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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뉴 부산 비전 프로젝트’로 가덕도 신공항은 물론이고 한일 해저터널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원더키디가 “2020년도 지났겠다 이제 그만 우주로 떠나겠다” 외치는 것처럼 황당하리만큼 갑작스럽다. 해저터널이라니, 미래지향적인 뉘앙스마저 풍기지만 해저터널은 이미 공상과학의 영역을 벗어난 지 오래.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도버해협을 가로지르는 채널 터널(Channel Tunnel/Eurotunnel), 홍콩의 크로스하버 해저터널을 비롯해 국내외에 무수한 해저터널이 존재한다. 

 

한일 해저터널은 그중에서도 채널 터널과 비교해볼만 하다. 가깝고도 먼 두 나라의 가장 가까운 해협을 가로지르는 해저터널이라는 점과 섬나라와 대륙본토를 잇는 유일한 육로를 놓는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그렇다면 우리와 유사한 위치인 대륙본토 프랑스, 그중에서도 부산에 해당하는 도시, 칼레(Calais)의 관점에서 채널 터널을 살펴볼 필요도 있지 않을까?

 

 

200여 년의 제안, 공방 그리고 망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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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 터널은 우리에게도 친숙하다. 유럽을 여행할 때 한 번 쯤 타는, 런던과 파리를 잇는 고속열차 유로스타(Eurostar)가 지나는 길이다. 흔히 유로 터널로 널리 알려졌지만, 공식 명칭은 채널 터널, 프랑스어로는 ‘뛰넬 수 라 망슈(Tunnel sous la Manche)’다. 양쪽의 언어 모두 지나는 해협을 그대로 이름에 썼다. 

 

1994년에 처음으로 문을 열었지만, 채널 터널에 대한 논의는 약 200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 채널 터널을 제안한 건 1802년 프랑스인 알베르 마티유였다. 1839년에도 프랑스 쪽에서 제안했다. 이때에는 유럽의 침공을 걱정한 영국 쪽에서 미온적이었다고 한다. 이후에도 거의 20년에 한 번씩은 꾸준히 제안이 오고 갔고, 1차 세계대전 이후 파리 평화협정에서도 독일의 또 다른 침공에 함께 대응하자는 측면에서 논의되었지만 이번에는 프랑스가 소극적이었다.

 

약 160년 동안 양국이 서로 나름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제안을 주고받았음에도 1964년에야 합의에 이른다. 그나마 양국의 대표가 서명을 한 건 10년 후인 1973년의 일이다. 공사는 더 늦은 80년대 후반에 시작해 94년에 첫 개시를 했으니, 양국의 정부가 뛰어든 프로젝트임에도 얼마나 신중하게 혹은 망설였는지 알 수 있다.

 

반면 한일 해저터널은 1930년대 일제강점기 일본에 의해 제안되었다. 대동아 종단철도 구상의 일환으로 규슈에서 출발해 한반도를 통과해 만주와 중국을 거쳐 베트남으로 연결되는 노선을 구상했다. 1940년대에는 대마도와 부산 혹은 거제도를 잇는 탄환열차를 구상했다고 한다. 해방이 되며 없던 일이 되었지만. 이후 80년대에 일본의 경제가 활황일 때 또 이슈가 타올랐다가 사라졌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우리나라에서 한국교통연구원이 한중, 한일 해저터널을 검토한 후 경제성이 없다고 결론을 내린 바 있다. 

 

 

망설임에는 이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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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0년대 터널 채굴 흔적

출처: subterranea britannica

 

채널 터널의 공사가 막 시작된 1988년, 릴대학 알랭 바레의 연구를 보면 이 망설임의 이유를 조금 엿볼 수 있다. 이 연구는 지역 신문에 나타난 채널 터널 관련 문제점, 이슈에 대해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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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 터널의 코스

 

먼저 터널이 들어서는 도시 칼레를 비롯해 그 지역인 파드칼레(pas de calais)의 모든 환경이 변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터널 건설로 인한 농경지와 주거지 소멸, 페리 교통과 항구 경제 약화, 프랑스 북부 전역의 무역 흐름 변화 등이 주된 이유였다. 터널 공사가 단기적으로는 고용 창출 등의 효과를 낼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거주민들의 삶의 방식 자체를 바꾼다는 것이었다.

 

둘째, 국가 전체의 교통 인프라 재구성 이슈다. 터널 건설과 함께 1975년에 폐기되었던 파리-런던-브뤼셀 고속열차 프로젝트가 부활했는데, 여기에 프랑스 북부 대표도시 릴을 포함하기 위한 진통이 있었다. 만약 릴을 포함하지 않는다면 프랑스 북부는 터널이 생긴다 해도 기차가 지나는 통로일 뿐 창출되는 경제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서 지역 내외에서 적지 않은 마찰이 있었다. 이외에도 칼레로 통하는 도로를 추가로 내기 위해 국가 주도의 고속도로 사업을 시행했고, 줄어드는 항만운영에 대비해 항구경제 플랜도 필요했다.

