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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4.19의 시만 읽은 게 아니라 5.16의 밥도 먹고 자랐다”


필독(이하 필): 대한민국이라는 아이가 자라면서 지옥처럼 고통스런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유전자도 중요하지만 자라면서 어떤 경험을 하는가도 중요합니다. 지금 역사관을 가지고 진보와 보수진영이 대립하는 건 이 경험을 서로 다르게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요.


대표님의 어록 중에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 게 이겁니다. “나는 4.19의 시만 읽은 게 아니라 5.16의 밥도 먹고 자랐다.” 대표님께서는 박정희 정권과 그렇게 많이 싸우셨는데, 지금은 생각이 바뀐 겁니까? 박정희에 대한 평가는 어떻습니까?


주대환(이하 주): 2009년 초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그렇게 말했죠. 사실은 그 말은 제 인생의 정직한 고백입니다. 박정희 체제에 대한 저의 평가가 들어있는 말이고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4.19와 5.16이 생각보다는 그렇게 단절적이지 않다. 연속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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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9와 5.16은 연속적이다?



하나 터졌다.
4.19와 5.16은 연.속.적.이.다.



: 하나는 민주주의 혁명이고, 하나는 군사반란인데 연속적이라고요.


: 그렇습니다. 장준하 선생이 5.16이 났을 때 사상계 6월호에 5.16을 ‘5.16 군사혁명’이라고 썼어요. 4.19 학생혁명과 5.16 군사혁명을 함께 긍정하는 논설을 썼어요, 사상계 61년 6월호에서.



"5.16 군사혁명으로 우리들이 과거의 방종, 무질서, 타성, 편의주의의 낡은 껍질에서 자기 탈피하여 일체의 구악의 뿌리를 뽑고 새로운 민족적 활로를 개척할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혁명 정권은 지금 법질서의 존중, 강건한 생활 기풍의 확립, 불량도당의 소탕, 부정축재자의 처리, 농어촌의 고리대 정리, 국토건설사업 등에서 괄목할 만한 출발을 보여주고 있다."


장준하,『사상계』, 1961년 6월호, 권두언(책의 머리말)




: 장준하 선생이 그 후에 유신체제 때 그렇게 치열하게 투쟁을 한 대표적인 분이잖아요. 박정희를 가장 치열하게 비판한 분인데 당시에 5.16을 그렇게 규정했다는 것은, 말하자면 그 쿠데타를 환영했다는 것은 설명이 잘 안 되잖아요?


: 그렇죠.


: 4.19는 20대, 5.16는 30대, 청년세대의 반란이었어요.


: 일부 군인들의 반란이라고 국한될 수 없는 시대정신이 있었다는 거죠?


: 네. 그래서 건국세대가 그때 일제히 물러났습니다. 노인들이 확 무너져버렸어요. 20대, 30대가 떠들기 시작했죠. 그들에 의해서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던 것이고. 사실 그 젊은이들의 목표는 같았어요.


: 역사발전에 있어서 4.19와 5.16의 거시적 목표가 같았습니까?


: 같았습니다.


: 그러려면 굉-장히 거시적으로 봐야만 가능할 것 같은데요.(웃음)


: 굉-장히 거시적으로 보면 안 됩니까?(웃음)


둘은 결국 같습니다. 근대화예요. 우리나라는 근대화가 필요했고, 그것은 모두의 간절한 바램이었습니다. 그때 독일제 만년필 하나 가지는 것이 고등학생들의 꿈이었어요. 귀한 물건이고, 우리가 절대 못 만드는 거잖아요. 독일, 일본 그 선진국들의 과학기술과 영국과 미국의 민주주의를 부러워하면서, 또 불란서 영화를 보면서 열등감 속에서 후진국 청년들이 '우리도 선진국이 되자'는 갈망 같은 걸 가지고 있었다구요.


민주화와 산업화의 뿌리입니다. 한국의 4.19와 5.16은. 산업화와 민주화. 그런데 바로 이 산업화와 민주화가 둘 다 근대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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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와

(출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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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


: 근대화라는 점에서 같다.


: 둘 다 근대화잖아요? 근대(近代) 국민국가를 만들고 싶었던 거잖아요. 우리나라의 여당, 야당의 뿌리가 각각 4.19, 5.16에 있다 보니까 김영삼 대통령, 얼마 전에 돌아가셨지만 이분 같은 경우 항상 박정희에게 독재자라고 하죠. 자기가 4.19, 민주화의 정통이다 이거죠.


김대중, 김영삼 같이 4.19의 맥을 잇는 분들과 박정희 권력의 맥을 잇는 집단을 비교할 때,  그 시대가 끝났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지금에 와서 보니까 내가 4.19의 시만 읽은 것이 아니라 5.16의 밥도 먹었네?” 쿨하게 인정해야죠.


: 그건 진짜 쿨한데요. 쏘쿨하십니다.


: 나는 앞으로 꼭 그 대립구도 안에서만 사물을 보질 않겠다는 겁니다. 김영삼 대통령이라면 굽히면 안 되지. 자기는 어디까지나 4.19의 맥인데 박정희를 인정할 수 없죠. 하면 안 되지. 또 박정희는 김영삼, 김대중 인정하면 안 되지. 그러나 나는 둘 다 인정하고, 둘 다 비판하면 되잖아. 그래야 미래로 갈 수 있어요.


김대중, 김영삼도 다 돌아가시고 그 시대가 끝났는데, 왜 아직도 그 시대에 살아야 하죠? 또 박정희의 경제정책에 관해 장하준 교수가 이론적으로 많이 썼다고 하는데 경제개발, 산업정책과 같은 부분 인정해도 되지 않나요? 그걸 인정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독재자가 아니게 되나요?


: 대표님은 바로 그 독재자 때문에 몇 번 가셨죠?


