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국회 분수대 앞에서 대통령을 비방하는 전단지를 뿌리던 한 청년이 있었다. 경찰은 그 청년을 모욕 등 혐의로 검찰에 불구속 송치했다. 언론은 일제히 청와대를 때린다. 한 청년이 싫은 소리를 좀 했다고, 대통령이 어떻게 국민을 고소할 수가 있냐는 것이다. 째째하게.

 

청와대는 대변인 브리핑을 통해, "대통령 개인에 대한 혐오와 조롱을 떠나 일본 극우 주간지의 표현을 무차별적으로 인용하는 등 국격과 국민의 명예, 남북관계 등 국가의 미래에 미치는 해악을 고려해 대응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대통령이 그 청년에 대한 고소 취하를 지시했음을 알린다.

 

87년생 김정식. 일개 청년이었던 그는, 고소 취하 소식과 함께 권력에 분연히 항거한 열사가 되어 포털 기사를 수놓는다. 국민의힘 싱크탱크 여의도연구원 자문위원, 국민의힘 전신 미래통합당에 공천신청 했던 정치이력 등, 그의 삶의 궤적은 행간 어디에도 드러나지 않는다. 기사 안에서 그는 오직 '한 30대 청년' 일뿐이다.

 

여기 또 한 명의 청년이 있다. 슬기로운 감빵생활로 병보석을 받아 나온 전직 대통령이 너무나 걱정되었던 이 청년은, 댁으로 약을 한 봉지 사서 보낸다. '여기 이 분이 이렇게 나와계시니 관심 좀 갖자'는 일종의 정치적 퍼포먼스라며. 88년생 원재윤, 그는 그렇게 뉴스에서 '쥐약테러범'이 되었다.

 

가카는 청년의 어여쁜 마음이 너무 갸륵했다. 청년에게 친히 고소미를 먹인다. 인생은 실전이야 ㅈ만아 였을까. 지난 5월 원재윤씨는 징역 6개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는다. 기사에서 그는 여전히 '쥐약테러범'이다.

 

뭘까. 언론이 이 남자만은 '한 30대 청년'이라 불러주지 않는 이유는. 열사는커녕 테러범이 되어 호적에 빨간줄 대기라인에 서있는 이유는. 유튜브 채널 <고양이뉴스> 원재윤 PD를 만나 디벼본다.

   

_DSF5085_1.jpg

 

e8e5fd75fcf8f5480f8fff9635283173.jpg

 

기자는 있었지만, 기사는 없었다

 

근육병아리 (이하 근) : 재판이 언제였죠? 1심 선고가.

 

원재윤(이하 원) : (5월) 21일이었죠.

 

근 : 열흘 정도 되었네요. 그동안 관련 기사가 많이 나지 않았더군요. ‘쥐약테러범 실형 선고’ 요 정도는 써먹지 않을까 싶었는데.

 

원: 아 그래요?

 

근 : 본인 건데 검색 안 해보셨어요?

 

원 : 네. 안 해봤습니다. 그러네. 내가 안 해봤네.

 

근 : 의외네요. 검색 안 하셨다는 게.

 

원 : 아니 저 그냥.. 별로 기사 안 나올 거라고 생각했어요.

 

근 : 어떤 점이 그러셨죠?

 

원 : 박창훈이라는 분이 저를 고발하셨거든요. 나경원 전 비서였던.

 

근 : 유튜브 신의한수 진행자.

 

원 : 네. 그분이 증인으로 나온 날 있어요. 기자들이 한 세 명 정도 있었어요. 제가 꾸준히 방청가기 때문에 법원 출입 기자 얼굴이 낯익단 말이에요. 연합뉴스랑 중앙일보랑 한 명이 더 있었는데. 한 명은 매체가 어딘지 모르겠네요. 그 자리에 기자들이 분명히 있었는데, 기사가 나오지 않더라고요. 하나도.

