 복싱에 대해서 사양 길을 넘어 관에 못질까지 한 상태로 여겼는지 반응은 비교적 냉담했다.

 

 

 

 

 

권투도 역시 비지니스다. 미국 입장에선 공격 지향적인 김지훈이 TV 전파를 타면 센세이션을 일으킬 타입의 선수라는 것을 얼핏 느꼈겠지만 한국의 무관심과 관중 동원 능력의 의구심으로 인해서 코바 고골라제를 꺽은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여러가지 사정상 예상 외로 다음 경기가 쉽게 잡히지 않았다.

 

 

 

 

 

라이트급의 강타자들도 김지훈과의 시합은 달가워하지 않는 편이었다.

 

 

까다로운 코바 고골라제를 1라운드에 Ko로 보내버린, 한국에서 온 미지의 강타자와 상대해 봤자, 한국 측에서 흥행이 보장도 안 될뿐더라, 혹 지저분한 성적을 가진 김지훈에게 져버렸을 때, 돈도 못 벌고 이미지 타격까지 입는 이중고가 내심 캥겨서 경기에 적극적인 선수는 드물었다고 한다.

 

 

 

 

 

김지훈측에서도 애가 탔다. 굉장히 강렬한 임팩트를 원정 길에서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좋은 선수와의 경기 일정은 생각보다 쉽게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코바 고골라제를 무찌르고 다음 기약 없이 국내로 돌아온 김지훈과 김형렬 관장은 땀을 뻘뻘 흘리며 계속 강행군에 돌입했다.

 

 

 

 

 

이미 요즘 신세대 분위기에서 전사의 눈빛으로 변한 김지훈은 아무나 붙여주면 국내에서든 원정에서든 무조건 작살 내겠다는 기세로 복싱 연습에 사활을 걸고 있었다.

 

 

 

 

 

 

 

 

한동안 시간이 흐르고 또다시, 처음에 김지훈측에게 원정 경기를 주선해줬던,

 

 

미국 현지에서 사는 이현석씨가 다음 경기를 잡았다. 미국 택사스에서, 승률 오십프로가 겨우 넘지만 맷집이 좋아서 Ko를 잘 당하지 않는 길버트 살리나스라는 택사스 노장 로컬 복서와 일정이 잡혔다. 코바 고골라제에 비한다면 김지훈 입장에서는 비교적 손쉬운 상대였지만 TV 중계가 없이 원정 길에서 또 다시 경기를 치룬다는 점이 아쉬웠다.

 

 

 

 

 

이름값 없는 선수와 원정길에서 마주 치자니 파이터 머니는 완전 헐값이다.

 

 

갔다 왔다 하는 경비와 머무는 기간을 최소화 해야 해서 경기를 치루기 불과 며칠전 택사스에 도착해서 급조된 환경에서 불편하게 연습을 하다가 시차 적응도 안 된 상태로 링에 오르는 것은 국내에서 편하게 경기를 하는 경우와는 많이 다르다.

 

 

 

 

 

게다가 원정 길에서 컨디션마저 저하 되고 그게 경기 당일까지 회복할 기세가

 

 

보이지 않는 경우는 링에서 제 기량을 발휘 하지도 못하고, 그 경기가 그 선수의 본 실력으로 이미지화 되면 그저 그런 복서로 낙인 찍혀서 다음부터는 원정길에 오를 기회마저 주어지지 않고 권투 경력을 시시하게 접어야 할 운명에 처하기도 한다.

 

 

 

 

 

길버트 살리나스라는 비교적 손 쉬운 경기 상대가 잡혔지만 그것 빼고는 김지훈의 여러 조건은 최악이었다. 무엇보다도 컨디션이 무지 안 좋았다.

 

 

 

 

 

경기 당일 날에도 컨디션 조절이 안 되서 화장실을 들락거리면서 겨우 링에 올랐지만 평소의 김지훈이 아니었다. 비교적 손 쉽게 잡을 수 있는 상대와 엎치락 뒷치락 김빠진 경기를 하다가 겨우 마지막 8회에 다운으로 경기를 마무리 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김지훈 경기 치고 비교적 졸전인 이 경기가 미국에서 조차

 

 

TV로 중계되진 않았지만 해설을 맡은, 역대 미들급 최강의 복서 중 한명인 버나드 홉킨스와, 나중에 라이벌이 될지도 모르는, 강력한 멕시칸, 후안 마뉴엘 마르케스가 지켜 본 경기에서 김지훈이 강렬한 임팩트를 보여 주지 못한 점은 많이 아쉬웠다.