: 제가 유신시대에 3번 감옥에 갔는데, 그 분이 돌아가신 날에도 나는 합동수사본부에서 가혹한 수사를 받고 있었어요. 일주일 동안 잠도 안 재우는 아주 혹독한 수사를 받고 있었는데 갑자기 수사관들이 그냥 손을 놔 버리더라구요. 문초를 계속하지 않고 놓아 버리는 거야, 한동안.


‘왜 저러지?’ 그 다음날 아침이었는데요. 합동수사본부가 부산에 있었습니다. 보안부대가 주택가 안에 스윽 숨어들어가 있는 거예요. 그 지하에 제가 있었는데 당시에는 새마을 방송이란 게 있었습니다. 아침에 스피커에서 “아침 일찍 일어나 새마을을 바꾸세”하는 새마을 노래를 틀어주고 아침에 일어나서 마을 청소를 하라고, 아침에 기상하라고.


: 점호네요.


: 응, 그걸 틀었다구요. 지금 생각하면 병영하고 비슷하죠. 아침에 일어나라고 대형 스피커에서 막 방송을 했으니. 그리고 동장 같은 분들이 “오늘은 무슨 날입니다, 제헌절입니다, 태극기를 집집마다 다 게양하십시오.” 이런 것도 했어요.


근데 거기서 방송이 아련히 들리는데 “민족의 위대한 영도자”라는 말이 들렸어요. 그 전날 나를 지키는 보안대 하사관들이 검은 리본을 옷에 달고 있었어요. ‘저건 뭐지? 지들 부대에 무슨 상관이 죽었나?’ 이런 생각을 했어요.


걔들한테 물어보고 싶어도 말을 안 해줄 거니까, 물어볼까 하다 말았는데 모처럼 잘 자고 아침에 일어나는데 방송이 들리는 거야. “민족의 위대한 영도자” 박정희, 박정희가 죽었구나. 그때 우리는 박통이라고 그랬거든. 박통이 돌아가셨구나, 박통이구나. 이런 생각이 팍 오더라고요.


중앙정보부 소속이라는 수사관이 와서는, 대뜸 “야, 주대환이. 기분 좋지?” 이러는 거예요. 그때가 제가 스물여섯 살이었는데 그 분은 한 40대 쯤 되겠죠. 나를 막 아주 강압적으로 수사했던 사람한테 내가 좀 멋지게 대답을 하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사람이 죽었는데 뭐가 기분 좋겠소?” 이랬어 내가.(웃음)


: 하하하.


: 이 말을 내가 김일성 주석 돌아가셨을 때도 <노동자신문>에 칼럼을 쓰면서 인용했어요. 사람이 죽었는데 뭐가 기분이 좋겠냐면서..


: 혹시 독재자들을 많이 미워하지 않으신 건 아니에요?(웃음)


: 그럴지도 모르겠네요.(웃음) 여하튼 박정희 대통령이 독재자라는 것. 그 사람이 장기집권을 하기 위해서 유신체제를 만들어서 민주헌정이 중단되고 또 그가 키운 자식들인 전두환, 노태우가 군사독재를 7년 연장해서 15년의 기간 동안 민주주의가 중단되었다는 것은 변함이 없는 사실입니다.


그 사람이 독재자라고 비판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이 72년 이전에 경제 개발을 위한 5개년 계획을 세워서 나름대로 열심히 했던 것, 리더십을 발휘해 산업정책을 폈던 것 말이죠. 이런 것까지, 그로 인해 우리 경제가 커졌다는 사실을 꼭 부정해야만 하나요?


: 좌파 쪽에서는 이 사람이 독재자인건 너무 당연한데 그 대신 산업화나마 했다는 그거, 그거 정말 맞아? 이런 의심이 있고요. ‘산업화도 뭐 딱히 이 사람이 기여한 바가 없다’는 내용의 주장이 있습니다.


: 그거는 뭐 전혀 근거가 없어요.


: 근거가 없습니까?


: 근거 없습니다. 자꾸 그런 식으로 자꾸 주장하면 그건 일반 국민 상식에서 벗어나버리기 때문에 그야말로 소수의 의견이 됩니다.


: 그것이 단지 소수의견이기 때문에 틀리다고 할 수 있습니까?(웃음)


: 소수의견이라는 이유만으로 옳다고 할 수 있나?(웃음)


: 많은 야권 지지자들이, 제 주변에도 그렇고요, 박정희가 했던 모든 것을 악행으로 치부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있습니다.


: 그렇기 때문에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는 야당이, 야권이 다수의 지지를 못 받고 있습니다.




2. 국민들의 선택은 합리적이었다


: 박정희에 대해서 좀 더 물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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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


: 근대화를 추진했다는 점에 대한 거를 말씀하셨는데 추진한 방식은 파시즘인가요?


: 아닙니다.


: 아닌가요? 전 국민이 일조점호(日朝點呼)하고 그런 것이?


: 분명히 구분해야 하는데요, 유신체제 이전에는 그 사람은 선거를 통해서 집권했고요. 그 당시 언론의 자유도 있었고, 야당도 건재하고 있었고요.


: 근대화를 추진하는 방식이 병영적이지 않았습니까?


: 유신체제 이전의 방식을 두고서 정상적이지 않은 방법이라 말할 수가 없다는 거죠.
 
: 유신체제 이전에는 아니라는 거죠. 하지만 새마을운동과 같은 집체주의에 대해서는?


: 그렇게 심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후진국 상황에서는 어떤 정부라도 할 수 있는, 국력을 집중해서 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방식입니다. 그 당시에는 국민의 지지를 받았다니까요. 63년 대선에서 박정희는 15만 표 차이로 겨우 당선이 되었지만 그 4년 후에는 다시 리턴매치를 해가지고 백만 표 이상 차이가 났어요. 집권을 인정받았다는 거죠.


: 파시즘이라고 할 수 없다?


: 유신체제 이전의 박정희에 대해선 파시즘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박정희는 유신체제 전후로 해서 달리 봐야 합니다.


: 부정선거는요?


