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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주가 조물주보다 상위 랭크된 세상이다. 천지를 창조하신 그분도, 부동산을 고르게 내려주시는 건 실패했다. 그 옛날 산과 강으로 땅을 나누어 헤쳐먹던 권문세족부터, 선거때만 되면 까발려지는 구린내가 펄펄 나는 정치인들의 등기부등본까지, 공간을 점유하려는 인간의 욕망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치열하고 처절하다.

 

건물은 곧 권력이다. 더 많이 더 높이 더 적은 수가 누려야만 더 가치로운 마천루. 중력을 거슬러 쌓아올린 그 거대한 인공물은 그 자체로 욕망의 상징이다.

 

하지만 그 욕망의 총체도 결국 사람이 짓는다. 제 아무리 산업혁명이 4차로 일어나도 알파고가 이세돌을 처바르는 인공지능의 시대여도, 건물을 3D 프린터로만 찍어낼 수 없다. 박형준 일가가 사는 부산 엘시티 1703호와 1803호의 오션뷰가 암만 기가 똥을 때린다 한들, 거기에 누군가가 철근을 묶고, 콘크리트를 찍어 바닥과 천장을 이어놓지 않았다면 해운대 앞바다엔 벽돌 한 장 올라가지 못했다. 그 욕망의 전당들은 태초에, 누군가의 땀으로 빚은 작품이고 신성한 삶의 현장이다.

 

여기 한 건설 노동자가 있다. 전직 기자였던 그는 모종의 이유로 세상에 환멸을 느껴, 다 때려치우고 도망치듯 노가다판에 들어섰다. 개가 똥을 끊지 못하고 MB와 그 잔당들이 슈킹을 끊지 못하듯, 제 버릇은 남 못 준다. 세상을 등져서도 펜은 꺾지 못한 천생 글쟁이는, 낮에는 집을 짓고 밤에는 글을 지었다. 그렇게 지난 2년간 본지에 '꼬마목수'라는 필명으로 연재된 에세이, <노가다 칸타빌레>가 한 권으로 묶여 출간되었다. 책의 저자 꼬마목수, 아니 작가 송주홍이 따끈따끈한 책을 들고 충정로 딴지 사옥을 찾았다.

 

술 담배, 그리고 노가다

 

송주홍(이하 송) : 한 대 피고 시작해도 될까요?

 

근육병아리(이하 근) : 그럼요. 얼마든지.

 

일단 한 대 피우고 시작하자. 이것이 바로 그 노가다꾼의 가다인가. 쿨내가 진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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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 하루에 몇 갑이나 태우십니까?

 

송 : 하루 두 갑은 태우죠.

 

근 : 생각보다 많이 피진 않네요.

 

송 : 아침에 못주머니 차면서 새 거 하나 뜯고, 서너시쯤 시마이 할 때 쯤 한 갑이 끝나고. 다음날 다시 못주머니 찰 때까지 한 갑을 더 피우죠.

 

근 : 담배는 언제부터?

 

송 : (머쓱) 열여덟..

 

근 : 시즌을 피우던데, 많이 안 피는 담배인데 그거.

 

송 : 네 뭐 전 어릴 때부터 이걸로 쭉.

 

근 : 그 맘때쯤엔 친구들이 멋으로라도 말보로 피고 던힐 피고 마일드세븐 피고 그랬을 텐데.

 

송 : 양담배는 맛이 없더라고요 저는.

 

소싯적부터 담배 초이스가 남달랐던 신토불이 남. 2미리 국산 담배는 그의 유니크 한 인생 행보를 암시하는 복선 같은 것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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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 주량은 어떻게 되는지?

 

송 : 한 잔도 안 마셔요. 술은.

 

근 : 어쩐지, 그동안 연재에 술 이야기가 안 나온다 했다. 현장 동료분들은 많이 하시죠?

 

송 : 그죠. 저희 형님들, 마셨다 하면 난리 나죠. 아침에 대마 맞으면(일거리를 구하지 못해 하루 공치면) 그럴 때는 뭐 오전부터 달려서 밤까지.

 

근 : 그럼 술기운에 일하고 그런 건 모르시겠다.

 

송 : 예전엔 현장에서도 술 마시면서 일했다고 하던데, 요즘은 그렇게 안되니까.

 

근 : 그런 문화가 다 없어진건가요?

 

송 : 아파트 공사처럼 큰 현장에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원룸 공사처럼 작은 현장에서는 나이 좀 있으신 형님들이 새참으로 목 정도 축이시는데,, 다 옛날이야기죠.

 

근 : 코로나로 건설 현장이 바뀐 건 없나요?

 

송 : 노가다 현장에는 변화가 거의 없는 것 같아요. 함바집 들어갈 때 마스크 쓰는 정도. 코로나 전부터 현장에서 마스크는 필수이기도 했고. 근처 현장에서 확진자가 나와서 한 번 정도 전체 검사를 한 적은 있는데, 아직 일터가 폐쇄된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어요. 운 좋게도.

 

노가다 송 씨의 하루

 

근 : 언제 처음 노가다 일을 해보신 건가요?

 

송 : 노가다는 연재에 소개했던 인력사무소 방문이 처음이었어요.

 

근 : 첫 경험이 바로 직업으로 된 거? 의외네요. 대학생 때 아르바이트로 해보지 않았을까 했는데.

 

송 : 친구들은 한 번씩 하곤 했는데, 저는 그땐 택배 상하차 알바를 했어요.

 

근 : 기자를 그만두고 몸쓰는 일이나 하자라고 결심했을 때, 처음하는 노가다를 택한 건 왜일까요?

