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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전투기의 개발과 판매에 대해서 몇 가지 말해둘 게 있다(오해할 수 있는 상황을 최대한 막기 위해서다).

 

첫째, 시험 비행기가 완성되더라도 당장 전력화가 되는 건 아니다. 

 

보통 시험용으로 제작된 전투기들은 몇 년 간 각종 시험을 진행한다. 평균적으로 시험 기체가 만들어지고나서 프로그램이 정말 아무 탈 없이 진행된다면 10년 안에 양산기체 1호기가 나와 인도된다. KFX도 2018년에 기본설계 마치고 상세설계 들어가고, 초기 기체의 비행시험을 마치면 2026년 정도가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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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 홈페이지에 있는 KFX 추진일정

 

그렇다고 일정이 다 끝나는 게 아니다. 아마 추가 무장시험도 따로 진행해야 할 거다. 정말 낙관적으로 봤을 때다. 2021년 4월에 시제기가 출고된다면 초기에는 지상시험을 계속할 것이고, 초도비행은 2022년 7월 정도가 된다(계획대로라면 말이다). 이 정도면 상당히 ‘순조로운’ 거다. 그리고 미친 듯이 시험비행을 할 거다.

 

이 말인 즉슨, KFX가 10년 안에 동북아를 위협할 정도로 엄청나게 많이 찍혀져 나올 수 없다는 거다. 예산이나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물리적인 개발기한의 문제다. 

 

둘째, 설사 KFX가 찍혀져 나온다 해도 이 전투기가 완벽하게 전력화 되는 건 도입되고 나서 10년 정도 흐른 후일 것이다.

 

F-16이 우리나라 주력이 되고 난 뒤 완벽하게 전력화가 된 건 전선에 배치된 후 10년이 지난 후였다. 파일럿들 기종 전환훈련 시키고, 전술개발하고, 정비인력 양성하는 등 할 일이 많다. 그나마 F-16 계열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이고, 다른 나라의 축적된 경험들이 있었다. 그런데 KFX는? 처음부터 하나하나 쌓아올려야 한다.

 

셋째, 전투기 구입이나 개발에 들어가는 비용은 어마어마하다. 그러나 그걸 유지하는 비용은 더 많이 들어간다. 

 

2010년부터 2013년까지 우리나라 주력 전투기 F-15K와 F-16 계열의 수리 부속 및 정비 비용은 무려 1조 1967억 원. F-16 한 대를 10년 운영하는데 F-16 한 대 값이 들어간다. 전투기 도입 이후 들어가는 비용에 대해서는 개념조차 없다. 전투기 한 대를 도입하면 평균 8,000시간 비행 후 퇴역한다. 30년을 넘어서는 것은 비용 대비 효과에서 오히려 낭비로, 정비 비용이 더 들어간다. 보통 전투기 도입 사업에서 초기 구입비는 전체 비용의 30%로 전투기 한 대를 30년 간 굴리면 구입비용의 2배 이상의 군수 지원 비용이 발생한다. 후속 군수 지원 비용이 나머지 70%인 거다. 

 

유지 비용 중 상당수가 전투기의 부품 값이다. 그런데, 이 부품이 미국 것이다. F-15K의 경우 제작사인 보잉과 맺은 기술 협약서(TAA) 때문에 기술 통제가 심하다. 우리나라가 기술이 없어서 못 고치는 경우는 어쩔 수 없겠지만 간단한 교체나 수리 기술이 있는 상황에서도 쉽사리 고칠 수 없는 상황이다. 수익성이 낮아 제조사가 생산 라인을 폐쇄하면 부품을 구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면 아예 다른 장비를 장착하는 개량 사업이나, 다른 기체의 해당 부품으로 교체해 운용하는 동류전환에 들어간다.

 

비행 자체에 영향을 끼치는 부품이 아니라 레이더 경보 수신기(Radar Warning Receiver, RWR. 적군의 레이더 전파를 수신하여 자신이 탐지되고 있음을 알리는 장치)처럼 전시(戰時)에 필요한 장비가 고장난 경우도 있다. 100% 성능은 발휘하지 못하지만, 평시 후방 훈련에는 쓸 수 있는 불완전 가동 항공기(F-NORS)라면 그대로 띄운다. 부품을 구하더라도 바가지를 쓰는 경우도 많다. 별거 아닌 수리를 위해 미국으로 건너갔더니 부품값만 사기 당하고, 간단하게 고친 뒤에 돌아왔다는 이야기는 전설처럼 이러저러한 기체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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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15K

 

넷째, 전투기를 만들 수 있는 나라는 전 세계에 극히 적다. 

