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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의 1/6을 대중교통에서 보내는 그대, 경기러

 

매일 도시 서울에 무언가를 두고 오는 사람들. 일, 공부, 친구 혹은 그 이상의 무언가를 찾아 매일 서울을 오가고 있는 사람들. 그런 서울 출퇴근 인구 천백만 중 한 명이었던 나는 매일 서너 시간씩 빨간 시외버스에 몸을 맡기며 하루의 1/6은 응당 통근하는 것이 당연한 줄 알고 인생의 반절을 살았다.

 

파주에서 합정을, 양주에서 명동을, 일산에서 안국을 향했던 전형적인 서북부 경기러. 나는 집을 향하는 대중교통에서 남아도는 시간에 글을 쓰곤 했다. 어두운 무표정의 사람들과 빛나는 스마트폰 화면의 대비, 누군가의 얼큰한 술 냄새, 그리고 어깨를 감싸는 노곤함 등이 어우러진 퇴근길은 나에게 영감이 되어주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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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머니 밖으로 끌려 나온 캥거루

 

비싼 월세와 생활비를 이유로 캥거루족으로 살아왔지만, 부모님의 은퇴로 더 이상 안락한 주머니 생활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꿈꾸던 독립을 ‘한’ 것이 아니라 어쩌다 독립을 ‘당한’ 느낌이랄까.

 

주머니 밖으로 끌려 나온 캥거루는 가진 것도 없이 연약했다. 집을 구한다는 것은 알아야 할 것도, 준비해야 할 것도 얼마나 많은 것인지. 전세자금대출, 정책금융상품, 청년월세보증금지원, 임대주택 등등등.. 홍수처럼 쏟아지는 관련 정보를 바라보며 아득해졌다.

 

더군다나 모아둔 목돈은 30살에 떠난 영국 유학으로 모두 써버렸다. 잔고 0원 제로베이스에서 새롭게 서울살이를 알아보려니 황망했다. 서울 상경하는 푸릇푸릇 한 대학 신입생도 아닌데, 이렇게 양손에 든 것이 하나 없을 일인가.

 

다행히도 대학시절부터 자취를 시작하여 10년 넘게 서울살이를 하고 있는 지인들의 전투력은 굉장했다! 오들오들 떨고 있는 캥거루 새끼를 들쳐매고, 정글의 왕자 타잔처럼 늠름하게 서울 집 구하기를 리드해줬다.

 

첫 자취를 시작하는 30대의 서울 임장기

 

매일 20분을 기다리고, 70분을 내달려 서울을 향했던 2015년의 나는 "저 드넓은 서울에 내 몸 뉘일 한 켠이 부족해."라고 일기를 썼었다. 그만큼 강변북로를 내달리는 버스 차창가에서 바라본 서울은 넓디넓었다. 심지어 빽빽하고 촘촘한 성냥갑 같던 아파트들은 재개발로 초고층 주상복합 건물이 되었는데, 2021년에도 여전히 내 집은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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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PG게임을 시작하는 용사가 된 마음으로 서울시민이 되기 위한 발걸음을 뗐다. 가진 건 쥐뿔도 없지만, 뭐 이제 시작이니까. 차례차례 집 구할 곳을 필터링해보았다.

 