 

송 : 택배보다 힘든 일은 없을 거 같았거든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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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 하루는 어떻게 시작됩니까?

 

송 : 기상은 5시 10분. 이 닦고 물 세수만 간단히. 차에 시동을 걸면 5시 30분 정도. 지금 충남 계룡에 있는 현장까지 가면 6시. 도착하면 데쓰라를 올리고..

 

근 : 데쓰라?

 

송 : 말하자면 일출결표에요. 거기에 사인을 안 하면 일당 측정이 안돼요. 하루 중 제일 중요한 일이죠. 이름을 올리고 나면 함바집에서 아침을 먹죠. 그러고 좀 쉬었다가, 모두 모여서 체조같은 거 하고 공지사항 공유하고 하면 7시 20분. 각자 작업장으로 이동해서 작업선 연결하고 못주머니 차고 시작하기 전에 담배 한 대 피우고 하면 7시 30분.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망치질이 시작되죠.

 

근 : 기상 후 대강 두 시간 후에 일이 시작되는 거네요.

 

송 : 그렇죠. 그때부터 9시까지 첫 타임이 하루 중 가장 빡센 일을 하는 시간이에요. 힘든 일을 먼저 끝내야 나중 일이 수월하거든요.

 

그렇게 순수한 곰방꾼에게도 분명한 원칙이 하나 있다. 가장 높은 층에 옮겨야 하는 가장 무거운 걸, 가장 먼저 나른다는 원칙. 가령 시멘트, 모래, 타일이 있다면 가장 먼저 시멘트를 5층에 올리는 거다. 왜 그런가 하니, 그들도 사람인지라 비교적 가벼운 걸 낮은 층에 먼저 올리고 나면 나중에 무거운 걸 높은 층에 올릴 수 없단다. 오전 내내 벽돌이나 모래를 올렸는데 오후 늦게 갑자기 시멘트를 올려달라고 말하면, 그건 불가능하다고 딱 잘라 말한다.

 

“그럴 거면 오전에 말했어야지. 힘 다 빠졌는데 이제 와서 시멘트를 어떻게 날러~.”

 

<노가다칸타빌레> p.184 맨몸으로 중력과 싸우는 자 中



'일에는 순서가 있다.' 절차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표현이지만, 노가다 판에서는 다른 의미다. 하루 중 가장 원기가 넘칠 때 가장 고된 일을 한다. 그들의 하루만큼 순수하고 단순한 원칙이다.

 

송 : 9시가 되면 첫 참을 먹어요. 담배도 두어대 피고요.

 

근 : 참은 뭘 먹죠?

 

송 : 보통 초코파이. 그리고 요만한 음료수. 과수원, 레스비 이런 거.

 

근 : 모텔 냉장고에 있는?

 

송 : 네 그거. 작은 캔 이요. 맛으로 먹는 게 아니라 그냥 담배 피며 쉬는 거죠. 마음 편히. 그러고 다시 점심 전까지 2차전 빡세게 하고요.

 

노가다 꾼은 참 시간을 보고 일한다

 

송 : 11시 40분쯤 오전 작업 마무리하고 점심을 먹으러 가요. 밥은 거의 뭐 앉은 자리에서 마시죠. 후루룩. 그러곤 이제 다 한숨 자는 거죠.

 

믹스커피 한잔 타서 함바집을 빠져나온 노가다꾼들은 저마다 머리 대고 누울 수 있는 곳으로 간다. 보통은 자기 차로 간다. 현장으로 들어가서 합판 같은 거 하나 깔고 눕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렇게 30분에서 한 시간 가까이 눈을 붙인다. 매일 새벽 4~5시에 일어나 고된 육체노동을 하니까, 그렇게라도 잠시 쉬지 않으면 몸이 버티질 못한다. 어쩌면 버티기 위해 본능적으로 밥을 마시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노가다칸타빌레> p.272 함바왕을 아시나요 中



송 : 그렇게 쉬었다가 1시부터 오후 작업. 3시에 한번 쉬면서 참 먹고 담배 한 대 피우고. 그리고 다시 시작해서 4시 30분쯤 시마이.

 

근 : 이런 타임라인은 국룰인가요? 어느 현장에 가든?

 

송 : 그렇죠. 노가다꾼들은 참 시간이랑 점심시간만 보고 일을 해요. 그럼 시간이 좀 빨리 가니까. 야 좀 있으면 참 먹겠다. 좀만 하자. 이런 식으로.

 

작가의 시간

 

근 : 술은 취미가 없다 하셨고.. 칼퇴하고 집으로 갑니까?

 

송 : 네 카페에 들러 커피 한 잔 사서 바로. 씻고 바로 책상에 앉으면 6시 반 늦어도 7시. 글을 쓰기 시작하죠.

 

근 : 저녁도 안 먹고?

 

송 : 저녁을 먹으면 퍼져요. 글을 쓸 수가 없더라고요. 보통 그렇게 10시까지는 계속 뭔가를 써요.

 

근 : 그렇게 하루 종일 힘을 썼는데 배는 안고파요?

 

송 : 고프죠. 참는 거예요.

 

근 : 아니 그게 무슨.. 도 닦는 것도 아니고.. 뻥 같은데. 신비주의 작가 뭐 그런 컨셉 인가?

 

송 : 진짜예요. 뭘 먹으면 졸려서 아무것도 못하겠더라고요. 몸이 적응이 되어서 많이 힘들진 않아요.

 

근 : 커피랑 담배로 달래가면서?

 

송 : 네 그렇게 목표량을 채우고 10시쯤 간단히 요기. 11시쯤 누워서 책을 보던가 인터넷 좀 하던가 하고 12시 전에는 잠들죠.

