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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기사 요약

 

현재 일본정치를 장악하고 있는 자민당은 흔히 보수 우파 정당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애초에 좌파 세력의 결집이 이뤄지자 이에 위기감을 느낀 보수 세력들이 1955년 통합하여 탄생한 정당이다. 이런 이유로 대결 구도의 자유당, 민주당은 통합하여 ‘자민당(자유민주당)’을 탄생시켰다(관련기사 참고: 일본의 정치권력과 검찰 完 : 처음 지휘권이 발동된 순간과 자민당의 탄생)

 

자민당 내 자유당 계열은 관료 출신 중심으로 온건 보수의 특징을 띠었는데, 이를 보수 본류(本流)로 규정한다. 민주당 계열은 정당인 출신 중심으로 매파 성향을 띠며, 이를 보수 방류(傍流)라 한다. 현재 자민당 내 최대 파벌은 ‘호소다파’로 ‘아베’가 속해있는 계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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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소다파 회장 ‘호소다 히로유키’(좌) / 아베 신조 (우)

 

보수 본류와 방류는 서로의 방향이 달라 정책 대립과 갈등을 빚어왔다. 과거에는 본류가 세력이 세서 역대 수상 중에 본류가 많았으나, 근래에는 모리 요시로, 고이즈미 준이치로, 아베 신조, 후쿠다 야스오 등 방류 계열의 수상이 속속 배출되고 있다. 최대 파벌인 호소다파도 방류에 속한다.

 

현재는 무파벌로 분류되는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수상이 아베 신조의 뒤를 이어 정권을 계승했다. 자민당 내에서도 과거와 같은 보수 본류니 방류니 하며 구분 짓는 것은 이미 의미를 상실했으며, 보수 본류라는 말 자체도 사어가 되었다고 한다. 

 

이런 자민당 역사 속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고이즈미의 5년 5개월(재임 기간 2001년 4월 26일~2006년 9월 26일)에 걸친 집권과 그 후, 아베 1년간의 집권, 이후 민주당으로 정권교체가 이루어진 후, 재차 아베에 의한 정권 탈환과 함께 일어난 변화다. 

 

일본의 국가 운영이 전체적으로 우경화로 기울고, 대 한국 정책도 강경 일변도로 변화하게 된 배경에는, 장기집권 세력인 자민당 내 보수 본류와 방류 세력 간의 역학관계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는 뜻이다.

 

 

일본 우경화의 배경 1. 자민당 내 젊은 보수 본류 세력의 탈당   

 

기존의 미·일안보체제를 공고히 하면서 과거 보수 본류가 미국을 이용하는 용미(用美) 정책을 채택하였다면, ‘고이즈미-아베’로 대표되는 보수 방류 세력은 대미 주종관계를 고착화하면서 대 한반도 정책을 핸들링해 왔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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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보수 본류가 자민당의 권력을 잡고 있던 때의 한일 관계를 보면, 반공을 국시로 하던 한국의 군사정권과 일본은 지금과는 상이한 연대 의식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당시 한국이 일본의 지원과 협력을 받아야 하는 하위적 위치에 있었던 것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1993년. 38년 만에 자민당이 야당으로 전락하기 전, 당시 보수 본류의 적자(嫡子)로 주목받던 오자와 이치로 등 젊은 세력들이 자민당을 탈당하여 외부에서 반자민당 연대세력을 형성하면서, 보수 본류가 우위를 형성하고 있던 자민당 내 세력 판도에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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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수상(좌)과 오자와 이치로(우) 

 

이때 자민당을 탈당한 유력 정치가에는 오자와 이치로,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오카다 카츠야(岡田克也) 등이 있으며 이들 세 명은 각각 구 민주당의 대표를 역임했으며, 하토야마 전 수상은 2009년 8월 아소 다로의 자민당에 압승하며 명실상부한 정권교체를 처음으로 이루어 내기도 하였다. 