: 글쎄요. 71년 대선에서는 의심이 가죠. 결과를 뒤집을 정도인지는 모르지만. 하지만 부정선거에도 한계가 있거든, 그래서 다음 대선이 자신이 없으니까, 디제이(김대중)에게 정권 넘겨주지 않으려고 유신을 했잖아요.


하지만 부정선거로 모든 것을 설명하는 건 곤란합니다. 소위 말하는 ‘막걸리와 고무신 선거’에 대해서 제가 요것만 이야기할게요. 내가 제일 싫어하는 단어가 민도(民度)라는 단어입니다. 민도. 요즘은 안 쓰는 단어지만요.


: 일본식 단어죠. 외려 넷상에서 한일이 연결되면서 젊은 층들은 일부 그 단어를 압니다.


: 네. 요즘은 잘 안 씁니다. 민중의, 국민의, 인민 대중의 수준 뭐 이런 거겠죠? 의식수준, 지식수준 이런 건데... 50년대에는 문맹률이 높았습니다. 50년대 초반에는. 제가 최초로 기억하는 50년대 말의 선거에서도 기호는 작대기 숫자로 했어요. 아라비아 숫자도 잘 못 알아보는 분들이 있었으니까. 문맹인 거죠.


그랬기 때문에 사람들이, 지식인들이 흔히 이렇게 생각했어요. ‘그땐 고무신과 막걸리의 선거였다’ 사람들이 무식했다는 이유로. 얼렁뚱땅 막걸리 먹이고 하면 나쁜 놈들 뽑아줬다고 생각하는 거죠. 이거는 지식인들의 오만이고 현대인들의 오만입니다.


문맹인 국민들일지언정 자기 입장에서, 자기 이해관계에 따라서 합리적인 투표를 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선거에서 진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백성 탓을 하면 안 됩니다. 그건 지나간 역사에서 선조들을 모독하는 겁니다.


: 그건 현대에도 해당되는 말씀이겠네요.


: 지금 나는 식자들, 지식인들이 그 당시의 백성들에 대해서 우습게 생각하는 것이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그런 생각 절대로 안 합니다. 잘 봐라 이겁니다. 그 당시에 선거 결과를 잘 봐라. 자기가 필요한 사람은 선택하고, 또 필요 없다고 판단되는 것이 있으면 그건 날리고, 그렇게 납득할 만한 투표를 했다는 거죠.


그런 점에서 63년 대선의 결과도 정말 대단합니다. 윤보선 후보는 서울에서 더블 스코어로 이겼습니다. 경기도, 강원도, 충청도에서 다 이겼습니다. 윤보선 후보가 펼친 ‘박정희는 빨갱이’라는 공격이 먹혔다고 봐야죠. 전쟁의 피해가 크고 월남한 사람들이 많은 동네들에서. 그런데 경상도와 전라도에서는 거꾸로 박정희가 이겼습니다. 그 동네 빈농들에게는 빨갱이라는 공격이 먹히지 않은 겁니다. 대신에 62년부터 박정희 군정이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실천해나가는 것에 대해 평가와 기대를 받은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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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에 있었던 제 6대 대통령 선거결과 (기타 후보 제외)

(출처- 국가기록원)


: 알겠습니다. 제가 이승만과 마찬가지로 박정희도 물고 늘어지는 이유는요. 이 사람을 어떻게 털든 깔끔히 털어야 논의가 진행됩니다. 우리나라가 그렇잖아요. 그래서 제가 마지막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박정희가 악당이다 보니까 이 사람이 했던 행위가 모두 악행으로 치부된단 말입니다. 가장 나쁘게 말해도, 심지어 고장 난 시계도 하루 두 번은 맞는다는 식으로 가장 적대적으로 해석을 해도, 진보 진영에서는 하루 두 번 맞는 그 지점까지도 배제를 하는 면이 분명히 있잖아요.


지금의 진보진영에서 보수의 역사는 철저한 악의 역사라는 고정관념이 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도 이 관념에선 자유롭지 못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도그마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박정희 같은 악인도 좋은 역할을 하던 때가 있었다고 하는 건 진보진영의 금기를 깨는 것이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우리나라 역사를 깊이 들여다보면, 그야말로 민중에 의해 진행되어온 역사다. 또 역사에 나타나는 여러 캐릭터들은 민중이 필요하면 쓰다가 필요하지 않다 싶으면 헌신짝처럼 버렸다. 그래서 박정희 역시 공칠과삼론으로 퉁치고 넘어가도 상관없다. 이렇게 정리하시죠.(웃음)


: (웃음)과거 이야기는 여기서 정리하겠습니다. 이승만, 박정희 넘었고요. 이제 현재 이야기. 지금 우리 사회의 문제, 거기에 여야, 마지막으로 사민당. 이렇게 가겠습니다.


: 좋습니다.




3. 평등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이 아니다


: 지금 한국사회의 최대 문제가 불평등 아니겠습니까? 불평등 문제의 해소야말로 사회민주당의 사명이 될 텐데요. 사회민주당의 세계사적인 소명 자체가 그거였고요.


: 그렇습니다. 임금의 불평등이 십 수 년 동안 급속하게 악화가 되었습니다. 80년대까지만 해도 그렇지 않았어요. 민주화 된 이후에, 노동운동이 활발해 진 이후에 이렇게 되었습니다. 굉장히 역설적인 결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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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경제>)


: 사람들이 IMF 탓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 IMF 탓, 신자유주의 탓을 하는 것은 충분치가 않습니다. 저는 사실 이렇게 생각합니다. IMF와 같은 사건이나 정책이 속도에 변화를 줄 수는 있습니다. 속도를 완화 시키거나 속도를 빠르게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거기로 간다는 것을 막지는 못합니다.


이런 대목이 제게 남은 맑스주의적 사고방식인지는 모르겠는데요, 자본주의 발전의 필연적인 결과라고 봅니다. 아까 유전자 얘기를 했잖아요?


: 사주팔자요.