 

 

 

 

 

물론 이 경기 승리 이후에도 국내에서의 김지훈의 인지도는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다. 또 한동안 시간이 흘렀지만 원정 경기는 쉽게 잡히지 않았다. 김지훈은 여전히 일산의 모 체육관에서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훈련에 매진하고 있었다.

 

 

 

 

 

언제 잡힐 지도 모르는 해외 원정 경기만 바라볼 수는 없고, 그동안 연습한 게 아까워서라도 국내에서 열리는 코리안콘덴더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예전의 신인왕전은 장래 챔프감을 미리 볼 수 있다는 의미의, 말 그대로 그 해 싹수가 가장 좋은 선수의 결전장이었다. 그러나 언제인가부터 권투가 사장 길에 접어 들어서 신인왕전의 명성이 예전만 못하고 신인왕전에서 우승 해서 세계 챔피언이 된다는 꿈을 꾸기 보다는, 나이 40넘은 회사 오너가,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기 위해 해병대 극기 훈련을 받는 일반인들처럼 신인왕전에 출전해서 패기가 예전만 못한 어린 선수를 물리치고 정상에 오르기도 하는, 자기 개발용으로 출전하는 식의 대회로 성격이 바뀌어버린 면이 크다.

 

 

 

 

 

이제 더 이상 신인왕전은 미래 챔프감을 미리 확인하는 권위있는 대회가 아닌 듯 보였다.

 

 

 

 

 

코리안콘덴더라는 대회는 이미 사장되어버린 국내 복싱 환경을 어떻게든 살려보기 위해서 미국의 화제가 되고 있는, 계속 싸워 이겨서 결승전으로 나아가는 모 프로그램을 모방하는 차원에서 시작된 대회인 듯 했다.

 

 

 

 

 

타고난 하드펀치와 해외 원정 경험까지 더해져 김지훈은 무난히 우승했다.

 

 

 

 

 

김지훈의 5패도 경험이 일천한 초기 시절 기록이지 언젠가부터 국내에서는

 

 

김지훈의 강펀치와 스테미너를 견뎌 낼 상대가 거의 없었다.

 

 

 

 

 

그렇게 볼 때 김지훈의 몇년간의 연승 기록과, 그 연승 기록 중에 80프로 정도의 KO승을 거뒀다는 건, 해외의 손에 꼽을만한 연승기록 유망주와 비교해서도 손색이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유망주가 한국의 낙후된 복싱 환경 때문에 경기 일정도 잘 잡히지 않고,

 

 

겨우 잡힌 경기가, 조건 따질 형편이 안되는 김지훈 측이 보기에 너무 불리한 조건에서 치뤄줘야 하는 난점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 사람에겐 또 기회는 오는 법인가 보다.

 

 

 

 

 

이현석씨와 김형렬 관장이 백방으로 노력한 결과 이현식씨가 관련된 프로모션측과 자매 격인 남아공 프로모션에서 IBO 타이틀을 걸고 경기할 생각이 있는지 의사를 타진해 왔다고 한다.

 

 

 

 

 

이것 저것 가릴 처지가 안 되는 김지훈 측에선 당연히 반색하고 남아공 원정도

 

 

마다하지 않았다. 다만 여러가지 조건상 김지훈측이 절대 불리했다. 라이트 급에서 활동하기에도 김지훈은 작은 선수가 아니었다. 게다가 팔마저 엄청 긴 편에 속했다.

 

 

 

 

 

자기보다 작은 선수와 주로 싸울 수 있는 잇점은 분명히 있지만 당연히 상대적으로 큰 덩치 때문에 감량에 더 애를 먹을 수밖에 없다.

 

 

 

 

 

근데 남아공 프로모션에서 제안한 타이틀 전은 김지훈이 평소 뛰던 체급인 라이트 급보다 아래 체급인 주니어 라이트 급이었다. 안그래도 감량하기 쉽지 않은데, 김지훈은 평소보다 살을 단기간에 더 많이 빼야 할 처지에 놓였다. 열악한 국내 복싱 환경상 원정 경기는 머니가 따라주지 않으면 성사되기 쉽지 않고 어떻게 운 좋아 따낸다 해도 여러가지 불리한 조건을 감수하며 싸워야 한다.

