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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영화의 중요한 내용들이 포함되어있습니다. 영화의 재미를 오롯이 만끽하고 싶으신 독자 분께서는 

관람 후에 읽으시길 권합니다. 

 

가족의 역사

 

<신과함께>와 <승리호>는 정말 재밌게 봤지만, 그닥 슬프진 않았다. 스크린 너머의 누군가가 주택 복권 추첨 방송 진행자처럼 "자! 지금부터 졸라 슬픕니다. 준비하시고~ 쏘세요!"라고 외치는 것만 같아서. 생각해보니, 그 목소리는 이야기 구조의 문제가 아니었다. 나와 접점이 약한 슬픔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염라대왕 앞에서 참회할 정도의 큰 죄를 아직 엄마한테 지어본 적 없는 착한 아들이고, 딸을 잃어버린 비통한 부정을 알 턱이 없는 싱글남이기에, 차태현과 송중기의 오열은 “그러고 보니 엄마가 밥솥은 역시 쿠쿠라고 했었는데” 혹은 “염병 장가나 갈 수 있을까” 정도의 뜻밖의 감상으로 날아가 버리고 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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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아직 싱글이야

 

일상 속에서 슬픔은 엉뚱한 곳에서 튀어나온다. 예전 같았음 분명 불호령이 투하될 각인데, 한결 누그러진 아버지의 파이팅에서 그의 세월을 느끼고, 이미 한 번 알려드린 스마트폰 기능에 대해 앵콜 설명회를 개최할 때 노트에 받아 적는 어머니의 집중력이 애잔하다.

 

그렇다고 이 멜랑꼴리한 감정이  '아이고 엄니 아부지' 부둥켜안고 대성통곡 할 정도로 막 미치고 환장할 만큼의 슬픔은 또 아니다.

 

그건 그냥 먹먹한 여운 같은 거다. 피하거나 극복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매복하고 있던 것들이 때맞춰 등장하는 것이며, 앞으로도 생각지도 못한 길목에서 그런 비슷한 것들은 불쑥불쑥 튀어나와 명치를 툭툭 쳐댈 것이다. 그들이 내 곁을 영영 떠나는 그날까지.

 

가족의 역사란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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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나리>의 주인공은 한 가족이다. 70년대 미국으로 이민 간 가난한 부부. 약한 심장을 갖고 태어난 막내아들. 그래서 빨리 철든 첫째 딸. 고된 맞벌이 외노자 부부의 육아를 돕기 위해, 한국에 있던 외할머니가 아칸소 주 오지마을 바퀴달린 집으로 소환되며 영화가 시작된다.

 

이야기는 기승전결 없이 평평하다. 고만고만한 갈등이 듬성듬성 흐를 뿐이다. '이민 가정의 개고생 스토리'. '어릴 때 물 안 나오는 컨테이너 박스에서 산 썰'. 이 정도로 다 욱여넣을 수 있다. 열심히 늘려봤자 5부작 인간극장 <할머니와 바퀴 달린 집> 정도.

 

하지만 발췌되어 꼼꼼히 서술된, 어느 ‘가족의 역사’는 굉장한 힘을 가지고 있다. 영화 어디에도 대성통곡 코스는 없지만, 명치가 아릿아릿하다가 끝에는 먹먹해진다.

 

개척자와 관리자

 

아버지 제이콥(스티브 연 분)은 도시에 잘나가던 병아리 감별사였다. 병아리 똥구멍으로 성별을 분간해내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워서 예나 지금이나 보수가 좋다. 외벌이로 한 이민 가정을 지탱해 낼 만큼 감별능력이 뛰어났다. 큰 부귀영화는 아니었더라도, 대강 먹고 살만했다.

 

문제는 이 아버지가, 자아실현 욕구로 가득 찬 70년대 최초 욜로족이었던 것이다. 한 번뿐인 인생 병아리 똥꾸멍만 들여다보고 끝낼 수 없다는 뉴 프론티어 개척정신이, 그와 그의 가족을 아칸소 주 오지 마을로 이주하게 한다.