: 네. 첨에 출발이 평등했거든요. 백 명이 있다면 백 명이 출발선에 거의 비슷하게 서서 출발을 했었다고. 이런 조건에서는 자기만 열심히 뛰면 돼. 친구들 중에 지친 놈 있어도 격려 해가면서 가면 됩니다. 이 사회는 자기만 잘하면 될 정도로 계급이 없었다는 말입니다. 우리 사회의 특징이 그렇다는 거죠. 수십 년 동안 그렇게 왔어요. 자연히 처지는 놈이 나오고 맨 앞에 나가는 놈이 나옵니다.


: 거리가 길수록 격차는 벌어지죠. 마라톤처럼.


: 예. 그런데 그 바통을 자식한테 남겨주잖아요. 이제는 선수들끼리 확 차이가 나 버리는 거 같아요. 아예 경쟁상대도 아니고, 저 앞에 가는 놈하고 저 뒤에 가는 놈하고 서로 뭐 친구도 아니야. 요게 손자대까지 가버리면 이제 계급이 되겠죠. 한국은 지금 그렇게 될동말 동한 지경에 와 있잖아요. 


: 지금 이십대 같은 경우는 될동말동이 아니라 아예 계급사회가 되었다, 라고 믿죠.


: 아 그런가요, 벌써?


: 불과 몇 년 만에 완전히 인식이 변했습니다.


흙수저니 금수저니 하는 수저론 자체가 카스트 얘기를 하는 거거든요. 수저가 원래 농담에서 나온 얘기지만 지금은 농담이 아닙니다. 정확히 말하면 진담을 농담식으로 한다고 저는 이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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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저는 소위 엑스세대인데요, 저희 세대만 하더라도 그래도 우리 집은 중산층이겠거니 하는 존재론적 희망사항이 있었어요. 그리고 카스트의 고정성을 부정했어요. 지금 젊은이들은 카스트를 많이 인식하죠.


: 그러니까 이제 해방 당시에, 건국 당시에 성인이다, 그때 당시 20대라고 칩시다. 그럼 그 분들이 80대가 되고 그 자식들이 우리쯤 된다고 합시다. 전후세대, 전후 베이비부머들. 그리고 지금의 에코세대.


: 에코세대라뇨.(웃음) 저희 그렇게 팬시한 이름 안 어울립니다. 엑스세대도 물건 파는 사람들이 만들어 던진 마케팅 용어였고요, 저흰 그냥 호구였어요.


: (웃음)베이비부머들의 자식들을 지금 2~30대로 본다면, 건국 후에 벌써 3대가 온 거잖아요. 제가 이야기하는 것은 첫 세대나 우리 세대까지만 해도 출발선의 격차, 그 격차의 영향이 적었어요. 거기서 대한민국의 에너지가 나왔죠. 전 국민이 아무도 포기하는 놈이 없이 백 명이면 백 명이 다 경쟁에 참여해.


그 때는 공부 좀 못해도 아무도 기죽은 놈이 없습니다. “너는 공부 잘해? 난 주먹이 쎄.” 그런 놈들이 중학교만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도, 나중에 동창회에서 만나보면 걔들이 사장 되어있고, 돈 벌은 놈들 많아.


먼저 사회에 나갔으니까 잘 안단 말이에요. 첨에 기술 좀 배우고 고생 좀 했지만 나중엔 장사해서 돈 벌어가지고, “아이고 김 선생. 오늘 내가 밥 살게. 임마 너 초등학교 때는 공부 잘했는데 어? 너 모범생이고 공부 잘 했잖아. 그런데 학교 선생님 되어있고 말야, 아니면 공무원이고. 난 사장인데 말야.” 이런 것이 우리 세대였단 말이야.


그런데 그 자식들은 완전히 다르다는 거죠. 제가 대한민국이 평등한 나라였다, 라고 강조하는 이유는 단지 지금은 그렇지 못한 사실을 말하려고 그러는 게 아닙니다. 대한민국은 원래 평등해야 대한민국이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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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이 대한민국의 유전자다?


: 대한민국의 유전자이고 대한민국인 이유다.


: 우와, 급진적입니다.


: 대한민국이 나빠지는 정도가 아니라, 대한민국이 아닌 나라가 되어간다는 겁니다. 흔히 보는 자본주의 나라가 되어간다는 게 제 이야기입니다.


그러면서도 대한민국은 그 근본 뿌리에서부터, 역사에서부터 평등이라는 유전자가 각인되어 있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이런 문제가 있지만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도 전하고 싶습니다. 가능하다는 얘기를 하기 위해서 제가 이 인터뷰도 하는 것이고, 사회민주당도 꾸리는 것입니다.


: 급진적입니다. 이런 식으로 훅 넘어가네요. 아주 자연스럽게 왼쪽 저 너머로.


: 원래 대한민국이 엉망진창이고 희망이 없는 나라였다라고 하면 앞으로도 희망이 없는 거죠. 그렇지 않아요? 하지만 대한민국은 원래 평등한 나라였기 때문에 회복 가능하다는 겁니다.


자본주의 경제성장의 결과로 이렇게 불평등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임금과 소득의 불평등입니다.



지금 주대환이 말하는 것은 부의 불평등이 아니다.
자본과 노동의 불균형도 아니다.
그는 여기서 임금과 소득의 불평등, 즉 노동자 사이의 불평등을 말하고 있다.
아닌가?




4. 청년들은 임금피크제에 찬성한다


: 그런 얘기들은 진보 쪽에서 합니다. 비정규직이 반이다, 이거 큰일이다, 이 이슈야말로 자기들의 타이틀이라고 하시는 분들이 있죠. 자신들이 젤 잘 아는 이슈라고요. 심상정, 노회찬 이런 분들이 그런 걸 쭉 해왔고요. 심상정 대표 같은 경우에는 민주노총 출신이기도 하고요. 그 분들 같은 경우에도 이런 소득 격차를 줄여야 한다고 얘길 하지 않나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 추상적으로는 그렇게 하지만 구체적인 문제에 가면 대기업, 공기업 정규직 노조, 공무원노조, 이런 쪽의 의견과 다른 의견은 한마디도 못하는...


