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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취역한 소련의 원자력잠수함 'K-222'

 

빠른 속도로 달려나가 NATO 해군을 요격한다는 개념은 정립이 됐지만, 이걸 생각해내는 것과 실행하는 건 별개의 문제였다. 당시에는 어뢰도 40노트를 넘기면 고속 어뢰 취급받던 시절이라, 잠수함이 40노트의 속도를 낼 수 있다면 어뢰를 회피할 수 있을 정도가 된다. 즉, 어뢰도 제대로 따라잡지 못하니 적은 대응할 방법이 없었다는 거다. 여기까지 보면 ‘개념’ 자체는 탁월하다. 생각대로만 만들어진다면 사실상 무적의 잠수함이 되는 것이다.

 

(여담이지만, 이런 ‘개념설계’가 무기의 시작과 끝이라 할 수 있다. 어떤 개념으로 적을 공격하고 박살낼 것인가 ‘개념’이 잡혀야지만 무기를 만들고, 실전에서 활용할 수 있다. 만약 이 ‘개념’ 단계에서부터 문제가 생기면? 그 무기는 완전히 바보가 되는 거다)

 

문제는 40노트를 내는 방법이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나 40노트를 낼 거야!”

 

라고 마음만 먹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덩치가 큰 잠수함일수록 물의 저항도 커져서 속도를 내는 게 어렵다. 즉, 빠른 속도를 내려면 크기를 줄여야 한다.

 

소련은 어지간한 디젤 잠수함 수준인 1500톤급 원자력 잠수함을 연구하기 시작하는데, 여기서 문제가 터진다.

 

“물의 저항을 잡기 위해선 크기를 줄여야 하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어떤 한계?”

“저항을 줄인다고 속도가 빨라지는 건 아니잖습니까? 자기도 어느 정도 속도를 내야 하는데, 속도를 내기 위해선 큰 출력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큰 출력을 내려면 원자로나 증기 터빈이 커야 합니다.”

“그래서?”

“원자로나 증기 터빈이 커지면, 그걸 수용할 배도 커져야 합니다.”

“......”

 

속도를 내려면 큰 원자로가 필요한데, 원자로가 크면 저항이 커져서 속도를 못 낸다. 모순이었다. 작게만 만든다고 능사는 아니었던 거다.

 

속도를 내려면 큰 출력이 필요한데, 원자력 잠수함이 큰 출력을 내려면 원자로나 증기 터빈이 커져야 하고, 이건 필연적으로 큰 선체를 필요로 한다. 여기에 더해 구조적인 강도도 필요하다.

 

잠수함은 간단히 압력선체(Pressure hull)와 비압력선체(Non-pressure hull)로 구분할 수 있다. 압력선체는 물과 직접 맞닿아 물의 압력을 견뎌내는 선체, 비압력선체는 압력선체에 감싸져 있는 잠수함 내부를 말한다.

 

압력선체가 중요한 게, 수압을 견뎌내야 하기 때문이다. 수압은 보통 10미터 내려갈 때마다 1기압씩 증가하는데, 1기압당 받는 압력은 보통 1.1kg씩 증가한다. 즉, 해저 300미터 정도 내려가면 1㎠가 받는 압력은 거의 350kg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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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함 압력선체의 주요 구성요소

 

이를 극복하기 위해 잠수함의 선체는 진원(완벽한 원)에 가깝게 설계되고 제작된다. 현대의 잠수함 건조장면을 보면 철판을 휘고, 용접하면서 끊임없이 각도를 잰다. 그리고 철판 자체도 고장력강이라는 특수강을 사용한다. 수압을 견딜 수 있도록 최대한 주의를 기울이는데, 이렇게 만들어진 압력선체는 잠수함 총 중량의 38~42%를 차지한다. 한 마디로 잠수함의 핵심이다.

 

알파급 잠수함도 잠수함인 이상 이 수압을 견뎌야 하고, 원자로를 안전하게 운용할 수 있는 구조적인 강도가 담보돼야 했다. 그러면서도 가벼워야 하니 소련은 골치가 아플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역시 소련이었다. 고민 끝에 두 가지 해답을 냈다.

 

일단 선체를 작고 가볍고 튼튼하게 만들기 위해, 보통 잠수함 만드는 데 쓰는 강철 대신 티타늄을 쓰기로 결정했다. 고장력 티타늄 합금은 무게가 강철보다 30% 이상 가볍고 장력도 강해서, 제대로 만들 수 있다면 잠수함 소재로 이것보다 뛰어난 게 없었다. 그 '제대로'가 힘들 뿐.

 

물론, 소련은 세계 최대의 티타늄 생산국이라 다른 나라들은 엄두도 못 낼 양의 티타늄을 갖고 있었지만, 티타늄의 특성이 문제였다. 생산 까다로워, 가공 까다로워, 용접 까다로워. 근데 가격은 강철 고장력강보다 최소 3~5배는 비쌌다. 그래서 미국의 CIA도 소련이 티타늄으로 잠수함을 만든다는 첩보를 전해 듣고,

 

"그거 허위정보인데?"

 

라면서 한동안 믿지 않았던 것이다. 엄청난 비용이 들어가는 티타늄 가공을 소련이 할 수 없다고 믿었다. 기술도 없었다고 믿었지만, 소련은 기어코 그걸 해낸다.

