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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룡이 옳다

2010-03-19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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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3.22.월요일


산하


 


요즘은 참 말하기가 껄끄럽지만 나 고대 나온 남자다. 대통령의 후배고 김연아의 선배다. 바야흐로 고대 나온 남자들의 전성 시대라는데 같은 고대라도 능력과 출신에 따라 성골 진골부터 6두 5두..... 마이너스 두품까지 있는 현실에서 지금 집 어느 구석엔가 처박혀 있을 빛나는 졸업장은 나에겐 별로 효험이 없다. 고대 마피아에 머리를 흔들고 그 패거리 근성에 치를 떠는 분들도 많을 텐데 굳이 학교 얘기 꺼내서 미안하다. 나도 그닥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그런데 아주 가끔 줄기차게 넌 고대 나왔단 말이야~~~를 일깨워 주는 문자가 수십 번씩 들이닥칠 때가 있다. 이를테면 지난 대통령 선거 때 그랬다. "영등포 고대 교우회! 72학번 아무개 선배가 쏩니다~~" 류의 문자가 쉰 통은 족히 당도했고, 나중엔 내가 사는 동단위까지 교우회가 조직(?)되는 장거를 이룩하는 것이 아닌가. 그 교우회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모를 까닭이 없고, 모이자는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 어항 속 금붕어처럼 들여다보이는데 아무리 공짜술이 아쉽기로 그곳에 갈 수는 없었다. 갑자기 일이 없어져서 터덜터덜 퇴근하는데 띠리리 문자가 와서 어느 고급 중국집에서 모인다길래 와아 하면서 전철을 탔다가 그래도 산하야 이러면 안된다 하고 과감히 집으로 발걸음을 돌린 적은 있다. 

얼마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나는 문과대 교우회라는 게 있는 줄도 몰랐다. 물론  "나 하나가 모여서 개떼가 되는" 고대의 속성상 없을 리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어디에 있고 무슨 일을 하는지는 은하계 저편의 사정보다도 더 깜깜이었다. 그런데 거기서 계속 문자가 왔다. "자랑스러운 문과대인 상 시상식 모월 모일 모시 어디.... 참석 여부 회신 바람" 
 
처음에는 씹었다. 근데 껌도 아니고 고기도 아닌 문자를 열 번쯤 씹다보니 좀 호기심이 났다. 대체 이리도 다들 모여들어 박수쳐 주어야 할 자랑스러운  문대인은 과연 누구일지 말이다. 보낸 사람한테 누가 받는대요? 라고 물어 보기도 뭐해서 검색을 좀 해 봤는데 그만 뽀글뽀글 게거품을 물고 말았다. 그 이름도 찬란한 방송문화진흥원 이사장 김우룡의 함자 석 자가 수상자에 떡 하니 박혀 있었던 것이다.  
 


"40여 년간 학계와 방송부문에서 후학 양성과 우리나라 방송발전에 중추적인 역할과 활동에 앞장섬으로써 국가발전에 헌신 봉사함은 물론 자유, 정의, 진리의 고대교시를 온 누리에 떨침으로써 교우사회의 귀감이 되고, 고대의 명예를 드높이셨기에"


 


김우룡 이사장은 자랑스러운 문과대인이라고 한다. 요즘은 사장 불러서 쪼인트를 까고 조인트나 까이는 고문관에게 청소부 직함을 줘서 좌파라는 유령을 청소하게 만드는 기행을 두고 "방송 발전에 중추적인 역할"이라는 표현을 하나 보다.  참 우리 말이 고생이 많다.  '발전'이 통곡하고 '중추'가 한숨쉬며 '헌신 봉사'가 땅을 친다.  

왕년의 고대 총학생회장 출신이자 회개한 주사파 최홍재 이사까지도 책임지라고 감히 까마득한 선배를 윽박지르는데 졸지에 조인트 까이고 매 맞는 고문관이 되어 버린 사장은 처음에는 문과대 선배한테 개기지 못하겠다 싶던지 발설한 본인은 놔두고 엉뚱한 신동아 기자한테 시비를 걸다가 분위기 파악을 한 김우룡 이사장이 사퇴한 뒤에야 민형사 소송을 하겠다고 설친다. 자랑스러운 문대인 김우룡 이사장은 그 흔한 "사실이 아니다" 드립도 치지 못하고 정정 보도 요청도 못한 체 숱없는 머리만 어루만지다가 사퇴하셨다. 참 고대 꼬라지 아름답다. 맹호는 굶주려도 풀을 먹지 않는다더니 이러다 대한민국 풀뿌리가 남아나질 않겠다.

자유 정의 진리 교시는 커녕 "정권이 까라면 까"의 교훈을 온누리에 떨치신 자랑스러운 문과대 선배님의 모습도 정작으로 고와서 서럽다.  

김재철 사장을 불러들여서 그 조인트를 강타하고 매우 매를 친 곳을 그는 "큰집"이라 일컬었다. 방문진은 부랴부랴 이 큰집이 "청와대가 아니다. 큰 집이란 표현은 방문진 이사회를 비롯한 MBC 관리·감독 조직과 사회 전반적인 여론의 흐름을 의식해 통칭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아마 그 해명을 직접 발표한 사람은 집에 가서 우리 아들 얼굴을 어떻게 보나 남몰래 고민하였을 것이다. 배 속에 태아도 자랑스러운 고대 문과대인상 수상자의 문학적 표현인 '큰집'이 어디를 지칭하는가를 알텐데 저런 해명을 늘어놓는 일을 맡다니 목구멍이 검찰청만 아니면 때려 치워 버리고 싶었을 것이다. 월급쟁이로서 그 심정 이해한다.

하지만 자랑스러운 문과대인 김우룡 이사장의 말씀 가운데에는 범인은 짐작하지 못할 깊은 뜻이 존재한다. 내 보기에 김우룡 선배님이 사용하신 '큰집'은 일종의 중의법이다. 자고로 큰집이라 함은 나라에서 주는 밥을 먹으며 규칙적인 시간표를 지니고 얼리버드처럼 일찍 일어났다가 사회를 위한 노역에 종사하는 이들이 모여 사는 곳을 일컫는 말이기도 했던 것이다.


 



큰집



즉  속어 '큰집'을 사용하심으로써 김재철 사장이 불려 들어가 조인트를 까였던 그 '큰집'의 주인 되시는 분의 전과 기록을 상기시키고자 하는 깊은 뜻을 선보여 주신 것이다. 그곳에 모여 사는 분들의 정체를 은밀하게 그러나 통렬하게 일깨워 주고 싶으셨던 것이다. 내 일찌기 이런 내공을 본 적이 없느니.   아 나는 자랑스러운 문과대인 시상식에 가야 했다.  벅찬 마음으로 저분이 우리 선배님이시라고 외쳐야 했다. 그래서 서정갑을 자랑스러운 연대인으로 뽑아 준 연세대학교에 우리는 이 정도야 라고 입실렌티를 외쳐 주어야 했다.

그렇다. 우리 큰집의 정체를 바로 알자. 이제 큰집이 어디인가를 더 이상 궁금해 하지 말라. 김우룡이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