: 한 워딩으로 정리해서 ‘기존의 노조 세력’이라고 해도?


: 네, 기존의 노조 세력과 다른 의견은 한마디도 못하는 존재론적 한계가 있어요.


: 그렇다면 정규직 관련해서는 어차피 임금피크제가 이슈니까요. 정규직 임금피크제에 관련해서 심상정 대표가 장관한테 당신도 임금피크제 할 수 있겠냐면서...


: 그런 무식한 소리를, 장관은 비정규직인데.




: 어찌 됐든 화제가 되는 덴 성공했습니다. 영상 이름이 ‘심상정 사이다’예요.


: 그거는 하나의 기 싸움에서 상대방을 기죽이려는 것에 불과합니다. ‘우와 국회의원이 국무위원, 장관 혼을 냈다. 통쾌하다.’ 이런 정도는 될 수 있겠죠.
 
: 그런데 반응은 아주 열광적이었어요.(웃음)


: 그러니까 장관은 사실 그런 사이다 세례의 대상도 아니고요. 사실 야당이 그런 식으로 하기 때문에 안 되는 거예요. 쇼하면서 그냥 때우고 있는 거거든요. 진짜 중요한 문제가 벌어졌을 때 말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정부에서 개혁을 하려고 하잖아요. 정년을 연장하면서 임금피크제 하자는 겁니다. 나이든 사람들 노동시간도 단축 안하고 어쩌자는 건데. 뭘 어쩌자는 건데. 그건 도둑놈 심보 아냐? 


: “정년 연장은 하지만 임금은 낮출 수 없다.”


: 거기다가 노동시간도 단축 못 하겠다? 그럼 어쩌자는 건데. 아니 그러니까 철밥통 가진 나이 많은 사람들 말입니다. 정년 연장으로 득을 보는 사람들, 60세 가까이 되는 50대 후반의 사람들. 이 사람들 뭐하는 겁니까?


멀리서 보는 국민들의, 청년들의 눈으로 바라보면, 정부에서 오히려 상식적인 얘기를 하고 있고, 상식적인 개혁을 하려고 하고 있어요. 진짜 문제 해결은 못할지언정, 정년 연장에 따른 후속조치로서 임금피크제라도 하려고 하는 거예요. 그걸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상한 사람들이죠. 그런데 정의당은 어떻게 하고 있죠?


: 반대하죠. 정의당은 소위 도찐개찐론이라고 하죠? 유투브에 정말 도찐개찐이라고 율동에 맞춰서 부른 노래가 있습니다. 뭐냐면 “유권자 여러분 맨날 1번이냐 2번이냐 고민하시는데 둘 다 도찐개찐입니다. 2번이 착한 척 하는데 사실은 오십 보 백 보니까 진짜 착한 저희 3번을 뽑아주세요.” 이겁니다.


그런데 여권지지자나 무당층이 보면 거꾸로 2번이나 3번이나 도찐개찐이거든요. 제3정당이라고 해서 눈길을 돌려보면, 사실 거대야당의 2중대로 보이거든요. 주장하는 바가 같잖아요. 화제가 된 ‘심상정 사이다’ 영상이 공허하게 느껴졌던 거는, 사이다 맛이 기존 제품과 똑같아요.


그러니까 1번 유권자나 2번 유권자나 결과적으로는 굳이 정의당으로 전향해 줄 이유가 없어요. 지금 지지율 오른 건 어디까지나 야권이 삽질하면서 발생한 반사이익이고요.


: 더민주당의 혁신위원을 했던 이동학이라는 청년이 나는 임금피크제를 찬성한다고 당론과 다른 말을 했다가 혼이 난 일이 있죠. 구체적인 문제, 실질적인 문제가 나오면 기존 노조의 입장에서 한 치도 못 벗어나면서 어떻게 그게 가치 중심 정당이야?


: 자, 임금피크제에 관한 입장 정리하겠습니다. 찬성하시는 거죠?


: 네 찬성합니다. 하지만 그게 뭐가 그렇게 좋다고 쌍수를 들어서까지 환영하겠습니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지만 그거라도 해야 한다. 이렇게 정리하겠습니다.




5. 불편한 진실을 숨기려고 "99% 대 1%"만 말하지 말자


: 임금피크제를 보면요, 박근혜 대통령이 이걸로 분할통치를 한다고 진심으로 믿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게 노예끼리 싸우게 하는 방법이다.” 그러는 건데요.


세계관의 문제라고 봅니다. 야권의 세계관 자체가 '자본 대 노동'이라는 이분법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잖아요. 압제자이고 탄압적인 악당인 자본과, 자본에 신음하는 선량한 피해자인 노동. 이게 사안에 따라서는 굉장히 추상적이고 막연한 거거든요.


그런데 선과 악의 대결이라고 하는 구도는 야권의 입장에서는 마케팅을 하기엔 아주 좋은 구도긴 합니다. 구체성에 내려오지 않고 추상성에 머무는 이유엔 분명히 전략적인 측면도 있을 거예요. 유권자들 보기에 쉽고 매력적이잖아요.


: 기아자동차에서 8~9천만 원을 받는 사람들과 하청, 하청의 재하청 업체에서 2~3천만 원 받는 노동자들하고 비교해 보면요. 8~9천 만원 받는 사람들이 내가 3배씩이나 받고 있다는 불편한 사실에 대해서는 이야기 안 합니다. 어물쩍 넘어가려고 해요. 어떻게 도망가려고 하냐 하면요, ‘지금 그거보다는 수백 조 씩 가지고 있는 나쁜 놈들이 있지 않냐. 이런 나쁜 놈들의 전횡과 탄압이 있는데 일단 임금 불평등 문제는 좀 나중에’ 어쩌고 하면서 슥 사라진단 말이에요.  