 

서구권에서도 미국과 유럽이 나눠지고, 유럽은 다시 복잡한 정치적, 경제적 논리에 따라 메이커가 몇 개로 나눠진다. 미국의 경우에는 대표적으로 보잉과 록히드 마틴이 있고, 프랑스에는 다소(Dassault Aviation)와 에어버스가 있다. 독자 방위를 외치는 스웨덴은 사브(SAAB)가 그리펜을 생산한다. 한국은 한국항공우주산업(KAI)에서 T-50을 베이스로 한 각종 항공기들을 생산해낸다. 

 

복잡하게만 보이는 항공기들의 족보도 하나만 살펴보면 의외로 쉽게 정리할 수 있다. 바로 ‘엔진’이다. 전 세계 민간, 군용 항공기 엔진 시장을 삼분하는 거대 메이커는 제너럴 일렉트릭(GE), 롤스로이스, 프랫 앤 휘트니(Pratt & Whitney)다. 서방 군용기 메이커 숫자가 몇 개든 탑재된 엔진은 이 3개의 메이커 중 하나의 엔진 둘 또는 그 이상을 사용한다. 각 메이커는 기종에 따라 엔진이 상호 호환된다. 그만큼 항공기 엔진, 특히 제트 엔진 생산에는 엄청난 기술력이 투입된다.

 

당장 신뢰할 수 있는 제트 전투기의 엔진을 만들 수 있는 국가를 손꼽으라면, 4~5개국이 안 된다. 미국과 영국이 서방세계는 꽉 잡고 있다. 프랑스의 스네크마가 있지만, 이들은 자국산 라팔, 미라지 엔진을 만드는 정도에서 멈춰있다. 러시아 엔진은 전통적으로 나쁜 연비와 불완전연소, 짧은 수명주기에 의해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경우가 많고, 그 엔진을 데드카피한 중국제 엔진은 성능에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된다. KFX에 F414 계열 엔진을 수입해서 다는 것에 대해서 너무 뭐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섯째, 우리나라 군대는 한국 공군의 적정 전투기 보유대수를 430대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이게 2006년인가 기준으로 만들었던 숫자이다). 한편 공군 측은 최소한 500대를 생각한다. 

 

따지고 보면 430대는 공군이 요구하는 마지노선이라 생각하면 된다. 문제는 KFX 사업은 1차로 노후화된 F-4팬텀과 F-5시리즈를 대체하기 위한 작품이다. 정말 마르고 닳도록 쓰고 있는 전투기들이다. 대체해야 한다는 사실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거다.

 

그런데 여기서 고민을 해봐야 하는 게 있다. 

 

① 대체해야 할 시점에 계획된 성능대로 만들어져서 공군에 납품이 되는가

② 120대만 생산한다면, KAI가 살아남을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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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X 모형

 

①의 경우 사업 시작 전부터 찬반이 팽팽히 맞섰다.

 

“항공 선진국들도 전투기 개발에 실패하거나, 프로그램 관리에 실패해서 프로그램 예산이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거나, 기껏 개발한 전투기가 예상 이하의 성능을 보여서 낭패를 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런데 항공 선진국들보다 경험이 적은 우리가 그들보다 적은 예산과 짧은 기간으로 4.5세대급 전투기를 만드는 게 가능할까? 만약 사업이 실패한다면, 예산도 예산이지만 그 후폭풍을 고스란히 맞는 게 대한민국 공군이다. 전력공백을 어떻게 메울지를 생각해야 한다.”

 

2015년 KFX 사업 예산이 통과됐을 당시 국회 국방위원장이었던 故정두언 의원이 했던 발언이 하나 있다.

 

“사업이 실패할 게 분명한데, 예산을 주는 것은 정말 양심의 가책을 받는 일이다.”

 

직전에 국방위원장을 맡았던 유승민 전 의원은 처음부터 반대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많은 사람들이 ‘아 이거 대재앙이 될 수 있겠구나.’ 라고 말한다. 전 이건, 정말 몰라서 그러시거나, 직무유기라고 생각합니다.”