 

주경야독 형설지공 전법인가. 글쓰기가 뭐길래, 왜 그렇게까지..

 

근 : 그럼 하루 중에 노는 시간이라곤 잠들기 전 딱 1시간이네요.

 

송 : 저한테는 글 쓰는 게 쉬는 거 같아요. 그 힘으로 다음날 또 일하고. 다른 노가다꾼 형님은 9시 뉴스 보는게 소원이라더라고요. 저녁 먹고 반주하고 하면 바로 곯아떨어지니까.

 

근 : 그럼 뭐 평일 저녁에 하는 국가대표 축구경기나, 한국시리즈 같은 건 못 보겠네요.

 

송 : 제가 예전에 야구잡지 기자였어요. 그 정도로 야구 좋아했었죠. 하지만 그보다 더 소중한 것들을 위해서 좀 쳐내는 거죠.

 

근 : 글쓰기.

 

송 : 네 글쓰기.

 

근 : 말씀을 들어보니까, 지금의 삶을 꾸린 이유는, 저녁 7시부터 10시까지 오롯이 작가의 시간을 갖기 위한 것 같네요.

 

송 : 예. 노가다의 매력이 그거 같아요. 일과 삶이 분리되는 거. 기자 생활 때는 그런 거 못했거든요. 퇴근을 해도 꼭 노트북을 챙기게 되고 주말에 여자 친구를 만나도 머릿속에 기사가 늘 맴도니까.

 

근 : 계속 연결이 되는 거죠.

 

송 : 네. 노가다 이거는 그런 게 없어요. 오늘 거기서 망치질 그렇게 하지 말걸 이러지 않거든요. 내일 가서는 무슨 작업을 해야 하지? 뭘 준비해야 하지? 이런 게 없으니까.

 

근 : 언제 깨달았어요? 야 이거 깔끔하고 좋다라는 거를?

 

송 : 처음 일 나간 날부터.

 

근 : 직감적으로?

 

송 : 직감적으로.

 

연결되지 않을 권리. 노동자의 여가시간 보장과 사생활 보호를 위해 논의되고 있는 슬픈 권리. 이 남자는 연결을 망치로 끊어내고 스스로 쟁취한 거다.

 

왜 쓰는가

 

근 : 낮에 일하다 느끼는 상념을 처음 적기 시작할 때는, 연재라던가 출판이라던가 이런 보장이 없었을 텐데. 어떤 마음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건가요?

 

송 : 처음엔 나를 위한 글쓰기였죠. 내가 쓸모 있는 존재라는 걸 나한테 좀 보여주고 싶었어요. 글을 브런치에 올렸었는데, 누군가 봐줬으면 하는 마음도 사실 있었던 거 같아요.

 

근 : 크건 작건, 내 글이 세상에 어떤 변화를 줬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

 

송 : 네. 그게 제가 글쟁이로 살고자 한 이유에요. 저는 제 글이 막 거창하게 세상을 바꿀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냥 가볍게 읽기 좋네. 재밌네. 그 정도면 좋아요. 킬링 콘텐츠로 받아들여져도 상관없어요. 읽는 사람이 잠깐 위로받으면 된다, 그 정도죠. 제가 기자를 그만둘 때 제일 많이 했던 고민도 그거였어요. 저는 제 글이 칼이 되는 걸 원치 않았거든요.

 

근 : 그런 일이 많았나요?

 

송 : 많죠. 엄청 많았죠. 기자 일이 결국 누군가를 비판하는 것이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 될 수 있잖아요. 공무원이든, 지자체든, 관계자든. 그런 걸 더 이상 쓰고 싶지 않았어요. 내 글 때문에 누군가 상처받는 게 너무 싫어서.

 

근 : 지금 글쓰기는 즐거우세요?

 

송 : 너무 즐겁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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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오가 육체를 지배한다

 

근 : 그것들이 쌓여서 책으로 나왔는데, 소감은 어떤지?

 

송 : 일단 엄청 부끄럽네요.

 

근 : 아니.. 그러신 분이 먼저 전화해서 인터뷰를 하자고 그렇게 닦달을..

 

송 : 그게, 이 책이 세상에 나온 이상 저에게 책임이 있더라고요. 책을 만드는 데에 수많은 사람들의 생업이 얽혀졌고요. 저에게 주어진 역할을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책이 나오고 오래 연락 못 했던 분들에게도 책 나왔다고 전화드리고 있어요. 염치없고 죄송스럽지만.

 

근 : 서점에 풀렸죠? 잘나가고 있나요?

 

송 : 나쁘진.. 않다고 들었어요. 요즘 스스로 경계를 많이 하는 중이에요. 이렇게 붕 떠 있을 때 사고를 치거든요 꼭.

 

근 : 며칠 안 갈지도 모르는데, 좀 즐기시지 왜. 본인에게 엄격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송 : 전 태생적으로 굉장히 게으르고 욕정적인 사람이라, 스스로 다독이지 않으면 퍼지거나 사고가 나요. 제 그런 천성을 아니까 경계를 하는 거죠. 스스로 생각할 때 '야 시바 이건 좀 너무 멋없지 않냐 너?' 이런 생각이 드는 게 너무 싫어요.

 

근 : 가오가 육체를 지배한 상태 뭐 그런 건가요.

 

송 : 중요해요. 가오, 진짜 중요해요. 외형적인 멋이 아니라 내 삶이 좀 가오가 떨어지는 게 싫더라고요.

 

근 : 솔직히, 하루에 본인 책 검색 몇 번이나 합니까?

 

송 : (웃음) 겁나게 하죠. 아 이게 신경을 안 쓰려고 해도 엄청 쓰이더라고요.