나쁜 자본? 그건 노동 내부의 불평등 얘기를 안 하기 위한 핑계죠. 그거는 그거고 이건 이겁니다. 자본의 문제는 그것대로 풀고 동시에 임금 불평등 문제는 이것대로 해결을 하고 있어야지요. 실제 국민 대다수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오히려 이 문제라고요. 어떻게 하면 골고루 나누냐는 문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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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거를 독자들이 정확히 이해를 하고 넘어가야 하니까 대표님께 중언부언을 좀 시키겠습니다. 한국의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 이겁니다. 이건 주지의 사실이죠. 이 원인을 어떻게 볼 것이냐. 1%대 99%로 보는 시각이 있고. 그런데 동시에 10%대 90%로 보는 시각이 필요하다는 말씀이시잖아요. 기존의 진보는 1%대 99%의 대립구도로 봐 왔고요.


: 교사도, 공무원도 상위 10% 안에 든다고, 그러니까 전교조나 공무원 노조도.


: 예. 그 사람들이 상위 10%면 연봉 6천 만 원 이상, 부부가 같이 하면 1억 가까이가 되겠죠, 가족소득으로 본다면. 이 사람들 10%와 나머지 90%. 자본 대 노동이 아니라 이를테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등. 이게 중요하다는 거잖아요?


: 두 가지 문제가 다 있는데. 해결 방법이 달라야 되겠죠.


: 다르게, 동시에.


: 네. 10%대 90%에 관계는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이라는 목적지를 향해야 합니다. 연공서열이 있는 체제가 아니고 직무 성과급이라고 하는, 그 임금체계를 바꾼다던지 하는 식으로 그 최종 목적지가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이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2~30년 되는 사람들은 별로 하는 일이 없어도 3배씩 받아가고, 아주 열심히 일하는 신입사원은 1/3 밖에 못 받고, 이런 것이 한국만 그렇다는 거 아니에요. 일본도 그랬다고 하지만 많이 바뀌었거든요 이미. 1대99와 10대90의 문제는 해결 방법이 다릅니다. 1%에 대해 우리가 생각하는 중요한 제안은 따로 있습니다.


자기가 큰 공장에서 일을 하건 작은 공장에서 일을 하건 똑같은 일을 하면 똑같은 임금을 받도록 해야죠.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는 그런 원칙이 완전히 무너져 버렸어요. 그냥 조금, 10대 9라든지 10대 8이라든지 하는 정도의 차이가 나는 게 아니고 아예 3~4배 차이가 나니까 문제죠.


: 이제 그 문제를, 재벌들이나 대기업들이 너무 비정규직을 남발했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다, 그런데 왜 이거를 노동자들끼리의 싸움으로 몰고 가느냐, 이게 진보의 논리 아닙니까?


: 노동자들끼리 싸우자는 것이 아니라 노동운동의 영혼을 되찾아서 제대로 하자는 이야기입니다. 나도 30대 이후로는 평생 노동운동의 뒤를 따라다녔습니다. 제 아내도 5~6년 노동운동을 했습니다. 나우정밀이라고 구로공단에 있는 곳에서 노동운동을 했어요. 평등의 가치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 손자손녀에게 할머니 할아버지가 젊었을 때 노동운동했다고 얘기하면, 왜 좋은 학교 나와서 위장취업까지 하면서 노동운동 했는지 그 애들이 이해를 할 수 있겠습니까? 이제 그 노동운동의 결과 노동자 내부에 이렇게 큰 격차가 생겨버린거죠.


그러면 뭐가 잘못되었는지를 고민하고, 반성하고 새로 출발하는 게 맞잖아요. 그런데 왜 자꾸 핑계를 대고 엉뚱한 소리를 하나요? 노동운동은 원래의 전태일 정신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전태일은 이미 재단사야. 몇 년 더 열심히 기술을 배우게 되면 자기는 먹고 살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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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한 장면)



: 그랬죠. 그 분은 굶주리는 여공들 풀빵도 사줘야 하고 그래서 자기는 굶고 그런 분이었잖아요.


: 시다들을 보니까 정말 이거는 아니거든. 자기 입장만 생각한 게 아니라구요. 시다들을 위해서 자기를 희생했습니다. 친구들을, 재단사들을 모아가지고 이래서 되겠냐, 그리고 훨씬 자기들보다 못한 처지에 있는 시다들의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서 부르짖다가 자기 몸까지 희생하였다고. 이게 전태일 정신 아닙니까?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노동운동 조차 각자도생하면 되는 나라였습니다. 자기 노조 조합원만 챙기면 되었지요. 하지만 이제 그런 시대는 갔습니다. 이제 노동운동을 그렇게 하면 노동운동이 불평등을 더 심화시키는 데 일조하게 됩니다. 지금이야말로 전태일 정신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조계사에 끌려나오는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이 머리띠에 적힌 ‘비정규직 철폐’ 구호는 면피용으로 보입니다.


: 왜 면피용입니까?


: 재벌 해체, 비정규직 철폐 그런 얘기들. 그렇게 금방은 실현가능하지 않은 거창한 목표를 내걸고서 그 외에는 다 무의미하다, 그러면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활동은 안 해도 되고 차선의 작은 개선책들을 다 거부해도 된단 말이요.


: 나보다 못한 처지에 있는 노동자를 위해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활동이...


: 없잖아요.


: 네, 사실 없어 보입니다.(웃음)


: 작은 예를 들어볼까요? 정의당 대표 후보로 나와서 화제가 된 청년, 조성주가 청년 유니온 하면서 고용보험료를 기존의 1.3%에서 2%로 올려서 실업급여를 더 받자는 제안을 했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면 노동자가 부담하는 몫은 기존 0.65%에서 1%로 올라가는데, 300만원 월급 받는 노동자라면 아마 한 달에 1만 원쯤 더 납부하는 정도입니다. 그런데 대기업 노동조합이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더라는 겁니다.


왜, 우리가 더 내나, 자본이 더 내고 정부가 더 내야지, 이것이 양대노총의 입장이더라는 겁니다. 하지만 남들 눈에는 대기업 정규직들은 실직의 위험이 거의 없으니까 보험료만 더 내고 혜택은 중소기업 노동자들이 받을 거니까 그런 제안에 대해서 관심이 없다고 보이죠.


