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졌다, 뭐 그건 그거고 

 

시작부터 너무 빤한 말을 늘어놓아서 미안한데, 몸에 좋은 약이 입에 쓰다. 선거는 끝났다. 우리 쓴 소리나 나누자.

 

왜?  

 

다음엔 이겨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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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출처-<아시아경제>

 

지금부터 이야기하는 건 죄다 결과론에 불과하다. 하지만 제대로 된 원인 분석과 그 결과를 도출한다면 코앞으로 다가온 진짜 본선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승리를 거머쥘 수 있기에 성찰이 필요하다. 내가 그걸 할 수 있다는 건 아니다. 생각을 나누자는 거다. 

 

자, 시작해보자. 

 

 

버튼은 저마다 다르다

 

사람은 소위 ‘버튼’ 눌리는 지점이 저마다 다르다. 이걸 이해해야 한다. 각자 가진 콤플렉스와 살아온 과정, 환경 등이 달라서 그렇다. 

 

누구는 박원순-오거돈의 성추문에 격분했을 수 있다. 누구는 조국 문제에 분개했을 수 있다. 또 누구는 부동산 정책과 LH 사태에 화딱지 났을 수 있다. 사람마다 ‘버튼’ 눌리는 지점은 다르다. 

 

하지만 이 오만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시너지를 일으켰다고 해서 이 모든 걸 해법의 레퍼런스로 삼으면 정답은 산으로 간다. 밑도 끝도 없는 해법 찾기 하다가는 급기야 모든 것이 완벽한 신의 영역에 도달할 것이다.

 

가.능.하.지.않.다.

 

이 모든 걸 꿰뚫는 공통분모, 큰 틀에서의 정답을 찾아야 한다. 원인은 뭘까. 앞서 얘기했듯 버튼 눌리는 지점은 저마다 다르지만 ‘정권 심판’이라는 큰 흐름을 만들어낸 진짜 원인 말이다. 

 

 

‘정권 심판’ 흐름을 만든 원인을 찾아보자

 

누구는 박원순-오거돈의 성추문으로 인해 발생한 선거이기에, 즉 민주당이 정치적 원죄를 지고 시작한 선거이기에 질 수밖에 없었다고 얘기한다. 맞다. 더해서 정치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아예 후보를 내지 않거나 후보를 냈더라도 확실한 사죄를 표하는 모양새가 부족했다 질타한다.

 

후자는 틀렸다. 민주당 지도부는 후보를 내기로 결정했다. 많은 이들이 노무현의 “원칙 있는 패배”를 주문했지만 결국 “원칙 없는 패배”가 된 모양새다. 첫단추를 잘못 뀄는데 결과가 좋을 리 없었다. 

 

그렇게 간다고 치면 실제 이뤄졌던 선거 캠페인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나를 찍어달라 출사표를 던져놓고 “죄송하다”고 사죄만 하고 자빠질 순 없는 노릇 아닌가. 뭔 소릴 하더라도 “잘못한 줄 알면 후보를 내지 말았어야지.” 이 한마디에 무너질 수밖에 없는 거다. 

 

헌데 과연 성추문 자체가 심판론에 결정적 이유였을까? 그렇다면 상대적으로 여성표가 빠져야 했다. 하지만 민주당 20-30대 여성 득표율은 같은 세대 남성 득표율보다 높다. 20-30대 남성 집단이 성추문 스캔들 때문에 여당을 심판했다고 판단하는 건 상식적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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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출처-<아시아경제>

 

20-30대 남성의 “페미”에 대한 백래시도 없진 않겠으나 그렇다면 최소한 선거에서, 그 추궁의 칼날이 페미니즘에 이렇다할 기여는커녕 성추문으로 질타를 받는 민주당에 향할 이유는 더더욱 없다. 차라리 박영선의 ‘역사적 경험치’ 발언이 ‘꼰대’라는 향내가 나는 뻣뻣함의 정수였고 여기에 힌트가 있지 않을까. 