 

근 : 그건 100% 출판사에 대한 책임감 때문입니까?

 

송 : 네 정말이에요. 책임감. 전 정말 이 책으로 부자 되고 싶은 마음이 없어요.

 

근 : 진짜?

 

송 : 아~ 진짜! 저는 이미 노가다로 저로서는 너무 많은 돈을 벌고 있어요. 충분해요. 진짜로.

 

정말, 가오가 온몸을 지배하고 있다.

 

노가다판의 풍경

 

근 : 노가다판에는 알 수 없는 외래어가 많아 보이던데.

 

송 : 많죠. 정체불명의 단어들.

 

근 : 야 이거 골 때린다 싶은 재밌는 단어 없습니까?

 

송 : 처음에 일 배울 때 형님들이 천장을 지지할 때 쓰는 원형 파이프를 ‘삿보도’ 라고 하길래, ‘아~ 그런 일본어가 있나 보다.’했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영어 ‘Support’에서 온 말이더라고요. 굵은 철사를 자를 때 쓰는 ‘가따’는 ‘Cutter’에서 왔고. 그런 노가다의 언어들을 익히면서 꾼이 되어가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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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 건물이 지어질 때 오직 노가다꾼만이 볼 수 있는 풍경 같은 것도 있습니까?

 

송 : 슬라브라고, 1층 기준으로 천장 2층 기준으로 바닥이 되는 게 있어요. 이것도 노가다꾼 언어인데 ‘Slab’에서 파생된 거죠. 암튼 엄청나게 광활한 광장에 슬라브를 덮을 때가 장관이죠.

 

근 : 어떻길래?

 

송 : 나무를 쫙 깔고 합판을 붙인 다음 거기에 공구리를 치는건데 그 밑으로 내려가면 일반인들은 절대 볼 수 없는 풍경이 펼쳐지죠. 아까 말한 삿보도를 80cm 간격으로 세워 지지하거든요. 건물 한 채의 천장과 바닥을 만들려면 1000개가 넘는 수많은 삿보도가 빼곡히 서있어야 해요. 마치 대나무 숲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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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르타. 우리는 언제나 발 딛고 있는 곳을 바닥으로 인지하지만, 바닥이 원래 바닥이었던 적은 없었다. 모든 건물의 바닥은 형틀목수들이 중력을 거슬러 허공에 밀어올린 개척지다.

 

책읽는 양아치

 

근 : 시점을 과거로 돌려보죠. 어떤 아이였나요. 어릴 때?

 

송 : 그렇게 멀리가나요? 음.. 그냥 책 읽는 걸 엄청 좋아했어요.

 

근 : 주로 어떤 책들을?

 

송 : 어릴 때 집이 엄청 가난했어요. 지금도 기억나는 게 엄마랑 아빠랑 엄청 싸워서 겨우 책을 사줬어요. 디즈니 동화책 100권과 위인전 60권.

 

근 : 어머니가 사자는 쪽이셨나요?

 

송 : 네 그렇죠. 아빠는 그럴 돈이 어디 있냐 하셨었고.

 

맞다. 보통 책은 어머니들이 사준다. 전집 같은 거. 어느 집안이나 비슷한가 보다.

 

송 : 그 백육십 권을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닳고 닳도록 읽었어요. 고학년에 올라가서는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니 하는 책들을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다가 읽기 시작했고.

 

근 : 중학교에 가서는?

 

송 : 그때는 제가 엄청 까불고 다녔어요. 쌈박질도 하고 다니고. 제가 어릴 때 유도를 했었는데 실은 그게 싸움 잘하려고 시작한 거예요.

 

근 : 공부는?

 

송 : 성적은 제법 괜찮았어요. 전교 10등 안에 들 정도.

 

근 : 아 놀면서 공부 잘하는?

 

송 : 근데 저는 정말 그때 공부 아예 안 했었거든요.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뭘 특별한 게 있어서라기보다는, 책을 많이 읽어놔서 시험 볼 때 문제를 이해하는 능력이 좀 있었던 거 같아요.

 

근 : 논리력과 문해력으로 다 돌파했다?

 

송 : 네 근데 고등학교 올라가서는 그게 안 통하더라고요. 인문계를 가기는 했는데. 그냥 놀러 다녔죠.

 

근 : 뭐하고 놀았어요?

 

송 : 담배피고, pc방 다니고.

 

근 : 오토바이도 좀 타고?

 

송 : 탔죠.

 

근 : 설마 훔친 건 아니죠?

 

송 : 피자 배달 알바해서 하나 장만했죠. 그땐 클래식 스쿠터가 유행이어서.

 

근 : 클래식 오토바이면, 베스파 그런 거?

 

송 : 주드 였던가 그랬던 거 같은데.

 

근 : 쇼바 올리고 led 달고 앞바퀴 들고 그런 건 안 타셨고?

 

송 : 그런 건 취향이 아니라..

 

근 : 보아하니 덩치도 있고 정통으로 노신 거 같은데, 동네에서 이름깨나 날렸겠다.

 

송 : 철들기 전에 부끄러운 과거죠.

 

놀긴 놀았나보다.

 

약관

 

근 : 전공은 뭡니까?

 

송 : 국어국문학.

 

근 : 책은 신물 나게 봤겠군요. 좋아하는 작가들은 좀 있습니까?

 

송 : 20대 초반에는 에쿠니 가오리, 요시모토 바나나 같은 일본 여류작가들 소설도 좀 읽었었고. 중반부터는 조정래, 김훈 이런 작가들 소설을 많이 봤죠.

 

근 : 그중 뭐 가장 리스펙하는 작가는 누굽니까?