 

근 : 재판을 똑똑히 봤는데도.

 

원 : 재밌잖아요. 나경원 전 비서가 진보진영 유튜버를 고소 고발했다. 기사가 충분히 날 만한데 기사를 안 쓰는 거예요. 와서 보고서도.

 

88년생과 이명박

 

근 : 가카는 직접 뵌 적 있죠? 재판에 많이 가셨으니까.

 

원 : 두 번 봤을 거예요. 아마. 한두 번.

 

근 : 어떠셨어요. 가카를 가까이서 본 소감은?

 

원 : 실제로 보면 훤칠해요. 체형도 좋으시고. 멀끔하고 건강해요. 엄청.

 

근 : 감빵생활이 슬기로우신가.. 근데 그분 편찮으셔서 보석 나오신 거 아닌가요?

 

원 : 제가 2019년 재판에 갔었거든요. 5월 8일이었으니까, 딱 이년 되었네. 그때 나이가 그분이 82인가? 나이 찾아보고 깜짝 놀랐어요.

 

근 : 왜죠?

 

원 : 여든이 넘으신 분의 정정함이. 실제로 보면 굉장히 신기해요. 뭐랄까, 팔순 넘은 노인 같지가 않아요. 묘한 푸릇푸릇 느낌이 있더라고요.

 

근 : 올해 나이가 어떻게 되시죠?

 

원 : 88년생입니다.

 

근 : 서른네 살. 88년생에게 이명박이라는 경험은 어떤가요?

 

원 :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참여했던 첫 선거에서 당선된 대통령이죠.

 

근 : 그렇네요. 대선이 있던 2007년은 88년생들이 20살이 되던 해 였으니까.

 

원 : 미적분 하다가말고 치룬 선거.

 

근 : 처음으로 참여한 선거에서 당선된 대통령. 그리고 이명박시대의 대학생. 광우병 파동, 광화문 시위, 명박산성의 시간들. 사회적 정치적 감수성이 가장 예민한 시기에 그와 함께한 거군요.

 

원 : 예. 그 광우병 시위 때 제가 재수를 하고 있었는데, 멋모르고 광화문 교보문고에 문제집 사러 갔다가 시위에 휘말려서 물대포를 맞은 적이 있어요.

 

근 : 오, 그 유명한 살수차를 직접.

 

원 : 공권력의 힘을 처음 느껴 봤다고 해야 되나.

 

근 : 그날 광화문에서의 경험이 이후의 삶에 영향을 끼친 부분이 있었나요?

 

원 : 그러지는 않았어요. 전혀. 그냥 강렬한 기억으로만 남았죠. 살수차 그게, 생긴 것 자체가 엄청 무섭게 생겼거든요.

 

근 : 그렇죠. 정말 대포 마냥.

 

원 : 시위대 앞으로 쫘악 밀려오는데. 처음엔 저건 뭐지? 하고 있었다가, 물에 맞은 사람들이 막 날라가요. 정말로. 시위는 무서운 거구나. 오늘 집에 못 가는구나. 그랬었죠.

 

근 : 광화문에서 물대포를 맞을 때, 그로부터 10년 후에 그 살수차를 보낸 양반에게 고소를 당하게 될지 전혀 몰랐겠네요. 인생이 그런 방향으로 뻗어 나갈 줄은.

 

원 : 그렇죠.

 

_DSF5018.jpg

 

호적에 빨간줄 가던 날

 

근 : 실형이 선고되었을 때 느낌이 어떻던가요?

 

원 : 제가 이 일 시작하고 나서 제일 화났던 거 같아요.

 

근 : 감정이?

 

원 : 예. 화가 엄청나더라고요, 그냥 뭐랄까. 형사재판은 개인과 국가 간에 싸움 이잖아요. 국가에서 저한테 너는 죄가 있다고 딱 인정을 한거니까, 나를 두고 죄인이라고 하니까, 화가 많이 나더라고요.