누가 뭐래도 첫 번째 필터는 한강이었다. ‘강북 vs 강남’, 나는 아직도 강남에 들어설 때면 산골소년의 마음으로 되돌아간다. 본디 비료포대에 짚을 채워 눈썰매를 타고, 쥐불놀이를 하다가 인삼밭을 태워먹을뻔했던 산골소년이었던지라, 왕복 10차로 강남 대로와 드높은 빌딩 숲 앞에서 위축이 되는 모양이다. 영화 <기생충>의 송강호처럼 지하철 냄새가 나진 않는지, 나도 모르게 소매를 킁킁거리며 걱정하게 된다. 그래서였을까. 출퇴근 이유로 유력 후보지였던 역삼은 사실 온라인 매물만 보고 직접 방문해보지도 않았다. 사실 안 가봐도 너무 비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남 접근성은 두 번째 필터로 올려둘 수밖에 없었다. 한 지인은 ‘20대가 양화대교라면, 30대는 동호대교지’라며 조언을 해줬다. 나는 그 뜻을 잘 몰랐지만 이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할 때면 다들 끄덕끄덕하곤 했다. 아마 만남의 장소가 신촌이나 홍대 같은 대학가에서 좀 더 나이가 들며 자연스럽게 직장들이 많이 위치한 강남으로 이동했기 때문인 것 같다. 현실적으로 기업들이 몰려있는 강남, 광화문, 공덕, 여의도 등 번화한 도심에 떡하니 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고, 결국 서울로 살게 되어도 대중교통 출퇴근은 필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세 번째 필터는 순서만 세 번째지 사실 가장 결정적인 조건인 지출 금액이었다. 예전에는 친구들한테 가장 많이 들었던 괜찮은 서울 원룸 월세 기준이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 50만 원 정도였던 것 같은데, 그 사이 부쩍 자라난 서울 집값의 위용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유학 다녀온 2년 사이 내 월급 오른 것보다 월세를 더 많이 올려준 것 같은데, 도대체 주택 보유자들은 왜 현 정권을 미워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또 다른 놀라웠던 것은 집값은 정말 재화의 가치를 제법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사진으로 괜찮아 보이는 전셋집은 창문을 열어보면 옆집 벽이 튀어나왔다. 비슷해 보이는 집들이 단 5만 원이라도 월세가 차이가 난다면, 단 신발장 하나라도 차이가 있는 것이다. 

 

맞아, 근데 너는 안돼

 

대학시절에 입학할 때, 부모님은 네가 장학금을 타오면 등록금 감면 분만큼 현금으로 용돈을 주시겠노라 말씀하셨다. 그래서 입학 첫 학기, 대학 동기들 보다 덜 놀며(?) 학점 관리를 했는데 비슷한 학점의 동기들과는 달리 등록금이 한 푼도 안 나온 것이 아닌가. 억울해하던 내게 씩 웃으며 다가온 친형은 비밀을 알려줬다. “우리 집은 부부 공무원이라 장학금 안 나와.”

 

알고 보니 유리지갑 공무원 집안인 우리 집은 소득 분위가 높았고, 과탑 정도가 아니면 성적 장학금 나올 일이 거의 없었던 것이다. ‘돈 더 많아 보이는 친구들도 장학금 잘만 타가던데!’하며 아쉬웠지만, 더 어려운 친구들에게 돌아갔을 장학금을 대놓고 불평할 수는 없었다. 백만 공무원 시대라는데, 적어도 백만 명은 넘을 공무원 자녀들은 공감할 것이다.

 

그리고 자취 집을 구하는 2021년, 친구들이 추천해 준 수많은 정책금융상품을 보며 데자뷰를 느꼈다. 지금 나는 당장의 보증금 마련할 여력이 없는데 임대주택도, 임차보증금 지원, 청년 대출 사업도 내가 받을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아직 받지 못한 내 연봉은 아주 근소하게, 억울할 정도로 근소하게 지원자격 기준을 넘겼다.

 

대략 중위소득과 평균 소득 사이 즈음에 위치한 삶이라고 할 수 있다. 중위소득은 전 국민을 돈 많이 버는 순으로 줄 세웠을 때 가장 가운데 있는 사람의 소득이고, 평균 소득은 전 국민 소득의 평균값이다. 대체로 나라의 지원정책은 중위소득을 기준으로 따지기 때문에, 나는 분명 평균보다는 못 사는 것 같은데 나라의 지원정책은 받지 못한다. 울타리 경계에 바짝 붙어 침만 꼴깍 삼키고 있는 경험이 반복된다.

 

도대체 이런 청년 주거 정책은 누가 수혜 받고 있는 것인지 한탄하다가도, 매우 조심스러워진다. 누군가에게는 이만한 소득과 마이너스가 아닌 ‘0원’의 통장 잔고마저 부러울 수 있기에. 그러나 나와 같은 처지에도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저 성실한 근로소득으로 미래를 그려가는 보다 많은 청년들에게 힘이 되는 정책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가진 자의 입장은 단순하다

 

공교롭게도 나는 새로운 서울살이 집을 구하면서도, 은퇴 후 떠나신 부모님을 대신해 집을 내놓는 일을 동시에 맡아 하게 됐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세를 구하고 내놓으며, 계약서상의 갑과 을을 동시에 경험한 것이다.

