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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여기 딴지일보에 연재된 글을 묶어 같은 제목으로 책을 냈다. 『노가다 칸타빌레』(시대의창, 2021)라는 노동에세이집이다. 신경 안 쓰려고 했는데, 자꾸 신경 쓰인다. 곧잘, 내 책을 검색해본다. 댓글이나 리뷰도 본다. 재밌게 읽었다는 댓글에 괜히 혼자 쑥스러워하고, 흐뭇해하고 그런다.

 

그런 어느 날이었다. 씁쓸한 댓글을 하나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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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의도는 없다. 이 글은, 말하자면 댓글 달아주신 분(이하 ‘철수 씨’라고 하겠다)에게 띄우는 편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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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수 씨 안녕하신가요? 저는 오늘도 안녕하답니다.

 

철수 씨가 남겨준 소중한 댓글, 감사히 읽었습니다. 편지 보내기까지 고민 많았습니다. 댓글 하나에 발끈하는 속 좁은 놈으로 비춰질까봐서요. 그래요! 사실 좀 속상하기도 했어요. 노가다꾼이라는 직업에 자부심 갖고, 관련 책까지 낸 작가로서 속상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죠. 하하하.

 

근데 말이에요. 속상함도 속상함이지만 그보다는 느끼는 바가 컸어요. 그래서 편지 보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철수 씨가 오해하는 부분에 관해 설명도 좀 해드리고, 제가 느낀 것도 말씀드릴까 해서요.

 

우선은 오해부터 풀고 싶어요. 제가 혹시 곡해하는 건 아닐까 싶어 철수 씨 댓글을 여러 번 읽었는데요. 철수 씨는 아마도, “노가다꾼보다는 건축기사가 귀한 직업”이라는 얘길 하고 싶으셨던 거 같아요. 제가 잘못 이해한 걸 수도 있으니, 그랬다면 양해해주세요.

 

철수 씨 말마따나 건물 지으려면 도면 산출 및 설계, 타당성 검토 등 행정 절차가 필수예요. 그러니 건축기사, 아주 중요한 사람이에요. 하지만 그런 절차와 서류만으로 건물이 올라가는 건 아니잖아요. 철수 씨도 당연히 아시겠지만, 누군가는 서류 만들고, 누군가는 땅 파고, 또 누군가는 망치질해야만 건물이 올라갈 수 있겠죠?

 

저는 그냥 역할이 다른 거라고 생각해요. 건물 짓기 위해선 건축기사와 노가다꾼(편의상 목수라고 할게요.) 둘 다 필요하잖아요. 건축기사와 목수 둘 중 어떤 역할이 더 중요하다고 따질 수 없는 거잖아요. 사람마다 판단하는 기준이 다를 테니까요.

 

실제 현장에서도 그래요. 적어도 시공 방식에 관해서는 건축기사도 목수팀 작업반장에게 의견 구해요. 어떤 자재 써야 효율적인지, 어떻게 시공해야 안전한지, 건축기사보다는 작업반장이 더 잘 아니까요.

 

반대로 1층엔 기둥이 왜 8개 있고, 2층엔 기둥이 왜 4개밖에 없는지, 각 기둥의 위치는 어떤 기준으로 정해지는지, 작업반장도 잘 몰라요. 건물 하중 때문에 그럴 거라고, 짐작만 할 뿐이죠. 그냥 도면에 나와 있는 대로 정해진 위치에 기둥 만드는 거예요.

 

그렇듯, 종이에 건물 그리는 사람과 그 종이 보고 나무로 건물 짓는 사람은 그저 역할이 다를 뿐이라는걸, 꼭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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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수 씨는 이런 말씀도 하셨죠. 노가다꾼은 기술자가 아니다. 기술자라면 최소 전문대 정도는 나와야 하고, 자격증도 한두 개는 있어야 한다고요.

 

글쎄요. 저도 인생을 오래 산 건 아니지만, 어디 세상일이라는 게 그렇던가요? 대학과 전공 관계없이 해당 분야 최고가 된 사람, 일일이 나열할 수 없을 만큼 많잖아요. 외국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나라도 요즘은 학벌 잘 안 따지는 추세인 거 같죠?

 

저 또한 좋은 대학(일반적으로 말하는) 나온 사람의 엉덩이 힘을 존중하는 입장인데요. 그렇다고 지잡대 나왔거나 혹은 대학 안 나온 사람 모두가 무능하고 못난 사람은 아닐 거잖아요.

 

음, 퍼뜩 생각나는 건 최현석 셰프예요. 철수 씨도 최현석 셰프 정도는 아시죠? TV에도 많이 나왔으니까 한두 번쯤 이름은 들어봤을 거예요. 우리나라 이태리 셰프 중 둘째가라면 서러운 그 셰프 말이에요. 그 사람도 고졸이에요. 이태리 유학은커녕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자격증 하나 없다고 해요. 오직 주방에서 갈고닦은 거죠.

