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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기사 요약

 

한국인들이 동남아시아로 여행을 많이 다니게 되면서 이쪽 지역의 삶을 동경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세부(Cebu, Philippines)에서 가이드로 일할 때 손님들에게 이런 질문을 자주 받았다.

 

“여기 살려면 한 달에 얼마나 들어?”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는 많은 경우 ‘은퇴’‘이민(이주)‘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다. 많은 한국 여행객들이 가이드(브로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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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짧은 질문으로 시작된 대화는 손님을 7천~1억의 투자로 한 달 순수익 4~500만 원의 매출을 올리며 황제 같은 삶을 살 수 있다는 환상에 젖게 만든다. 환상에 제대로 빠지게 된 손님은 정신 못 차리며 가이드(브로커)를 이용할 생각을 한다.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다 했던가. 역시 가이드는 가이드대로 손님을 이용할 생각을 한다.

 

여기서 잘 알아둬야 할 점은 필리핀은 절대 사업이 성공하기 쉬운 곳이 아니란 것이다. 많은 이들이 개도국이라 얕보며 성공하기도 쉬울 거라 생각하는데, 오산이며 아무리 많은 자료를 뽑아도 그 자료가 내게 적용된다는 보장이 없는 곳이 필리핀이다.     

 

세월이 지난 뒤, 아주 많은 경우로 손님과 가이드는 사업에 실패하고 서로에 대해 이렇게 말할 가능성이 높다. 

 

손님 : 내가 사람을 잘못 만나서 말이지, 그 녀석 알고 보니 사기꾼이더라고.

 

브로커 : 내가 투자자를 잘못 만나서 말이지 그 사람 알고 보니 돈도 없는 데다 사사건건 지적질이나 하는 꼰대더라고.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이 아니길 바란다. 

 

 

필리핀에서 사기를 당하는(사업에 실패하는) 법 

 

필리핀에서 ‘사기(?)’를 당했다는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사기를 쳤다는 사람은 없고 사기를 당한 사람만 있다는 것이다. 신기한 일이다...가 아니라 주구장창 남 탓만 하는 것이다. 

 

지금부터 필리핀에서 사기당하는(사업에 실패하는) 이들에게 주로 보이는 특징 몇 가지를 소개하겠다. 사기당하고 싶은 사람들은 지금부터 말하는 4가지 포인트만 깔끔하게 무시하면 된다. 잘만 무시해주면 안 그래도 더운 필리핀에서 아주 시원하게 말아먹을 수 있다.  

 

1. 아는 척을 너무 많이 한다.

 

당연히 코로나 이전 시점으로 최근 몇 년은 '한 달 살기'가 유행이다 보니 이주를 결정하기 전에 현지에서 살아보는 사람들이 꽤 생겼다. 필리핀은 어학연수가 활성화되어 있어 어학연수로 3~6개월 정도 와 있는 사람도 많다. 이런 이들은 자신이 그 지역에 대해서 잘 안다고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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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한 번도 와보지 못한 사람에 비하면 좀 더 알겠지만, 정말 그 나라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는 것이 맞을까? 우리가 한국에 오래 살아서 한국에 대해서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한국 생활에 대해서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예를 들어, 외국인 친구가 한국에서 사업을 한다고 할 때, 필요한 서류나 허가양식 또는 세금 관련 문제에 대해서 우리는 얼마만큼 조언해 줄 수 있을까? 

 

사업이나 세금 같은 전문적인 분야는 모를 수 있다고 치고, 외국에서 온 친구에게 한국 관광을 시켜준다고 가정해 보자. 

 

어디부터 어떻게 데리고 다니겠는가. 유튜브나 관광 안내 책자에서 본 곳을 데리고 다닌다면 우리는 과연 얼마나 제대로 설명할 수 있을까. 이런 일은 막상 해보면 쉽지 않다. 

 

나는 세부(Cebu, Philippines)의 어학원에서 7개월을 생활했었다. 덕분에 학원 기숙사를 나와서 독립할 때 두려움이 전혀 없었다. 세부에 대해서 좀 안다고 자부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처음 방을 구할 때부터 제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었다.  

