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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지하철 요금 30페소(약 50원) 인상으로 인해 엄청난 시위가 일어났다. 주인공은 중남미(라틴아메리카) 국가 칠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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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국민일보>

 

당시 일어났던 칠레의 시위는 평소에 칠레에 큰 관심이 없던 우리나라 언론들마저 많이 다룰 정도의 대규모였다. 그런데 의아한 이들도 있을 것이다. 고작 지하철 요금 50원 때문에 그 정도 시위를?

 

지하철 요금 인상은 칠레 국민들이 그동안 쌓여 목 끝까지 차올랐던 분노와 불만을 톡! 건드려 터뜨린 표면적 이유일 뿐, 본질적인 원인은 아니다. 시위는 1973년 피노체트 군사정부가 들어서고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인 그 46년 동안의 칠레 사회에 대한 저항이었다. 

 

 

칠레 시위의 본질, 피노체트 체제의 해체를 요구한다

 

1970년에 들어선 칠레 민주정부 아옌데 정권의 육군참모총장이었던 피노체트는 1973년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고 1989년까지 대통령으로 군림했다. 그 기간 동안 칠레의 경제는 세계에서 첫 번째로 신자유주의를 정착시키며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서류 위의 수치상으로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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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데타 당시의 사진들

 

1980년대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이 ‘잃어버린 10년 세월’이라는 혹독한 경제 위기를 겪을 때, 칠레는 예외였다. 

 

칠레는 라틴아메리카 경제발전의 모델이었고, 2010년에는 OECD 31번째 가입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성장의 혜택이 공정하게 분배되지 않으면서 극단적인 소득불평등을 불러왔다. 1980년에 상위 1% 소득이 전체 국민소득의 11%를 차지하던 것이 2019년에는 33%까지 올랐다. 나머지 99%의 소득은 그만큼 줄었다는 뜻이 된다. 

 

2020년 최저임금은 월 32만 6,500페소(약 49만 3만 8천원)인데, 한 달 교통비 지출은 최저임금의 12%에 달한다. 대규모 시위 속 칠레인들의 울부짖음은 지하철 요금 50원 인상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 신자유주의를 도입한 이후 가중되어온 불평등에 대한 분노의 표출과 존엄하게 살 권리를 요구하는 저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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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칠레 시위(저항)

 

그리고 이 저항은 시작된 지 약 1년 만인 작년 10월 25일 개헌에 대한 국민투표로까지 이어졌다. 국민투표의 문항 2개와 그에 대한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1. 문항은 새 헌법제정에 대한 찬반을 묻는 질문.

 

-찬성 78.2%

 

2. 새 헌법안을 작성할 기구 구성을 묻는 질문. 

 

-‘현 국회의원과 시민대표를 동수로 구성하는 안’과 ‘제헌의원 전원을 시민대표로 선출하는 안’ 중 79%의 지지율로 시민대표만으로 제헌의회를 구성하기로 결정. 

 

새 헌법 제정에 압도적인 지지를 보낸 것은 피노체트 시대와의 단절을 의미한다. 이는 신헌법 제정 40년, 민주화 된 지 31년 만의 일이다. 이제 이들은 제헌의원을 선출하기 위한 2021년의 국민투표를 통해 인간으로서 존엄할 권리를 담은 새 헌법을 쓰게 된다.

 

칠레는 1988년 독재자 피노체트의 집권 연장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에서 ‘반대’ 의견으로 승리하여 민주화된 국가다. 피노체트 철권통치에 겁에 질려 이렇다 할 투쟁을 하지 못했던 당시 상황을 고려하여 민주화 인사들은 군사정부에 국민투표를 요구하였다. 

 

피노체트는 국민투표에서 패할 것을 예측하지 못했고, 혹 선거에서 지더라도 다시 한번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으려고 구상하며 이를 받아들였다. 국민투표 결과는 피노체트 연임 ‘반대’ 의견의 승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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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피노체트 연임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시위

 

당시 칠레 국민들은 투표장에 나갈 경우 군사정부의 보복을 받을 수 있다는 공포를 갖고 투표를 했었지만, 이번 대규모 시위로 인한 국민투표는 달랐다. ‘칠레가 깨어났다’라는 2019년의 저항정신이 말해주듯이 정치엘리트가 아닌 시민들이 새 헌법 제정을 위한 국민투표를 요구하였고, 코로나19 확산세가 심각함에도 불구하고 국민투표를 시행하였다. 

