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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 놈의 비야 또!

 

노가다꾼으로 살면서 생긴 습관이 있다. 수시로 일기예보 보는 거다. 노가다꾼이 일기예보 본다는 건 단순하게 해, 구름, 비 날씨 아이콘을 보는 게 아니다. 특히나 요즘 젊은 노가다꾼들은 일기예보를 거의 분석(?) 한다.

 

우선, 동이나 면 단위로 구역을 세분화하고, 시간 단위로 강수 확률과 강수량을 체크한다. 몸이 기억하는 데이터베이스가 있기 때문에 내일 아침 6시 강수 확률이 60%이고 강수량이 1~4mm 면 대략 이 정도 비가 오겠구나, 가늠하는 거다. 여름 장마철이나 태풍이 잦은 시기엔 기상청 홈페이지에 들어가 시간대별 구름의 이동 경로까지 파악한다. 나도 이건 동생들한테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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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너 지금 뭘 보고 있는 거냐? 네가 무슨 기상 캐스터야? 그렇게 구름이 둥둥 떠다니는 거 본다고 네가 뭘 알어? 하하하.”

 

“형님, 이거 잘 보세요. 이 재생 버튼을 누르면 시간대별로 구름이 이동하는 걸 볼 수 있어요. 이 구름 색깔과 이동 속도, 경로를 계속 보다 보면 대충 감이 온다니까요. 헤헤.”

 

그렇게까지 집요하게 날씨 파악하는 이유는 물론, 내일 출근 여부 때문이다. 일용직 노가다꾼에게 비나 눈이 온다는 건, 직장인처럼 출퇴근 길이 좀 혼잡하다거나, 우산을 챙겨야 해서 번거롭다거나 하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다. 일당 20만 원, 다시 말해 생계가 달린 문제다. 나 또한 상황이 다를 리 없는 터라, 일기예보에 비나 눈이 잡혀 있으면 썩 달갑지 않다.

 

며칠 전처럼 말이다. 여느 때처럼 자려고 누워 일기예보를 보고 있었다. 비가 잡혀 있었다. 평소 같으면 “잘됐네, 까짓거 하루 쉬지 뭐.” 하고 말았을 텐데, 1~2월 일을 많이 못 했다. 특히나 2월은 설 연휴에다가, 공사 일정까지 안 맞아 거의 놀다시피 했다. 하루라도 더 일해야 할 판에 비라니! 괜한 성질이 올라왔다. 혼잣말로 “뭔 놈의 비야 또! IC, 이번 달 완전 꽝이네.” 했다.

 

그러고는 잠시 정적. 난 혼자 괜히 민망해 웃음을 터트렸다.

 

‘이 쉐끼 이거 어른이 다 됐네…….’

 

미친놈처럼 눈밭을 굴렀다

 

내가 사는 지역은 자연재해가 없기로 유명하다. 2004년 3월 5일의 폭설이 우리 지역민에게 더 특별하게 기억되는 이유다.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경험해보지 못했다. 그 정도의 폭설은.

 

당시 난 고등학생이었다. 오전부터 눈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도로가 마비됐다는 소식에 이어 버스를 비롯한 모든 교통수단이 중단됐다는 소식까지 전해졌다. 그러더니 오후 2~3시쯤, 즉시 귀가하라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도로가 마비됐건 말건, 버스가 끊겨 무릎까지 쌓인 눈을 헤집으며 집까지 걸어가야 하건 말건, 우리는 환호성을 질렀다. 갑작스러운 귀가 통보가 우선 반가웠고, 온 세상을 뒤덮은 눈이 마냥 설렜다. 버스 끊겼으니 해 떨어지기 전에 서둘러 걸어가라는 선생님의 당부는 안중에도 없었다. 우리는 건물 밖으로 뛰어나가 미친놈처럼 눈밭을 굴렀다. 손 시린 것도 잊은 채 눈덩이를 뭉쳐 서로의 얼굴에 뭉갰다. 어떤 놈은 교실에서 쓰레받기를 가지고 나와 눈을 흩뿌리고, 어떤 놈은 양동이를 가지고 나와 눈사람 만들겠다며 설쳤다. 그렇게 한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뛰어다녔다.

 

돌이켜보면 학업에 많이 지쳤던 시기였다. 공부를 열심히 했던 건 아니지만 말이다. 어쩌면 그래서 더 미쳐 날뛰었는지도 모른다. 해방감 같은 거.