 

근 : 무섭지는 않으셨나요? 범칙금만 날라와도 가슴이 덜컥 내려앉게 되는 법인데. 하다못해 학생 때 교무실에 들어가는 그런 위축되는 기분 같은 거라도.

 

원 : 저는 약간 그 기능이 빠져 있나 봐요. 좀.

 

근 : 타고나기를?

 

원 : 예. 사람이 그런 기능이 좀 있어야 되는데, 저는 그게 좀 결여되어 있는 것 같아요. 어렸을 때부터 좀 그런 게 없어요.

 

근 : 타고난 레지스탕스다?

 

원 : 레지스탕스의 길을 갈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가다가 뒤돌아보니 이 길이 그 길이더라고요.

 

근 : 선고에 화가 났다. 아주 순수하게.

 

원 : 네. 뭔가 부정당한 느낌. 그런 감정이 확 밀려들어왔어요.

 

근 : 그 말은, 본인이 했던 일에 대해서 조금도 어떤 후회나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인가요?

 

원 : 잘못했나? 뭐 이런 생각은 해본 적 있는데 후회는 해본 적 없어요.

 

_DSF5059_1.jpg

 

무고한 30대 청년 과 쥐약테러범

 

근 : 대통령을 모욕했다가 최근에 고소되었던 또 다른 청년이 있죠.

 

원 : 김정식 씨.

 

근 : 국민의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 자문위원, 국민의힘 전신 미래통합당에 공천신청 했던 정치이력. 그 사람의 배경은 싹 묻힌 채, '싫은 소리좀 했다고 대통령이 무고한 30대 청년을 옹졸하게시리 고소했다.' 이런 프레임의 기사가 포화되었죠. 온 언론이 빤스벗고 나서서 그를 열사로 만들어주고 있는데, 재윤씨의 이번 선고는 기사 한 줄 제대로 나가지 않고 있죠. 비슷한 일을 겪고 있는 30대 청년으로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원 : 일단 저는 비례공천 어떻게 신청하는 지도 몰라요.

 

근 : 선고 결과에서 느끼던 분노가, 이 부분으로는 연결이 되지 않았나요?

 

원 : 저는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김정식 씨가 국민의힘 사람 이건 아니건 간에, 모욕죄로 고소하는 것은 좀 짜치다. 고소를 취하하는 것이 맞다. 언론의 지적도 타당했고, 청와대에서도 잘 대응했다. 그런데, 저는 예전에 쥐약 테러범이라고 기사가 났었단 말이에요. 아예 기사 자체가. 왜 저 사람만 무고한 청년일까. 나는 쥐약테러범이고.

 

근 : 그렇죠. 일단 기사 워딩에서 이미 결론을 내리고 있는 거죠. ‘무고’하다고.

 

원 : 나는 기사가 '테러범'으로 시작하고 저 사람은 왜 '무고한'으로 나오는 거야? 똑같은 상황인데. 언론이 뭔가 취사선택 함에 있어서 확실한 면모로 보여주는구나. 취향이 확실하구나.

 

근 : 확실한 면모. 확실한 취향. 보수언론들의.

 

원 : 아니요. 매체를 가리지 않았어요. 저를 쥐약테러범이라고 기사 낸 언론사는 세다가 말았고요. 거의 다 났기 때문에. KBS, MBC, SBS 가릴 것 없이.

 

_DSF5033.jpg

 

근 : 그때는 감정이 어떠셨나요?

 

원 : 그때요? 그때는 신났어요.

 

근 : 왜죠?

 

원 : 제가 원하는 대로 됐기 때문에.

 

근 : 원래 그렸던 그림이다?