 

최현석 셰프는 기술자가 아니라 요리사라고요? 에이~ 기술자가 뭐 별건가요. 철수 씨와 제가 생각하는 ‘기술자’에 좀 차이가 있는 건 같으니, 사전적인 의미 한 번 짚어볼게요. 사전에서는 기술자(技術者)를 “어떤 분야에 전문적 기술을 가진 사람.”이라고 정의한답니다. 그럼 기술(技術) 한 번 찾아볼까요? “사물을 잘 다룰 수 있는 방법이나 능력.”이라고 나오네요. 사전대로라면 망치만 잘 다뤄도 기술자예요. 대학 나오고 자격증 있어야 망치 다루는 건 아니잖아요.

 

대학 4~5년 동안 건축 공부하고, 자격증 따기 위해 또 미친 듯이 밤새우고, 토익에 각종 공모전에 봉사활동에 면접까지 피나는 준비 끝에 건설사 취업한 건축기사 김 씨가 있다 칩시다.

 

그 반대편에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현장에 뛰어들어 욕먹어가며 현장 분위기 익히고, 형님들 잔심부름하면서 자재 이름 외우고, 또 자재 나르고, 그러면서 겨우겨우 망치질 배워 이제 막 목수가 된 최 씨도 있다 쳐보자고요.

 

철수 씨는 김 씨가 최 씨보다 더 노력했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삶을 꾸려가는 방식이 달랐고, 그래서 노력의 형태도 달랐지만, 결코 노력의 무게가 다르진 않을 거예요.

 

저는 초등학교 밖에 안 나오는 우리 형님들이 목수가 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또 목수가 된 이후에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왔는지, 어렴풋이 알아요. 철수 씨가 그들의 삶도 한 번 헤아려주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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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제가 느낀 걸 좀 말씀드릴까 해요. 짐작건대, 철수 씨는 노가다판을 좀 아는 사람인 거 같아요. 전문 용어가 마구 등장하는 걸 보니, 건축학과를 졸업했거나 관련 분야 종사자 아닐까 싶네요. 맞죠???!!! 여하간, 좀 안다는 철수 씨도 노가다꾼을 저렇게 생각하는데 일반인들은 오죽할까 싶더라고요.

 

그래서 사실 작은 결심 하나 했어요. 제 책 서문에서 저는 이런 말을 했어요.

 

「내가 노가다꾼으로서 무슨 대단한 사명감이 있는 건 아니다. 노가다 일 하다 보니 일반인에겐 다소 신선할 수 있는 일을 보고 듣고 겪었다. ‘미천한 습성’이 남아 그런 얘길 글로 옮기면 재밌겠다, 싶었다.」

 

최근 어느 매체와 인터뷰했는데요. 거기에서도 이렇게 말했어요.

 

「노가다꾼에 대한 편견을 깨부수겠다, 뭐 이런 대단한 사명감보다는 글쟁이로서의 본능과 약간의 기자정신(?)이 남아있었던 거죠.(중략) 그래서 쓰기 시작한 거예요. 그러니 가볍게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 각 잡고 읽으라고 쓴 책, 결코 아니랍니다. 화장실에서, 출퇴근 지하철에서, 카페에서 애인 기다리며 잠깐잠깐 읽기 딱 좋으실 거예요.」

 

진심이었어요. 다른 여러 글에서도 누차 밝혔듯, 저는 제가 대단한 글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제 글 하나가 세상을 바꿀 거라고도 믿지 않고요. 근데 말이에요. 철수 씨 댓글 보고 생각이 쬐금 바뀌었어요. 내 글 하나가 노가다꾼에 관한 모든 편견을 깨부술 순 없겠으나, 노력은 한 번 해보자고요. 많은 경우, 편견은 무지에서 비롯한다고 생각해요. 잘 몰라서 오해하는 걸 거예요. 그래서 알려드리기로 결심했어요. 노가다꾼도 얼마든지 매력적인 직업이라는 걸 말이죠. 철수 씨도 지켜봐 주세요. 그리고 함께 응원해주세요!

 

P.S. 아참, 철수 씨 제 책 읽어보셨나요? 아마도 안 읽으셨을 것 같은데, 출판사 통해서든, 댓글 통해서든, 제 메일을 통해서든, 연락주세요. 제가 사인해서 책 한 권 보내드릴게요!

 

<계속>

 

 

편집부 주

 

참고로 충정로 9번 출구 딴지카페에도

필자의 책이 비치되어 있다.

 

커피 두 잔 사서 한잔은 버린 후에,

찬찬히 읽어봐도 괜찮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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