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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의 손녀



한 독립운동가의 후손이 있다. 그녀의 할아버지는 매헌 윤봉길 의사. 5살 때 아버지를 잃은 윤 의사 장남, 윤종 씨의 장녀로 태어났다.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광고 회사에 다녔다. 평범한 직장인의 삶이었다. “어떤 억울한 일이 있어도 절대 조국에 서운함을 가져서는 안된다”는 할머니의 말씀에 가족은 '윤봉길 의사는 직계 자손이 없다'고 소문이 날 만큼 조용히 살았다.

 

하지만 세상은 거인의 손녀를 그냥 두지 않았다. 독립기념관 이사, 새누리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100% 대한민국대통합위원회 부위원장, 박근혜 당선인 인수위 국민대통합위원회 부위원장, 대통령 소속 국민대통합위원회 민간위원을 거쳐 10대 독립기념관장을 지냈다. 그리고 지난 21대 총선에서 미래한국당 비례 1번으로 당선되었다.

 

“독립운동의 숭고한 정신을 받들어 국민 통합의 길을 열어가겠다”는 국민의힘 국회의원 윤주경이 걸어온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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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을 알아볼 때, 그의 행적은 좋은 힌트가 된다. 그가 걸어온 길로 그가 지향하는 삶을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사실은, 그가 ‘무엇을 하지 않았는가’에 담겨있다. 삶의 경로에서, 해야 했지만 할 법 하지만 결국 하지 않은 그 어떤 ‘선택’들이야말로 그 사람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감춰진 진실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침묵보다 강한 행동도 없다.

 

윤주경이 하지 않은 것

 

하버드 로스쿨 존 마크 램지어 교수가 정신 나간 논문을 발표했다. “위안부는 강제로 끌려간 게 아니라 자발적으로 계약을 맺고 따라간 매춘부였다”라는 것.

 

1993년 8월 4일 고노 요헤이 당시 일본 관방장관이 "위안소는 당시 군 당국의 요청에 따라 마련된 것이며 위안소의 설치, 관리 및 위안부의 이송에 관해서는 옛 일본군이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이에 관여했다"라고 밝힌 일명 ‘고노 담화’로 이미 그 강제성이 인정된 사실을 ‘학문의 자유’라는 미명 아래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독립운동에는 좌우가 없으며, 나라와 민족을 위해 헌신하신 분들에 대한 예우하여 독립운동의 참뜻을 바로 새겨 대한민국이 하나 된 통합의 길을 가는데 역할을 하겠다"던 국민의힘 윤주경 의원은 이에 아직 말이 없다.

 

그녀는 왜 침묵하는가

 

둘 중 하나다. ‘윤봉길 의사의 손녀’로 국민의 선택을 받은 국회의원의 직무유기이거나, 아니면 독립운동가 후손으로서 위안부 문제에 대해 국제 상식과 다른 견지를 가지고 있거나.

 

아래 인터뷰를 보자.

 

윤주경 : 저는 국회에서도 분명히 말씀드렸습니다. 물으시더라고요. 위안부 소녀상을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래서 그건 저는 치우면 안 된다고 분명히 말씀드렸고요.

 

김어준 : 소녀상은 치우면 안 되는 것이고. 일본과의 위안부 합의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윤주경 : 저는 항상 생각하는 건 우리가 과연 그렇다면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해서 우리 내부에서는 얼마나 잘해 드렸는지. 저는 우리 내부에서 먼저 더 예우를 갖추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김어준 : 맞습니다. 그것도 그거고.

 

윤주경 : 그들에 대해서 대응을 해야 되는 것이고, 잘못된 것이 있으면 분명히 이야기할 수 있어야 되는 것이죠. 있었던 일을 없었다고 하는 그것부터 바로잡으면서.

2020.04.02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 인터뷰 中

 

일단, 후자는 아니다. 다행히도(?) 그녀는 위안부 문제에 관해 상식과 크게 동떨어져 있지 않다.

 

희박한 가능성 하나를 더 따져보자. 초선이라 얼타고 있어서 해야 할 일을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누구나 적응 기간은 필요한 법이다. 아무리 윤봉길의 손녀라도. 그녀도 사람인데.

 

하지만 지난 월간조선과의 날선 인터뷰를 보면, 이 가능성은 희박하다 못해 '0'에 수렴한다.

 

Q : 윤미향-정의연 사태를 어떻게 보나.

 

A : 정말 안타깝고 걱정된다. 윤미향이라는 사람이 해 온 업적은 인정한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 문제에 대해 이 정도로 국제적으로 관심을 갖게 한 공로가 있다. 그런 공로마저 이 일로 인해 무너질까봐, 할머니들에 대한 진실과 본질이 이 사건으로 인해 오해받을까 걱정이 크다. 정의연은 회계의 투명성을 지적받고 있는 것이니 그 부분은 투명하게 밝히고 잘못한 게 있으면 용서를 구해야 한다. 자신들이 했던 일은 정당하게 평가를 받고 잘못한 것이나 오해가 있다면 분명히 밝혀야 한다.

 

Q : 이용수 할머니가 어려운 상황이 됐다.