 

원 : 제가 원했던 거는 사람들이 가카에게 관심을 갖는거였어요. 저토록 정정한 가카가 보석으로 나오셨는데, 뉴스를 찾아볼 수가 없었거든요. 가카가 보석으로 나왔다는 기사가 어느순간 포털에서 싹 사라졌어요. 아무도 이명박에 대해서 관심 갖지 않았어요. 뉴스공장이나 다스뵈이다에서만 꾸준히 ‘이제 각하가 뭔가 아프실 예정이다.’라고 하고 있었고.

 

근 : 그랬죠. 김어준 총수와 주진우 기자가 자주 하던 말이었죠.

 

원 : 저도 같은 생각이었어요. 지금 너무 잊혀지고 있다. 가카가. 그래? 그럼 잊히지 않게 해드려야겠다. 뭐가 있을까? 가카가 아프셔서 나오셨다는데, 약을 좀 갖다주면 좋지 않을까. 그런데 그냥 약을 갖다주면은 이슈가 안 되겠지? 티비 보니까 사저에 거기 정원이 있더라고요. 아 저 정도 정원이면 쥐가 제법 있을 테니, 정원 가꾸는 데에 쓰시라고 쥐약을 갖다 드리면은 되겠다. 어차피 인터넷에 팔고 그런 약이니까. 독극물도 아니고 별일 없겠지. 그렇게 실행에 옮겼더니 언론에서 난리가 났고 이명박 이름 석자가 뉴스에 엄청나게 나왔죠. 그 뉴스들을 계기로 사람들이 ‘이명박이 밖에 왜 나와 있어?’하며 관심을 갖게 되었죠.

 

근 : 본인이 쥐약 테러범이라고 불리는 걸 감수하고.

 

원 : 등가교환 이죠.

 

SSI_20210521143507_O2.jpg

 

 

근 : 신이 났다. 작전에 성공해서.

 

원 : 제 기획은 딱 두 개였어요. 그때 당시에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드루킹 일당이 시연할 때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 이거를 재판부에서 인정해서 ‘법적 공모관계’라는 신박한 용어로다가 법정 구속을 시켰었거든요. 이것도 꼬집자. 그래가지고 제가 영상 찍을 때 저희 집 국장님(고양이)께 이거 쥐약을 갖다 줘도 되겠냐. 저한테 시키신거냐. 고개를 끄덕거리는 장면을 일부러 넣었어요. 근데 그거까지는 화제가 되지 않더라고요.

 

FSFAD.JPG

좌측, 녹화중 주무시는 국장님

 

근 : 풍자 코드가 하나 더 있었다. 거의 뭐 봉준호급 디테일이군요.

 

원 : 워낙에 앞에 거가 쎄니까 다 잊어버리더라고요.

 

근 : 그렇죠. 쥐약이 너무 세니까. 저도 처음에 기사를 접하고, 쥐약으로 가카를 테러 했다길래, 뭐 정말 가카가 지나가는데 집어던졌나 했어요. 기사에 ‘쥐약테러범’이라는 단어만 전면에 나오니까.

 

원 : 저도 근데 솔직히 쥐약 테러가 뭐 어떤 이미지는 잘 모르겠어요.

 

근 : 세죠. 쥐약도 세고 테러도 세고.

 

원 : 갖다 던져서 폭발시켰나? 뭐 이런 이미지. 아마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겠죠. 케이크에 타서 줬다 던지. 그런데 일단 죽이려는 의도가 있어야 테러라고 할 수 있는 거잖아요. 전 단지 사람들이 가카에게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정치 퍼포먼스 였어요.

 

가카는 근면성실하다. 여전히

 

근 : 저는 재윤씨의 이번 선고를 두고 언론이 잠잠한 게 좀 이상했어요. 김정식씨 모욕죄 고소를 비판했던 것과 같은 잣대를 들이밀지 못하는게 민망해서 피했을 리도 없고. 그 정도 뻔뻔함은 다들 갖추고 있으니까. 