 

월세 계약서를 어떻게 쓰는지, 전기세를 어떻게 내는지, 물세를 어떻게 내는지 등 기본적인 일상에 대해서 전혀 몰랐고, 이민국에서 비자 연장하는 방법이라든가, 운전 면허증을 갱신(발급)하는 일, 교통 딱지가 끊겼을 때나, 접촉사고가 났을 때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갑자기 아프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현지 은행 계좌 개설을 위해서 무얼 준비해야 하는지, 개인 간의 거래에서는 어떻게 송금해야 하는지 등등의 기초적인 생활 방법에 대해서도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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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까다로운 이런 일들을 학원에서 잘 아는 선생들이나 학원의 사무실 직원들에게 도움을 요청해서 해결했다. 하지만 생각해 보자. 렛츠 띵크! 당신의 외국인 친구가 어려운 데다 책임을 져야 할지도 모르는 서류를 들고 와서 매번 읽어 보고 도와달라고 한다면 어떻겠는가? 

 

매번 당신은 그와 함께 관공서나 변호사 사무실 같은 곳을 방문하여 통역을 돕고 계약을 도울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이런 일은 돈을 받으면서 해도 쉽지 않은 일이다. 

 

필리핀에 대해 잘 아는 것도 아니면서 환상에 젖어 무턱대고 사업에 뛰어들었다가도 모르는 것이 생겼을 때, 브로커나 주변인에게 도움을 청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게 매번 가능하겠냐는 거다. 게다가 브로커나 주변인이 도움을 준다고 선뜻 나섰다고 해도, 당신이 그에게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다면, 나에게 사기(?)치기 딱 좋은 상황이 아닐까? 

 

그 나라에 머문 시간이 길다고 그 나라에 대해서 많이 알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사람은 자기가 관심 있는 것만 기억한다. 외국에 이주하면서 더구나 사업을 하려는 사람이 한두 달 살아 봤다고 '아는 척'을 한다는 것은 스스로 사기꾼의 아가리로 걸어 들어가는 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새로운 걸 시작하는 사람은 절대로 '아는 척'을 하면 안 된다. ‘겸손’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모든 ‘정보’‘지식’에 대해서 크로스체크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확인하는 버릇만 들여도 사기(혹은 실패)로부터 조금은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 

 

그리고 ‘확인’하는 것과 ‘의심’하는 것을 헷갈리면 안 된다. 이게 구분이 좀 애매하지만, 동업자가 기분 나쁘지 않게 매사 확인해서 판단해야 하고, 상호 간에 많은 대화를 나눠야 한다. 내가 본 수많은 사업실패자들은 대부분 대화 부족이 시발점이었다.

 

혹여나 누군가 뜬금없이 당신을 칭찬하며 자존감을 높여준다면, 그런 사람도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사기꾼의 첫 초식은 상대의 기분을 좋게 만들고 자존감을 띄워주는 것이다. 

 

자신이나 주변에 이미 사기당한 이가 있다면 다음 대사의 뉘앙스가 익숙할 것이다.  

 

“사장님, 어떻게 이런 것도 아세요? 이야~~ 예전에 공부 많이 하셨나 봐요? 사장님하고 다니니 배울 게 많아서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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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기는 사기꾼에게만 당하는 것이 아니다.

 

실제 사기꾼을 만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세상에 나쁜 놈들 많지만, 아닌 사람도 많다. 즉,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일이 그렇게 흘러가는 경우도 많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자기 실수로 그렇게 됐으면서 남들에게는 ‘사기’를 당했다고 말한다. 왜냐? 쪽팔리니까.

 

외국에서 ‘브로커’를 만났다고 치자. 