 

그의 꿈은 농사였다. 그냥 무작정 땅을 파 재끼며 안빈낙도하려는 그런 시시한 농부가 아니었다. 그에겐, 아메리칸드림을 타고 밀려오는 한인들에게 한국 채소를 재배해 팔겠다는 원대한 플랜이 있다. 아버지에겐 계획이 다 있었던 것이다.

 

반면 어머니 모니카(한예리 분)는 집을 지키는 관리자다. 허허벌판에 덩그러니 서있는 바퀴 달린 컨테이너 박스가 앞으로 살집이라고 득의양양 말하는 남편이, 그녀는 돌았나 싶다.

 

차마 들어가지 못하고 낡아빠진 트레일러하우스를 바라보는 그녀의 벙찐표정에서, 대체 남편이 어떤 구라를 쳐가며 구슬려 데려왔는지 심히 궁금해진다. 딴지방송국 화제의 콘텐츠, <본격이혼권장방송 지금 헤어지러 갑니다> 제보각이다. (제보는 이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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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닌 게 아니라, 남편의 계획은 정말이지 무모하다. 토네이도가 언제 쓸어가도 신기하지 않을 저 바퀴 달린 집과, 교육 시설은커녕 당장 생필품을 구할 마트도 구만리에 떨어져 있는 이 깡촌에서, 심장이 약해 뛰지도 못하는 어린 아들을 키우자는 것이니까.

 

남편은 괜찮다고, 잘 될 거라고, 다 책임질 수 있다고 큰소리를 빵빵 쳐대지만, 어머니의 눈엔 당장 아이가 잘못되면 속수무책이라는 게 불 보듯 뻔하다. 무모한 개척자와 이런 상황이 마뜩잖은 관리자. 이 가정의 불안을 완충할 것은 할머니 출동밖에 없다. 여느 맞벌이 가정이 그러하듯.

 

일상의 기쁨과 슬픔

 

<미나리>의 장르는 드라마라고 소개되어 있지만, 명백한 훼이크다. 가슴 훈훈해지는 감동적인 휴먼 드라마 같은 걸 기대하고 영화관에 앉았다면,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한다. 부부가 돈을 벌러 집을 나서고 할머니와 두 아이가 집에 남는 순간, 영화는 완벽한 스릴러로 돌변한다.

 

스크린에 있는 모든 것이 위태로워 보인다. 식탁 위의 포크마저도. 늙은 할매와 어리고 아픈 아이 둘이 덩그러니 놓여진 외딴 트레일러에서는,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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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막내아들 데이빗은 몸도 약한 주제에 여기저기 싸돌아다닌다. 극 초반에 이미 “데이빗 뛰지 마!”소리를 여러 번 들은 관객은, 심장 약한 꼬맹이의 발걸음이 빨라질 때마다 애가 어떻게 될까봐 심장이 덜컥덜컥 내려앉는다. 아이의 보폭만으로 관객을 쫄깃쫄깃하게 만들다니. 히치콕이 울고 갈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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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결국, 위태위태한 트레일러하우스에선 노심초사했던 큰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아이가 혼자 서랍을 열다가 발등을 찧고, 타짜 출신 할머니는 아이들에게 도박 영재교육을 시키고, 자꾸 보약을 먹이는 게 맘에 안 들었던 손주는 할머니에게 음료수 대신 지 오줌을 떠다 주고(역시 인간은 성악설이 진리인가 했다), 그래서 시작된 회초리 타임엔 엉뚱한 재롱으로 어른들을 웃게 하는 소소한 사건들이 채워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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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가족을 일상의 불안에 허덕이게 하지만, 그들을 패대기치지 않는다. 병원이 가까운 도시로의 복귀를 결심한 어머니에게 시골의 환경 덕에 건강해진 아이의 심장 검사 결과를 들려주더니, 거래처 확보로 활로를 마련한 아버지에겐 곧바로 저장창고가 전소되는 시련을 안겨준다. 더 얄궂은 건, 불이 딱 창고만 태우고 집은 남겨둔다는 것이다. 절망의 끝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게.

 

이 영화는 그런 식이다. 죽음을 자각하는 어린아이의 공포도, 수포로 돌아가는 아버지의 꿈도, 그래서 흔들리는 부부관계도, 어느 날 갑자기 총기가 사그라진 할머니의 병에도 관객의 오열을 정중히 사양한다. 그 모든 것은 그저 덤덤하게 흘러가는 가족의 역사에 몇 조각들이라는 듯이.