그러니까 양대노총이 노동자계급 전체로부터 지지를 못 받고 있죠.



그렇다면 구조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노조는 이익단체다. 이익단체를 공익단체로 바꾸기라도 해야 하며, 또 바꿀 수는 있단 말인가? 



: 그런데 그런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은 노조원들의 투표를 통해서 이 사람들이 선출이 된단 말입니다. 투표자들의 이익을 대변해야지요. 그 사람들의 이익에 반하는 얘기를 할 수 있을까요?


: 그러니까요.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제 제3세대 노동운동이 나와야 한다. 사회민주주의 정신, 평등과 연대의 가치를 내세운 노동운동이 나와야 한다. 그리고 정부가 영세한 기업, 중소기업의 노동자, 비정규직 이 분들을 조직할 수 있는 모든 법적, 제도적 서비스를 해야 한다고 봐요. 뉴딜 시대에 미국의 노동조합 조직율이 40%까지 올라갔습니다.


: 비슷한 의미로 오바마가 노동조합을 만들라고 했습니다. 만드는 거 허용하겠다가 아니라 만들라고 했어요.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이잖아요? 그 자본주의의 나라 미국.


: 그래서 기존의 한국노총, 민주노총과는 다른 제3세대 노동운동이 나와야 된다고 보고요, 이것이 법률적으로, 제도적으로 뒷받침 돼서 나와야 되요. 이것은 절박한 시대적 요구입니다.




6. 대부분의 국민이 소외되고 있다


: 죄송한데 독자들이 이걸 확실하게 이해하고 넘어가야 할 거 같아서요. 전통적으로 보수 기득권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파이론, 낙수효과론이 있지 않습니까. 일단 파이를 키워야 한다. 그러면 떡고물이 너네한테도 떨어진다. 일단 우리가 잔이 차야 물이 밑으로 내려간다. 이런 명징한 구조의 논리죠.


여기에 대항하는 반론은 “너네 잔만 커지잖아. 우리 노동계한테 안 떨어지는데?”라는 논리를 가지고 있잖아요. 우리가 싸워서 투쟁해야 그들이 줄 거지 절대 밑으로 안 내준다는 건데.


자본과 노동의 이 말싸움 논리의 구조를 노동계 내에도 동일하게 적용해서 해석할 수도 있다고 봐요.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 낙수론이죠.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의 임금마저 줄어들면, 비정규직 임금은 얼마나 더 받겠느냐, 이런 얘기인데.


: 불편한 진실을 그냥 덮어 놓자는 이야기인데, 실제 생활 속에 있는 노동자들은 그런 걸 덮어 놓는다고 모르는 게 아니고 다 알고 있죠. 지금 상태로는 90% 노동자들이 야권을 내 편이라고 믿을 수가 없습니다. “난 뭐 지지하는 정당이 딱히 없다.” 이거는요, 정치에 관심이 없는 게 아니라 소외되어 있는 겁니다.


: 소외되어 있다는 게 굉장히 핵심적인 얘기 같아요. 대변 받지 못하는 거거든요. 그 다수의, 대다수 임금 노동자들의 존재적 위기라고 할까요.


: 예. 그러니까 양쪽에서, 여야가 나름대로 포섭을 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대변하고 있지는 못합니다. 양쪽에서 막 싸우면서 “저쪽은 친일파야”, “저쪽은 종북이야” 하면 그 말에 ‘저 놈들이 더 나쁜 놈들이지’ 하면서 이쪽을 찍어주거나 하는 건 있지만 진짜 내편이라고 느끼지는 못하죠.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는 정도가 아니라 대다수가 그렇지 않나 싶거든요.


: 대다수 사람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그런 정당이, 진정한 정당이 없다는.


: 정당은 물론이고 노동조합도 그렇고요.


한국의 노동시장이 이제 두 종류로 나뉩니다. 한 종류는 이렇게 ‘철밥통’이라고 말할 수 있죠. 노동조합의 보호를 받고 고용이 안정되어 있고, 이 사람들은 임금수준이나 모든 면에서 세계적인 수준이에요. 그 노동자들의 임금수준을 국제적으로 비교해도 무난하거든. 밀리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이거죠. 이 사람들 일생 받는 연금까지 생각하면...


: 세계적이다.


: 세계적이다. 임금 플러스 연금을 계산하면 이미 세계적인 수준이다. 중고등학교 선생님들 방학 때만 되면 해외여행 다니잖아요. 그런 생활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 사람들은 큰 경쟁이 없단 말이에요. 시험 한 번 쳐서 그 안에 들어가고 나면 경쟁이란 게 별로 없어요.


나머지 90%는 경쟁이 심각해요. 조금 일 못하면 해고시켜 버리고, 노동시장에 인간은 흘러넘치고요. 비정규직이란 게 일회용품이나 다를 바가 없고요. 개인이 아니라 회사 단위로 생각을 해봐도 다른 업체에 일주면 그만입니다. 여기서는 노동시장이 활성화 되어있고, 치열한 경쟁 속에 놓여있습니다.


: 노조 조직율을 보니까 우리나라 정규직 노조 조직율은 전체 노동자로 보면 10%지만 대기업 정규직의 경우는 40%가 넘더라고요.


: 그렇겠죠. 삼성이나 이런 몇 개 빼놓고 나면 대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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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세계일보>)


: 그런데 비정규직만 보면 노조 조직률이 거의 없다시피 하고요. 그러면 사회민주당의 정책으로 돌아가서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하겠다고 하는데 좀 더 구체적인 어떤 방법이 있다면요?


: 동일노동 동일임금, 이 구호는 예전부터 있었고요. 산별노조 이야기도 많았었잖아요. 그거는 말하자면 작은 공장이든 큰 공장이든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모두 같은 조합 조합원이면, 자본가 대표와 노동자 대표가 이것해서 협상한 내용 모두가 적용을 다 되게 하자는 뜻인데.