 

A : 이용수 할머니가 원하는 건 일본군 '위안부'의 진실이 세계의 공감을 받으면서 전쟁으로 이유 없이 부당한 희생을 당하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세상이 와야 한다는 걸 전 세계가 공감하고 그 공감의 길을 열어나가야 한다고 할머니는 소망했다. 우리는 그 소망이 헛되지 않도록 함께 이뤄나가야 한다. 할머니의 마음에 더 이상의 상처와 섭섭함이 없게 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인터뷰 전문(링크)

 

위 인터뷰 송고 2일 후, 미래한국당에는 윤주경 의원을 중심으로 한 윤미향-정의기억연대(정의연) 진상규명 태스크포스팀이 구성된다. 그녀는 ‘준비된 인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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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분열

 

윤주경의 자아분열은 이뿐만이 아니다. 작년 사망한 백선엽 장군의 현충원 안장 문제에서도 쪼개 풀어지는 자아를 부여잡느라 애를 먹었다.

 

균형 잡힌 시각으로 봐야 한다. 그분(백선엽)이 간도 특설대 활동도 사실이고 다부동 전투를 승리로 이끈 6.25 영웅인 것도 사실이다. 역사를 기억하는 이유는 그것으로 교육을 얻기 위함이다. 미래에 어떻게 평가될지 생각하며 부끄럽지 않은 선택을 해야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KBS 뉴스9 앵커초대석 인터뷰 

 

간도 특설대는, 일본 제국의 괴뢰국인 만주국이 동북항일연군 · 팔로군 · 조선의용군 등 중국 공산당 휘하의 조직을 공격하기 위해 구성된, 일본 제국의 괴뢰국인 만주국의 정식 부대였다. '조선 항일세력은 같은 조선인이 잡자’라는 깃발 아래 같은 동포에게 총을 겨눈 부대원 전원은 친일인명사전에 등록되었다. 백선엽은 이 부대에 장교로 2년 반 복무했다.

 
백선엽은 창씨를 '白川義則'라는 이름으로 개명했다. 시라카와 요시노리. 윤봉길의 손녀라면 잊을 수 없는 이름이다. 1932년 4월 훙커우 공원에서 윤봉길 의사의 폭탄에 맞아 죽은 일본 육군대장의 이름과 같다. 한자까지도.
 

독립군을 토벌하던 간도 특설대의 장교를, 그것도 할아버지가 목숨과 바꾸며 처단한 일본군 대장을 흠모해 이름을 물려받아 산 것으로 의심되는 자를, 국회의원이 된 손녀가 보듬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웅장하고도 균형 잡힌 역사관이다.

 

윤 전 관장이 추구하는 가치들이 당론과 충돌하는 일이 벌어지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었다. 그런 일이 벌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과거의 예를 들어가며 그럴 가능성이 높지 않겠느냐고 거듭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그런 걱정은 안 해봤지만 저는 제 길을 갈 것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제가 끝까지 지켜야 되는 길이 무엇인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 대답을 할 때 윤주경의 목소리에서 힘이 느껴졌다.

 

SBS [총선人터뷰] 윤봉길 의사 장손녀가 보수 정당을 택한 이유  

 

손녀가 할아버지와 다른 역사관을 가졌다고 비난할 수 없다. 다만, 국회의원 윤주경이 끝까지 지켜 걷겠다고 하는 길은, 의사 윤봉길이 걸었던 그것과 다른 것임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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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까방권

 

하지만 그녀는 할아버지와의 억지 동행을 포기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당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분노한 ‘윤봉길의 손녀’가 놓는 일침은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그야말로 전가의 보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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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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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링크

 

이런 의미에서, 지난 총선에서 국민의힘의 인재영입은 성공적이었다. 그들이 1번으로 영입한 것은, 통합을 위한 '독립운동가의 후손'이 아니라 그녀가 윤봉길 의사에게 물려받은 '까방권'이다. 그녀가 ‘이러려고 우리 할아버지가 독립운동을 했나’하며 자괴감을 느껴버리면, 답이 없다. 
 
무엇을 하지 않았는가
 
‘무엇을 하지 않았는가’를 두고 숨겨진 실체가 드러나는 것은 개인뿐만 아니라 집단도 마찬가지다.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의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부정하는 '건국절' 제정 법안 발의, 건국일을 이승만부터 다시 세어 '건국 68주년'이라 천명한 박근혜 대통령의 2016년 광복절 기념식은,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윤주경과 그녀가 속한 국민의힘이 정신 나간 하버드 미쯔비시 교수의 논문에 침묵하고 있는 것. 윤봉길 의사의 까방권을 함부로 쥐고 흔들어 애써 지우려는 것. 그것이 보수를 표방하는 그들의 실체이며 정체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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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보수 정당과 보수 언론에게 묻는다.

 

애국과 보수의 가치를 사수하겠다던 국민의힘은, 왜 날조된 항일 역사를 좌시하는가.

 

윤미향 의원이 위안부 할머니들을 등처먹었다며 게거품을 물던 조중동을 위시한 보수언론들은, 왜 친일파 교수의 망필에 분노하지 않는가.

 

당신들이 ‘보전하여 지킬’ 대상은, 혹시 다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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