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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의 연속 : 디자인

 

인테리어 공사를 하기로 마음 먹은 시점에서 계약서에 사인을 하기까지 대략 한 달의 시간이 지났다. 여전히 인테리어 카페와 <오늘의집>을 뻔질나게 드나들면서 남의 집 랜선 집들이에 기웃거리는 프로참석러다. 쩌억 갈라진 마른 땅이 비를 빨아들이듯 메마른 인테리어 두뇌에 정보를 쏟아부으니 어제가 다르고 오늘이 또 다르다. 업체 견적 상담 다닐 적에 그렸던 우리 집의 모습과 계약할 시점의 그것이 같지 않았다. 시시각각 인테리어 디자인의 디테일이 이랬다 저랬다 하며 머릿 속에 ‘인테리어최종본.pdf’, ‘최종본V2.pdf’, ‘진짜최종.pdf’, ‘진짜진짜마지막.pdf’ 파일이 매일 덧씌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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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을 마치고 나서 곧장 세부 디자인을 결정하는 단계로 넘어갔다. 당신이 미워하는 사람이 선택 장애가 있거든 인테리어 세부 디자인을 고르도록 하라. 아마도 상대는 그 자리에서 얼마 못 가 경기를 일으키거나 무릎 꿇고 울면서 제발 도와 달라는 애원을 하게 될 것이다.

 

내 앞에 수십 종의 타일 샘플이 놓여졌다. 현관 타일, 욕실 타일, 주방 발코니 타일, 거실 발코니 타일을 골라야 한다. 현관 타일 고를 땐 현관에 붙일 필름색도 함께 골랐다. 미리 생각해둔 바가 없지 않았지만 생각에 없던 디자인의 타일을 보니 하나 하나가 또 새롭다. 현관 발코니와 욕실은 600각 포세린으로 하기로 처음부터 견적을 냈지만 그건 타일 사이즈와 재질을 일컫는 이름일 뿐이다. 결은 얼마나 살아 있는가, 테라조인가 아닌가 따질 게 많다. 그에 따라 주렁주렁 달리는 색상의 가짓수는 덤이다.

 

타일의 산을 넘자 이번에는 바닥이다. 생각해둔 강마루 모델이 있었지만… 내 앞에 이것 저것 깔리기 시작하니 혹하는 게 한둘 아니다. 원목 질감 한껏 살린 텍스쳐 마루라는 걸 보니 이걸 깔면 자연과 내가 막 하나된 느낌으로 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귀 얇은 사람만 고생이 아니다. 눈도 얇으면 고생이다.

 

붙박이장과 문짝의 브랜드, 색상도 정했다. 샘플 카달로그가 앞에 놓일 때마다 정신줄 부여잡기가 힘들었다. E0 자재를 쓰기로 해서 붙박이장은 색상만 잘 정하면 되니 그건 쉬울 줄 알았는데 화이트라고 다 같은 화이트가 아니었다. 이걸 벽지 색상하고 조합하려니 난이도에 가중치가 붙는다. 벽지는 또 어떻게? 화이트톤 페인팅 느낌의 실크 벽지를 생각해두었는데 3곳의 제조사에서 나온 각각의 샘플북이 테이블 위에 펼쳐졌다.

 

다시 말하지만 견적을 요청할 때 이미 나는 대략의 색상과 제조사, 모델을 다 정해놓고 있었다. 그건 어디까지나 ‘요 정도 급으로 요렇게 하면 얼마 정도 나오나요?’의 의미에 ‘요런 느낌의 디자인으로 하고 싶습니다’를 더한 거였지 세부 요소 하나 하나가 확정적이지는 않았다. 제조사와 개별 색상, 그 외 다른 요소들 사이에 유의미한 차이가 없더라도 아주 사소한 디테일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그냥 짬뽕 땡기는 날 중국집에 그냥 짬뽕을 시킬지 삼선짬뽕을 시킬지 고르듯 냅다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짬뽕은 한 끼의 문제지만 인테리어는 생활의 문제니까.