 

송 : 김훈. 기자를 꿈꿀 때부터 제 롤 모델이었죠.

 

근 : 어떤 점이 그렇게?

 

송 : 그 사람도 가오가 인생을 지배하는 사람이었거든요. 글이나 삶의 궤적들이. 멋있었죠.

 

근 : 군대는?

 

송 : 공익 다녀왔습니다.

 

근 : 퇴근하고 또 책 엄청 읽었겠군요.

 

송 : 아뇨 그때는 저녁에 pc방 알바를 했어요. 원래 안되는 건데, 근무하던 중학교에서 제 사정을 좀 봐주셔서..

 

근 : 그럼 뭐 그때는 밤낮으로 일하느라 정신없었겠네요.

 

송 : 거기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서 쉬는 시간이나 알바하는 짬짬이 많이 봤어요. 그 학교 도서관에 있는 소설책은 거의 다 읽고 나온 거 같은데.

 

근 : 속독을 하는 편입니까?

 

송 : 아뇨. 그렇진 않고 꾸준히 보는 거죠. 20대 때 그렇게 읽어 둔 걸로 제가 여지껏 먹고사는 것 같아요.

 

첫 직장

 

근 : 야구전문기자를 하셨다고 했는데, 그곳이 첫 직장이었나요?

 

송 : 아뇨 첫 직장은 지역 문화잡지사였어요.

 

근 : 생활은 어땠나요?

 

송 : 너무 즐거웠죠. 제가 대학 때는 소설가가 꿈이었는데, 습작 한 편 써보니 바로 알겠더라고요. 아 나는 자질이 없구나. 그럼 기자를 해야겠다. 그런데 일간지 기자는 별로 하고 싶지 않았고. 제가 당시에 페이퍼라는 잡지를 엄청 좋아했어요. 잡지를 만드는 일을 해보고 싶었죠. 좀 따뜻한 내용을 다루는 그런.

 

근데 마침 대전에 그런 문화잡지가 창간되었더라고요. 무작정 찾아갔죠. 창간호부터 최근 거까지 20부를 나름 분석한 포트폴리오를 들고. 내가 이렇게 너희 잡지를 분석해서 전략을 세워왔으니 나를 채용해달라.

 

근 : 저돌적이었군요.

 

송 : 네 그때 그 회사가 대표 포함해서 직원이 세명이었는데,

 

근 : '뭐지 이 새끼는'하는 표정?

 

송 : 대표가 하는 말이, “오케이. 근데 너가 아직 대학생이니까, 일단 칼럼을 하나씩 써서 보내라. 대학생 칼럼. 그러고 졸업하면 와.”

 

근 : 일종의 조건부 채용을?

 

송 : 네

 

근 : 그때가 언제였죠?

 

송 : 대학교 3학년 땐가 그랬을 거예요. 그러곤 졸업하자마자 정식사원으로 들어간 거죠. 낙하산으로.

 

역시 시즌을 필 때 알아봤다. 일본 학원물에 나올 법한 괴이한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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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 그럼 야구전문기자는 그다음으로 이직한건가요?

 

송 : 네, 대전을 벗어나 좀 넓은 곳에서 일해보고 싶어질 때쯤, 서울에 '더그아웃 매거진' 이라는 곳으로 옮겼어요. 베이징 올림픽 직후에 야구 붐이 한참 일었을 때.

 

근 : 넓은 물에서 놀아보니 좀 어떻던가요.

 

송 : 제가 웹에디터 팀장이었는데, 매체가 좀 보수적이어서 제가 추진하는 일들이 잘 관철되지 않더라고요. 프로야구 연간 관중이 600만이고 수많은 대기업들이 들어와있는데, 왜 새로운 수익모델을 만들지 않을까 답답했어요. 7~8년 전부터 아프리카tv 유튜브 이런 거 해야 한다고 열심히 밀어붙였는데 잘 안되더라고요. 번번이 벽에 부딪힐 때마다, ‘아 안 맞네’라는 생각도 들고, 일로 자꾸 갈등을 빚으니까 사람이 미워지기 시작하더라고요. 이건 아닌 것 같다. 내가 사람을 미워하면서까지 일을 할 필요는 없지. 그래서 1년 일하고 그만뒀어요.

 

근 : 그길로 노가다판으로 간 건가요?

 

송 : 아뇨. 첫 직장이었던 대전 잡지사에서 연락이 왔어요. 사세를 넓히는 중이라 기획업무를 맡아줄 사람이 필요했던 거죠. 제가 그런 일들을 곧잘 했었거든요. 마침 서울 생활에 회의를 느끼는 중이라 내민 손을 덥석 잡았죠.

 

결혼 그리고 이혼

 

근 : 책에 보니까 서두에 딴지일보 연재에서는 나오지 않은 내용이 있더라고요. 이혼을 하셨다고.

 

송 : 네. 직장에서 만난 후배랑. 둘이 회사 생활을 정리하고 강릉에 신혼집을 차렸죠.

 

근 : 강릉? 뜬금없이?

 

송 : 그 친구랑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 것이 있었어요. 연인이자 동료로.

 

근 : 역마가 제대로..

 

송 : 그쵸 제대로 꼈죠. 로컬 공간에서 새로운 걸 많이 시도했어요. 지역 NPO(비영리단체) 활동가들과 인터뷰집도 만들고. 당시에 평창올림픽 시즌이었는데 강릉에 이렇다 할 지역신문이 없었어요. 풀뿌리 언론 운동을 해서 신문도 창간하고 그랬죠. 강릉시장 후보 캠프에서도 일했었고. 그러는 중에 서로 다른 길을 가기로 하고 이혼을 한 거죠.

