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뿜에게 삐진 사람들

 

22일 검찰 중간 간부 인사가 있었다. 이번 인사 부임은 26일이다. 박범계 법무부장관 취임 후 첫 인사권 행사다. 언제나 말 많고 탈 많은 검사 인사지만, 이번에는 이전과 그 대치 양상이 달랐다.

 

추미애 장관 시절에는 윤석열 총장과 대립이었지만, 이번에는 박 장관과 신현수 민정수석과의 갈등이 요란했다. 그렇다고 윤 총장이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박 장관과 인사를 앞두고 미리 의견을 전하는 자리에서 총장은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교체 등 자신의 징계에 가담한 검사들은 교체 해달라, 월성원전 감사 비리 의혹 등 기존 사건의 수사팀은 이동 말고 자리를 유지시켜 달라, 한동훈 원상 복귀 시켜 달라 등등 요구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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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추미애 장관에 의해서 서울중앙지검장에 발탁돼 총장과 사사건건 각을 세웠던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의 인사 요구도 만만치 않았다. 윤 총장의 징계를 앞두고 후배 검사들과 대립했던 이 지검장도 ‘참모라인 교체’를 요구했다. ‘검언유착’ 사건과 관련해 한동훈 검사장의 무혐의 결재를 요구하면서 이 지검장에 반기를 든 변필건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장의 교체를 요구한 것이다.

 

이쪽저쪽에서 갖은 요구와 말이 많은 가운데 박범계 장관은 윤 총장의 요구도, 이 지검장의 요구도 들어주지 않고, 공석만 채우는 선에서 인사를 내버렸다. 김욱준 서울중앙지검 1차장의 사표로 공석이 된 자리에 군 사망사고 진상 규명 위원회에 파견됐던 나병훈 차장검사가 임용됐다.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평가 의혹 사건, 검언유착 사건,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 의혹 사건, 이용구 법무부 차관 택시 기사 폭행 의혹 사건,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사건 담당 검사들 모두 유임되면서 제 자리를 지켰고, 한동훈 검사장도 계속 충북 진천에 남아있게 됐다. 사실상 인사를 하지 않았다고도 볼 수 있다.

 

윤 총장 요구도, 이성윤 중앙지검장 요구도 모두 들어주지 않은 것이다. 이에 윤 총장뿐만 아니라 이성윤 지검장도 적잖이 심기가 불편하다는 소식이 검찰 쪽으로부터 흘러 나온다. 다만 이 둘은 대놓고 삐진 티를 안 냈다 뿐.

 

이 상황에서 갑툭튀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은 ‘박범계 장관에게 삐졌다’고 대놓고 표시하는 이가 있었으니, 신현수 청와대 민정수석이다. 박 장관이 윤 총장과 뜻을 같이한 자신의 의견을 무시했다면서, 사의를 표하고는 휴가를 낸 신 수석은 출근은 하지 않고 자신의 지인들에게 “박 장관과는 평생 만나지 않을 것”이라는 문자를 보내 청와대에 복귀하지 않을 것처럼 굴더니, 휴가가 끝나고서는 정상적으로 청와대에 출근해 자신의 “거취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일임하겠다"라며 일으킨 소란에 비해 싱거운 결말을 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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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은정 겸직, 뭔지도 모르면서 잘못됐다는 조중동

 

얼핏 보면 어느 쪽도 얻은 게 없고, 웃은 자는 없고, 티 안 내고 분노를 삭이는 자와 티 팍팍 내고 삐져 며칠 출근 안한 자만 있는, 이도 저도 아닌 인사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인사의 핵심은 정치권에서도, 법조계에서도, 검찰 내부에서도 그렇듯, 모두 한목소리로 임은정 대검 감찰정책연구관의 서울중앙지검 검사 겸직 발령에 있다고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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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를 비롯한 수구언론에서는 박 장관이 인사를 발표하기도 전부터 임 검사를 친조국 친정권 인사로 부르면서 정권에 각 세운 수사팀은 한직 발령 내고, 코드에 맞는 인사를 승진시키려 한다는 프레임을 짰다. 임 검사를 공석이 예정된 감찰3과장으로 보내려 한다는 뇌피셜 망상에 가까운 보도를 몇 날 며칠 뿌려댔지만 보기 좋게 빗나갔다.

 

임 연구관의 서울중앙지검 검사 겸직 발령은 어떤 의미인가.

 

이 인사 직후, 조선일보 등에서는 ‘임은정에 칼 쥐여준 박범계, 한명숙 재수사로 또 윤석열 죽이나’, ‘한명숙 재수사 칼 쥔 임은정… 검사가 유죄 선입견 논란’라는 식으로 제목을 뽑아 보도하는가 하면 어디서는 ‘대검 감찰연구관의 중앙지검 검사 겸직은 전례가 없는 이례적인 형태’라고 비판한다. 마치 대검 감찰정책연구관으로 재직하면서 수사권 없던 임 검사에게 억지로 수사권을 쥐어주는 발령을 내, 한명숙 수사팀이 유죄라는 전제를 깔고 기소를 밀어붙여 총장을 죽이기 위한 인사라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개소리다.