 

마지막으로 자금 조달에 대한 어려움이다. 그룹 유로터널은 양국 정부로부터 모든 권한을 위임받은 민간기업이다. 100% 민간자본으로 약 18조 원에 달하는 국가기반사업을 진행한 것이다. 그런데 장밋빛 전망과 달리 처음부터 자금 조달이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1988년 터널을 건설하는 시점에서도 프랑스 북부의 언론들은 자금 조달에 대한 어려움으로 터널에 상당한 문제점이 있다고 보도했다. 시간이 흐르고 이 보도가 기우가 아니었음이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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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유로터널, 적자의 늪

 

채널 터널의 운영기업인 그룹 유로터널(현재 명칭은 Getlink)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그룹 유로터널은 1994년에 터널을 개통한 후 3년 만인 1997년, 파산 직전까지 내몰렸다. 두 가지 큰 패인이 있었는데, 하나는 건설과 철도차량 비용이 예상보다 증가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트래픽을 너무 낙관적으로 예상했다는 점이다. 장밋빛 미래는 허상이었다.

 

1987년 터널을 건설할 당시 연간 3천만 명의 승객과 1천 5백만 톤의 화물이 오고갈 것으로 예상했지만 실제로는 2003년 기준 680만 명의 승객과 150만 톤의 화물을 수송하는 데 그쳤다. 그 결과 자본금 17억 유로의 회사가 매출액의 10배인 90억 유로의 부채를 지게 되었다. 2003년에는 매출의 50%를 이자 비용으로 쓰고 있었다고 한다. 결국 2006년 보호절차로 부채를 동결하고 재무 구조조정을 거쳐 이듬해 부채 규모를 30억 유로로 줄였다. 이 덕분에 2007년에야 겨우 첫 이익을 낼 수 있었다.

 

 

27년이 지난 채널 터널, 지금은?

 

2020년 7월 기준, 프랑스와 영국의 인구를 합친 수의 3배가 넘는 4억 5천만 명의 여행자가 채널 터널을 지났다. 하지만 코로나와 브렉시트로 채널 터널은 그 어느 때보다 큰 변곡점에 서있다. 유로스타에 런던-암스테르담 직통열차가 생겼지만, 코로나 이전과 비교하여 1% 수준의 수송률을 보인다.

 

채널 터널은 코로나19가 시작된 이후로 조용할 수가 없다. 유럽 국가들의 경우 국경을 닫고, 물류를 제한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기에 프랑스 칼레와 영국 켄트를 비롯해 채널 터널 주변 도시가 마비되는 일이 잦았다. 지난 연말에도 변종 바이러스를 이유로 프랑스가 국경을 닫자, 프랑스로 향하던 트럭이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춰버린 일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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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힌 프랑스 국경이 열리길 기다리는 영국 트럭들

출처: 르 몽드(Le monde)

 

2021년 1월부터 영국이 유럽연합을 공식적으로 탈퇴하면서, 채널 터널에도 관심이 쏠렸다. 국경 지역인 만큼 외교적, 정치적인 이슈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 보도에 따르면 이동 자체에는 큰 문제가 없는 모양새지만 국경을 지나며 발생하는 각종 행정적, 외교적 문제는 상당히 늘어나고 있다. 특히나 프랑스(유럽)과 영국과의 관계에서는 유럽본토의 상품들이 영국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가 더 치명적일 때가 많다. 브렉시트와 관련해서는 앞으로도 새로운 이슈들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

 

 

칼레 : 국경과 난민의 도시

 

마지막으로 채널 터널이 시작되는 도시, 칼레의 현재는 어떨까. 칼레는 인구 7만 5천 명의 소도시다. 터널 건설 이전에도 소도시였다. 터널이 건설된 후 무역과 물류가 늘어나긴 했지만, 지역경제가 드라마틱하게 성장하지는 않았다. 관광객이 더 늘어난 것도 아니다. 채널 터널을 이용하는 여행객은 대부분 파리나 브뤼셀을 오간다. 유로스타에 탑승한 채로 칼레를 지나치거나, 차량을 이용해 칼레에서 운송 기차에 승차하는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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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 드 칼레

출처: 프랑스앵포(Franceinfo)

 

칼레에는 유럽 최대 규모 난민캠프 중 하나인 정글 드 칼레(Jungle de Calais)가 있다. 시리아처럼 내전을 피해 온 난민이 있는가 하면, 아프리카 등지에서 경제적인 이유로 온 불법 이민자도 상당하다. 이들의 목적은 채널 터널을 지나 영국으로 가는 기차 또는 화물차에 올라타는 것이다. 칼레 시민들은 난민에게 상당히 우호적이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나누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다고 한다. 대부분의 난민도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지만, 일부는 여행객들의 가방이나 소지품을 훔치기도 한다.

 

영국과 프랑스 정부는 각각 난민이 아닌 불법 이민자에게 엄격한 잣대를 대겠다고 한다. 군경 병력이 증강되고, 채널 터널을 관리하는 겟링크에서도 자체 인력으로 차량에 불법 이민자가 탑승하는 것을 막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브렉시트와 함께 더 복잡한 일이 되고 있다. 국경의 벽이 높아질수록 칼레에 머무르는 불법 이민자와 난민의 수도 늘어나게 될 것이다. 칼레의 입장에서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채널 터널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양국의 국경이 맞닿는 해저터널은 이전에 없던 새로운 국경선을 그려넣는 것과 진배없다. 오랜 시간 망설이고, 논의하고, 양국의 중앙정부가 나서 진행한 국가 기반 토목사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곳저곳에서 예상치도 못했던 문제점이 생기고 있다. 

 

모든 것을 차치하고 과연 한일 해저터널이 ‘뉴 부산 비전 프로젝트’의 일환이 될 수 있는 이슈일까? 광역자치단체장의 차원에서 논할 수준으로 가벼운 사업이라고 생각하셨다면 경기도 오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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