 

계약서에 사인한 날 고른 디자인으로 무조건 시공까지 들어가는 건 아니어서 지나치게 부담 갖지 않고 고르려 했지만, 워낙 카테고리가 많고 옵션이 다양해서 여간 부담이 아니었다. 아직 수전과 세면대, 위생 도기 고르는 작업은 시작도 안했는데도 그랬다.

 

 

선택의 연속 2 :  공사 내용

 

계약서를 쓰기 직전까지 갈팡질팡했던 몇 가지 공사 내용이 있었다. 거실 폴딩도어가 로망이었지만 후기를 찾아보고 주변의 조언을 구할수록 장단점이 극명하게 갈려서 망설여졌다. 기대보다는 실용성이 떨어진다고도 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문틀이 내려앉는다는 글도 있었다. 누군가는 닫아 놓고 있을 땐 문짝 갯수만큼 샤시 프레임이 더해져서 답답해 보이는 게 불만이란다. 뭣보다 ‘그럴 거면 그냥 확장을’ 하라는 말이 자꾸 밟혔다. 돈은 더들지만 나중에 매매할 때 확장 비용의 일부를 보전할 수 있다는 말에도 솔깃했다. 그렇다면 확장을 해야 하나. 확장의 미덕이 아무리 우주를 감싼다 한들 확장은 안될 말이었다. 아내가 반대했기 때문이다. 결국 고민만 실컷하고 폴딩도어도, 확장도 없이 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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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 싱크대 맞은 편 벽에 대한 옵션도 수 가지로 갈렸다. 그냥 냉장고 가벽만 설치할까. 그 옆에 붙박이장을 설치할까. 아니면 시중에 파는 수납장을 사다가 들일까. 아예 비워 놓고 주방 발코니에 하부장을 들일까. 수납 공간은 부족하지 않을까. 예산은 감당 가능한가. 냉장고를 새로 사기로 했는데 냉툭튀 하는 800리터 냉장고를 살 경우와 인테리어에 특화된 깊지 않은 냉장고를 살 경우에 따라 주방 수납의 모습은 물론 소요 예산도 달라질 터였다. 이걸 가지고 또 며칠을 고민하고 왔다갔다 했다.

 

그 밖에도 속 시원이 확정짓지 못한 자잘한 공사 내용이 몇 가지 더 있었다. 계약서에 사인은 했지만 최소한의 여유를 두고 공사 내용을 변경하는 건 어렵지 않다고 했다. 그저 비용이 추가되면 그만큼 돈을 더 지불하면 될 일이다. 데드라인이 코앞에 닥칠 때까지 이렇게 갈팡질팡 하겠구나, 쉬이 예상되는 바다.

 

평상시에 노력한 자와 벼락치기 한 자는 디테일에서 차이가 난다. 30여 년을 인테리어에 일절 관심 없이 살았던 놈이 제아무리 수십만 볼트짜리 벼락을 친다 한들 티가 안날 수 없다. 인테리어에 있어서 내가 준비된 자였다면 이렇게까지 오락가락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처음부터 시공 계획과 디자인을 꽉 짜놓고 다른 변수에 대처하는 여유를 남겨두지 않았을까. 인알못들이여 선택을 두려워 말자. 갈팡질팡하며 슬퍼하지도 말자. 인테리어와 담 쌓고 살았던 지난 날의 과오에 대한 세금 같은 것일지어니.

 

굳이 먼저 지나간 선배로서 없는 팁이라도 긁어 드리자면 고민할 때에는 늘 ‘예산’과 짝지어 선택하길 바란다. 자동차 알아볼 때 ‘이왕이면’ 테크 몇 번 타면 모닝 사려다 벤츠 산다는 말이 있다. 인테리어도 마찬가지다. 이 부분에서 ‘조금 더 쓰면’, 저 부분에서 ‘이 정도 액수 차이면’하면서 티끌 견적을 부지런히 모았다가 태산 같은 견적 폭탄을 맞고 원점으로 돌아와서 다시 선택의 기로 앞에 서는 수가 있다. 돈이 많이 들어가는 큰 건수를 포기하고 그 돈으로 자잘한 퀄리티를 여럿 올리든, 자잘한 거 여럿 포기하고 큰 건 한 방에 힘을 쏟든, 본인 스타일에 맡게 나름의 예산 밸런스를 잡아야 한다. 아님 대출을 더 받든가.

