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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우리나라가 KT-1을 만들었을 때, 그리고 T-50 시리즈를 만들었을 때, 어느 정도 생각은 하고 있었다. 

 

“우리도 국산전투기 만들자 말 나오겠네.”

 

개인적으로 KFX 사업이 진행될 수밖에 없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KAI(한국항공우주산업주식회사)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KAI는 T-50시리즈나 KT-1, 수리온 같은 걸 만드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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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증의 관계라고 해야 할까? 욕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들도, 

 

“그래도 국산화를 위해서 KAI 거 사줘야지.”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KAI는 대한민국 유일의 군용기 생산업체다. 다시 말해 KAI가 쓰러지면 군용기 생산의 명맥이 끊겨버린다는 거다. 

 

방산업체의 최대 고객은 국가다. 이는 양날의 칼인데, 물량이 안정적으로 확보된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판로 개척이 만만치 않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전투기를 사줄 곳은 각국의 공군 정도가 전부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한 나라의 최첨단 기술의 집약체라 할 수 있는 전투기를 생산하는 곳이 사라진다면 이게 나라에게 엄청난 타격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걸 살려줘야 하고, 역으로 국가가 어지간하면 두 눈 질끈 감고, 

 

“너희가 살아야 우리가 살지.”

 

라며 밀어주기도 해야 한다는 거다. 

 

대표적인 예가 KF-16 20기 추가 생산 결정이다. 애초에 KF-16은 120기가 생산될 예정이었고, 생산되었다. 생산이 끝나면 공장 라인은 자연스럽게 놀 수밖에 없다. 생산라인이 놀면? 공장은 망하는 거다. KF-16 생산이 끝나면 한국형 고등훈련기, 즉 T-50의 생산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그럼 라인이 놀지 않고 딱딱 맞아 떨어지는데, 그 타이밍이 틀어졌다. 

 

생산라인이 멈추면, 카이를 비롯한 협력업체들이 ‘꽤’ 힘들어진다. 경영상의 문제가 기업의 생사를 가를 수도 있고, 거기까지 가지 않더라도 애써 키워 온 전문 인력들을 길거리로 내몰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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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16

 

그 결과 KF-16 20기의 추가 생산이 결정됐다. 이걸 결정했던 게 故김종필 총리다. KF-16 20기 추가생산 비용에 FX사업(F-15 도입사업) 예산을 전용하겠다는 계획이 나오면서 공군의 반발을 불러 일으켰는데, 김종필 총리는 KF-16 예산을 증액해서 정리하는 선에서 타협안을 만들었다. 이와 함께 '왜 20기를 생산해야 하는지'를 정치적 화법으로 에둘러 말했다.

 

“그동안 쌓아온 KF-16 생산 기술력을 더욱 재고시키고 우리의 공군력을 증강하기 위해서는 추가생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여러 가지 종합적인 이익을 고려할 때 국방비를 몇천억 원 증액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느냐.”

 

주목해야 하는 건 '여러 가지 종합적인 이익'이다. 이 '이익'은 KAI의 생산라인을 살리는 이익이다. 그 말이 맞다. 애써 키운 인력이다. 이 인력들을 T-50이 개발이 종료돼 라인을 돌릴 때까지 나가 있으라고 말하기 애매하다. 한 번 키운 고급항공인력들을 날려버릴 수도 없다.

 

기업논리로만 생각할 수 없는 게 있다. 

 

 

3.

 

(두서 없이 생각나는 대로 말해보겠다. 그러나 오해는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는 KFX를 반대하지 않았으며, 지금도 의견은 없다. 아니, 기왕 시작한 KFX 사업이 성공하기를 기원한다)

 

KFX 사업을 두고,

 

“단군 이래 최대의 전력증강 사업”

 

이라고 말한다. ADD(국방과학연구소)와 KAI 밑으로 220개가 넘어가는 하청업체와 10개가 넘어가는 정부 출연 연구소, 산학협력 대학교들이 붙었다. 여기에 인도네시아 항공우주국과 외국의 항공사까지. (인도네시아 이야기는 차차하겠다. 우선 지금 KFX 사업이 뭘 어떻게 만드는지 국뽕끼를 좀 빼고 한 번 생각해 보자)

 

비용도 어마무지하다. 한국 공군의 소요량 120대 구매비용만 8조 5천 억이다. 전체 사업비를 보면 개발비용 8조에 조달비용 10조, 총 18조나 된다. 

 

18조라니 상당히 많아 보이지만, 

 

“이 금액으로 이걸 만든다고?”