 

KFX 개발의 험난한 정치적 여정은 책 한권을 써도 모자를 정도다. 

 

개발 이야기가 나온 게 2000년이다. 이 때는 사람들 반응이 ‘뭐 듣기 좋은 말이네.’ ‘국산 전투기 개발 해야 한다는... 쌀로 밥짓는 소리네.’ 정도의 느낌이었다. 노무현 정부 때 사업 타당성을 검토하면서 수면위로 올라갔다가 양산 불가 결정이 나왔고, 이명박 정부 시절엔 KDI가 경제성이 없다며 KFX 관 뚜껑에 못을 박았다. 그러다 건국대 연구소에서 '4.5세대급 전투기를 개발비 5조원 이내로 개발하면 사업 타당성이 있다'며 관뚜껑의 못을 뽑았고, 여기에 인도네시아가 붙고, 터키가 붙었다 떨어져 나갔다. 박근혜 정부 때 다시 타당성 조사에 들어갔고, 예산 승인이 떨어져 개발이 시작됐다. 

 

노무현 정부 땐 5세대를 염두에 뒀다가 이명박 정부 때 4.5세대로 떨어뜨렸다. 박근혜 정부 시절 국방위원장 하던 故정두언 의원이 기자회견을 열면서까지 KFX를 반대했던 게 지금도 기억이 난다. 정두언 의원은 상식과 합리를 말하며 KFX를 반대했다. 

 

공군의 전투기 소요 제기도 인정하며, 국내 항공산업 육성의 필요성도 인정했다. 그러나 이 사업이 성공하려면 국산 부품의 개발이 우선 완료돼야 하고, 미국의 지지가 없으면 개발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던 거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미국의 지지’였다. T-50처럼 미국은 수출을 반대할 게 뻔하다. 아니, 수출의 경우는 만들어졌을 경우를 상정한 건데, 미국은 기술이전 자체를 반대했다. 2015년 국방위에서 KFX 예산이 통과된 다음 KFX사업단은 미국의 록히드 마틴과 기술이전에 대한 실무협의를 시작했는데, 다기능 위상배열 레이더를 비롯해 KFX 4개 핵심 항공전자장비 체계통합기술의 한국 이전을 거부했다. 

 

“이봐, 해보긴 해봤어?” 

 

故정주영 회장의 말을 주워 섬겨야 하는 상황이다. 

 

국산화의 당위성, 방위산업의 역량 강화가 필요하다는 걸 정두언 의원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현실을 무시할 수 없었던 거다. 2015년 록히드 마틴과의 협의는 우리가 핵심기술에 대한 확보 없이 개발에 뛰어들었다는 걸 스스로 인정하는 거였다. 물론, 그 사이 우리가 노력해 핵심기술을 확보하고 이걸 우리 전투기에 장착할 수도 있다(나 역시 그러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문제는 이런 위험부담을 고스란히 안고, 부족한 경험과 짧은 사업기간과 적은 예산으로 헤쳐나가야 한다는 거다. 안 그래도 위험한 사업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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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큰 문제는 이런 위기를 다 넘더라도 ②의 문제, "120대만 생산한다면, KAI가 살아남을 수 있는가"가 도사리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KFX 500대 생산 이야기가 솔솔 흘러나오고 있다는 거다. 우리나라 공군이 이 500대를 다 사줄 순 없다. 국내 보유 전투기 숫자가 500대가 안 되는 상황에서 이 물량을 우리 공군이 다 소화해 낼 수는 없다. 작정하고 500대 이상으로 보유대수를 늘리면 문제는 해결된다.

 

그러나 이 500대가 한꺼번에 들어온다면 운영상의 문제가 발생한다. 만약 KFX에 중대한 결함이 있다면 당장 500대 모두가 작전이 중지된다(공군에선 추락사고 나면 사건 조사가 끝날 때까지 해당 기체 비행을 금지하곤 한다). 퇴역할 때도 문제다. 이걸 한꺼번에 교체해야 하지 않는가? 즉, 500대를 우리 공군이 모두 다 받을 순 없다는 소리다. 

 

그럼 이걸 어떻게 해야 할까? 그렇다, 수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