 

 

피노체트 세력은 아직도 칠레를 지배하고 있다

 

칠레 시민들은 현재 불평등의 원인을 피노체트가 제정한 1980년 신헌법으로 보고 새 헌법 제정을 요구했다. 신헌법에는 국민의 기본권에 대한 국가의 책임이 명시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1988년 예상치 못한 국민투표 패배에 피노체트는 정권 이양 직전 선거법을 개정했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비례대표제를 도입하여 피노체트 세력이 의회 과반에 가까운 의석을 차지하게 하였고, 지금까지도 그 세력을 유지하며 집권 중에 있다. 

 

피노체트 또한 1998년까지 육군참모총장을 지냈으며, 2002년까지 종신 상원으로 건재했다. 군사정권이 무너지고 문민정권이 들어섰으나 피노체트 세력이 여전히 의회와 군부에 존재함으로써 과거사 청산 없는 화해의 시대로 들어선 것이다. 2005년 칠레군은 더 이상 정치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하였으나, 의회 구성을 볼 때 신헌법 폐지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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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토 피노체트(1915~2006)

 

칠레인들이 새 헌법을 제정하려는 이유는 현재 헌법의 핵심가치가 신자유주의 모델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칠레 헌법은 기본권 보장이라는 국가의 역할보다는 국가가 국민들에게 선택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을 강조한다. 

 

헌법이 추상적이라고는 하지만, 칠레 헌법에는 국가의 역할을 최소화하고 있고, 사회보장에 대한 국가의 노력 의무는 거의 다루지 않는다. 

 

예를 들어, 이웃 국가 우루과이는 연금이 최저임금 수준 이상이어야 함을 헌법에 분명히 하고 있지만, 칠레 헌법 제18조는 연금에 대한 국가의 역할을 국민이 연금관리회사(AFP)를 선택할 수 있도록 국가가 선택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동안 부분 입법도 있었고, 헌법 개정도 있었지만, 그 정도로는 칠레사회의 뿌리 깊은 불평등을 개선할 수 없었다. 그래서 사회 전반에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한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새로운 헌법을 제정하여 국가의 역할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것이 시민들의 요구였다.

 

 

칠레의 교육은 이윤 추구 목적의 사업이다

 

칠레 사회의 불평등을 처음 고발한 것은 칠레의 중고등학생들이었다. 2006년부터 시작된 중고등학생들의 교육개혁운동이 지속적으로 이어져 오던 중에 2019년 10월 지하철 요금인상이 도화선이 되어 기성세대의 저항으로 확대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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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칠레 시위(저항)

 

지하철 요금인상에 항의하며 개찰구를 뛰어넘어 들어가는 시위를 벌인 것도 중고등학생들이다. 교육에서 시작한 칠레인들의 저항은 사회 전반에 대한 개혁 요구로 확대되었다. 칠레 사회의 많고 많은 개혁대상 중에서도 특히 변화가 가장 시급한 부문으로는 교육, 연금, 의료가 꼽힌다. 피노체트 시절, 온갖 사회간접자본은 민영화되었다.    

 

칠레 헌법은 교육권을 담고 있지 않다. 

 

1979년 피노체트 정부는 국가가 보장하는 교육권의 확대와 교육부의 관료주의가 교육의 질을 떨어뜨렸다고 주장하며 교육기관에 대한 주무관청 및 지출 역할을 지방정부에 이양했다. 뿐만 아니라 학교 설립과 운영에 민간의 참여를 확대하는 교육법을 도입하여 교육의 민영화가 시작되었다. 

 

사립학교에만 학생선발권을 부여하여 성적이 우수한 학생이 사립학교로 쏠리는 학교 간, 학생 간의 계층화를 형성한 것이다. 그만큼 학교 간 서열에 따라 또 지방정부의 재정자립도에 따라 지원금이 달라졌다. 