 

여기서 말하는 ‘브로커’는 가이드일 수도 있고, 교민일 수도 있고, 주재원일 수도 있다. 그 지역에 오래 산 사람은 동네의 사정을 잘 알기에 누구나 브로커가 될 수 있다. 사실 ‘브로커’가 꼭 나쁜 사람을 지칭하는 단어도 아니다. 그냥 오지랖이 넓은 사람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들은 어느 가게가 망할지, 어느 식당 사장이 도박을 하는지, 어느 점포의 사장이 개인적 사정으로 잘되던 사업을 접어야 하는지 등등을 빠삭하게 알고 있다.  

 

가이드를 예로 들어 보겠다. 

 

동남아시아의 관광지에서 가이드를 한다는 것은 식당이나 다이빙샵, 마사지샵 같은 거래처들을 최소 50~100개 정도는 기본적으로 알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샵 중에는 장사가 잘되는데도 갑자기 사업을 접어야 하거나, 시설 투자비가 부족해서 더 매출을 끌어 올리지 못하거나, 사장이나 투자자의 개인적 사정으로 일을 접어야 하는 우량한 가게들이 있게 마련이다. 가이드 업무에는 이런 가게들의 정보를 수집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이런 정보들을 얻다 보면 자연스럽게 브로커(가이드) 본인이 인수하고픈 사업체도 생기게 마련이다. 이럴 때 “나 돈 좀 있는데, 여기서 뭐 할 거 없을까?” 이런 식의 접근해오는 손님이 있다면 솔깃해지지 않기가 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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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브로커를 낀 사업은 이렇게 시작된다. 진짜 ‘꾼’들처럼 사기(?)를 치려고 설계를 하는 것이 아니다.

 

사업이 망하는 데는 수만 가지의 이유가 있다. 만약, 이렇게 시작한 사업이 망했다면 그건 꼭 브로커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브로커도 '아는 척' 오지랖을 떨다가 당했을 가능성도 높다는 이야기다. 

 

그러니 “그 사람 진국이야! 그럴 사람이 아니야” 이런 소리는 꿈속에서도 하면 안 된다. 사업 관련한 일은 모든 일을 확인하고 또 확인해야 한다. 함께 놀기 좋은 사람과 함께 사업할 사람은 다르다. 이걸 구분 못 한다면 평생 사업은 꿈꾸지 않는 게 좋다.

 

거래를 하다 보면 상호 간에 '말하지 않는 것'이 있다. 모든 거래에는 서로가 불편한 지점이 있기 때문이다. 언제나 핵심은 '말하지 않는 것'에 있다. '과장'해서 말하는 것 보다, '말하지 않은 것'이 더 위험하다. 

 

'그가 무엇을 말하지 않는지'를 찾을 수 있다면 거래를 유리하게 진행 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걸 찾아내지 못하면 결국 상대의 의도대로 끌려갈 확률은 매우 높아진다. 외국에서는 특히 그렇다. 따라서 사업 관련한 주변을 탐문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3. 은퇴자는 생각보다 할 줄 아는 것이 없다.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면, 하고 싶은 것도 없는 법'이다. 은퇴 이민자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료함이다. 처음 몇 달은 골프도 다니고, 여행도 다니고 술도 마시러 다니고 하면서 즐겁게 지내지만, 이것도 한두 번이다. 

 

호기심이라는 것은 채워지는 순간 즐거움이 소멸한다. 한국에서 어렵게 골프를 가는 것과 언제든지 골프를 갈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한국에서만큼 골프가 그리 재밌지 않다는 뜻이다. 

 

예를 들면, 스쿠버 다이빙이나 사진 찍기 같은 예능 활동도 마찬가지다. 젊어서부터 하던 것이 아니라 남들이 하는 것이 멋있어 보여 시작한 사람은 행복감이 그리 크지 않다. 소위 보여주기식 취미 생활이 되다 보면 ‘장비병’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사진을 찍으러 가도 꼭 남들이 안 가는 곳만 가려 하고, 비싸고 귀한 장비를 구하려고 발버둥 친다. 취미를 즐기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수집하는 것이 목적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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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비병’은 전문가가 되고 싶은 일종의 갈망 같은 것이다. 하지만 이 병에 걸리면 전문가 흉내는 낼 수 있지만, 전문가가 되기는 어렵다. 그리고 장비병에 걸려서 취미생활을 하게 되면 쉽게 질려서 오래 하지 못하고 그만두기가 쉽다. 장비병에 걸려서도 오랫동안 그 취미생활을 했다면 그는 이미 전문가가 된 것이다. 