 

 

 

 

 

김지훈과 IBO 타이틀을 놓고 싸울 졸라니 마랄리라는 남아공 흑인 선수가 김지훈을 택한 배경은 개인적으로 이렇다. 라이트 급에서 위력을 발휘하는 김지훈을 주니어 라이트급으로 내려서 승부한다면, 김지훈이 단기간에 살을 빼야 하는 부담과, 무리한 감량고 때문에 김지훈 특유의 하드펀치의 위력이 반감될 것이고, 원래 날카로운 잽을 잘 던지고 잔 기술에 능한 마랄리가, 그런 하드펀치의 위력이 반감한데다 디펜스마저 취악한 김지훈을 야금 야금 가지고 놀다가 손 쉽게 승리를 챙긴다는 공식을 머리 속에 그렸을지 모르겠다.

 

 

 

 

 

게다가 남아공은 한국에서 비행기로 17시간씩 걸린다. 2주가 지나야 시차를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을 텐데, 경제적 여력과 오래부터 체중 조절을 할 여력이 없는 김지훈을 급히 불러다가 진이 빠진 선수를 요리한다는 작전은 김지훈 쪽에선 얄밉지만 챔피언을 유지할려는 입장에선 전술적으로 매우 유리할 것이다.

 

 

 

 

 

어쨌든 김지훈측에선 모든 불리한 점을 다 알지만 타이틀이 걸린 원정 경기 기회는 아주 흔치 않으니까 무조건 Yes를 외치고 원정행 비행기에 오른다.

 

 

 

 

 

세계 타이틀 경기를 위해 한 석달 전부터 체계적으로 훈련하면서 살을 빼면 비교적 정상적인 컨디션으로 링에 오를 수 있지만 갑자기 급하게 경기 일정이 잡히면 무리수를 둬가면서 살을 빼야 하는데 그럴 경우 링에서 맞으면 쉽게 회복되지 않고 데미지가 금새 축척된다. 라운드가 지날 수록 힘들어 지고 그렇게 지친 선수는 원정 응원단들의 극성스런 응원소리에 공포를 느끼면서 원정 경기에서 링바닥에 입맞춤 할 확률이 높다.

 

 

 

 

 

김지훈이 좀 더 여유가 있었더라면 운동의 강도를 정석으로 높이면서 몸에 붙은 지방을 자연스럽게 빼면서 컨디션은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겠지만, 촉박한 경기 일정으로 지방뿐만 아니라, 앙상하게 뼈만 남은 상태에서 음식은 거의 섭취하지

 

 

못하고 몸에 수분까지 빼가면서 훈련을 한 것 같다.

 

 

 

 

 

나중엔 물까지 거의 마시지 못하고 지정된 시간의 계체량을 통과하기 위해 훈련에 돌입했다고 한다.

 

 

 

 

 

덩치가 작지 않은 선수가 체중을 무리하게 늘렸다 줄였다 하는 것은 장기적 관점에 해당 선수에게 결코 좋지 않지만 김지훈은 한 번 잡은 기회를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초인적인 노력으로 훈련하며 극복해 가고 있었다.

 

 

 

 

 

김지훈의 하드펀치도 결코 타고 난게 아니라, 그가 펀치를 내밀 때 혼을 실어 힘들게 치는 버릇이 고강도의 연습으로 완성된 만들어진 작품이었다. 어쨌든 불리한 여건 속에서도 경기 날짜는 다가왔다.

 

 

 

 

 

경기 당일날, 계약 체중에 약간 오버한 나머지 오줌 한방울까지 쥐어짜는 노력을 하면서 겨우 남아공 현지에서 IBO 타이틀을 걸고 마랄리와 격돌한다.

 

 

 

 

 

IBO가 WBA나 WBC같은 메이저 기구는 아니지만 나름 권위를 인정 받는 마이너 기구이고, 이 기구의 챔피언을 거쳤다가 나중에 메이저 기구 챔피언을 먹은 선수들도 있는 걸로 보아 생각보다 나쁘지 않는 타이틀이 걸린 경기였다.

