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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방법밖엔 없었어

 

넷플릭스에 풀린 <승리호>가 연일 뜨겁다. <기생충>의 대대적인 성공이 여전히 강렬하게 남아있는 지금, 저 멀리 나이지리아에서까지 성공을 거두고 있는 <승리호>의 질주는 코로나로 침체된 한국 영화에 산소 호흡기를 붙여주는 느낌마저 든다.

 

<부산행>에 대한 세계적 호평이 그러했듯,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식 신파로 갈무리된 영화다. “이 방법밖에 없어”라는 송중기의 우격다짐과 함께. 화려한 조명이 아무리 CG 팀을 감싸도, 신파에 신물이 난 한국관객들이 볼멘소리하게 되는 것도 어쩔 수 없다. 고백하건대, 나는 김태호(송중기 분)의 과거 회상씬이 나올 때, 드문드문 딴짓을 했다. 가슴이 웅장해지는 장면들을 영화관에서 보지 못해 아쉬웠지만, 방구석 1열이라 다행인 점도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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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 나름의 사연을 가진 승리호의 네 인물 중 태호에게 가장 많은 분량이 할애되어있다. 그의 사연을 구구절절하게 늘어놓아야 했던 이유는 분명하다. 극 후반, 자신들의 목숨을 버리면서 아이와 지구를 구하는 당위를 만들기 위해서다.

 

지구를 구원하고자 하는 장 선장, 원래 아이라면 사족을 못 쓰던 박 씨, 그리고 인간보다 더 인간 같은 로봇 젠야타..ㅇ아니 업동이의 배경은 “이럴 수밖에 없다”는 태호의 우격다짐에 순순히 올라탄다. 한 아이와 인류를 구하기 위한 공자(孔子)적 측은지심의 대활약. 초를 다투는 순간 속에서 윤리적 딜레마가 끼어들 틈은 없을 것이라며 영화는 우겨댄다.

 

승리호 VS 설국열차 : 구조

 

이 영화를 우주 영화가 아닌 재난탈출 영화로 본다면, 봉준호의 <설국열차>와 견주어 볼 만하다.

 

<승리호>는 네 명의 한국인 주연 배우를 중심에 두고, 중국, 러시아, 프랑스, 나이지리아 등의 세계인을 타원형으로 두르는 구조로 진행된다. 즉, 좀처럼 납득이 되지 않는 빌런의 존재를 제외하면, 이야기를 끌어가는 선이 모두 네 명의 한국인 캐릭터의 운전에 달려있다. 그 전개를 위해, 각국의 언어를 번역기라는 툴로 간단히 해결했다. 군데군데 외국 배우들의 연기가 영 시원치 않았던 씬이 있었지만, 그럭저럭 그 구조를 밀고 나가는 것에는 큰 무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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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설국열차>는 커티스의 전진과 윌포드의 큰 그림이 주요 서사이며, 남궁민수와 요나라는 두 명의 한국인 캐릭터가 선을 바꾸는 특이점이 있다. 그래서 외국 배우들이 발음하는 ‘냄궁민수’는 더없이 이질적이면서 낯설다. 똑같이 번역기를 거쳐도 남궁민수와 외국인 캐릭터들 간의 대화는 어딘가 나사가 빠진 채로 진행된다. 생각해보면, 굳이 그 자리에 필연적으로 한국인이 들어갈 이유는 단 하나도 없다. (이점에서는 승리호도 그렇다) 오로지 봉준호 감독이었기에, 그리고 한국을 주요 시장으로 두기에 가능한 캐릭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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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호 VS 설국열차 : 캐릭터

 

아이에게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주겠다는 부정(情)이 느껴진다는 점에서 <설국열차> 남궁민수와 <승리호> 태호의 행보는 비슷하지만 또 다르다.

 

열차 속 사람들이 어떻게 되든 말든, 한 번 뒤집어엎고 말겠다는 남궁민수의 그 강렬한 욕망의 질주가 더 ‘인간적’이다. “이럴 수밖에 없다”는 우격다짐도 필요 없다. 그저 본인이 믿는 바로 쌍 마이웨이를 걸을 뿐이다. 그 결과, 그의 딸과 한 아이에게 남은 것은 이전보다는 조금 더 나아진 세상, 그러나 여전히 살아갈 가능성이 낮은 세상이다. 하지만 그 희박한 가능성에도 인류를 거는 남궁민수의 행보가 더 아버지 같고, 더 인류애적이다.

 

요나도 그렇다. 요나에게 조금 더 특별한 능력이 있다면, 뛰어난 청각 정도이다. 화성에서 신이 되고자 했던 <승리호>의 설리반 보다 더 신적인 권능을 가진 꽃님에 비하면 완연한 소시민이다. 게다가 요나는 꽃님이처럼 극한의 상황에서 어른들에게 한 줄기 따스한 웃음을 선사하고, 이윽고 돈에 미쳤던 사람들조차 잊었던 인간애를 회복시키는 소녀도 아니다. 오히려 약쟁이인 데다가 폭력적이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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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지구적 선택을 받아 마땅한 소녀와, 오직 아버지의 뒤틀린 사랑을 받으며 자란 소녀. 역시 비슷한 듯 다르다.

 

신파의 모순

 

<승리호>는 마치 전생의 연으로 이어진 듯, 태호와 꽃님의 만남과 화해를 주목한다. 태호가 꽃님을 넘기고 돈을 받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을 때부터 이미 한국 관객은 예견했을 것이다. 태호가 꽃님의 예비 새아빠임을. 또한, 황우석 박사가 얼마나 심한 구라를 쳤는지 보여주는, 슈퍼 초능력자 꽃님은 지구를 구원할 메시아가 될 것도.