 

(1996년 자민당에서 탈당한 인사들이 ‘민주당’을 창당했다. 이 민주당이 1998년 ‘민정당, 신당우애, 민주개혁연합’과 합당을 하여 새로운 정당을 창당했다. 이 정당의 이름도 ‘민주당’이다. 그래서 둘을 구분하기 위해 1996년 창당된 민주당을 ‘구 민주당’이라 부른다)

 

역사에 가정은 무의미하지만, 만일 이들이 그때 자민당을 탈당하지 않고 내부  개혁과 권력투쟁을 통하여 정권을 잡았다면, 후일 아베 정권은 탄생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고, 자민당 내 정치 지형도 지금과는 다른 모습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자민당 내에서 본류가 계속 우위를 차지했을 테니까.

 

그 후, 자민당은 정체성을 잃어가는 사회당을 끓어 안고 연립정권으로 복귀하는 수순을 선택한다. 당시 자민당이 던져 준 떡밥을 덮석 물은 사회당은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위원장을 수상(재임기간 1994년 6월 30일~1996년 1월 11일)으로 연립정권에 참여하게 되지만, 이를 계기로 급속도로 지지세력이 이탈, 결국은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와해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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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이런 과정을 거쳐 ‘55년 자민당 vs 사회당’으로 탄생한 55년 체제는 급속한 종언을 고하게 된다. 

 

 

일본 우경화의 배경 2. 보수 방류 고이즈미 총리의 탄생

 

무라야마 연립정권의 뒤를 이어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郎)를 총재로 선거를 치른 자민당이 다시 집권 여당으로 복귀하며 2년 5개월여(연립정권 기간 포함)에 걸친 야당 신세를 탈피하고 다시 집권 여당으로 복귀한다. 

 

그런 과정을 겪은 후, 당시 보수 방류로 분류되는 모리파(森派)에 속해 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탄생하면서 보수 방류계가 지향하던 헌법개정을 비롯한 우경화 성향이 표면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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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고이즈미 총리가 참배를 위해 야스쿠니 신사를 방문했다. 그는 재임 동안 5차례나 참배를 강행했다.

 

고이즈미는 ‘고이즈미 극장’이라 불릴 정도로 국민적 인기를 구가하며 신자유주의의 적극 도입과 함께 자민당 내의 기존 파벌을 중심으로 한 역학 관계를 파괴하며, 수상의 권한 강화를 꾀함과 동시에 이를 유용하게 활용하며 장기정권의 기반을 닦았다. 

 

고이즈미의 뒤를 이은 아베 신조는 본격적인 우경화의 길을 걸었으며, 한일관계도 예전과는 다른 강도로 충돌과 대립을 반복하게 된다. 항간에는 한국 정부가 미온적인 대일본 외교 정책 또는 일본과 대립각을 세우며 국민적 지지를 얻고자 한다는 비판이 있으나, 백번 양보해 그런 주장을 일부 수용한다고 하더라도, 일본 자체 내의 권력 구도 변화를 간과해선 안 된다.

 

 

일본 우경화의 배경 3. 한국과 위상 관계 변화

 

한국과 일본의 충돌은 일본 내부적 요인과 외부적 요인이 모두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자민당 내 주류 세력이 보수 온건파에서 매파로 분류되는 세력들로 대체되어 가며 종전의 한국을 비롯한 대 한반도 정책 기조도 자연스레 변화한 내부적 환경,

 

한국의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일본의 장기 침체로 인한 경제력 격차 완화와 한국 사회 민주화 진전에 따른 인권 문제 등에 대한 재고와 가치관의 변화 등을 시작으로, 과거 일본과 한국의 산업・무역구조를 비롯한 위상과 관계가 변화한 외부적 환경,

 

이 두 부분을 모두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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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변화된 환경 외에도, 일본은 국내적으로 좀처럼 출구가 보이지 않는 헤이세이의 장기불황과 함께 쌓여만 가는 국민들의 불만,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급속한 영향력 증가, 북한의 핵개발과 미사일 발사와 같은 안보 위협 요인 등의 환경을 맞이했다.   

 

이에 대해 집권 자민당은 미국과의 기존 협조・공조체제 강화를 꾀하면서 동북아 정세에 대한 강경 기조를 노골화한다. 

 

그런 가운데 이명박 전 대통령에 의한 독도 방문과 일본 일왕의 사죄 요구 발언 등을 계기로 혐한과 반한 정서에 불이 붙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본격적인 한국 비판과 혐한 정서가 표면화되고 본격화되었다. 