 

 

 

 

 

하지만 명색이 세계 타이틀 전인데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중계 방송을 외면했다. 남아공측에서만 중계를 한 이 경기를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는 아쉽지만 아직까지 없다.

 

 

 

 

 

다만 들리는 풍문에 의해서 경기 내용을 기술하자면, 모션 큰 주먹을 날리는 김지훈이 6회까지 마랄리의 정밀하고 다양한 테크닉에 휘말려 앞선 라운드가 한 라운드도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김지훈의 혹독한 훈련량을 신은 외면하고 싶지 않았는지 7회부터 김지훈의 주먹이 마랄리에게 먹히기 시작해서 마랄리가 코피를 흘렸고, 8회전에는 한 라운드 진 마랄리가 골이 났는지 나름 반격에 성공했지만 9회에 김지훈의 에너지를 감당하기 벅찬 마랄리가 김지훈의 주먹을 맞고 다운 됐다. 다시 일어나긴 했지만 이미 다리와 눈동자가 풀려서 레프리가 경기를 중지 시켰다.

 

 

 

 

 

 

 

9회 결국 다운이 된 마랄리. "아파, 마이 아파~"

 

 

  


김지훈의 기적같은 9회 TKO승이었다.


 


가만 생각해 보니 남아공은, 몇십년전 홍수환이 우리나라 최초로 해외 원정경기에서 챔피언을 획득했던 곳이 아닌가.


 


물론 그 시절엔 WBA, WBC 두개의 메이저 타이틀 밖에 없어서 챔피언의 가치가


지금보다 많이 높았고, 세계 타이틀 전이 열리는 날엔 거리가 한산 했을 정도로


복싱이 인기가 많았다지만, 그 당시 흑백 TV와는 비교할 수도 없이 멀티미디어가 발달한 지금 한국에서 비록 마이너 기구 타이틀 전이지만 공중파에서 중계조차 해주지 않는 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권투가 축구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대중적인 스포츠임을 감안할 때, 축구로 치면 프랑스 르샹피오나에서 득점왕을 먹은 정도의 선수를 국내에서는 철저히 무명 취급하고 중계도 해주지도 않는 격이다.


 


한국이 유럽 복싱 시장만큼의 열기만 있었어도 김지훈은 축구의 박주영 정도의 대접은 충분히 받을만한 능력을 갖춘 선수다.


 


하지만 누굴 탓하리. 돈 되는 시장에 올인 해버리는 낙후된 한국에서 사양길에 접어든 복싱을 택한 게 죄라면 죄겠지.


 


국내에서도 미약하나마 김지훈의 남아공 승전보 소식은 언론 매체로부터 전해졌고, 네이버에서 김지훈이라고 치면 탤런트 김지훈을 제치고 복서 김지훈의 사진이 최초로 먼저 크게 떴다 ㅋ (지금 쳐보면 탤런트 김지훈이 또 먼저 뜬다 ㅋ)


 


하지만 통 큰 김지훈은 요즘 인터뷰에서도 인터뷰어의 "팬들에게 한 마디 해주세요"라는 말에 웃으며 "저한테도 팬이 있나요?^^" 라고 반문하는 여유를 가지며


인기에 연연해 하지 않는 것 같다.


 


이 악바리 친구는 IBO 챔피언 타이틀 쯤은 자신의 거대한 청사진을 위해 거쳐가는 작은 단계라고 느끼는지 정신적으로 해이해지지 않고 오늘도 훈련 강도를 오히려 늘려가며 라이트 급의 절대 강자가 되기 위해 굵은 땀을 흘리고 있다.


 


얼마전에는 거대한 청사진이 있는 친구답게 IBO 타이틀을 자진 반납했다. 한마디로 현재의 위치에 안주하지 않고 더 큰 꿈을 위해 달려가겠다는 의사의 표시인데, 그 결정 이후로도 미국 원정 길을 마다 않을 태세고, 월드 랭커와의 일전을 고대하며 항상 훈련에 열심이다.


 


IBO 챔피언 이름값이 먹혔는지 이제 미국에서도 김지훈에게 떡밥을 던지는 선수가 많아져서 처음 미국 원정에 비하면 경기 잡는 일이 한결 여유가 있어진 느낌이다.