 

더구나 재윤씨를 고소고발한게 진보진영의 젊은 스피커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경고였다면, ‘그때 그 쥐약테러범이 결국 실형을 때려맞았다.’라는 소식은 한 번 더 태워볼만한 인화성 좋은 소스인데 말이죠. ‘입 잘못 놀리면 쇠고랑 찬다’의 본보기로.

 

원 : 아마 가카가 싫어하셨을 거예요. 제 기사가 나가면 본인 이름도 다시 회자되니까.

 

근 : 그렇게 추정하세요?

 

원 : 데스크에선 아마 다 그렇게 자르지 않았을까요. 그날 기사가 조금 나오긴 했는데, 아주 드라이하게 나왔더라고요.

 

근 : 드라이하게.

 

원 : <MB에게 쥐약 갖다 준 유튜버 실형선고> 이정도로만.

 

근 : 그랬군요. 한참 찾아야 나오네요.

 

원 : 그리고 저는 사실, 언론은 별로 관심이 없어요. 유튜버들이 어떻게 하나 좀 많이 봤죠. 극우유투버들이 제 선고 결과를 두고 ‘야 맛있는 거다~’ 하면서 물어뜯을 줄 알았는데. 안 그러더라고요.

 

그리고 이거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사실인데, 가카가 저를 고소, 고발할 당시에 세금 폭탄을 맞았었어요. 다스 재판을 하면서 자기 손주한테 차명으로 해놓은 게 있는데 그게 걸린 거예요. 그래가지고 세금을 때려 맞았죠. 1억을.

 

근 : 부동산인가요?

 

원 : 네 그거를 소송을 거셨어요.

 

근 : 그 세금 못 내겠다?

 

원 : 그 잠깐 보석으로 나오셨을 때.

 

근 : 역시 근면하시네요.

 

원 : 올해 2월에 이 건을 이기셨어요. 1억을 세이브 한 거죠.

 

근 : 최대한 세간의 이목을 피해야 하는 이유가 있군요.

 

원 : 그런 걸 수도 있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죠.

 

근 : 내가 등장하면 안 되긴 하는데, 고양이뉴스 저거는 좀 짜증 나고 그러니까.

 

원 : 조지기는 조져야겠는데 내 이름 안 걸고 조질 순 없나. 이런 거 아닐까요.

 

근 : 그래서 다른 사람 손을 빌려서.

 

원 : 내가 조지기에는 좀 짜치고.

 

근 : 모기 잡는데 칼을 빼고 싶진 않고.

 

원 : 나는 전직 대통령인데. 쟤는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말도 안 되는 애가 날 건드네.

 

_DSF5078.jpg

 

법원에서의 강강술래

 

근 : 가카 재판 방청 소감은 어떠셨나요?

 

원 : 그게 보석으로 나오시고 첫 재판이었을 거예요. 보석을 결정한 정형식 판사가 심리를 진행하고 있었죠. 금방 끝나더라고요. 그래서 간 김에 나오시는 거 보려고 서있는데, 어떤 남자들이 저를 갑자기 둘러싸는 거예요.

 

근 : 법원 건물 앞에서요?

 

원 : 법원 경내에서. 재판을 마치고 나온 가카가 손도 이렇게 흔드시고 지나가시는 퍼레이드 라인이 있어요.

 

근 : 지지자들에게.

 

원 : 네. 이재오 전 의원도 있었고.

 

근 : 가신들이 쫙 도열해서.

 

원 : 아 그렇죠.

 

근 : ‘나 건재해'라는 걸 보여주는 일종의 메시지. 사진도 좀 찍고.

 

원 : 아 거기서는 사진을 안 찍더라고요. 기자들이 재판 들어갈 때 마스크 쓰고 콜록콜록거리는 사진은 찍는데, 끝나고 정정하게 걸어나올때는 사진은 찍지 않아요. 그곳엔 기자들이 아예 가질 않으니까.

 

근 : 한 명도?