 

추미애의 한 수와 임은정 겸직의 의미   

 

우선 임 검사가 중앙지검 검사 겸직 발령을 받으면서 없던 수사권이 생겼다는 말은, 반은 틀렸다. 본래 임 검사는 대검 검찰연구관으로 수사권이 있다. 고등검찰청 감찰부와 대검 감찰부의 1과장, 3과장, 대검 검찰연구관들은 이미 수사권을 가지고 있다. 임 검사도 대검 검찰연구관으로 감찰 3과에 소속된 감찰정책연구관이다. 대검 감찰부에는 감찰 1, 2, 3과가 있는데 3과에서는 주로 검찰청 소속 고검검사급 이상 검사의 비위에 관한 조사, 정보 수집 등 사항, 감찰에 관한 법령 등 연구 및 개선에 관한 사항을 관장한다.

 

다만 우리가 알고 있는 임 검사의 정확한 직책이 대검 감찰정책연구관으로, 감찰 정책만 연구하는 순수한 연구직인 줄 착각할 수 있는데, 정확하게는 검찰연구관으로 수사권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임 검사의 정확한 직책인 감찰정책연구관은 어떻게 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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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당시 추미애 장관은 원 포인트 인사로 임 검사를 대검 감찰정책연구관으로 직책을 박아 발령냈다. 법무부가 검사들을 대검 감찰부로 발령낼 때는 보통 대검 검찰연구관으로 발령낸다. 그럼 검찰총장이 그 안에서 직제 발령, 배치 등을 하게 된다.

 

그래서 단순히 검찰연구관으로 발령을 내면 검찰총장의 재량으로 임 검사를 감찰 업무에서 배제하거나 직책을 변경할 가능성이 있어, 이를 막기 위해 추 장관이 지난 해 임 검사를 대검 검찰연구관으로 발령을 낼 때 감찰부로 보내기 위해 감찰정책연구관으로 이름을 박아 발령낸 것이다.

 

그러면 당연히 검찰총장이 임 검사의 서울중앙지검 직무대리 발령을 같이 냈어야 한다. 추 장관도 서울중앙지검 직무대리 발령을 내라고 했었다. 그런데 윤 총장이 감찰을 못 하게 하려는 의도였는지, 임 검사에겐 진짜로 ‘연구나 하라’는 깊은 뜻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서울중앙지검 직무대리 발령을 내지 않았다. 따라서 법무부가 이례적인 게 아니라 대검이 이례적인 행태를 보여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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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연합>

 

수사권은 기소를 전제한다. 임 검사는 수사권이 있었지만, 대검 소속이니 대응기관이 대법원이었지, 서울중앙지방법원이 아니었다. 대검 감찰정책연구관으로서는 서울고검 감찰부나 대검 감찰부에서 징계하기 위해 감찰을 하다 수사까지 해야 하는 감찰사건이라면 수사할 수 있었지만, 중앙지방법원에 기소를 해야 하는데, 소속 기관과 대응기관이 달라서 기소가 불가했다. 그래서 이번 박 장관이 임 검사를 대검 감찰정책연구관으로 그대로 두면서 중앙지검 검사로 겸직 발령을 내게 된 것이다.

 

해서 임 검사는 대검 감찰부 소속을 유지하면서 중앙지검 검사로 겸임, 감찰 사건 관련 수사를 개시할 권한을 갖게 됐다. 검찰연구관으로서 검사 비위에 대한 감찰이 가능하고, 중앙지검 검사로서 수사를 진행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발령 이유에 대해 법무부는 “감찰 업무의 효율과 기능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 검사도 인사 발표 직후, 자신의 SNS를 통해 “여전히 첩첩산중이지만 등산화 한 켤레는 장만한 듯 든든하다"라고 소회를 밝혔다.

 

임 검사가 이번 발령으로 한명숙 모해위증교사 혐의 사건에 대한 감찰 사건의 수사권까지 얻게 됐다는 소리는 이런 행간이 생략된 채 나온 말이다.

 

임 검사가 받은 겸직 발령은 이례적인 인사도 아니다. ‘별장 성접대’ 김학의 전 차관의 출국금지 건으로 이름이 오르내린 이규원 검사가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에 파견 나가면서 동부지검에 직무대리 발령을 받았던 케이스가 이미 있다.

 

임은정 검사에게 일을 할 수 있게 만든 박범계의 한 수 

 

박 장관은 공개적으로 절교를 선언한 신현수 민정수석의 요구도, 그와 연장선상에 있는 윤 총장의 요구도, 그 반대에 있는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의 요구도 전부 무시하고 이들 모두 뿔나게 한 이번 인사에서 유독 임 검사만 튀는 듯 보이는 인사를 내게 된 배경은 어디에 있는 걸까?