 

은퇴한 한국인들이 쉽게 장비병에 걸리는 이유는 젊은 시절에 취미를 즐길 만큼 여유롭지 못해서이다. 거저 열심히 일만 하던 사람들이다 보니 새로운 것에 대한 접근법을 모르는 것이다. ‘자기계발’이든 ‘취미생활’이든 돈 버는 일이 아니면 어색하고 힘들다는 뜻이다. 즉, '창조적 소비'에 대한 개념이 없기에 도박이나 유흥, 환락에 쉽게 빠진다. 

 

슬프게도 많은 한국인 은퇴 이민자가 잘하는 것이 “일(노동)” 밖에 없다 보니, 편히 쉬고 즐기러 온 은퇴 이민지에서 또다시 “일(노동)”을 찾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인간은 누구나 잘하는 것을 찾아가게 마련이다.

 

대충 이런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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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자 : 저 가게 사장이 어디가 좀 아픈 거 같던데 무슨 일 있어?

 

브로커 : 000식당 사장님. 몸이 안 좋아서 한국 들어가신대요.

 

은퇴자 : 그래? 그럼 가게는 어떡하고?

 

브로커 : 일단, 믿을 만한 매니저 구해서 당분간 운영한다는데, 적당한 사람 나오면 팔려고 하나 봐요.

 

은퇴자 : 그래? 장사는 좀 되는 거 같던데

 

브로커 : 저기, 수입 꽤 좋을걸요. 생각 있으세요? 

 

은퇴자 : 소일거리 정도로 해서 손해만 안 나면 해볼까 하는데.

 

브로커 : 그렇긴 한데, 그래도 많이 남아야 좋잖아요. 

 

은퇴자 : 뭐 저런 일 해서 때 돈 벌 수 있나, 그냥 노는 거 지루하니 한 번 해보려는 거지. 인수 금액이 얼만지 좀 알아볼 수 있을까?

 

브로커 : 제가 한 번 알아봐 드릴게요.

 

 

처음에는 그냥 월세 내고, 인건비 제하고 소일거리 정도의 수입만 되면 된다고 다들 이야기한다. 

 

그런데 막상 일을 시작했을 때, 가게가 어설프게 돌아가면 그 꼴을 못 본다. “일(노동)”에는 전문가이다 보니 맘에 안 드는 게 너무 눈에 너무 잘 띄어서 가만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결국, 일하는 것에 발동이 걸리면 죽기 살기로 다시 매달리게 되는 것이다. 

 

그나마 일이 잘 풀려 돈이라도 좀 벌면 괜찮은데, 현지를 제대로 이해 못 하고 어설프게 선입견이나 편견에 빠져 현지 직원들과 다툼이라도 생기면 일은 점점 힘들어진다. 결국, 또다시 허리가 휘는 “일(노동)”과 스트레스가 반복되는 것이다.

 

4. 카지노와 유흥(여자 혹은 남자)은 ‘즐김’의 대상이 아니다.

 

동남아시아 특히 세부 같은 관광지로 은퇴를 하는 사람들은 모두 한 번씩 빠지는 유혹이다. 이것에 빠지면 더 설명이 필요 없다. 그냥 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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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달리 많은 타국가들에선 은행에 입금하거나 출금하기가 쉽지가 않다. 게다가 카드사용 역시 제한적이다. 필리핀에서 은행 업무를 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어떤 업무로든 은행을 간다는 것은 비록, 단순 입출금이라 해도 반나절은 기본적으로 시간을 소비해야 한다. 