 


IBO 챔피언 타이틀을 반납하고 김지훈과 마주친 복서는 타이론 해리스라는 흑인 선수다.


 



이렇게 생긴 넘이 타이론 해리스다.


 

 

 



 

코바 고골라제와 마찬가지로 아마추어 경력이 화려하고 전미 아마추어 골든글러브 대회때 페더급을 석권한 경력도 있는 복서다.

 

 

 

프로에 와서도 해리스는 아마추어 명성 그대로 연전연승을 거둬 2005년 말까지 14전 전승(12 KO)을 거두었으며, 12 번의 KO승 중 1회 KO승만 해도 무려 일곱 번이나 됐다.

 

 

 

하지만 그 이후 강력한 월드 랭커와의 경기에서 다섯 번을 지면서 내림세에 있다가 2009년 7월 멕시코의 강타자 마빈 킨테로(16승 13 KO 1패)에게 8회 역전 KO승을 거두면서 다시 월드 랭커로의 도약을 꿈꾸고 있는 시점에서 김지훈과 마주쳤다.

 

 

 

코바 고골라제와 달리 흑인 특유의 파워까지 겸비한 타이론 해리스는 김지훈과 맞불을 놨을 시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느꼈던 모양이다.

 

 

 

코바 고골라제가 김지훈을 너무 얕본 나머지 방심하다가 스스로 자멸한 걸로 보고 자신은 사전에 철저히 준비해서, 운빨이 작용한 한국 복서를 자신의 화려한 아마 경력과 강력한 주먹으로 응징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 선수도 체중 문제로 김지훈을 약간 골탕 먹인 뒤 올해 초 캘리포니아에서 김지훈과 마주쳤다.

 

 

 

국내에서는 IBO 챔피언인 김지훈을 그동안 너무 홀대했다고 느꼈는지 KBSN에서 변정일 해설자를 내세워 이 경기를 위성 중계했다.

 

 

 

가드가 좋고 주먹이 제법 무서운 타이론 해리스는 시차 적응이 아직 안 되어 있는 김지훈과 1라운드부터 용수철처럼 튀어 나오며 맞불을 놓았다. 왼손 잡이인데다 가드까지 견고한 해리스는 강약 조절이 상당히 뛰어난 선수였다.

 

 

 

가드 견고한, 방심하지 않는 제대로 된 월드 클래스 수준의 왼손잡이 강타자를 만나보지 못한 김지훈으로서는 경기 초반에 해법을 찾기기 힘들어 보였다.

 

 

 

아직 몸이 덜 풀린 듯 자기 리듬을 못 찾고 있었고, 주먹은 많이 뻗지만 제대로 맞추는 주먹이 적었다. 해리스는 김지훈에 비해서 잘 막고 잘 때렸다. 김지훈의 모션 큰 주먹을 흘려버리거나 가드로 잘 막으면서도 김지훈의 머리가 뒤로 젖혀질 정도로 좋은 주먹을 적재 적소에 잘 꼽았다. 가드가 견고하고 강타에 능한 제대로 된 흑인 복서의 위력을 실감하게 된 경기였다.

 

 

 

2회까지 보고 나니 김지훈이 머리까지 크게 젖혀지도록 맞으면서도 다운이 되지 않은 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력차도 생각보다 크게 나 보여서, 방심하지 않는 제대로 된 흑인 선수를 만나면 김지훈의 한계는 여기고 메이저 기구 월드 챔피언의 길은 참으로 어렵겠구나  하는 생각을 잠시 했었다.

 

 

 

하지만 3회부터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비록 더운 캘리포니아지만 저녁무렵엔 제법 쌀쌀한 편인데 야외 대기실에서 연습하다가 중지하면 금새 오한을 느낀 김지훈이 3회부터 몸이 풀렸는지 자기 리듬을 찾기 시작하며 공격에 피치를 올리고 있었다.

 

 

 

반면에 타이론 해리스는 3회에 처음으로 힘에 부치는지 클린치를 시도했다. 어쩌면 시간이 흐를수록 김지훈의 부지런 하면서도 파워가 실린 주먹과 체력이 빛을 발해서 강타엔 능하지만 연타 능력이 떨어지는 타이론 해리스를 점차 압박해서 역전승을 거둘 수 있을거라는 희망이 피어 올랐다.