 

근 : 그럼 결혼 생활은 1년 정도 했네요.

 

송 : 네 연애 포함 3년.

 

근 : ‘도망치듯 노가다 판에 흘러들어왔다.’라는 시점이 여기군요.

 

송 : 네 맞습니다.

 

근 : 이혼 경력을 밝히면서 책을 시작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송 : 다 솔직하게 말하고 시작하고 싶었어요. 내가 망치를 잡으며 느끼는 감정을 이야기하자면, 그런 과거를 밝히지 않고서는 제 마음이 설득이 안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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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에 15, 반지하 방

 

근 : 그렇게 강릉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온 건가요?

 

송 : 네 대전으로.

 

근 : 상태가 안 좋았겠군요.

 

송 : 최악이었죠. 아무도 제가 어디 있는지 몰랐어요. 부모님마저도.

 

근 : 숙식은 어디서 해결하셨어요?

 

송 : 친한 친구 집에서. 그냥 대책 없이 잠시 쉬러 고향에 온 거였어요. 당시 제 차에 제 짐이 몽땅 실려있었어요. 이혼은 저에게 큰 부채였어요. 집을 가지고 니꺼니 내꺼니 따지고 싶지 않았고. 제가 가지고 있던 책 몇 권, 노트북, 카메라. 이것만 있으면 먹고살겠지 싶어서 옷가지 몇 개랑 차에 싣고 나왔던 거죠.

 

근 : 짐 몇 개랑 몸만 나왔다?

 

송 : 네 그냥 거지가 된 거죠. 한마디로. 통장에 200만 원인가 있었나. 여기저기 떠돌면서 모텔에서 자고 여관에서 자고 하다가 대전에 불알친구 얼굴이나 보러 왔는데, 친구가 사주는 밥이 너무 따뜻한 거예요. 마음이. 그때 친구 잡고 막 울었어요. 친구가 하는 말이 “그러지 말고 대전에 있어라. 그럼 내가 너 밥 한 끼라도 사줄 수 있고 그러잖냐.” 그래서 친구한테 돈을 빌려서 보증금 100만 원 월세 15만 원짜리 반지하 방을 잡았죠.

 

근 : 그때 나이가?

 

송 : 서른둘. 3년 전 이야기예요.

 

근 : 얼마 안 되었군요.

 

망치를 잡다

 

근 : 이제 드디어 인력사무소 문을 두드리려 가는 거군요. <노가다칸타빌레>의 시작점.

 

송 : 네 먹고살려고 나온 거죠.

 

근 : 무작정 간 건 가요?

 

송 : 그때도 글 써서 밥 벌어먹고 살 길은 있었는데,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근 : 여기저기 아쉬운 소리 해야 하는 것이 내키지 않았던 거군요.

 

송 : 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그냥 땀이 나 흘리고 살아야겠다. 그렇게 마음먹은 거죠.

 

근 : 아. 이제 좀 이해가 갑니다. 역시 가오였네.

 

송 : 싫었어요. 누굴 만나는 것도. 그 사람이 날 동정하게 되는 것도.

 

근 : 떳떳하지 못하고.

 

송 : 네.

 

근 : 인력사무소에 처음 나간 날 기억하죠 생생히?

 

송 : 그럼요. 첫날에 제가 곰방꾼(시멘트, 벽돌 등을 나르는 사람. 일본어 こうんぱん[고운반]에서 파생)을 했어요. 덩치가 좀 있고 하니까 인력소 아저씨가 “야~ 너 곰방은 해봤냐” 이러더라고. 곰방은 커녕 노가다도 안 해봤는데. 뭐든 상관없다고 일만 달라고 그랬더니, 어디로 가래요. 그래서 버스를 타고 간 거죠. 그랬더니 시멘트를 나르래요. 한 포대에 40KG짜리. 5층까지 가지고 올라가려니 와 진짜 죽겠더라고요. 당한 거죠. 첫날부터.

 

근 : 어떠셨어요. 첫 포대를 어깨에 올렸을 때.

 

송 : 진짜 땅으로 꺼지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내가 지하로 처박힐 것 같은 느낌. 어쨌든 꾸역꾸역하고 오니까 인력소 사장이, “어라 이 새끼 봐라 버텼네?”

 

근 : 일종의 테스트였군요.

 

송 : 그날부터 쭉 간 거죠. 노가다꾼으로.

 

근 : 그래도 이전까지 글 쓰고 기획하고 소위 먹물 일만 했는데, 갑자기 육체의 세계에 던져지니 뭔가 이질감 같은 건 안 들었어요?

 

송 : 전혀. 해보니까 너무 재밌더라고요. 내가 몸 쓰는 일이 이렇게 잘 맞을 줄 미처 몰랐네 싶더라니까.

 

근 : 이제 3년 차 노가다꾼 인데, 처음 시멘트 곰방꾼 할 때보다 달라진게 있다면?

 

송 : 아직 완전한 기술자는 아니지만, 일단 일당은 많이 올랐죠.

 

근 : 얼마나?

 

송 : 처음 잡부 때 받은 일당이 12만 원. 지금은 받는 건 21만 원.

 

근 : 완전한 숙련공은 아니지만 급할 땐 대강 다 할 수 있는?

 

송 : 네 어지간한 건 다 해요 이제. 형틀목수 일중에 제일 어려운 게 계단인데, 그거 빼고는 다해요.

 

근 : 일도 어느 정도 숙련 되었고, 일당도 많이 오르고.