 

정치권과 법조계에서는 “박 장관이 이번 인사를 통해 한명숙 구속 기소를 위한 검사들의 모해위증교사 혐의의 강한 진상 규명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고 평가한다.

 

임 검사는 9월부터 대검찰청 감찰정책연구관으로 부임해 ‘한명숙 전 국무총리 뇌물 수수 사건’의 수사팀이 무리한 구속을 위해 증인에게 위증을 교사하고(모해위증교사) 강요‧강압을 가한 혐의를 받고 있는 사건의 감찰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물론 주임검사는 허정수 감찰 3과장이었고, 임 검사는 주로 조사에만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 사이 <뉴스타파>와 <KBS 시사직격> 등을 통해 검사가 지난 2010년 뇌물 수수 혐의로 기소된 한명숙 전 총리의 무리한 구속을 위해 증인에게 위증을 교사했던 새로운 정황증거들이 터져 나왔다.

 

그동안 임 검사는 이 업무를 담당하면서 대검 감찰정책연구관 신분으로 수사 권한 없어 제대로 된 감찰 업무를 진행하기 어렵다는 애로를 자신의 SNS에 토로하기도 했었다. 임 검사 혼자 한명숙 전 총리 모해위증교사 혐의 건에 대한 감찰을 담당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여러 애로사항 때문에 감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채 3월 22일 공소시효 만료를 코앞에 둔 것이다.

 

본래 한명숙 구속 기소 사건은 당시 특수부 검사들 작품으로, 감찰 본령의 임무를 담당하려는 의지를 가진 임 검사가 이 사건을 감찰 하는 것은 윤 총장의 패거리나 다름없는 과거 특수부 라인들을 감찰하고 상황에 따라서는 기소해 법정에 세울 수도 있어, 이를 그대로 두고 볼 수 없었던 윤 총장 이하 검찰 내부에서도 감찰방해가 적잖이 심했다.

 

그렇다.

 

검찰 내부를 견제하고, 감시하는 부서로 검찰 내에서도 힘 있는 부서인 대검 감찰부라도, 윗선에서 조직적으로 감찰 업무에 개입하면 힘 빠진 연구부서가 될 수 있음을 임 검사 사례를 통해 알게 된 것이다. 때문에, 그동안 검찰개혁의 일환으로 주장돼 온 검찰 자체의 감찰권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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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경희대학교 서보학 교수는 “자기 식구 감싸기 위해서 사실상 감찰방해를 대검차원에서 한 것이다. 검찰 자체의 감찰권이 제대로 진상조사도, 징계도 안 하는 방패막이로 작용하는 상황이다. 만약에 한명숙 전 총리의 모해위증교사 사건에 대한 임 검사의 정당한 감찰활동에 대해 대검 차원의 위법한 방해가 있었다면, 추후 공수처에서 수사해야 할 사항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8년 전, 결정적 장면  

 

마지막으로, 오늘의 이런 상황을 예고했던 운명 같은 장면을 보고 마무리하자.

 

때는 2013년 2월 19일, 제313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법무부 사무보고 및 감사의 한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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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통합당 박범계 위원(이하 ‘뿜’) : 임은정 검사, 정직 4개월 중징계를 하셨습니다. 이것 직무이전지시명령 누가 내렸습니까? 공판2부장이 내렸지요?

 

법무부장관 권재진(이하 ‘재’) : 예?

 

뿜 : 공판2부장이 내렸지요? 공판2부장, 직무지시명령권 없습니다.

 

재 : 있습니다……

 

뿜 : 검찰총장과 검사장과 지청장밖에 할 수가 없어요. (중략) 이것은 직무이전명령 자체가 위법합니다. 그 대목에 대해서도 한번 설명 좀 해보십시오. 정직 4개월 이것이 말이 됩니까?(발언시간 초과로 마이크 중단)(마이크 중단 이후 계속 발언한 부분) 정의를 얘기하는 검사에 대해서……

 

재 : 징계위원회에서 내린 결정입니다.

 

뿜 : 징계위원장이 장관님이시잖아요?

 

재 : 예, 저 혼자 결정하는 게 아니고 위원들하고 같이 하는……

 

뿜 : 물론인데, 이렇게 미웠어요? 제가 보기에는 검찰의 미래이고 희망입니다. 이런 검사들이 앞으로 나와야지 검찰이 개혁됐다고 할 수 있고 국민들이 신뢰합니다. 이런 친구들을 이렇게 미워하고, 이렇게 정직4개월의 중징계를 내리는 검찰의 미래가……

 

재 : 자신을 미워한 것이 아니라 검찰의……

 

뿜 : 그러면 예뻤습니까? 예뻤는데 정직 4개월 한 것이에요?

 

 

뿜은 훗날 법무부장관이 된다.

 

그리고 8년 후, 2021년 2월 22일, 임은정 검사가 제대로 일을 할 수 있는 겸직이라는 판을 깔아준다. 일을 하고 싶은 사람이 일을 할 수 있게 만들겠다는 의지는 이미, 8년 전에 그려진 그림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