 

 

 

4회에는 김지훈의 주먹이 기어를 한층 더 올린 듯 더 바빠졌으며, 타이론 해리스는 가드하기에 급급해 하면서도 오랜 경력으로 다져진 실력은 여전히 녹슬지 않았는지 가끔 김지훈의 목이 뒤로 젖혀질만한 좋은 펀치를 적중시켰다.

 

 

 

그런 펀치를 맞고 휘청거리면서도 금새 회복해서 여전히 가드 위나 안이나 가리지 않고 날리는 김지훈의 스테미너가 가득한 부지런한 주먹 놀림은 놀라웠다.

 

 

 

5회에 기어코 힘에 부친 타이론 해리스가 크게 강한 주먹을 맞지도 않아보이는데도 불구하고 체력이 고갈되고 데미지가 누적된 나머지 링 바닥에 푹 쓰러지고 만다. 다시 일어나지만, 이미 얼굴 위는 핏자국이 크게 퍼져 있다.

 

 

 

김지훈의 폭포수같은 에너지가 넘치는 주먹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듯 타이론 해리스를 있는 힘 없는 힘 다해 몰아붙여 TKO 승을 거둔다.

 

 

 

사실 이 경기가 있기 전에 타이론 해리스의 경기를 본 적이 있다.

 

 

 

2009년 7월 멕시코의 강타자 마빈 킨테로(16승 13 KO 1패)에게 8회 역전 KO승을 거둔 경기였는데 타이론 해리스가 때릴 때 나는 소리가 얼마나 묵직하게 들리던지, 과연 김지훈이 저런 묵직한 흑인 복서의 주먹을 견딜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살짝 들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타이론 해리스가 묵직한 주먹에 비해서 급박하게 난타전을 벌일 수 있는 에너지는 조금 부족해 보였다. 때릴 기회를 보는 시간을 비교적 많이 가지다가 상대방 빈틈이 보이면 단타 주먹을 날리고, 맞고 있는 상대가 다시 공세로 돌아서면 재빨리 가드하면서 방어하는 주고 받기식 경기를 비교적 느린 템포로 진행하면서 매라운드를 비교적 잘 버텼다.

 

 

 

이번 김지훈의 승리는 경기 템포를 무지 빨리 가져간 김지훈의 체력의 힘이 컸다. 일반적으로 10회전까지 움직인 선수의 열량을 김지훈은 5회 정도에서 다 쏟아부을 정도로 매회 주먹을 거세고 부지런히 날렸다.

 

 

 

초반엔 왼손 잡이인데가 가드까지 견고한 타이론 해리스가 잘 견제했지만 결국 김지훈의 강도높은 훈련량에 기반한 스테미너와 무거운 주먹에 타이론 해리스는 5회에 에너지가 고갈되어 무너진 것이다. 사실 주먹의 강약 조절이나 한 발의 파괴력은 타이론 해리스가 약간 우위였었지만 결국 폭풍처럼 매회 몰아치는 김지훈의 밀도 있는 연타 능력에 타이론 해리스는 무너졌다. 라운드당 백 여발의 펀치를 내면서도 힘과 역동성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김지훈 같은 복서는정말 흔치 않다.

 

 

 

올해 설날 전날에 캘리포니아에서 일구어진 김지훈의 통쾌한 승리는 밴쿠버 동계 올림픽 금메달 소식만큼이나 반가웠다.

 

 

 

초반엔 항상 잘 싸우다가 후반엔 체력이 딸려 고전하다 패하던 한국 복서는 많았다. 예전에 영양 부족을 정신력으로 메우던 한국의 헝거리 복서들 대부분이 그런 유형에 속했다.

 

 

 

그런 의미에서 스킬의 상대적 부족함을, 흑인을 압도하는 활화산 같은 에너지로 극복하며 후반 역전으로 이끄는 김지훈같은 세기가 넘치는 복서가 한국에서 나왔다는 건정말 반길 일이다.

 

 

 

한국적인 복서의 고질적인 문제점을 극복한 호방한 슬러거형 복서의 출현이 복싱의 열기가 한물 갔다는 이유로 묻히긴 너무 아쉬운 게 사실이다.