 

내 월세 보증금 대출 허가가 나올지 안 나올지 조마조마하게 궁금해하며 기다리는 판국에, 든든한 연금과 자가주택을 가지고 인생 후반전을 시작하는 베이비부머 부모님이 부러울 따름이었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세대갈등인가. 그러나 집값이 올라서 기뻐하던 부모님은 자식의 월세방 보증금을 도와주며 이렇게 생긴 집이 무슨 월세가 이렇게 비싸냐며 함께 욕을 했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세대통합인가.

 

이처럼 동시에 상반된 입장을 처해보는 독특한 경험이었다. 집을 알아 볼 때 나는 열심히 주판알을 튕기며 이자 한 푼이라도 싼 대출을 알아봐야 했던 세입자 였지만, 집주인 아들이 되자 그런 과정은 1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냥 정해진 날짜에 정상적으로 입금만 되는 것 말고는 신경 쓸 것이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입주한 나의 서울 집도 마찬가지였다. 천장에 몰딩이 떨어져있고, 화장실 문이 잠기지 않고, 싱크대 분리대가 제대로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몰랐던 나에겐 제법 걱정되는 복잡한 일이었지만, 집주인은 아주 태연했다. ‘생활에 지장 없는 거면 그냥 냅둬요. 나중에 물어달라고 안 할게.’ 음, 가진 자의 입장은 이렇게 단순한 것이구나. 그래서 기구하고 복잡한 사연을 안고 사는 것은 언제나 아쉬운 쪽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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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이 아닌 집 이야기

 

역시 서울은 넓었고, 어떻게든 내 몸 한 켠 뉘일 곳을 찾아냈다. 월세 50만 원에 반지하도 옥탑방도 아닌 집을 어렵사리 찾아내어 계약했다. 집주인은 이 동네에서 미용실만 40년을 운영하셔서 건물을 올리셨다는 할머니 사장님이셨다. 집을 살펴보던 중에도 계속 문의 전화가 온 인기 많은 매물이었기에 집주인에게 잘 보이는 것이 중요했다. 첫 만남에 어쩜 이렇게 좋은 건물을 세우셨냐며 싹싹하게 너스레를 떨자, 미용실 사장님답게 바짝 올린 파마와 경계 가득한 눈빛이 조금은 너그럽게 풀리셨던 기억이 난다.

 

집 하나를 구하는 것에도 다채로운 이야기가 담긴다. 자세히 담지는 못했지만 이웃사촌이 되자며 열심히 함께 집을 찾아봐준 친구, 저리의 은행 상품을 찾아준 직장동료, 성격 시원시원한 공인중개사 사장님까지 많은 이들이 도와줘 서울이 허락해 준 이 첫 자취 집에 만족하며 지내고 있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부동산을 이야기한다. 마치 온 세상이 부동산에만 관심이 있는 것 같다. 부동산으로 몇 억을 번 과장님, 신혼 특공과 생초 특공 중 무엇이 좋은지 치열히 토론하는 결혼을 앞둔 친구들, LH사태에 들끓는 언론 기사들. 그 안에 담긴 박탈감과 불안감, 초조함이 먼저 생각나게 하는 부동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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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과 투기의 장르가 아니라면, 집 이야기는 사실 재밌고 따뜻한 대화 주제다. 부모님에게 살림 노하우를 전수받고, 친구들과 어떻게 '나 혼자 사는지' 공유하고 나누는 건 정말 즐거운 일이다. 아이디어 넘치는 새로운 살림도구를 발견할 때의 기쁨, 공공요금을 아끼는 꿀팁을 얻었을 때의 뿌듯함, 집들이에 온 사람들에게 대접할 음식을 준비하는 분주함. 집은 그런 이야기를 할 때 더 어울리는 주어다. ‘성공은 원하는 것을 가지는 것이고, 행복은 가진 것을 원하는 것’이라던데, 우리는 언제쯤 뉴스 기사에서 부동산 보다 집 이야기를 더 많이 들을 수 있을까. 모두 아늑한 집에서, 사는 이야기를 하고 살았으면 좋겠다. 복덕방 이야기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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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후 떠난 영국에서 공부하며 글을 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