 

원 : 네. 그래서 저라도 그 당당한 풍채를 찍어보려고 가까이 가려고 하니까, 열댓 명의 남자 무리가 저를 둘러싼거죠. 사복을 입고 있지만 딱 봐도 훈련받은 군인 느낌, 그런 사람들 이었어요.

 

근 : 사설 경호업체 였을까요?

 

원 : 아니요. 경찰이었어요. 그 사람들이 가카가 떠났는데도 저를 계속 쫓아오길래, 그래 그러면 뭐 어디까지 쫓아오나 보자라고 저도 계속 같이 있었거든요. 한 30분 있으니까, 갑자기 경찰차를 타고 가더라고요.

 

근 : 사복 경찰일 수 있겠네요.

 

원 : 네. 그래서 그 경찰차 차 번호를 적어서 국민 신문고에 물어봤어요.

 

근 : 어디 소속이냐. 이 차가.

 

원 : 내가 한무리의 남자들에게 미행을 당했는데, 전직 대통령 경호 였다면 경호 대상이 떠난 후에도 나를 계속 미행하는 이유가 뭐냐? 누가 명령 내린 거냐? 내가 어디에 따져야 하나? 이런 식으로 물어봤더니, 해당 번호판은 전 대통령 경호팀에 소속된 차량이라고 확인해주더라고요.

 

근 : 경찰들이 어떤 식으로 둘러싸던 가요?

 

원 : 그게 좀 웃긴데요. 제가 조금만 움직이면, 그만큼 다 같이 찔끔 찔끔 움직여요.

 

근 : 강강수월래?

 

원 : 아니요. 등을 보이고 스크럼을 짜서. 절대로 저를 보지 않아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제가 가까이 가면 멀어지고. 그래서 '아~ 이건 뭔가 조직이네. 무슨 사설경호팀인가?' 처음엔 그렇게 생각하고 물어보고 말을 걸었는데, 들은 척을 안 해요. 하는 수 없이 국민신문고에 물어본 거죠.

 

근 : 건장한 남자 열댓 명이 나를 두고 그런 위압적인 강강수월래를 하다가 말없이 사라지면, 공포심을 느끼거나 그러지 않나요?

 

원 : 그런가요.

 

근 : 저 사람들이 타고 가는 차 번호판을 따서 정체를 알아봐야겠다. 이러긴 쉽지 않죠. 보통의 사람이라면. 약간 두근거리세요 그럴 때? 호오 이게 뭐지? 이 새끼들은 어디서 온 걸까? 흐흐. 이러면서?

 

원 : 그래요? 보통은 그러려나.

 

근 : 전 제가 보통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무섭죠. 두근거리면서 와 이 새끼들이 어디까지 쫓아오지? 이렇지는 않죠.

 

원 : 전 그냥 디폴트 값이 그런가봐요. 겁먹으라고 일부러 그랬으려나.

 

근 : 그랬겠죠. VIP가 떠났는데 스크럼을 해제하지 않고 끝까지 쫓아온 건, 단순한 경호가 아니라고 느껴질테니까요. 위협이죠.

 

원 : 그래요. 그럼 실패했네요. 굉장히 크게 실패했네요. 저는 그 되게 와 재밌는 일 생겼다고 생각했거든요. 신기한 거 알았다고.

 

_DSF5088.jpg

 

왕의 남자 : 너만 보인단 말이야

 

근 : 가카가 법정에서 재윤씨를 알아보시던가요?

 

원 : 지금도 미스터리이자 코미디인데. 가카가 제 얼굴을 아신데요.

 

근 : 오 성공한 덕후.

 

원 : 가카가 뭐라고 하셨냐면, "나에게 쥐약을 보냈던 고양이뉴스 쟤가 내 재판까지 따라와가지고는 방청석에서 일어서서 나를 계속 노려보았다. 시종일관 나를 노려보는 모습이 굉장히 두렵고 무서웠다."

 

근 : 재윤씨가 가카를 노려봤다?