 

그 후 일본 국내의 극우세력에 의한 헤이트 스피치와 혐한 서적 등을 비롯해서 TV 방송 등의 미디어도 한국 때리기와 헐뜯기에 가세하며 혐한은 한층 심해졌다. 2019년 7월에는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대 한국 수출규제, 즉 경제보복이라는 카드를 끄집어내며 대 한국 강경책의 절정을 맞게 된다.  

 

 

현재 일본 상황, 자민당은 정권을 잃을 것인가

 

자민당이 1955년에 결성되어 집권 정당으로 군림한 이후, 정권을 잡지 못한 때는 

 

-1993년의 호소카와 연립내각 때부터의 2년 5개월 

-2009년 8월 당시 민주당에 참패한 후 3년 3개월 

 

이 두 번뿐이다. 

 

집권당의 자리를 잃은 기간은 약 5년 8개월 정도에 불과하며, 지금까지 60년 세월을 집권 여당으로서 부동의 위치를 고수하고 있다. 그런 자민당이 요즘 국민적 신뢰와 지지를 잃고 있는 건 이전 편에서 살펴보았다. 

 

그러면 올해 실시될 총선에서 ‘어게인 2009’가 재현될 것인가? 

 

작년부터 이어진 코로나19 대책을 통하여 정부의 무능이 드러났으며, 여전히 의료체제나 백신 접종 등이 좀처럼 진척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올림픽 개최를 둘러싼 국내외의 여론도 점점 악화되고 있다. 

 

올림픽 강행을 천명하고 있는 스가 정권과 자민당으로서는 진퇴양난의 형국이라 하겠다. 무조건적인 일본의 올림픽 강행에 성화 봉송은 다시 시작되어 일본 열도를 순회하고 있는데, 이를 환영하는 시민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현재 일본은 4월 25일 선언한 제3차 긴급사태선언을 4도부현(도쿄, 오사카, 교토, 효고현)에 적용했다. 3차 긴급사태선언은 당초 황금연휴가 끝나는 5월 11일까지 17일간으로 예정했다. 그러나 좀처럼 신규 확진자와 중증환자가 줄어들지 않아, 부랴부랴 기존 4도부현 외에 나고야시가 있는 아이치현과 후쿠오카까지 확대하여 긴급사태선언 연장을 5월 말까지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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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긴급사태선언이 끝난 지 한 달여 만에 또다시 제3차 긴급사태선언이 발령된 배경은 이렇다.  

 

지난 3월 21일, 제2차 긴급사태선언이 해제되자, 때마침 제철을 맞은 벚꽃 구경과 성화봉송 릴레이로 전국에서 여기저기 인파들이 몰리는 모순이 전개되었다. 일 년 이상 반복되는 정부의 ‘자숙’과 ‘자제’ 요청에 코로나 불감증이 생긴 국민들의 방심도 한몫하여, 코로나가 재확산되고 오사카와 고베 지역에서는 의료붕괴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이렇듯 아베 정권에 이은 스가 정권의 좌충우돌, 뒷북 대책과 올림픽 개최라는 애물단지를 껴안고 있는 스가 정권과 자민당에게는 전에 없이 곤혹스런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일본은 이제 곧 다가오는 정치 일정들이 있다. 중의원 임기가 올 10월로 끝나게 되며, 9월에는 자민당 총재임기가 만료된다. 사정이 어떻든 올 9월까지는 총선을 치러야 한다. 

 

그렇다면 현재 상황에서 앞서 언급했던 ‘어게인 2009’가 재현될 것이냐 물어본다면,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답하겠다(가능성은 거의 50:50으로 보이나 굳이 선택하자면 말이다).

 

 

일본에서 정권교체는 일어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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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교체가 되기는 힘들 것이다. 대표적 이유 몇 가지만 들자면 이렇다.

 

첫 번째, 자민당의 콘크리트 지지율이 30%대인 것에 비해 야당은 모두 전부 한 자릿수에 머물고 있어, 현재 야권 대항 세력이 형성되지 않은 구조와 ‘야권에 대한 가혹할 정도로 팽배한 불신’ 여론이다(지난 아베 정권 때 자민당이 연승하였지만, 대부분의 선거를 통해 얻는 지지율은 30%대에 불과하다). 

