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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5년 전 모 대학의 군사전문가(산학협력으로 외부 연구를 많이 따셨던)와 KFX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한국의 군용기 산업의 형태는 이스라엘처럼 가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한국이란 나라의 체급과 시장규모를 생각한다면, 독자적인 전투기 생산보다는 기존 전투기를 업그레이드 하는 개조사업에 집중하는 것이 낫다는 말이다. 이스라엘도 이런 축적된 기술을 바탕으로 라비(Lavi)라는 4세대 국산 전투기를 개발했다. 시제기 2대를 개발한 것까진 좋았지만, 항공기 시장에서 미국의 F-16의 경쟁기종이 될 게 뻔했고, 결국 라비는 미국의 압력으로 개발이 중단됐다. 물론, 이스라엘도 라비를 포기한 반대급부를 받긴 받았다(F-15E의 추가 도입이라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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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비는 어떻게 됐을까? 한때 중국의 J-10이 라비의 기술로 만들어진 게 아닌가 하는 말이 돌았다. 너무 닮았기 때문이다. 중국 측은 이를 부인했다. 자신들의 J-10에는 이스라엘 기술이 들어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은 자국산 전투기를 만드는 대신 항공 산업(미라지 시리즈를 참 알뜰하게 씹고, 뜯고 맛보고 하며 기술력을 키웠고, 궁극적으로 라비를 만들어 낸다)을 통해 얻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해외시장에서 전투기나 항공기의 개조산업에 뛰어들었다. (심지어 이스라엘 입장에서 ‘적성국’ 무기로 분류되는 미그21도 이스라엘이 개조하고 있다)

 

우리 입장에서는 이스라엘의 이런 행보가 부럽게 보이기까지 한다. 물론, 지금까지 보여준 이스라엘 무기 개조의 역사를 보면 이런 건 일도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을 거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이렇게 개조 사업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어느 정도 미국의 용인과 묵인이 있었다. 이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현대전은 제공권을 잡은 나라가 압도적인 우위에 선다. 그리고 이 제공권을 잡기 위해서는 우수한 전투기가 필요하다. 아무리 돈이 좋다고 하더라도 이 전투기를 막 팔 수는 없는 거다.

 

전투기를 파는 나라는 사실상 몇 군데 안 된다. 미국이나, 러시아, 중국(러시아제 전투기를 많이 불법 복제하고 있지만), 프랑스 등등. 스웨덴은 중립국답게 자국산 전투기를 개발했는데, 그들이 만든 그리펜의 엔진은 미국산 엔진이다

 

(볼보에서 만든 엔진을 얹었다 하는데, 미국제 F404 엔진의 개량형이다. 뭐 라이센스를 얻어서 만든 건데, 개량을 거쳐서 얹었다. 이게 특별한 경우가 아니다. 자존심 세기로 유명한 프랑스도 라팔을 개발할 때 자국산 M88 엔진이 나오기 전에 F404를 들여와 시험비행용으로 장착했고, 인도의 테자스도 이걸 달고 날아오른다. 우리나라 T-50 계열도 F404의 후계기종인 F414를 들여와 장착한다. 지금 한참 개발 중인 우리나라의 KFX 전투기도 이 F414계열의 엔진을 들여와 테스트용 기체에 장착할 것이다.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전투기를 개발하는 나라도 적지만, 전투기 엔진까지 다 만들 수 있는 나라는 더 적고, 실제로 다른 나라 엔진을 들여와 장착해 개발하는 사례가 많다는 걸 말하기 위해서다. 전투기 앞에 달려 있는 레이더부터 끝에 달려있는 엔진까지 모든 부품을 다 제작하고 만들 수 있는 나라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프로펠러를 달고 날아오르던 시절이라면 모르겠지만, 제트엔진을 장착하면서부터는 전투기 개발은 나라의 살림살이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정도가 됐다. 이러다 보니 냉전시절 유럽에서는 몇 개 국가가 손잡고 공동으로 전투기를 개발했던 거다)

 

기술력도 기술력이지만, 이스라엘의 독특한 정치적 위치를 생각해야 한다. 한국이 항공산업 육성을 위해서 이스라엘처럼 전투기 개조산업에 뛰어든다고 했을 때, 외부환경이 받쳐줄 수 있냐는 거다.

 

 

1.

 

항공 산업에 대한 한국의 기술종속에 대해 이야기 할 때 꼭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사건이 하나 있다. 2011년의 『타이거 아이(Tiger eye)』사건이다. 밀리터리 업계에서는 워낙 유명한 이야기지만, 일반인들에게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이야기라 사건 개요부터 간략히 언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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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로 F-15K를 들여올 때 ‘타이거 아이’라는 타겟팅 포드(폭탄을 잘 유도해주기 위해 달아두는, 일종의 파일럿 사격 보조장치 정도된다) 10여 대를 같이 들여왔다.

 

일반적인 폭탄, 즉, 아무런 유도장치가 달려있지 않은 멍텅구리 폭탄을 토스해서 목표물에 명중시킬 확률은 5%가 채 되지 않는다. 그 높은 하늘에서 아무런 유도도 하지 않고 폭탄을 떨어뜨리면 명중확률이 얼마나 되겠나? 그러니 융단폭격이니 지역폭격이니 하면서 목표물이 있는 지역 자체를 깡그리 밀어버리는 방법이 나오는 것이다.

