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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음식은 나의 중요 관심사다. 어릴 적 세를 주던 중국인에게서 배운 솜씨로 탕수육과 만두를 해주시던 할머니의 영향이 크다. 그게 이어져 지금까지도 중국 음식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소울푸드다.


쯔위 사태를 지켜보면서 중국과 대만의 관계, 그리고 그 속의 이해관계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무지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이내 의식은 먹거리로 이어진다.


중국 본토 쪽은 몇 군데 돌아다녀 봤지만 대만에 대해선 무지하다. 지인 몇몇에게 들어 간접적으로 경험한 게 전부다. 대만은 현재 가보고 싶은 곳 중의 한 곳으로, 대만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쳐묵쳐묵할 생각만 하면 흐믓하지만 지금 당장은 김치찌개, 된장찌개를 먹어야 한다.


가보지 못하니 이렇게라도 썰을 풀어 그 욕망을 대신하려 한다.


내가 대만에 대해 처음으로 인식한 건 이안 감독의 1995년 영화 <음식남녀(飲食男女)>를 보고 나서였다. 영화에 나오는 각양각색의 음식들이 인상에 남아서였을까? 이 영화는 나에게 대륙 중국이 아닌 또 다른 중국인 ‘대만’을 각인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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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오토바이 무리가 달리는 장면으로부터 시작하며, 한 가정집으로 시선이 이동한다. 가정집에서 민물 생선을 잡아 조리하는데 초반부터 요리의 향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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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후와 비파의 흥겨운 중국전통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온갖 기술들이 펼쳐진다. 무관심한 듯 ‘턱턱턱’ 써는가 하면 빠르게 ‘슥슥’하는, 소위 말하는 ‘칼질’은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보고 또 봐도 ‘워메~ 대단해’라는 생각이 든다.


초반부에 보이는 여러 요리 중 눈에 띄는 건 중국의 대표 요리인 북경오리(베이징 카오야. 北京烤鸭. [Běijīng kǎoyā])다. 중국에서 맛 본 요리 중 색다르고 무난하게 맛있던 게 북경오리였다. 전취덕(全聚德[Quánjùdé])에서 본 북경오리는 화덕에서 근사하게 구워지지만, 영화에서는 드럼통에서 구워진다. 작은 업장에서도 드럼통과 비슷한 데에서 오리를 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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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도 북경오리를 맛볼 순 있지만 권할만한지는 모르겠다. 북경오리는 대추나무 또는 살구나무로 구워야 제대로 된 풍미를 즐길 수 있는데 한국의 업장에 그럴만한 곳이 있는지 의문이다. 대방동에 있던 한 가게에서 그나마 제대로 된 방식으로 조리를 했지만 강남으로 이사한 뒤로는 그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거기다 이미 구워진 것을 냉장‧냉동 보관하다가 주문이 들어오면 튀기는 모습을 보고는 이건 아니다 싶었다.


북경오리는 역시 북경에서 맛보길 권한다. 전취덕(全聚德[Quánjùdé])이 일빠고, 대동고압점(大董烤鸭店[Dàdǒng kǎoyādiàn])도 제법 유명한 듯 하다(미경험). 베이징 사람들과 뒤섞여 현지의 분위기를 느끼고 싶다면 리군고압점(利群烤鸭店[Lìqún kǎoyādiàn])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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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이 다 모인 저녁 상차림이다. 이 중 대부분은 경험으로 추정할 뿐 정확하게 무엇인진 알 수 없다. 중국 음식은 너무 많고 다양해서 알아야 할 것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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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송서계어(松鼠桂魚)
2. 훠궈로 보이는데 대만이 섬나라라 그런지 다양한 해물이 들어있다.
3. 해파리냉채로 보인다.
4. 남방 지역이어서 쌀밥이 주식이다. 반면 북방은 면식(麵食)이라 만두, 국수 등이 주식.


이 중 확실히 아는 것은 송서계어(松鼠桂魚) 하나다. 송서계어는 다람쥐 모양(松鼠)의 쏘가리(桂鱼) 요리로, 건륭제와 관련된 이야기가 있다. 낯선 이 요리는 특이해 보이는 외관처럼 섬세한 칼놀림을 요구한다. 그리고 생선을 머리부터 꼬리까지 먹는 중국인의 식습관 때문인지 한 접시에 다 담겨 나오는 것이 일반적이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알아두면 좋을 만한 생선 요리엔 청증어(淸蒸魚)와 서호초어(西湖醋魚)가 있다. 청증어는 생선을 맑게 찐 뒤, 짭조름한 간장소스를 두르고, 얇게 썬 대파를 위에 얹고, 다시 뜨겁게 달군 파기름을 대파 위에 뿌려 풍미를 올린 광동식 찜요리다. 쌀밥과 같이 먹으면 뚝딱 밥 한 공기를 비운다.