 

선체를 작고 가볍게 만드는 문제가 해결됐으니 다음은 원자로였다. 당시 소련의 원자로 기술로는 1500t대의 작은 선체에 집어넣을 수 있는 100메가와트급 이상의 고성능 원자로를 만들기 어려웠다. 일반적인 가압수형 원자로는 원자로에 공급된 고압의 냉각수가 가열되면 열교환기를 통해 증기를 만들어 터빈을 돌리는 구조인데, 작고, 효율적으로 만들기 어렵다.

 

(원자력 발전의 역사는 원자력 잠수함에서 시작됐다.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보는 원자력 발전소는 원래는 원자력 잠수함에 들어가는 원자로를 가져다가 발전시킨 형태다. 미국 원자력 함대의 아버지인 리코버 제독은 세계 최초의 원자력 잠수함 노틸러스호의 원자로를 개량해 원자력 발전소에 앉혔다)

 

소련은 작은 크기에서도 큰 출력을 낼 수 있는, 납-비스무트 합금을 냉각재로 사용하는 '납 냉각 고속로'를 선택한다. 같은 경수로 대비 출력이 300t 이상 가벼운 차세대 원자로였다.

 

주목해야 할 건 납과 비스무트 둘 다 금속이란 점이다. 이들을 섞은 합금은 200도도 안 되는 상당히 낮은 온도에서 녹아서 액체가 된다. 그렇게 액체화된 금속을 물 대신 쓰는 거다. 물보다 끓는점이 높아서 원자로가 작아도 출력을 높이기 쉽고, 증기와 달리 액체금속은 폭발을 일으키지도 않는데다, 고밀도의 금속이라 냉각제 자체가 감마선을 차폐한다. 이론상으로 보자면 꿈의 원자로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장점 만큼 단점이 크다는 점이었다. 예를 들어, 원자로가 정지하면 냉각제가 굳어서 금속이 되는데, 이때 부피가 변해서 그대로 원자로가 파열될 위험이 있다(당연한 거 아닌가? 물이 수증기가 되고, 얼음이 되는 걸 생각해보면 이해가 빠를 거다). 그게 싫으면 원자로를 쓰지 않을 때 항상 고온 보일러로 원자로를 데워줘야 했다. 미국에서도 최초의 원자력 잠수함 노틸러스를 가압수형 원자로로 만든 후에 두 번째 원자력 잠수함인 시 울프에 납 냉각 고속로를 얹었다가 사고가 너무 많이 나서 포기했다. 그 이후 다시는 이 기술을 쓰지 않았을 정도다.

 

어쩌면 소련은 ‘금단의 기술’에 손을 댄 것일지도 모르지만, 냉전 당시의 소련은 찬밥 더운밥을 가릴 정신이 아니었다. 40노트가 넘는 잠수함을 만들기 위해선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소련은 최초로 개념설계 한 ‘꿈의 잠수함’을 포기할 생각이 전혀 없었던 거다.

 

여기서 또 다른 문제가 불거진다.

 

잠수함이 작고 가벼워졌으니 사람이 많이 들어갈 수가 없었다(당연한 말이겠지만). 사람을 많이 태우면 배가 커질 수밖에 없다. 초기 요구에서는 1500톤급 잠수함을 8명이 조종해야 한다는 요구사항까지 있었다. 물론 조종에 8명이 필요하다는 거고, 2교대 생각해서 16명을 태운다고 했지만, 그래도 재래식 잠수함에 50명 이상이 타던 시대에 만든 걸 생각하면, 정말 말도 안 되게 작은 수다. (대부분 나라에서 운용하는 잠수함은 3직제로 3교대로 움직이곤 한다)

 

알파급 잠수함은 원자로부터 어뢰장전까지 거의 모든 가동 부위를 전부 원격 제어 가능하게 만들거나, 아예 무인화했다. 정말 파격적인 결정. 놀라운 건 이런 개념이 완성된 게 1958년이었다는 거다. 스푸트니크호를 우주로 쏘아 올리던 시절이었으니 패기 넘치게 이런 꿈같은 계획을 실천에 옮기려 했지만... 역시나 1958년의 벽을 넘기는 어려웠다.

 

아무리 소련 과학기술이 발전했다 하지만 시기상조였다. 그래서 1500톤 설계를 고수하던 설계팀은 몇 년 동안 도저히 설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서 모두 물러나고 1963년부터 새로운 설계팀이 작업을 시작했는데, 이 팀도 1500톤으로는 도저히 잠수함의 기능을 다 담을 수가 없었고, 2300t까지 배수량을 늘리는 거로 타협을 봤다.

 

이 때문에 승무원도 29명으로, 다시 32명으로 늘어났다. 당시 기술로는 어쩔 수가 없었다. 여기까지 줄인 거도 대단하다고 봐야 할 거다. (그래도 연구하던 자동화 기술은 꽤 유용했다. 소수의 승무원들이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전열조리기에 자동 조리 기능을 넣었는데, 이게 워낙 호평이라 1970년대 이후에는 소련 내에서 고급 가전제품으로 판매되기도 했다. 역시 소련의 과학기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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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1960년대에 소련이 만들 수 있는 모든 기술이 총 집결된 끝에, 1971년, Project 705, 리라급 잠수함 초도함 K64가 완성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