 

 

안방 욕실과 거실 욕실, 방수와 덧방

 

공사 시작 직전까지 수두룩 빽빽하게 놓인 여러 선택의 기로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있으니 바로 욕실 공사다.

구축 아파트를 매매할 때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은 누수다. 아랫집에 물이 새면 윗집이 수리해줘야 하는데, 피해 규모에 따라 복구 비용에는 차이가 있지만 2~3백만 원은 우습게 나온다. 통상 매매한 지 6개월 내에 누수 피해가 발생하면 매도인 측에서 비용을 지불하게끔 되어 있다고 하는데, 문제는 매수인 측이 인테리어 공사를 하고 들어오는 경우다.

 

공사 없이 들어와 살다가 누수가 발생하면 원인이래봤자 아파트 노후 말고는 딱히 설명이 안되니까 누수 발생 시점에 따라 매도인이든 매수인이든 책임을 지면 그만인데, 인테리어 공사를 하면 작업 실수나 공사 진동으로 인한 누수 가능성까지 더해져서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진다. 그래서 통상 인테리어 공사를 하고 들어간 집에서는 6개월 이내에 누수 피해가 발생해도 매도인 쪽에서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 매수인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인테리어 공사와 누수의 인과 관계가 없음을 증명하거나 인테리어 업체 측의 실수를 입증해서 매수인이나 인테리어 업체 쪽에 보상을 받고 싶겠지만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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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수는 보통 욕실에서 일어난다. 인테리어 공사 항목에 욕실이 들어간다면 누수 피해 발생 시 매도인에게 책임을 지울 가능성은 제로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럼 욕실 공사 후 발생하는 모든 누수는 인테리어 업체의 잘못인가? 그렇지 않다. 아까도 말했지만 공사중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진동에 의해서도 누수는 발생할 수 있다.

 

인테리어 공사를 의뢰하는 입장에서는 이 지점부터 머리가 지끈거린다. 그냥 기존 욕실 타일 다 철거하고 방수 시공까지 싹 해버리면 머리 아플 일은 덜 할 수 있다. 방수 시공을 하면 누수 발생 가능성이야 아무래도 확 떨어질 테고, 설사 물이 샜다 하더라도 인테리어 업체 측에 책임을 물을 여지가 있다. 대신 철거비에 방수 시공비까지 해서 돈이 많이 들어 머리 대신 통장이 지끈거린다.

 

타일을 철거하고 방수 시공을 안하면 방수 시공 비용은 절약하겠지만, 아랫집 천장에서 물이 새는 일이 없게 해달라고 매일 밤 기도해야 할 지 모른다. 누수가 발생했을 경우 매우 높은 확률로 방수 시공 비용보다 큰 돈이 나간다.

 

타일 철거 없이 덧방(기존 타일 위에 새로운 타일을 덧입히는 것)을 하면 철거비도 아끼고 방수 시공비도 아낄 수 있다. 방수 시공을 안할 거면 차라리 덧방을 하는 게 나을 수 있다. 기존 타일 철거하느라 가해진 충격이 누수 발생 가능성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결국 물이 새면 꽝이다.

 

참으로 절묘한 밸런스다. 리스크를 줄이려면 적지 않은 돈이 더 든다. 그런데 돈을 들이지 않고 있다가 사고가 발생하면 더 큰 돈이 들어간다. 아파트 연식과 구조, 의뢰인의 성향과 예산 사정에 따라 뭐가 정답이라 할 거 없이 각자의 판단으로 남겨두는 영역이다.