 

두 번째, 일본의 ‘3무(무관심, 무능, 무책임) 정치 현상’. ‘3무 정치 현상’이란 무관심하니까 무능한 정치가를 뽑거나 키우게 되고 마지막은 정치가와 국민 모두가 무책임하다는 논리로 귀결되는 현상이다.

 

세 번째, 선거제도의 모순. 즉, 소선거구비례대표 병립제인데 지금 같이 야권이 사분오열된 상태에서 선거전을 치르면 전체적인 야권 지지표가 자민당 표보다 많지만, 소선거구제 특징상 어부지리로 자민당이 다수 당선하게 되는 선거제도와 미숙한 정당정치이다. 

 

더 많은 이유가 있지만, 대표적 세 가지를 꼽자면 이렇다. 

 

스가 정권과 자민당으로서는 작년 9월 수상 취임 이후 내각 지지율은 계속 떨어져 30%대까지 하락했다. 스가 내각을 지지하지 않는 비율은 지지 비율을 넘어 40%대를 기록했다. 

 

NHK 3월 내각 여론 조사를 보면, ‘스가 내각을 지지한다’가 지난달보다 2% 올라 40%를 나타냈고, 반대로 '지지하지 않는다'는, 지난달보다 7% 내려가 37%를 기록하였다. 이는 작년 12월 이후 3개월 만에 '지지하지 않는다'를 '지지한다'가 상회하는 결과이다. 비록 미비하기는 하지만 스가 내각의 지지율이 조금씩 반등을 시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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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겨우 반등을 시작한 여론과 지지를 더욱 우호적 여론으로 만들기 위해 얼마 전 있었던 미국 바이든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최대한으로 활용하고자 했다. 미·일의 굳건한 동맹 관계를 확인하며, 두 정상의 화기애애한 모습을 대내외적으로 널리 홍보하며, 이를 도쿄 올림픽 성공을 위한 수단으로도 활용하고자 했다. 

 

도쿄 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야말로 스가 내각과 자민당의 운명을 좌우할 최대 관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코로나19의 재차 확산과 의료붕괴, 백신 접종의 미비 등 최악의 상황에 더해 올림픽 개최에 대한 국민 여론이 악화 일로에 있음은 전술한 바이다. 

 

반면, 대 한국 정책은 종전과 같은 강경 일변도의 자세를 바꾸는 일은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 왜냐하면, 일본 국내의 여론 환경을 보면 한국이나 중국 그리고 북한에 대한 강경한 대응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스가 수상과 자민당으로서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조금이라도 여론을 움직일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이 있다면 이를 적극 활용할 것이 명약관화하다. 

 

아무튼 올해 치러질 총선. 일본의 앞날을 결정하는 중요한 선거가 될 것이다. 2009년 같은 역사적 정권교체가 이루어질지 어떨지는, 앞으로 코로나19 대응과 도쿄 올림픽의 개최 여부 결과를 지켜봐야 하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이헌모 (일본 중앙학원대학 법학부 교수, 정치학 박사)

 

 


 

 

편집부의 말

 

틈만나면 이름이 바뀌는 한국 정당만큼이나, 일본 정당의 이합집산도 무쟈게 복잡하다. 분명 자민당 의원이었는데 자민당 의원이 아닐 때가 있으니(?) 독자 여러분은 얼마나 헷갈리겠는가!

 

본지에서 해당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해 간략하게나마 일본 정당 이합집산의 역사를 정리했다(그래도 복잡하긴 하다...).

 

대외정책의 흐름에 큰 영향을 끼치는, 해서 한국과 뗄래야 뗄 수 없는 일본 정당 정치의 흐름을 알고 싶은 독자들은 아래의 도해를 참고하자. 

 

도해를 클릭하면 더 크게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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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주

 

30여 년간 도쿄에 살며 일본 정치를

직접 보고, 듣고, 겪은 이헌모 교수가

재일한국인의 눈으로 본 생생한 일본정치 현장과

일본 우경화의 현주소를 진단한 책이다.

 

일본 정치가 돌아가는 원리와 어떻게 우경화가

독주할 수 있는지 궁금한 독자는 집어드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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