 

란 말이 나온다. 왜냐하면 우리나라가 도입중인 미국의 스텔스 전투기인 F-35는 개발비만 거의 60조에 육박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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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35

 

미국은 이제까지 최고의 전투기를 개발해 왔다. 2차대전 이후부터 세계의 하늘은 '미국의 하늘'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제공권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나라다. 이런 나라에서 최신예 스텔스 전투기인 F-35를 만들어서 2천 대 이상 찍어낸 뒤 팔 생각을 하고 있다. 개발 기간만 20년 가까이에, 개발비만 60조 원. 2차대전 시절부터 전 세계에 뿌린 전투기들을 생각해보라. 노하우가 어디 가겠는가? 이걸 세계에 팔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KFX를 스텔스기로 만드는 게 아니지 않는가? 우리는 F-4와 F-5를 대체하기 위한 4.5세대 전투기를 만들려고 한다.”

 

라고 항변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KFX Block-II, Block-III에서부터 반 매립형 무장 장착을 완전매립형(F-35처럼 뚜껑 열고 미사일 발사하는)으로 개량해 나가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 때문에 일부 ‘국뽕’ 맞은 매체들은 KFX가 동북아를 벌벌 떨게 만드는 최강의 전투기가 되는 것인냥 호도한다. (마치 F-35급의 스텔스 전투기를 우리가 뚝딱 만들어 낼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20년 가까이 60조를 때려 부어서 개발한 게 F-35다. 그런데 그 1/10 정도의 연구 개발비와 그 절반 정도인 10년의 개발기간으로 동북아를 벌벌 떨게 만드는, F-35를 위협하는 전투기를 개발한다? 그 가능성은 지극히 낮을 거다. 

 

지난 FX사업 때 우리가 그토록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며 놀렸던 라팔을 보자. 프랑스는 30년 간 600억 달러를 때려 부었다(개발비와 조달비용 포함). 당시 환율을 생각해 보면 프랑스가 제대로 늪에 빠진 거다. 라팔의 경우도 AESA 레이더를 탑재했다고 엄청 자랑을 했는데, 실제로 장착된 건 2012년이 되어서다. 프랑스는 능동주사식 위상배열 레이더(AESA)나, 적외선 탐색 추적 장비(IRST) 등등 최신 기술들을 혼자서 꾸역꾸역 개발하느라 30년 가까이 고생을 했던 거였다. 

 

(필자는 고등학교 시절 월간항공에 나와 있던 라팔 A형 사진을 오려서 교과서를 쌌다. 이게 프랑스 해군에 배치된 게 내가 시나리오 작가로 데뷔한 후인 2000년이었다. 그나마 해군에 먼저 배치된 게, 프랑스 해군 항공대는 라팔이 빨리 배치될 거라 생각해 꾸역꾸역 버티면서 월남전 때 쓰던 미군의 F-8 크루세이더를 타고 다녔다. 그러다 자기들도 이건 안되겠다 싶었던지 1998년에 이걸 다 퇴역시키고, 공격기로 쓰던 슈페르 에탕다르를 함대방공기로 사용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공군보다 먼저 해군에 라팔을 배치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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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팔(Rafale)

 

우리가 한 가지 간과한 게 있다. 미국과 프랑스는 전투기를 미친듯이 많이 만든 나라란 사실이다. 즉, 노하우가 있다는 소리다.

 

프랑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늪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원래는 독일, 영국과 함께 유로파이터 타이푼을 만들었어야 하나, 개발 컨셉부터가 맞지 않아 독자적으로 라팔을 만든다. 냉전시절 제3세계 국가들에게 미라지 시리즈를 팔며 나름 호평을 받았던 프랑스였는데도 4.5세대 전투기를 만들기 위해서 30년 간 엄청난 돈과 노력을 때려 부어야 했다. 

 

미국은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미국이 이제까지 전 세계에 뿌린 전투기 숫자만 생각해보자. 한때 서방 세계 최고의 베스트셀러라 불렸던 F-4 팬텀만 5,200여 대 가까이 찍어냈다. 또 다른 베스트셀러인 F-16 계열은 4,600여 대 이상 팔았다. 툭 까놓고 말해서,

 

“전 세계의 주력 전투기는 F-16이다.”

 

라고 말해도 될 정도다. 그리스와 터키가 국경 분쟁 할 때 서로 F-16 띄워서 노려본 거 보면 알만할 거다. 

 

자,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KFX 전투기 사업을 시작한 거다. 그것도 놀랍게도 프랑스의 라팔급. 즉, 4.5세대 전투기를 개발하겠다고 나선 거다. 그들보다 적은 예산으로, 그들보다 더 짧은 개발 기간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