우리나라가 하루아침에 그렇게 되지를 않잖아요. 그런 나라가 부럽지만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거든요. 그래서 현실적인 거를 실험해 나가면서 한편으로는 전위적이고 창의적이어야 합니다.


: 그것을 이제 제도적으로.


: 뉴딜정책과 같은 것이 나와야죠. 루즈벨트의 뉴딜정책과 같은, 완전히 다른 뭔가가 나와야 되지 않을까요?


: 그러면 지금 당장은요, 일단 재벌이나 새누리당 같은 경우가 정규직들의 임금을 낮추고 비정규직 임금을 좀 높여야 된다고 하는, 비교적 상식적인 해법을 내놓고 있고요.


여기에 대한 반발과 임금피크제에 대한 반발은 비슷한 맥락으로 보여요. 아랫돌 빼서 윗돌 괸다는 식의 비판, 혹은 비난. 자, 그럼 정부의 논리는 맞습니까?


: 전반적으로 봤을 때 국민들 눈에는 그래도 정부는 노력하고 있다. 뭔가를 조금이라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보입니다.


: 정부가 개선 의지와 노력은 있다, 적어도.


: 예. 오히려 지금 개혁을 하는 쪽이 정부고, 정부가 조금이라도 하려고 노력하고 있고요. 그거를 막고 있는 수구, 보수 세력이 야당이나 민주노총 등입니다. 한국노총은 그 사이에서 ‘이거 어떡하지’ 이러고 있는 거고요. 국민들 눈에 그렇게 보이잖아요. 여론조사하면 정부의 노동개혁에 대한 지지가 두 배쯤 나오는 이유죠.




7. 이제 뉴레프트 운동이 필요하다


: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노동운동과 진보정치, 야권의 진화를 위해서 뉴레프트 운동을 하자는 분들도 있는데요. 그런데 뉴레프트는 뉴라이트와 어떻게 다릅니까?


: 뉴라이트 이야기를 먼저 하겠는데요. 그 분들(뉴라이트)이 보기에는 그 전의 보수는 반공주의. 반공 밖에 내용이 없는 보수 있잖아요. 반공이라는 안티테제만을 갖고 있는 보수에 문제점을 느낀 것이죠. 앞으로는 보수는 이런 극우적인 보수, 반공극우와 많이 달랐으면 좋겠다는 거였습니다.


그 분들의 초반의 노력은 평가를 받았다고 봅니다. 그래서 이명박 대통령도 만들었잖아요. 박근혜와 이명박이 붙었을 때 뉴라이트 전국연합에서 이명박을 밀어가지고 당내의 열세를 딛고 대통령이 되었었고요.


그런데 또 다시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면서 뭐랄까, 뉴라이트 운동 자체가 올드 라이트와 구분이 별로 안 되는 상황이 되었는데요. 저는 이렇게 봅니다. 자기들이 집권하면서 이렇게 된 거 아닌가. 중요한 건 그 사람들이 10년의 야당 생활을 할 때는 상당히 구분이 되었다구요.


: 올드라이트와.


: 그렇죠. 국민들의 눈에 상당히 구분이 되었고요. 보수가 상당히 진화를 하는구나 느꼈기 때문에 그쪽으로 표가 넘어갔다고 저는 봅니다.


: 자, 그럼 이제 대표님의 뉴레프트.


: 야권에서도 올드레프트와 구분되는 뉴레프트 운동같은 것을 시작해서 진화를 시작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데 뉴레프트가 뉴라이트와의 구분이 뭐냐 이게 원래 질문이었잖아요? 제 대답은 이렇습니다. 그쪽은 자유주의 철학을 바탕에 깔고 있습니다. ‘우리가 북한과는 다르게 개인의 자유가 주어졌기 때문에 이 나라가 이렇게 발전했다.’


: 그쪽은 개인의 자유에 방점을. 그쪽에서 흔히 ‘자유대한’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 처럼요. 아 그 용어 되게 촌스럽긴 한데.(웃음)


: 네. 그런데 저의 생각은 이런 거죠. 자유만 주어진 게 아니라 평등한 나라이기도 했기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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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하신 토지개혁과 같은 맥락으로.


: 네. 그러니까 예로 들면 평등의 부분을 예로 들면 저쪽에는 한 페이지를 쓸 거를 나는 열 페이지를 쓰겠죠. 농지, 토지개혁 이야기를. 그쪽은 한 페이지를 쓰게 할당할 거 같으면 내가 만약 같은 책을 쓸 땐 열 페이지를 쓸 것이다, 라는 겁니다.


: 그러시겠죠.


: 또 내가 한 페이지 밖에 안 쓸 거를 거기선 열 페이지 쓸 대목이 있을 거라구요. 그게 가치관의 차이죠. 가치관의 차이. 자유를 주요한 가치로 보느냐 평등을 더 중요한 가치로 보느냐. 그 차이는 분명히 있습니다.


: 그러면 대한민국 건국의 긍정성, 민주화와 산업화라는 양(兩) 근대화의 의미를 인정하는 것은 뉴라이트와 뉴레프트가 같고요.


: 그 이유를 설명하는 데 있어 무엇이 더 중요했느냐를 따진다면, 비중이 다르다.


: 자유와 평등 두 가지의 비중이 다른 거죠.


: 네, 저는 평등이죠.


: 그 평등이 이제 다시 필요하다.


: 필요한 시대가 왔다.



그렇다. 그는 사회민주당 대표니까.



주대환은 국민의 판단과 선택에 대한 믿음이 있다. 그를 이해하기 위한 핵심적인 맥락이다. 이 이야기가 전개될 다음 편 [도발인터뷰]주대환을 만나다(下)에 담길 내용은 도발의 수위가 폭발물 수준이다. 오프 더 레코드를 약속했다. 마지막 편에서 만나 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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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대환을 만나다(上) : 나는 대한민국을 긍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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