 

나의 도덕 감정을 타인에게 투영할 때 비로소 윤리는 피어난다. 하물며 지구를 구원할 존재라면 더욱 그렇다. 그런데 도덕 감정이 타인에게 전해지기까지는 적당한 사건과 장치, 그리고 설득이 필요하다. 사연 많고, 사건 많고, 할 일도 많은 2시간으로는 당연히 충분하지 않다.

 

이 어설픈 당위는 좀처럼 해결되지 않아, 승리호와 아웅다웅했던 다른 나라 청소부들이 결말 부분에서 모두 손에 손을 잡으며 88올림픽 호돌이 대정신을 구현해야했고, 꽃님이는 초능력 풀파워로 주인공 네 명을 모두 무사 귀환 시켜 해피엔딩을 만들어야 했다. 가슴 따뜻해지면서도 모두가 행복한 엔딩. 하지만 신파와 인류애만으로는 서사적 당위가 해결되기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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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한국형 신파의 모순을 신문 사회면에서 매일 발견한다. 착한 선택, 착한 일을 한 사람은 더 잘 살게 되는가? 아니다. 착하고 정의로운 사람들이 고통받는 뉴스는 날씨예보 보다 더 자주 나온다. 그렇다면, 사연 있는 사람들은 그 사연을 극복하고 더 선한 사람이 되는가? 아니다. 모르긴 몰라도 세상에 상처받고 뒤틀린 마음을 갖게 되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물론, 내 아이를 위해 목숨 바칠 부모는 많다. 거의 그럴 것이다. 그러나 현실 세계에선 목숨을 바쳐서 아이를 구할 수 있는 수단이 주어지진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속의 정의 구현, 혹은 신파적 휴머니즘의 실현은 영화적 마스터베이션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관객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봉준호 감독의 작품들은 가족 사랑을 다루고 있다. <괴물>, <마더>, <기생충>, 그리고 <설국열차>의 남궁민수와 요나까지, 제각기 나름의 안타까운 사연과 그 사연에 기인한 캐릭터의 선택이 등장한다. 다만 그 선택이 너무나 ‘현실적’이다. 때로는 비현실적이라도 그것이 현실을 너무나 아프게 꿰뚫는다. 관객은 납득하며 신파라는 단어를 머리에서 지워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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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런의 활용

 

빌런의 역할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작중 인물의 선택을 ‘만들어주는’것이다. <승리호>의 빌런인 설리반은 그가 행했던 악행의 스케일에 비해 어쩐지 역할이 초라하다. 지구를 날려 버려야만 화성이 성공한다는 설리반의 쌍팔년도식 우격다짐은 관객을 납득시키는 데 실패했다.

 

<설국열차>에서 커티스는 거의 윌포드에게 설득당할 뻔했다. 윌포드가 하는 말은 더없이 ‘합리적’이기며, ‘이성적’이기까지 하다. 미래의 예언자, 인류의 구원자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다.

 

솔직히 연기력도 차이 난다. 결국, 빌런으로서의 설리반은 영화 속에서뿐만 아니라, 영화 바깥에서도 임무에 실패했다. 시나리오에 구멍을 숭숭 뚫은 ‘진짜 빌런’이 되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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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승리호>는 그 한계를 88올림픽 호돌이 대정신을 살짝 끼얹은 킬링타임용 오락영화라는 포지션으로 비껴갔다. 같은 신파라도 <7광구>나 <신과 함께>가 어떻게든 관객의 눈물즙을 짜내기 위해 갖은 수를 다 써도 실패했던 사례를 잘 참고했다. 모두가 하하호호 웃을 수 있는 오락성, 서사적 당위를 갖추기 위한 요소로 신파, 그리고 넷플릭스라는 플랫폼. 세계 관객에겐 낯설고 신선한 무언가를 선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사실 모르겠다. 다른 나라의 사람들이 <승리호>를 왜 재밌게 보는지. 만약, 제작진이 잘 팔리는 세계적 영화를 분석한 끝에 내놓은 시나리오라면, 신파고 나발이고 간에 상업영화로서 그 탁월한 선택을 칭찬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그러기엔, 군데군데 영화의 거친 매듭들이 눈에 밟히는 것도 사실이다.

 

전인미답

 

이제 그만 까고 주모를 불러 보도록 보자.

 

오래전, 심형래가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서 “우리 기술로 만든 CG”를 운운하며 셀프로 주모를 애타게 불렀던 적이 있다. 진중권을 전국구적 인물로 만든 대논쟁, 그리고 <디워>의 실체를 본 사람들의 후기가 쌓이며, 전국에서 국뽕 한사발씩들고 모여든 주모들이 싹 달아났다. "국산CG"라는 단어에 강력한 흑역사가 생성된 것이다.

 

CG 기술에 있어서 완전한 일자무식이지만, <승리호>의 정교한, 너무나 정교해서 때로는 그로테스크함까지 느끼게 되는 우주 시설물들을 보고 탄성을 내뱉었다. 컴퓨터 그래픽에서 <승리호>의 성취는 <디워>의 부끄러웠던 기억을 완전히 지워낼 수 있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지평을 연다는 것은 그것이 마침내 열리기 전까지는 무모하고 어설프고 택도 없는 싸움의 연속이다. 저게 뭐지 싶었지만 야구하는 고릴라가 있었기에 저승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고, 차태현이 관객보다 먼저 폭풍오열하는 바람에 좀 머쓱했지만 신과 함께했기에 승리호가 출항하게 되었다. 영화의 이런저런 아쉬움들을 그 성취보다 앞에 둘 수 없다. 승리호의 항해는 분명 또 다른 전혀 새로운 공간을 열어 제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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