 

송 : 노가다 꾼이 된 거죠. 꾼 냄새가 나는거죠 이제. 삶의 안정도 찾았고. 금전적으로도, 심정적으로도. 너무 즐겁고 행복해요. 헤어진 친구에게는 정말 너무 미안한 이야기지만, 저는 지금 너무 행복하고 즐거워요.

 

근 : 그동안 삶의 패턴으로 봐서는 슬슬 역마살이 다시 올 타이밍 같은데, 계단 배우면 또 딴데로 나르는 것 아닙니까?

 

송 : (웃음) 일단 제 목표는 형틀목수일을 마스터하는 것이에요. 저는 3년정도 봤는데, 생각보다 계단작업일을 배울 기회가 잘 없더라고요.

 

근 : 확실히, 계단 배우면 판을 뜰 기세군요.

 

송 : 모르죠. 앞날은.

 

근 : 원래 본인의 미래에 큰 관심이 없나요?

 

송 : 아니요. 장기적인 계획은 있어요. 근데 막 세밀하게 계획을 세우거나 그러진 않아요. 그냥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 거죠.

 

노가다판의 슈퍼스타

 

근 : 젊고 허우대 좋은 사람이 작정하고 노가다판에 뛰어드니 이래저래 탐내는 곳이 많겠군요.

 

송 : 아닌 게 아니라, 제가 잡부 때 진짜 쟁탈전이 많았어요. 철근 반장이랑 목수 반장이랑 서로 자기 팀으로 들어오라고. 워낙 젊은 노동자가 없는 데다가, 어쩌다 한 두 명 흘러들어와도 금방 사라지곤 하니까. 저는 어지간하면 그냥 쉬지 않거든요. '오늘도 나가자'는 주의라서.

 

근 : 그게 멋있으니까. 가오 있으니까.

 

송 : 스스로 멋없게 살고 싶지 않아서. 제가 잡부일 할 때 한 달에 28일이렇게 일 나갔던 것 같아요. 2~3일만 쉬고.

 

근 : 주말까지.

 

송 : 주말까지. 그러니까 팀 반장들이 “아 저 젊은 새끼가 제법 성실하네. 일도 안 빠지고. 너 와서 기술 배울래?” 이렇게 된 거죠.

 

근 : 그래서 목수일을 배우기 시작하신 거고?

 

송 : 네 형틀목수.

 

근 : 현직 목수이자 공간 디자이너로서, 여기 딴지 사옥을 평가해본다면?

 

송 : 블랙이랑 우드가 원래 조합이 좋죠. 다스뵈이다 스튜디오랑 비슷하네요. 뭔가 김어준 총수 다운. 뭔가 그분의 ‘아무렴 어때’의 아우라가 풍겨서 좋네요.

 

오.. 욕인가 칭찬인가. 총수가 엄청 신경 써서 한 인테리어라고 굳이 말하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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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가다꾼 아들

 

근 : 책 나오니 노가다 선배 형님들 반응은 어떠신가요.

 

송 : 엄청 기뻐해주시죠. 현장 소장이나 오야지분들도 막 몇 권씩 사주시고.

 

근 : 자랑스러워서.

 

송 : 네 자기 일처럼. 저는 노가다꾼들이 그게 좋은 거 같아요. 제가 이전에 어울렸던 사람들은 좀 젠체하고 격식 차리고 그런 데에 에너지 쓸 일이 많았거든요. 농담 한마디 하려고 해도 신경 쓰이고.

 

근 : 말해놓고도 혹시 실수한 거 없나 복기해야 하고.

 

송 : 네, 노가다꾼들은 그런 게 없어요. 솔직하고 깔끔하게 그날 다 풀고 끝이에요. 뒤에서 꿍하고 그런 게 없어요. 그게 진짜 좋은 거 같아요.

 

근 : 가족들은 어떤가요. 아들이 위험한 일 하는게 아무래도 맘에 걸리실 텐데.

 

송 : 얼마 전에 부모님과 집안 어른 장례식장에 갔어요. 오랜만에 보는 친척분들이 저를 보고 “어 너가 기자한다는 그 주홍이지?”이러시는 거예요. 엄마가 “어 기자~” 이러시더라고요. 그래서 엄마를 쳐다봤죠. ‘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라는 눈빛으로. 그랬더니 엄마가 제 손을 그냥 조용히 잡더라고요. (웃음) 아들이 기자였다가 노가다꾼이 된 거를 부끄러워하시는지까진 모르겠으나, 굳이 막 자랑할 거리로는 생각하시지 않겠죠.

 

근 : 이제 이 책으로 자랑하고 다니시면 되겠네요.

 

송 : 그래도 그런 시선은 여전하죠.

 

근 : 처음에 노가다 일 시작한다고 했을 때 뭐라시던가요?

 

송 : 아무래도 걱정을 많이 하셨죠. “하던 일이 있는데, 그거나 계속하지. 왜 먼지 마시려고 하니 위험하게.” 하시면서,

 

근 : 그러셨겠죠 아무래도.

 

송 : 제가 그동안 어떤 마음고생을 했었는지는 대충 아시니까, 저놈이 뭔가 생각이 있겠거니. 해주신 것 같아요. 제가 부모님한테 막 이렇게 깊게 얘기하지 않고 상의하지 않아요. 통보하지. 뭘 결정하든 통보했거든요. 항상. 이혼도 하고 나서 말씀드렸어요. 나 이혼했다.

 

근 : 쟤가 노가다 한 1년 하고 말겠거니 했는데, 지금 막 계단까지 배워서 형틀목수 마스터가 되려고 하고.

 

송 : 네 좀 놀라셨을 거예요.