 

누구는 조국 사태 때부터 패배가 잉태되었다고 말한다. 이건 그냥 심심하니까 하는 소리다. 조국 청문회는 2019년 8월 말이었고 21대 총선은 2020년 4월이었다. 무려 8개월동안 시끄러웠던 문제였는데 조국을 심판하고자 했다면 총선에서 해치웠을 게다. 하지만 다들 알다시피 총선은 범여권의 압승이었다.

 

왜일까. 간단하다. 조국을 피해자 혹은 약자로 봤기 때문이다. 설령 조국이 잘못했을지언정 언론이나 검찰의 행태는 도를 넘어도 지나치게 넘었다. 일종의 광기였다. 유권자들은 이에 동의한 거다. 1심 재판도 끝난 마당에 그 해묵은 논란이 느닷없이 재보선에 작동했다고 생각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부동산이 답일 수 있다. 선거전 직전에 터진 LH 사태가 깊은 내상을 입힌 것도 사실일 테다. 그간의 여론조사 추이를 복기해 보자. 지난 1월과 2월, 각 당의 단일화가 이뤄지기 전 박영선 후보는 오세훈과의 가상대결과 안철수와의 가상대결에서 근소한 차이로 이기거나 근소한 차이로 지는 결과가 여러 번 있었다. 3월 초 LH 스캔들이 터지며 그 차이가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 여론조사 추이로 확연히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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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8일. PNR에서 서울에 거주하는 만 18세 이상 남녀 80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정당 지지도.

 

참여연대가 LH 터트린 게 3월 2일, 대통령 사과가 나온 게 3월 16일이다. 이 보름동안 부당이득을 모두 환수 조치하겠다고 했다가 입법에서 소급적용은 무리라고 했다. 국수본에서 책임지고 수사를 한다고 했다가 검찰이 합류한다고 했는데 이게 또 검찰의 수사범위냐를 두고 말이 많았다. 메시지도 통일되지 않고 수사는 갈팡질팡으로 비쳤다. 그리고 대통령은 사과에 보름이 걸렸다. 

 

내 집에 불이 났으면 얼른 꺼야 한다. 아니, 불을 끄긴 껐지. 근데 문제는, 내 집에 난 불이 아니라 남의 집에서 남이 지른 불을 끄는 행태였다는 거다.

 

이거, 아주 중요한 거다. 

 

부동산 정책에 대한 박탈감도 작용했을 게다. 세금폭탄이라는 조선일보의 낡은 테이프도 여전히 강력한 효과를 봤을 터다. 하지만 유권자들이 부동산에 미쳐 돌아가서 부도덕한 선택을 했다며 국개론으로 해석하면 곤란하다. 

 

인간의 욕망은 자연스러운 거다. 각자도생이냐, 공공이익의 실행이냐는 가치를 두고 정부여당이 정책 수립과 이행 과정에서 여론 설득에 실패했다고 보는 게 맞다.

 

유권자 탓이 결코 아니다. 그게 억울하면 야당해야한다.

 

우리는 억울해하면 안된다.

 

우리는 지금 그 정도 위치에 올라와 있으니까.  

 

 

태도

 

원인으로 지목되는 오만가지 이유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은 ‘태도’이다. 뻣뻣한 태도. 이걸 극명하게 드러내는 것이 바로 선거 직전에 터진 김상조 정책실장 사건이다. 청와대가 김상조 실장을 즉시 경질하자 모든 언론은 “의외”라고 했다(소상한 내막을 아는 우리로선 김상조 실장이 억울한 걸 알지만 여하튼).

 

그리고 그건 딱히 틀린 평가가 아니었다. 이전까지는 실제 이유가 어떻든, 여론이 보기에 즉각적으로 책임을 지우지 않는 모양새로 비춰진 게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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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놓고 말해서 청와대와 민주당만 뻣뻣했는가. 아니다. 지지자들은 한술, 아니 두어술은 더 떴다. 민주당의 행태를 비판하는 이들과 싸웠다. 설득이 아닌, 싸움에 집중했다. 과거의 우리 장점을 까먹은 게다. 적들과는 싸우되, 중도층과는 이야기해야한다는 사실을. 즉, ‘영업’의 기본이 안되어 있는 거다. 