서호초어는 중국 항주(杭州)의 정통 요리로, 달달하고 신맛이 특징이다. 남송 때 서호의 송(宋)씨 성의 두 형제와 형수간의 얽힌 사연이 담겨 있다. 중국 요리의 명칭에는 음식 재료와 조리법 등이 담겨있는데, 서호초어에서 ‘초(醋)’는 신맛을 나타낸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탕수육의 한자 그대로의 음은 탕초육(糖醋肉[tángcùròu])이며, 이 ‘초(醋)’ 역시 신맛, 식초를 나타낸다. 중국의 식초는 우리나라의 양조식초와는 달리 발효식초를 사용하는지라 색‧향이 다르며 맛에 다소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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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롱포(小籠包)다. 샤오롱바오(Xiǎolóngbāo)도 소롱포는 딤섬의 한 종류로, 대만에 본점을 두고 있는 ‘딘타이펑’을 통해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져 있다. 풍부한 육즙과 얇은 피가 한입에 쏙 들어온다.


주인공 아버지가 이웃집 아이가 정크푸드로 도시락을 채우는 게 안타까웠는지 도시락을 싸다 준다. 요리사답게 도시락도 예술이다. 무석갈비(돼지등갈비조림), 게살야채볶음, 청두새우콩, 저민 닭살에 여주갈비탕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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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딸이 남자친구와 데이트를 하는 장면이다. 중국 거리에선 길거리 음식을 쉽게 접할 수 있다. 막내딸은 정체를 알 수 없는 탕면을, 남자는 삶은 고기를 먹고 있다. 중국의 서민 음식 중엔 고기의 다양한 부위를 삶아 간단한 양념을 첨가해 먹는 게 많다. 그래서인지 중국인들은 한국의 순대와 내장부속물들을 곧잘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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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상대방에게 음식을 건네주는 장면이 자주 나오는데, 이는 중화권의 일반적인 식탁 문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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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엇, 쑤안양로우(쇄양육. 涮羊肉, [Shuànyángròu])를 드시고 계시다. 맑은 칭탕에 양고기를 샤브샤브 해 먹는 북방 음식이다. 중국 음식의 진출로 중국의 샤브샤브인 훠궈(화과. 火鍋. [Huǒguō])는 한국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음식이 되었다. 붉은 탕인 마라(마랄. 麻辣. [Málà])탕은 중국 사천의 충칭에서 유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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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의 매운맛은 단순히 매운 것 뿐 아니라 혀가 얼얼하며 독특한 향이 나는 게 특징이다. 한국인에게 익숙하지 않은 이 향은 ‘산초(화초. 花椒. [Huājiāo])’에서 나온다. 개인적으로 마라(마랄. 麻辣. [Málà])가 사천의 가장 특징적인 맛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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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후반부에 나오는 장면으로, 둘째 딸이 전통적인 방법으로 밀전병을 만들고 있다. 대만은 모르겠으나 중국의 길거리에선 쉽게 전병(煎餠[Jiānbing])을 볼 수 있다. 현대의 전병은 조리법과 속 재료가 다양한데, 일반적으로 사진과 같이 전병을 만들고 달걀, 대파, 알 수 없는 튀김, 짭조름한 소스, 그리고 고수(향채. 香菜. [Xiāngcài])를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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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을 만드는 방법이 재미있고 신기해서 한참이나 지켜봤었다. 중국의 산초까지는 적응하는 사람은 쉽게 볼 수 있는데 이 고수는 한국 사람에겐 조금 힘들어 보인다. 혹시라도 모를 중국여행에서 이것을 발견했고 먹지 못하겠다면 “부용시앙차이(不用香菜. [Búyòng Xiāngcài])”라고 외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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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중국 요리를 두서없이 이야기하긴 했지만, 여전히 머릿속에는 “탕수육이 먹고 잡다”가 떠오른다. 누군가를 꼬드겨 탕수육을 먹을 것이고, 발걸음은 건대 차이나타운으로 향할 것이고, 며칠이 지나면 눈 내리던 날 만두피를 밀던 할머니를 떠올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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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딴지일보 챙타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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