 

노가다꾼의 꿈

 

근 : 책 내용 중에 요즘 읽는 책들을 소개한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도시재생, 로컬, 공간, 청년’ 이런 키워드의 독서를 하신다고. 쉬는 날 괜히 읽기에는 상당히 의미심장한 단어들인데 말이죠.

 

송 : 네, 계속 꿈꾸고 있는 것들이 있었어요. 전시, 공연 등 예술 프로그램과 지역민이 어우러지는 대안공간 같은 거. 사실 그 실험을 하기 위해 강릉으로 갔던 것이기도 했고.

 

근 : 미완성인 상태로 강릉을 떠났고.

 

송 : 네. 공간 세팅까지만 하고 나온 거죠. 그랬어요. 그 공간을 오픈하게 되면 그 친구와 저는 계속 가야 하는 거예요. 두 사람의 관계가. 그래서 그때 스톱했어요. 오픈하기 전에. 여기서 멈추자고 우리.

 

근 : 그 꿈이 좌초되어서 헤어진 게 아니라, 헤어져서 꿈이 멈춘 거군요?

 

송 : 그렇다고 볼 수 있죠. 그 친구와 저랑은 부부이기도 했지만 동업자였어요. 저와 결이 굉장히 비슷한 친구였죠. 단지 생활이 달랐던 거죠. 이미 부부로서의 관계는 너무 멀리 와버렸고, 그런 상태에서 단지 공간만을 위해 부부라는 형식을 유지한다는 것은 너무 아이러니 한 일이니까요.

 

근 : 그렇게 일단 꿈이 멈추셨는데, 불씨가 아직 살아 있는 건가요?

 

송 : 그렇죠. 공간에 대한 관심은 늘 있어요. 기자 시절에도 취재 다니면서 계속 공부를 틈틈이 했었어요. 사실 새로운 공간을 마련할 곳을 봐둔 곳이 있긴 해요. 10년 혹은 그 이상 걸릴진 모르겠지만.

 

근 : 어디?

 

송 : 안면도. 매년 여름마다 안면도로 여행을 가요. 혼자. 구석구석 뒤지고 다니고 있어요. 어디가 좋을지. 게스트하우스 겸 카페 겸 작업실 겸 공연장 겸 뭐 그런 곳으로. 그러면서 계속 안면도라는 지역을 취재하고 기록하고 책으로도 내고. 사람들이 찾아오면 여행 코디네이터도 하고.

 

근 : 그 공간의 이름은 정했습니까?

 

송 : 공간의 이름은 아직 없는데, 회사 이름은 정했어요. ‘재미있는 연구소’라고.

 

근 : 음.. 좀 너무 대충 지은 거 아닙니까.

 

송 : 아니요. 표기가 달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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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 저는 우리 사회에서 제일 중요한 게 신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행복이고요. 서로가 좀 믿었으면 좋겠고 그래서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일단 저부터가. 그 두 가지 단어를 하나로 합친 거죠.

 

근 : 인터뷰를 마치기 전에, 행복회로나 한번 돌려봅시다. 신간<노가다 칸타빌레>가 한 10만 부 나가고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칩시다. ‘세상을 바꾸는 시간’ 뭐 그런데 나가서 매스컴도 쭉쭉 타고. 광화문 교보문고 저자 사인회 줄이 막 종각역까지 길게 늘어서고. 존버하는 노다가꾼 이야기라니까 워라벨 찾는 요즘 젊은 것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건실한 젊은이라고 정치권에서 막 러브콜 받고. 이런 일이 일어났다 치자구요. 그러면 망치질, 계속하실 건가요?

 

송 : (심드렁) 일은 뭐 해야죠. 계속.

 

근 : 붕붕 떠서 거 망치가 손에 잡히겠어요?

 

송 : (단호) 일단 계단은 마스터해야 하기 때문에.

 

근 : 아니 계단 나라시 치고 있는데, 국민의힘에서 비례대표 주겠다고 전화 오고, 삼성 연수원 이런 데서 몇백만 원짜리 강연 해달라고 이래도 콘크리트 계단이 눈에 들어올거냐 이 말입니다.

 

송 : (진지) 계단은 해야 돼요. 그래야 완연한 기술자가 되는 거라.

 

안 넘어온다. 이미 가오에 지배당한 육체에 뭘 더 어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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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 딴지일보에 책과 같은 제목으로 에세이를 연재한지 2년이 다 되어갑니다. 꽤나 장기 연재물이 되었는데. 마지막으로 딴지 독자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송 : 제가 만약 k리그에서 뛰는 축구 선수라고 치면, 저에게 딴지일보는 프리미어리그였어요. 내가 글쟁이로서 언젠가 딴지일보에 연재 할 날이 있을까? 그런 필진이 될 수 있을까? 늘 상상했었거든요. 저한테 딴지일보는 그런 의미의 언론사였던 거죠. 그런데 연락이 왔을 때 너무 기뻤어요. 와 진짜? 딴지일보가 나한테 글 써달라고 한다고? 너무 영광 아닌가? 그때 친구한테 뭐 자랑하고 그랬었거든요. 딴지일보를 통해서 출판사를 만나기도 했고. 저한테는 굉장히 고마운 존재인 거예요. 딴지일보가. 부끄러워서 답글을 남기지는 못했지만 제 글에 달리는 댓글을 늘 고맙게 읽고 있어요. 굉장히 큰 힘이 돼요. 하나도 빠짐없이 다 읽고 있어요. 너무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어요. 독자분들과 딴지일보에.

 

근 : 말로만 하지 마시고 안면도에 게스트하우스 차리시면, 게시판에 숙박 할인쿠폰이라도 좀 뿌리시죠.

 

송 : (웃음) 네 꼭 그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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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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