 

“아 그러시군뇨. 고갱님” 하면서 일단 경청을 하고 적당히 맞장구도 쳐서 아이스브레이킹을 한 다음, 팔고자 하는 물건의 장점을 조곤조곤 어필하는 것은 세일즈의 기본 아닌가. 국힘당 지지자도 아니고 태극기는 더더욱 아닌 사람이 민주당과 문프 비판 좀 했다고 다짜고짜 너 죽고 나 살자고 달려들면 정나미가 떨어지면 떨어졌지, 다시금 생각을 고쳐 먹을 리는 없다. 

 

이명박이 어디 청렴결백해서 당선됐던가. 그 직전 “이게 다 노무현 탓”이라는 정서가 절대적인 몫을 하지 않았나. 박근혜가 어디 똑똑하고 유능해서 당선됐는가. 이명박과 각을 세워 ‘여당 안의 야당’이라는 되도 않은 이미지 메이킹이 성공하는 바람에 이명박에 대한 지탄 여론은 오히려 득이 됐고, 이에 더해 노년층의 “불쌍하다”는 감성에 힘입어 당선되지 않았냐 이 말이다.

 

이걸 논리적이고 이성적으로 해석해서 뭘 어쩌잔 얘긴가. 선거에선 큰 흐름이 잡히면 끝인 거다. 어쨌거나 정권심판으로 흐름이 잡혀서 졌는데 이걸 세세히 쪼개서 미시적으로 분석하고 고치려 들면 중도 잡겠다는 방어적 해법밖에 안 나온다.

 

술에 술탄 듯, 물에 물탄 듯한 꼬라지가 될테고 변별력이 없어진다. 그럼 대선도 깔끔하게 망하는 거지.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우리 이제, 억울해할 위치 아니니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 선거는 끝났다. 그리고 모든 건 죄다 결과론에 불과하다는 걸 다시 한 번 얘기한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을 나누며 제대로 된 원인 분석과 그 결과를 도출한다면 코앞으로 다가온 진짜 본선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승리를 거머쥘 수 있기에 이 연사, 외쳐본다. 

 

이제까지 했던 걸 고스란히 반대로 하면 된다. 

 

“태도는 겸손하게, 행동은 단호하게”

 

조선일보조차도 이번 선거 결과를 두고, 민주당을 혼낸 것이지, 국힘당에 마음을 준 게 아니라고 진단한다. 마음이 떠나면 욕도 안 한다. 악플보단 무플이 무서운 거라는 기본을 상기하자. 유권자가 민주당을 버린 게 아니다.

 

지난 글에서도 강조했지만 여전히 주어는 민주당이다. 

 

우리가 주어의 위치에 올라섰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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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조선일보>

 

국정의 무한책임을 지는 집권세력이, 또 우리가, 영업의 기본을 잊고 혓바닥이 길었다. 싸워야 할 상대는 적폐만으로 충분하다. 그 외에는 이제, 혀를 넣고, 고개를 숙이고, 손발이 바쁘면 된다. 우리 그렇게 이겼었잖아. 

 

다가올 대선을 위해선 흔히 말하는 헤게모니, 즉, 정국 주도권을 가져와야 한다. 그러려면 자기 브랜드와 칼라를 부각해야 한다. 그게 가열차고 혁명적인 개혁밖에 더 있나. 국민의 도도한 민심에 옷깃을 여미고 성찰과 반성의 시간을 갖는 건 이번 주까지다.

 

억울해하지 말고, 다음주부턴 개발에 땀내보자. 그리고 원팀이란 말이 그냥 해보는 헛된 구호가 아니게 만들자. 

 

우리 이제, 억울해하고 그럴 위치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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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면 찌른다-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