 

그러다 타겟팅 포드가 등장했다. 타겟팅 포드는,

 

“아, 딱 목표 들어왔어! 자, 지금 폭탄 떨어뜨려!”

 

라고 목표물을 훑고, 목표물을 확인한 다음 공격 지시까지 내려주는 일종의 감시장치다. 적외선이나 가시광선, 레이저 등 쓸 수 있는 걸 다 쏴서 목표물을 잡아준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스마트 폭탄 같은 걸 유도하려면 이 타겟팅 포드가 필수적이다.

 

파는 미국 입장에서도 타겟팅 포드는 최신의 장비이기에 팔 때 우리나라랑 약속을 하나 했다.

 

“야, 이거 분해 하지마.”

“그게 무슨 소리야?”

“네들 이거 분해해서 조립은 분해의 역순이다라면서 물고, 뜯고, 씹고 맛 본 다음에 데드카피 할 거잖아.”

“아, 무슨 소리야! 우리가 그런...”

“네들 그런거 잘 하잖아.”

“......”

“하지마. 정말 하지 마랄 때 하지마.”

“고장 나면?”

“가져와. 우리가 고칠 테니까.”

“야! 이거 살짝 고장 났다고 미국 보내면 오가는 비용하며, 그리고 가져가는 동안 우리는 뭘 달고 작전 뛰라고? 그냥 여기서 고치면 안 돼? 아니, 우리가 그냥 살짝...”

“안 돼! 절대 안 돼. 만약 뜯을 거면 지금 말해. 안 팔 거야!”

“......”

 

당시 우리나라 공군은 1세대 타겟팅 포드였던 렌턴(LANTIRN)을 사용했으니 3세대 타겟팅 포드였던 타이거 아이는 그저 ‘좋아 보였다’ 그리고 F-15를 팔아야했던 미국도 좋다고 선전하던 때였으니...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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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15K

 

(불붙은 FX사업의 분위기와 때마침 차세대 타게팅 포드인 스나이퍼 XR이 등장했다. 여기에 ‘이제 슬슬 이거 풀어도 되겠지? 우리야 차세대로 갈아타고 있고, 시장에 물건 풀어볼까?’라는 미국의 마음까지 더해지면서 한국까지 흘러들어온 것이다. 차세대가 나왔다는 건 곧 타이거 아이가 단종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말 그대로 타이거 아이는 단종됐고, 우리 공군도 스나이퍼로 갈아타야 했다. 보면 알겠지만 무기란 게 돈 있다고 다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까놓고 말해서 타이거 아이는 우리가 사고 나서 얼마 뒤에 단종이 됐고, 미국은

 

“야, 이거 부품이 다 단종됐는데?”

“아, 그럼 어쩌라고?”

“6배 더 줘야겠다.”

“뭘? 뭘 6배를 줘?”

“부품값. 고치려면 돈 좀 더 들어.”

“이것들이..."

“아니면, 그냥 고장난 거 달고 다니던가.”

 

이런 상황이었다. 타이거 아이는 도입되고 얼마 뒤 단종이 되고, 한국 측에 부품값을 6배 이상 튀겨서 불렀다. 한국 공군은 복장이 터질 노릇이 됐다)

 

자, 문제는 타이거 아이를 우리나라가 뜯었다는 거다. 이게 난리가 났다.

 

이걸 미국이 어떻게 알았을까? 한국군 내의 친미파가 미국 쪽에 흘렸다는 이야기부터, 미 국무부 산하의 군사교역통제국(DDTC : Directorate of Defense Trade Controls)가 이전부터 노려보고 있다가 잡아냈다는 말까지 여러 설들이 있다. 공식적으로 내부고발자는 없는 걸로 마무리 됐다.

 

타이거 아이 문제는 발발 당시에 어마어마한 폭풍이 돼 한반도를 강타했다. 미 국무부의 수석 부차관 밴 디팬이 11명의 조사단을 끌고 와 우리 정부에게 항의를 했던 거다. 지금이야 웃으며 말하지만, 당시에 미 국방부에 차관보급을 위원장으로 한 한국의 기술보안위반 조사위원회를 편성했을 정도였다(이것도 일종의 보여주기식 경고의 의미가 강했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정치적으로 너무 부담이 갔는지, 아니면 정말로 단순 해프닝인지는 모르겠지만, 타이거 아이는 그렇게 유야무야 넘어가게 됐다.

 

정치적 함의나, 왜 거기까지 갔는지에 대해서는 다 논외로 치고, 이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게 살펴봐야 하는 건,

 

'돈 주고 샀지만, 뜯을 수 없는 물건이 있다'

 

라는 거다. 그리고 이렇게 봉인이 걸려 있는 무기체계의 경우는 뜯을 수 없기에 처음부터 매뉴얼도 없다. 고치려면 미국으로 보내야 하는데, 그동안의 작전에 차질이 생길 거다.

 

이건 타이거 아이 하나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