 

원 : 예. 원재윤이가 법정에서 일어서서 재판 처음부터 끝날 때까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게 굉장히 무서워서 나는 실체적인 위협을 느꼈다. 그래서 이것은 협박이다라는 식의 증언을 변호인을 통해서 했어요.

 

근 : 뭘 얼마나 뜨거운 눈빛을 보내셨길래..

 

원 : 말이 안 되는 게, 일단은 재판장 안에서 일어서 있을 수가 없어요.

 

근 : 재윤씨 앉은 키가 다른 방청객에 비해 월등히 컸을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요?

 

원 : 아 제 앉은 키가 서 있다고 느낄 정도로 컸으면.. 그거는 제가 가카께 죄송한 부분이고..

 

근 : 뭐 그리 커 보이시지는 않은데..

 

원 : 제 앉은 키가 90정도 되거든요. 세상에 90cm짜리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근 : 펭귄도 아니고.

 

원 : 둘째로, 노려보는 게 무서웠다. 그렇다면은 재판장에서 한눈을 팔고 있었다는 소리인데. 저만 바라보고 있었다는 거 아니에요. 이거는 뭐 거의 사랑이 아닌가. 운명적인 만남으로 느꼈던 건가.

 

근 : 결국, 전직 대통령이 자신에게 택배를 보낸 30대 청년을 기억하고 있다는 거네요. 정확히는 키 90cm짜리 남자의 얼굴을.

 

원 : 그쵸.

 

근 : 애틋하네.

 

원 : 처음 고발당할 때는, 가카가 변호인에게 한 그 증언을 알 수 없었어요. 기소가 된 후에 수사 기록을 빼보고 나서야 알 수 있었죠. 가카의 마음을.

 

근 : 얘가 이렇게 째려봐서 너무 무서웠다.

 

원 : 저는 그리고 검찰 조사도 안 받았어요. 1년 동안 묵혀 있던 사건이 바로 선거 직전에 터졌기 때문에.

 

근 : 이번 재보궐 선거 직전?

 

원 : 예. 황희두씨 케이스와 제 케이스가 비슷해요. 선거 직전에 바로 기소해서 바로 재판으로 가서 지금 거의 비슷한 시점에 다 선고가 나는 거예요. 구형량도 거의 비슷하고.

 

_DSF5056.jpg

 

3호선은 빅엿을 싣고 

 

근 : 본인 재판 과정은 어땠나요?

 

원 : 저한테 들어간 법 기술이 대단했어요. 만약 고소고발을 당한 사람이 부산에 산다면, 서울에서 수사나 재판을 받기 힘들잖아요. 그러면 부산으로 옮겨서 진행할 수가 있어요. 그런데 저는 그런 편의를 제공받지 못했어요. 저에게 우편법 위반을 걸었거든요. 그러면 사건 발생지에서 수사를 받게되니까. 사실 그 쥐약은 네이버 쇼핑에서 택배로도 팔기 때문에, 우편법 위반에 안 걸려요. 그걸 알고서도 우편법을 걸고 넘어진거죠. 관할지를 못 바꾸게 하려고.

 

근 : 지금 사는 곳이 어디죠?

 

원 : 일산이요. 결국 사건 발생지인 강남에서 수사를 받았죠. 중간에 또 우편법에 걸리지 않는다는 게 나와서 수사가 뭐 엎어져요. 그래서 고발인, 피해자한테 동의 받아서 수사가 종결이 돼요. 그러다가 보석으로 나온 가카가 재판장에서 저를 보고 실체적 위협을 느끼신 5월 8일날, 갑자기 저를 다시 협박죄로 재고소, 재고발을 한거죠.

 

근 : 그럼 만약 그날 방청을 가지 않아 뜨거운 눈빛을 주고받지 않았다면, 이번 고소고발은 일어나지 않을 일인가요? 

 

원 : 그게 애매한 것이, 5월 2일에 팩스로 경찰한테 처벌 의사가 있다는 이게 먼저 가요.