 

 

 

과거 한국 복서들이 라스베거스 원정만 가면 주눅이 들어서 자기 실력의 반도 발휘 하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당하다가 결국 패하고 마는 사례가 수차래였고,

 

결국 그점이 미국 원정 세계 타이틀전에서 몇십연패를 하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까다로운 왼손잡이만을 상대로도 전혀 기죽지 않고, 라스베거스든 남아공이든 날아가서, 불리한 여건을 극복하고 밋밋한 판정이 아니라 상대 선수를 압도적으로 쥐어 패주다가 당당히 ko로 이기고 돌아 오는 김지훈의 존재는 대단히 소중하다 하겠다.

 

 

 

외국에서 큰 대회가 열리면, 문전으로 공을 몰고 가다가 울렁증이 생겨서 우물쭈물 하다 골 넣을 기회를 허무하게 날려버리는 대한민국 축구 전통이 요즘 어린 신세대들에게서 서서히 단절되고 있는 것 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축기 조기 유학 열풍으로 어릴 때부터 외국의 좋은 환경에서 기술을 닦은 그 친구들에겐

 

문전에서 얼지 않는 당당함이 있어 보인다.

 

 

 

대한민국 권투판도 서서히 변하는 축구판과 마찬가지로, 이기기 쉬운 상대만을 애써 고르지 않고 언 놈과 붙어도 자신있다라고 외치는 김지훈같이 당당한 복서를 수확했다.

 

 

 

온실 속의 화초처럼 국내에서만 승수를 쌓지 않고 원정을 가서도 당당히 잘 싸운 김지훈은 초기의 5패는 이미 먼 일이 되었고 벌써 12연승에 10 연속 ko승을 기록 중이다. 2006년 이후부터는 한 번도 패하지 않은 것이다.

 

 

 

80년대 대한민국에서 많은 챔피언이 나왔지만 국내나 일본, 혹은 동남아 원정 수준으로 반 챔피언 행세를 한 선수는 많았어도 라스베거스링에서 주로 싸우면서 달러 베이비가 되어서 전세계 복싱팬을 흥분시킨 글로벌형 선수는 엄밀하게 말해 드물었다.

 

 

 

그런 의미에서 김지훈은, 과거 꿈으로만 그리던 맨유에서 실제 뛰고 있는 박지성같은 존재가 될 충분한 가능성이 엿보이는 선수라 하겠다.

 

 

 

하지만 김지훈이 소중한 만큼 메이저 기구 세계 챔피언이 되기 위해선 보완점도 확실히 보인다.

 

 

 

일산 체육관에서 하루 종일 연습에 매진하는 것은 알지만, 김지훈이 링에서 상대 선수보다 체력과 연타능력은 앞서지만 정타를 아주 잘 맞추는 건 아닌 이유는 있어 보인다. 그 이유가 내가 보기엔 평소에 익숙지 않는 왼손잡이 선수를 만난 생경함에서 기인하기도 하지만, 국내서 변변한 스파링 파트너나 전략가 없이 일산의 모 체육관에서 사람이 아닌 센드백만 치면서 혼자 연습한 선수의 태생적인 한계처럼 보여진다.

 

 

 

나이가 들어서도 가드 허술하게 하고 감각적인 센스 없이 평면적으로 매회 체력을 바탕으로 한 일률적인 공격만 하면서 선수 생활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좀 더 효과적으로 방어하고, 정중동을 갖춘 예술성이 가미된 복싱을 할려면 꼬진 도장에서 평면적이고 획일적인 연습만 할 것이 아니라 미국에 제대로 자리를 잡고 제대로 된 전략가나 매니저를 섭외해서 좀 더 과학적인 시스템적으로 움직이는 일이 필요할 듯 하다.

 

 

 

매니 파퀴아오도 필리핀 안에서만 놀던 시절엔 부실한 점이 많아서 Ko패도 당하고 했지만 프레디 로치라는 명 트레이너를 만나 약점을 철저히 보강해서 미국 시장에서 최고가 될 수 있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김지훈도 라이트 급에서 명실 상부한 세계 최고 선수가 되기 위해선 지금보다는 한층 업그레이된 일종의 변화가 필요할 것이다.

 

 

 

어쨌든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미래의 우리 챔프! 볼케이노 김. 화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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