 

나의 경우, 거실 욕실은 타일 철거 후 방수 시공을 진행키로 했다. 안방 욕실은 방수 시공과 타일 철거 없이 덧방으로 시공한다. 세면대와 위생도기(변기), 샤워 부스로 이루어진 안방 욕실에서 샤워 부스를 없애고 그 자리에 인조대리석 상판과 하부장을 놓기로 한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샤워 부스를 파우더룸으로 만들고 욕실을 건식으로 쓰기로 한 만큼, 방수 시공을 하지 않더라도 누수의 위험성은 크지 않을 거라는 판단.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이 새면 내 업보를 탓하며 기꺼이 통장에서 돈이 새어 나가는 것까지 감당하리라.

 

 

이웃 양해 선물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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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인테리어 공사는 주변 이웃을 여러모로 피곤하게 한다. 가까운 집일수록 진동과 소음이 심하고, 공사 기간 내내 엘리베이터로 여러 자재를 싣고 나르기 때문에 자칫 불편을 겪을 수도 있다. 엘리베이터 벽을 보양재로 두르고 있어 눈에 거슬리기도 한다.

그래서 공사 시작 전에는 필히 관리사무소에 신고를 하고 주민들에게 동의를 구한다. 구축 아파트일수록 인테리어 공사가 남의 일만은 아니고 언젠가 내 집에도 필요한 날이 올 수 있기에 비교적 양해를 구하기 쉽다지만 어디까지나 통상적으로 그렇단 말이다. 내 주변에 늘 통상적인 일만 일어나고 통상적인 사람만 있는 건 아니잖은가. 게다가 코로나 시국이다. 코로나 이전보다 사람들이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났을 뿐 아니라 재택 근무를 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같은 공사를 하더라도 피로감의 깊이와 범위가 다르다.

 

셀프 인테리어였다면 직접 동의서를 받으며 온 집을 돌아야겠지만 턴키 시공을 하면 업체가 맡아서 해준다. 대신 의뢰인은 준비하기 부담스럽지 않은 선에서 이웃 주민들에게 소소하게나마 양해 선물을 돌린다.

 

2호 라인에 입주하는 나는 1층부터 15층 꼭대기까지 1, 2호 집들에 선물을 돌렸다. 20리터 쓰레기봉투 두 장과 마스크 두 장을 선물용 봉투에 담고, 주민들께 양해를 구하고 인사를 전하는 짤막한 글을 인쇄한 스티커를 붙였다. 아파트 잔금을 치르고 등기를 이전하는 인도 당일, 꼭대기층부터 1층까지 계단을 내려가며 집집마다 문고리에 선물을 담은 봉투를 걸었다. 특히나 피해가 심할 양 옆집(3호 포함)과 바로 윗집, 아랫집에는 좀더 신경 쓴 선물을 전달했다. ‘뭘 이런 것까지 다 준비했냐’며 괜찮다는 반응을 하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내가 만난 이웃분들 또한 감사하게도 그래주셨다.

 

간혹 인테리어 공사 소음 때문에 민원을 제기하다 못해 정신적 피해를 금전으로 보상하라며 으름장을 놓는 이웃에 대한 성토 글이 도시 괴담처럼 인터넷 공간을 떠돌기도 하지만, 이건 예측 불가능의 영역이므로 미리부터 잔뜩 쫄 필요는 없겠다. (공사 소음에 대한 민원 제기를 가지고 뭐라하는 건 아니다. 그건 입주민의 당연한 권리이기도 하다)

 

소소한 양해 선물 돌리고 인사한다고 해서 제기될 민원이 없어진다거나 하지는 않겠지만 사람 일이라는 게 감정이 이성을 움직이기도 하고 정신이 육체를 지배하기도 하는 것이니 서로 안면 트고 말이라도 한 마디 더 주고 받고 진심으로 양해를 구하기도 하면 안하는 것보다야 훨씬 낫지 않을까 싶다. 꼭 그런 걸 바라지 않더라도 그렇다. 예전에는 새로 이사 온 동네에 떡도 돌렸다는데 가볍게 입주 인사 한 번 도는 일에 뭘 그리 대단한 걸 바랄 이유도 없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이 인테리어 공사 시작일이다.

 

앞으로 5주 간 현장에서 벌어질 일들이 다음 글에 이어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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