 

근 : 이미 계획된 거였군요.

 

원 : 네. 이미 종결된 사건에 처벌 의사가 있다는 팩스가 '실체적 위협을 느낀 날' 보다 먼저 간 거죠. 제가 며칠 후에 법정에서 큰 앉은키로 노려보고 있을 것을 내다보시고.

 

근 : 쥐약택배관련 첫 번째 수사는 경찰에서 어떤 과정으로 종결된거죠?

 

원 : 경찰이 피해자인 가카 측에 처벌 의사가 있냐 없냐 그냥 확실하게 물어본 다음에, 비서실에서 “우리는 전혀 관여할 생각이 없습니다. 이것을 공식 답변으로 받아들여도 좋습니다.”라는 답변을 전화상으로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어요. 그렇게 종결된거죠.

 

근 :' 뭐 별일 아니네' 하고 종결 되었던 사건이 다시 시작된거죠? 팩스 한 장과 함께.

 

원 : 네 그 후에 고발인이 등장하죠.

 

근 : 박창훈. 나경원 전 비서.

 

원 : 일산에서 서초까지 수사와 재판을 받으러 다녔죠.

 

근 : 차는 뭐 타고 가셨어요? 광역버스 빨간 거?

 

원 : 지하철. 교대역까지 두 시간 정도 걸려요.

 

근 : 일산에서 3호선 타고. 다행히 환승 안 하셨네요.

 

원 : 두 시간 동안 차 타고 가서 판사가 딱 이렇게 얘기해요. "피해자랑 합의 볼 생각 없어요?"

 

근 : 피해자라 함은?

 

원 : 가카죠. 그러면 저희 측 변호사가 “지금 피해자가 구속 소감 중이라 만날 방법이 없다. 어떻게 합의를 보냐.” 하면 판사가 “아~ 그럼 뭐 검사 측에서 좀 도와줘봐요. 다음 공판기일에 합의 의사 있는지 없는지 한번 검사 측에서 연락해봅시다.”이렇게 오 분 만에 끝나요. 그러면 또 두 시간 차 타고 집에 가는 거죠. 그럼 그날 저는 아무것도 못하는 거예요. 

 

근 : 제가 아직 고소고발을 당해보지 않아서 여쭤보는 건데, 그거 출석 안 하면 어떻게 됩니까? 제가 지하철 오래타면 멀미가 나서..

 

원 : 아마 구인장이 발부되어서..

 

근 : 잡으러 옵니까?

 

원 : 잡으러 올 거예요. 제가 그거 실제로 불출석한 사람들 정경심 교수 재판에서 벌금 받는 거 봤거든요. 그 자리에서 벌금 500만 원 때려버려요. 판사가 그 자리에서 바로.

 

근 : 어디 감히 안 오냐.

 

원 : 예. 감히 안 오냐.

 

근 : 그렇게 먼 길을 오가게 하고.

 

원 : 그렇죠. 그렇게 괴롭히는 거죠 계속. 그렇게 1년을 계속 괴롭히는 거예요. 판결 안 내고.

 

근 : 일산-강남 3호선 투어를 총 몇 번 하셨나요.

 

원 : 세어보니 열두 번이네요.

 

근 : 지난 1년 동안 한 달에 한 번 꼴로 왕복 다섯 시간을 왔다 갔다 하신 거네요.

 

원 : 그렇죠. 게다가 코로나 단계가 격상되면 공판기일 연기되어서, 비워놨던 일정을 다시 조정해야 하고 그런 시간을 보냈죠.

 

근 : 진을 빼는 거죠. 생업에도 지장이 있을 거고.

 

원 : 저도 이렇게 길어질 거라고 예상을 못 했어요. 이런 간단한 재판이 설마 1년이 넘겠어하고.

 

(계속)

 

가카의 화려한 법기술 열전, 2부에서 이어집니다.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