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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마리, 결과에 대한 책임

 

노가다 용어 중 ‘오사마리’라는 말이 있다. 수습, 안정이라는 뜻의 일본어 おさまり[오싸마리]에서 파생했다. 현장에서는 통상 ‘마무리 짓다’ 정도의 의미로 쓴다. 주로 작업반장이 인부들에게 작업 지시할 때 이 말을 쓴다.

 

“어이~ 김 씨. 여기 오사마리하고, 101동 뒤쪽으로 넘어오슈~ 먼저 가서 청소하고 있을 테니까.”

 

이 오사마리라는 단어가 형틀목수에겐 조금 더 무게감 있는 단어로 쓰인다. 어째서 그런지 설명하려면 형틀목수가 어떤 일을 하는지부터 얘기해야 하는데, 그걸 일일이 말하자면 재미가 겁나게 없다.

 

그냥 이렇게 가정해보자. 지금부터 형틀목수는 모래성을 쌓는 사람이다. 작업 특성상, 모래성을 열 번 쌓으면 보통 한두 번은 무너진다. 형틀목수 일이라는 게 실제로 그렇다. 하청에서도 그 정도의 사고는 늘 염두에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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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모래성이 무너지면 한마디로 다 된 밥에 재 뿌리는 거다. 모래성 쌓기까지 쏟아부은 형틀목수팀의 수고, 다시 말해 시간과 돈이 사라지는 순간이다.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니다. 무너진 모래 수습하고 다시 쌓기까지 두 배, 세 배의 시간과 인건비가 깨진다.

 

그런다고 형틀목수팀이 금전적으로 배상하는 건 아니지만, 도의적인 책임과 쪽팔림을 피할 순 없다. 자신들이 일 못 한다는 걸 만천하에 드러내는 꼴이니 말이다. 그나마도 그 정도로 끝나면 다행이다. 통상적인 확률 이상으로 빈번하게 모래성을 무너뜨릴 경우, 현장에서 쫓겨나기도 한다. 하청 입장에서 손해를 감수하며 일 못 하는 팀을 계속 안고 갈 순 없는 노릇인지라.

 

그런 맥락에서 형틀목수는 모래성 쌓을 때보다, 쌓아 올린 모래성을 견고하게 다질 때 더 신경 써서 일한다. 최종적으로 그걸 점검하는 게 작업반장인데,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한 사람 또한 작업반장이다 보니 여기저기서 동시다발적으로 쌓고 다지는 모래성을 일일이 확인하지 못한다. 그럴 때 작업반장이 이렇게 말한다.

 

“철수 씨, 여기 확실하게 오사마리 짓고 나오세요. 철수 씨 믿고, 저는 이 작업장에서 손 텁니다~”

 

이 말인즉, 나(작업반장)는 더 이상 여기에 신경 쓸 여유가 없다. 철수 너에게 이 모래성에 대한 모든 책임과 권한을 부여하마. 그러니 철수 너는 이 모래성이 무너지지 않도록 꼼꼼하게 다져라. 만약 무너졌을 경우, 나는 물론이거니와 너 또한 그 결과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알았느냐???

 

그러니까 형틀목수에게 ‘오사마리’란, 단순한 마무리가 아니라 결과에 대한 책임까지 포함된 단어다. 한마디로 네가 싼 똥, 네가 치우라는 얘기다.

 

책임지지 못했던 삶을 반성하며

 

장담컨대, 책임지지 못한 삶이었다. 얼마나 많은 시간, 무책임한 태도로 주변 사람에게 잘못을 떠넘기고, 책임을 회피하며 살아왔는지 모르겠다. 내가 미처 기억하지 못하는, 어쩌면 의도적으로 잊어버린 일들까지 더한다면 아마도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으리라.

 

그렇게 난 함께 일했던 동료들에게, 만났던 애인에게, 가족에게 상처를 주며 살아왔다. 심지어는 키우던 고양이에게까지.

 

내 몸 편해지자고 모르는 척 떠넘겼던 공동의 과업들, 함께 미래를 그려보자는 애인에게 “아직은…”이라는 말과 함께 슬쩍 화제를 돌리곤 했던 나날들, 그렇게 저버렸던 신뢰, 부모님을 모시겠다던 친형의 말에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던 순간, 꿈을 찾아 서울로 가겠다며 떠넘기다시피 고양이를 부모님께 맡겼던 날까지……. 나는 그 모든 순간마다 알고 있었다. 내가 얼마나 못난 놈인지. 얼마나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놈인지 말이다. 애써 외면하려고 노력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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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나는 나에 대한 혐오를 키워왔던 거 같다. 그런 혐오가 쌓이고 쌓여 마침내 폭발했다. 외딴 방에서 벌거벗은 ‘못난 놈’과 마주 앉았다. 그때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 못난 놈 하나 책임지는 것조차 버거웠다.

 

그래서 난, 책임지지 않는 삶을 살기로 했다. 아주 어리석게도 말이다. 책임질 수 없을 것 같은 일을 만들지 않기로, 책임지지 못할 것 같은 관계를 맺지 않기로 한 거다. 하던 일과 맺었던 관계를 모두 정리하고 도망치듯 노가다판에 온 것도 그즈음이었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몸 쓰는 일만 하고 싶었다. 그렇게 얼마간 돈을 모아 어디로든 떠날 생각이었다. 영영 떠날 순 없겠지만, 다만 1년이라도 한국 땅을 벗어나 있으면 뭔가 길이 보이겠거니, 하는 막연한 생각을 했던 거 같다.