 

사실은, 그래서 좀 놀랐다고 해야 하나. 하나의 사건을 놓고도 이렇게나 인상과 감정이 다를 수 있다는 것에 말이다. 지난 1월의 어느 날이었다. 갑자기 함박눈이 쏟아졌다. 더 이상 작업이 불가능했다. 다들 연장을 챙겨 사무실로 돌아왔다. 따뜻한 커피 마시며 몸을 녹이던 참이었다. A형님이 운을 뗐다.

 

“그때 생각난다. 2004년. 내가 여기서 평생 살았는데, 살다 살다 그렇게 눈 많이 내리는 건 처음 봤다. 대단했지 정말~”

 

“기억나요. 대단했죠, 정말. 그때 저는 고딩이었잖아요. 하하하.”

 

“그랬냐? 아휴 이 쬐만한 놈. 그때도 난 망치질했었는데, 도로가 다 마비돼서 차 끌고 집 가는데 진짜 죽는 줄 알았다. 도로뿐이냐? 현장도 다 마비였지. 한 일주일은 쉬었을걸? 얼마나 짜증 나던지.”

 

A형님을 시작으로 저마다 그날의 기억을 끄집어냈다. 그날 자신이 얼마나 고생했는지, 그래서 얼마나 짜증이 났었는지에 대한 기억들.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했었는데

 

20대 언제까지만 해도 눈을 보면 설렜다. 첫눈이 내리면 지나간 옛사람이 떠오르곤 했다. 혹시 연락이 오진 않을까,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기도 했다. 크리스마스이브 땐 은근히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기대했던 것도 같다. 그즈음이면 괜히 <White Christmas>를 듣기도 했다. “I`m dreaming of a White Christmas♪”로 시작하는 그 노래. 그보다 어렸을 땐 눈사람도 곧잘 만들었다. 갑작스레 눈 내리는 날이면 애인 집 앞으로 찾아갔다. 눈사람 만들자고! 어쨌거나 눈을 보면 심장 콩닥거리던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다. 기대감이었던 거 같다. 돌발적인 이벤트가 생기진 않을까 하는 기대감 같은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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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는 또 어떻고. 비 오는 날의 드라이브를 즐겼다. 습한 바깥공기와 건조하고 메마른 차 안의 공기, 유리창을 사이에 둔 그 완벽한 대비가, 묘한 안도감을 줬다. 차 안에 흐르는 잔잔한 음악과 유리창을 두드리는 빗소리도 분위기를 더했다. 그렇게 도착한 어느 한적한 숲에서 산책하는 것도 좋아했다. 비 오는 날의 숲 냄새는 그 나름의 매력이 있었다. 산책하다가 비가 오는 듯 마는 듯하면 과감하게 우산을 접기도 했다. 울창한 나뭇잎 사이사이로 떨어지는 빗방울 정도, 아무렴 어떻냐는 마음으로. 적당히 산책을 즐기고 나면 근처 조용한 카페로 갔다. 이왕이면 온풍기보다 난로가 있는 곳으로 말이다. 난로 옆에서 살짝 젖은 옷을 말리며 마시는 진한 아메리카노 맛이란.

 

그런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는데 말이다. 비가 내릴 거라는 일기예보에 “오랜만에 드라이브나 다녀올까.”라고 말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제는 “뭔 놈의 비야 또! IC, 이번 달 완전 꽝이네.”라는 말밖에 할 줄 모르는, 멋없는 어른이 되어버렸다.

 

2004년의 그날처럼, 우리 지역에 다시 폭설이 내린다면 나는 어떤 감정과 기분으로 하루를 보낼까. 불평과 짜증으로 2004년의 폭설을 기억하는 형님들처럼, 차가 막힌다는 둥, 일을 못 하게 됐다는 둥 궁시렁 궁시렁 거리며 하루를 보내겠지. 적어도 그때 그 시절처럼 환호성을 지르고, 눈밭을 구르진 않겠지. 며칠 전 일기예보를 보다가 혼자 웃음을 터트렸던 건 아마도 그래서였던 거 같다. 지나간 세월이 야속하고, 멋없게 늙어가는 내 모습이 민망해서.

 

친구 결혼식에 가면 고등학교 졸업하고 처음 보는 동창도 만난다. 개중에는 행동, 말투, 생각까지 완전 아저씨가 되어버린 녀석도 있다. 그런 녀석을 볼 때마다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했었는데, 그렇게 살고 있다. 지금, 내가.

 

철들고 싶지 않았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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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편집부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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