 

세부(Cebu)만 해도 거리를 걷다 보면 수많은 현금수송차량을 만난다. 모든 사업체가 현금으로 거래를 하니 돈을 옮길 일이 많다. 상상해 보라. 대형쇼핑몰의 매출이 모두 현금으로 이루어진다면 어떻겠는가? 하루에도 몇 번씩 그 현금을 싣고 날라야 돈의 부피가 감당될 것이다. 

 

이건 작은 가게도 마찬가지다. 마감이 끝나면 사장님들의 주머니에는 현금이 넘쳐난다. 그리고 주변에는 이걸 유혹하는 손길들이 너무나 많다. 어쩌다 한 번 갈 것 같던 카지노나 술집들이 집에서 혹은 가게에서 10분 거리에 있다면 조금만 한눈을 팔아도 어느새 그곳 테이블에 앉아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사업만 망하면 좀 낫다. 만약 그 테이블에 앉으면 지금까지 살아온 삶 전체를 부정당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런 것을 알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그 테이블에 앉아 있다. 현실이 그렇다.

 

 

나에게만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것이 있다

 

앞에 예로든 대화나 사례들은 대부분 내가 세부에서 겪은 일을 기초로 한 것이다. 내가 봤던 장면들이 흔치 않은 장면이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 솔직히 너무 자주 본 장면들이다. 

 

내가 살던 막탄(Cebu의 관광지역)의 경우 거래처 가게들이 6개월도 안 되어 사장이 바뀌고 간판이 교체되곤 했다. 깜짝 놀랄만한 금액을 지불하고 은퇴 이민자들이 사장이 되어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면서 늘 똑같은 인사를 했었다. 

 

“사장님 번창하세요.”

 

가이드는 거래처의 주인이 바뀌거나 간판이 바뀌면 휴대폰에 저장된 번호와 이름을 바꿔야 한다. 같은 번호에 상호만 바뀐 거래처에 인사하고 나오면서, “도대체 이 가게를 왜 인수했을까?”라고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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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가게는 기사의 내용과 관련 없음.

 

고백을 하나 하자면, 사실 나도 이런 말을 할 입장은 못 된다. 나도 똑같은 과정을 겪어 봤기 때문이다. 내가 그 일을 당했을 때 날 도와줬던 후배가 했던 말이 있다. 

 

“형만 빼고 형이 망할 거 다 알고 있었어요. 형이 그거 한다고 했을 때 내가 찾아와서 말렸던 기억나요? 그때만 그만뒀어도 지금 같은 일은 없었을 거예요. 콩깍지가 씌면 어쩔 수 없나 봐요.” 

 

나는 이 후배가 내 뒤를 봐준 덕분에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 살다 보면 남들 눈에는 다 보이는데 내 눈에만 안 보이는 게 있고, 남들 귀에는 다 들리는데 내 귀에만 안 들리는 것이 있는 듯 싶다. 큰일을 치르고 나서야 비로소 그것을 알게 됐다.

 

웃기는 건 이 후배도 몇 년 후, 똑같은 일을 당했다는 것이다. 그런 걸 보면 사람이 살아가는 건 인력으로 안 되는 것이 분명히 있는 것 같다. 

 

'코로나 사태' 같은 운명적인 한 방에 얻어맞으면 누구도 망하는 걸 피할 방법이 없다. 그러나 조심하고 경계해서 피할 수 있는 위험은 최대한 피하면서 사는 게 좋지 않을까. 눈을 뜨고, 귀를 열면 “사기(혹은 실패)”의 확률은 분명히 줄일 수 있다. 

 

이번 팬데믹 사태가 끝나면 또다시 해외로 이주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속속 나타날 것이다. 그런 이들에게 0.001%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이 글을 썼다.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도전 속에서 성공과 좌절을 맛볼 것이다. 떠나는 이들이 모두 건승하기를 바란다. 

 

사기 없는 세상을 꿈꾸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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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Sometimes I think I'm fighting for a life I ain't got time to live"
- Dallas Buyers Club, 2013.
가끔은 살려고 애쓰다가 정작 삶을 누릴 시간이 없는 거 같다.
-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