 

그래서 더 책임질 걸 만들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당장 내일이라도 마음만 먹으면 떠난다는 각오로, 주변을 최소화했다. 하다못해 물건 하나를 사더라도 떠날 때 가져갈 건지, 버릴 건지 고민하면서 샀다. 돌이켜보면 참으로 무식하고 미련한 나날이었다.

 

노가다판에 오고 얼마나 지났을까. 6개월? 1년? 나는 분명 ‘캐리어’를 옆구리에 품고 지냈다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그 짧은 사이에 벌써 똥을 잔뜩 싸질러 놓고 있었다. 의식하지 못했을 뿐, 나는 또 꾸역꾸역 책임질 것들을 만들어왔고, 새로운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때 비로소 깨달았던 거 같다. 책임지지 않는 삶이란 불가능하다는 걸 말이다. 다만 한 걸음이라도 걸으면 벌써 발자국이 남고, 손끝만 스쳐도 지문을 남기는 게 인생일진대, 책임지지 않는 삶이라는 게 도대체가 가당키나 한 걸까? 그런 삶이 가능하다고, 나는 진심으로 믿었던 걸까?

 

책임지지 못하는 나를 더 이상 미워할 수 없어, 책임지지 않는 삶이 가능할 거라고, 스스로를 기만했던 건 아닐까. 잘 모르겠다. 외딴 방에서 ‘못난 놈’과 마주했을 때, 도대체 난 어떤 생각이었고, 어떤 마음이었는지 말이다.

 

나는 옆구리에 품었던, 아니 품었다고 믿었던 ‘캐리어’를 던져버렸다. 떠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여기에서조차 도망쳐버리면 영영 못난 놈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난 오늘도 길냥이 사료를 준다

 

몇 달 전, 이사했다. 이사하고 며칠이나 지났을까.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3층이어서, 고양이가 있을 거라곤 미처 생각 못 했다. 지붕과 옥상을 넘나들며, 옥상과 연결된 뒷문으로 오는 모양이었다. 반가웠다. 얼른 사료를 사다가 물그릇과 함께 놔줬다. 다음날 보니 모두 깨끗하게 비어 있었다. 다음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녀석은 조용히 와서 그릇을 비우고 갔다. 그렇게 ‘쨍이’와 인연을 맺었다. 한동안은 ‘쨍이’뿐이었는데, 맛집이라고 소문이 났는지 ‘쫄보’, ‘아수라’, ‘노랭이1’, ‘노랭이2’까지, 자꾸만 식구가 늘었다.

 

올 초, 일이 없어 한창 쉴 때였다. 주머니 사정이 간당간당했다. 농담 반, “에휴~ 내가 굶을지언정 냥이들 사료는 줘야지.” 하면서 사료를 ‘또’ 주문했다. 아예 20kg짜리 대용량을 시켰다. 내 얘기를 듣던 친구가 웃으며 말했다.

 

“푸하하하. 그렇게 고양이가 좋냐? 그럼 한 마리 데려다가 키우든가. 혼자 지내기 외롭다며?”

 

“마음은 키우고 싶지. 근데 내가 고양이 키울 자격이 있나? 그때는 어렸고, 내가 고양이 키우는 걸 너무 쉽게 생각했던 거 같아. 지금도 ‘댕이’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아파.”

 

댕이는 내 인생 첫 반려동물이었다. 그전까지 내가 동물을 키우리라곤 상상도 못 했다. 친구 반려묘가 새끼를 몇 마리 낳았다기에 구경이나 한 번 하자고 갔다가, 고양이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그렇게 2년쯤 키웠다. 그러다 서울로 직장을 옮기게 됐다. 서울 월셋집에서 반려동물을 허락하지 않았다. 부모님께 댕이를 맡길 수밖에 없었다. 엄마에게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엄마는 약까지 먹어가며 어떻게든 키워보려 했으나 알레르기가 너무 심해졌다. 결국, 지인에게 입양 보냈다.

 

“마음이 아프겠지. 그래도 이렇게 고양이를 예뻐하는데, 진지하게 한 번 고민해봐~”

 

“아냐~! 다시는 같은 잘못 반복하고 싶지 않아.”

 

여전히 난, 매 순간을 주저하면서 살아간다. 무언가를 선택하거나 결정할 때, 내가 또 괜한 일을 벌이는 건 아닌가 갈팡질팡한다. 책임지지 않는 삶이 불가능하다는 걸 알면서도, 어떻게든 발자국을 안 남겨보려고 슬금슬금 걷는다. 아직은 내가 어디까지 책임질 수 있는 놈인지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만큼은 분명 안다. 내가 싼 똥은 반드시 내가 치워야 한다는 걸 말이다.(나는 이걸 ‘오사마리 정신’이라 명명했다.) 이게 내가 형틀목수가 되어서야 겨우 배운, 무섭지만 분명한 진리다.

 

그래서 난 오늘도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퇴근하고 집에 오자마자 사료 그릇을 가득 채워놨다. ‘쨍이’와 ‘쫄보’와 ‘아수라’와 ‘노랭이1’과 ‘노랭이2’의 발걸음이 헛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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