 

사립학교 재단이 학교 건물 매입 대신 재단 소유의 건물을 학교에 임대하거나, 학생들을 대상으로 등록금 대출을 하는 경우도 많다. 교육이 국민의 기본권이 아닌 이윤 추구 목적의 사업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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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 칠레 산티아고에서 학생들이 교육 시스템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현재 칠레에서 사립학교가 차지하는 비중은 60%가 넘는다. 그리고 사립학교에 비해 공립학교에 대한 정부지원금이 낮은 상황에서, 국민들은 등록금이 높은 사립학교와 등록금 부담은 적지만 교육의 질이 낮은 공립학교 중에 선택을 해야 한다. 

 

사립대학 등록금은 OECD 최고 수준이고, 사립중고교 등록금은 평균적으로 월 40만 페소(약 60만 원)로 최저임금보다 높다. 그래서 대다수 국민들은 자녀를 사립학교에 보내지 못하거나 보낸다 하더라도 대학을 졸업할 때는 학자금 대출로 엄청난 빚을 떠안게 된다.

 

 

2019 칠레 시위의 첫 출발은 중고등학생들이었다

 

2006년 대학입학시험 응시료 인상과 교통비 보조금 삭감에 반발한 중고등학생들이 시위를 일으켰다. 칠레의 학제가 초등학교 8년, 중고등학교 4년이므로 15-18세 청소년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 것이다. 교복 입은 학생들 모습이 펭귄을 닮았다 하여 ‘펭귄 혁명’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60만 명 이상이 동참하여 1988년 민주화 이후 가장 큰 규모의 시위로 기록되기도 했다. 

 

당시 중고생이었던 학생들은 2010년 대학생이 되어 다시 저항의 불씨를 지폈다. 이번에는 무상교육공교육 정상화가 목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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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6월, 학생들의 시위. ‘교육에 의한 대량 자살’이라는 제목의 시위로 정부에게 교육 시스템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교원과 학부모들까지 가세하면서 지방정부가 아닌 중앙정부가 교육권을 보장하라고 주장하였고, 2013년 대선에서 교육개혁 정책이 다른 대선 이슈 전체를 잠식했을 만큼 교육개혁 요구는 당시 칠레 사회의 최우선 의제였다. 

 

그러나 교육의 공공성 강화를 약속하며 대선에서 승리한 중도좌파연합은 2015년 중등교육에 대한 무상교육이 아닌 대학 무상교육 확대와 사립대학 영리 추구를 제한하는 제도 도입에 그쳤다. 

 

2030년까지 지방정부의 교육기관에 대한 주무관청 및 지출역할을 중앙정부로 이관하여 국민의 교육받을 권리를 보장한다는 ‘공교육 정상화안’을 발표하였지만, 현 대통령 세바스티안 피녜라(Sebastian Piñera)는 교육은 소비재라고 주장하는 신자유주의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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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칠레 대통령 ‘세바스티안 피녜라’

 

그러나 미래세대의 지속적인 교육개혁 시위와 2019년 정부의 지하철 요금 인상 반대 시위는 기성세대가 칠레 사회의 불평등을 우리 모두의 문제로 인식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데올로기, 세대, 소득 구분을 넘어 다양한 계층의 시민이 참여하였고, 개혁 요구는 교육 불평등뿐만 아니라 칠레 사회 전반의 불평등, 특히 연금, 의료 부문으로까지 확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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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칠레 시위(저항)

 

 

다음 편

 

칠레 불평등의 대표 주자로 꼽히는 교육, 연금, 의료 중 교육에 이어 가히 충격적인 연금, 의료의 현실은 어떤지 다뤄본다.

 

임수진 (대구가톨릭대 교수)

 

 

 

추천

 

-2019년 대규모 칠레 시위를 직접 경험한 칠레가톨릭대학 민원정 교수의 딴지일보 칼럼기사 (링크)

-임수진 교수가 출연하여 칠레와 아르헨티나의 민영화에 대해 다룬 영화 ‘블랙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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