 

아이는 아프면서 크고 노인은 아프면서 죽는다. 일상은 마냥 기쁘지도 마냥 슬프지도 않다. 일상은 그냥 일상일 뿐이다.

 

경작

 

트레일러 주변은 흔히 알던 아메리카 대륙의 위압적인 풍경과는 좀 다르다. 왜인지 경기도 양평 어디쯤인 것 같은 그곳은, 묘하게 만만해 보이기까지 한다. 뭔가 하면 될 거 같기도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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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합리적 사고와 근성으로 임한다. 미신 같은 수맥 찾기 일랑 집어치우고, 지형을 따져 우물 자리를 찾아내고야 만다. 망삘의 향기를 강하게 풍겼던 중고 트랙터도 퍼지지 않고 그럭저럭 제 역할을 해낸다. 아버지의 꿈이 순조로워 보이는 그 순간, 위기들이 찾아온다. 사소한 행운들은 위기에 아무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어설피 찾은 물길은 금세 마른다. 대자연은 근성으로 비벼지지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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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로봇이 인공지능으로다가 스마트하게 농장을 운영하고, 아이의 심장을 아프게 하는 유전자를 가위로 싹둑싹둑 잘라내는 시대에 살고있다. 이대로 가다간 나중에 소행성이라도 하나 찍어내는 것 아닌가 싶다.

 

하지만 지금 우리도, 바이러스라는 대자연 앞에 여전히 꼼짝을 못한다. 자율 주행 자동차를 타고 있어도, 우물물이 말라 쩔쩔매는 80년대 아칸소 농부와 처지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오랜 시간 마스크를 쓰며 깨닫고 있다. 전 세계 인간들은 졸지에 지평선으로 둘러싸인 낡은 트레일러하우스 같은 곳에 격리되어 있는 신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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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리에겐 무모한 개척자들이 있다. 대자연의 시련에 무참히 깨지지만, 다시 실낱같은 희망으로 운명에 맞서 밭을 존나게 갈아대던 그들 덕에 호모사피엔스는 동굴에서 나와 기구를 만들고,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며 번영할 수 있었다. 그들의 무모한 경작(cultivate)의 총체를 우리는 문화(culture)라고 부른다.

 

<미나리>의 탁월한 점은 인류가 이룩한 그 문화를 한 가족의 모습으로 미분하여, 마스크를 쓰고 사는 우리들에게 위로를 건넨다는 것이다. 무모한 개척의 역사, 위대한 가족의 역사 말이다.

 

위대한 미놔리

 

이 영화에서 맘대로 되는 건 할머니의 미나리 밭 밖에 없다. 보나마나 궁핍한 살림, 새끼들 미나리 무침이나 해먹이려고 공수해온 미나리 씨는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잘 자란다. 미국 땅과 물이 암만 낯설어도 미나리만큼은 물가에서 잘 자라줄 것을, 노인은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부모들의 지극한 내리사랑, 편견과 차별 없이 연대하는 이웃들, 그리고 위기를 넘어 뭉쳐 잠든 가족. 영화는 80년대 미국 농촌으로부터, 우리들이 첨단을 일구는 데에 골몰하다 놓쳤던 것들을 환기한다. 애쓰지 않아도 물이 흐르는 곳에서 잘 자라는 미나리처럼,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순리에 답이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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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래드 피트가 제작하고 미국인이 연출했지만, 따지고 보면 감독도 한국계고, 극중 막내 꼬맹이 같은 교포 2세의 정서로 작품에 임했던 데다가 대배우 윤여정을 빌려 썼으므로 절반 이상 지분은 주장하며 전국의 주모를 불러 모아도 큰 무리는 아니지 싶다.

 

<미나리>는 한국 가족이 한국어로 대화하는 미국 영화지만, 미국적이지도 한국적이지도 않다. 인간적이다. 미나리가 위대한 이유다.

 

올해 북미 로컬영화제에서 미나리에게 트로피가 돌아간다면, 그것은 미나리의 쾌거가 아니라 오스카의 성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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