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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은 먹어서 맛이 아니다

 

사무실에서 일하는 친구들은, 내가 들려주는 ‘노가다 썰’을 재밌어한다.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에 대한 호기심인 거 같다. 얼마 전에도 친구를 만나 열심히 ‘노가다 썰’을 풀어줬다. 그날 주제는 ‘참’이었다. 친구는 내 얘기를 듣고 놀랍다는 듯 이렇게 반응했다.

 

“하루에 두 번씩 꼬박꼬박 간식을 준다고? 우와~ 부럽다. 회사엔 왜 그런 게 없지?”

 

“부럽냐?? 그렇게 부러우면 너도 회사 때려치우고 노가다꾼 하던가!!! 푸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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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유튜브채널 'Hoon 강성훈' 캡쳐>

 

그러고 보니 그랬다. 나도 회사를 5년이나 다녔지만, 공식적인 간식타임은 없었다. 회사 대표나 간부, 선배들이 이따금 과자 사다 주는 정도? 물론, 대기업 같은 데 가면 탕비실도 따로 있고, 간식도 산더미처럼 쌓여있다고는 하더라. 좋겠다. 흥!

 

친구는 신기하고 부럽다는 눈빛을 가득 담아 계속 물었다.

 

“근데, 왜 간식이라고 안 하고 참이라고 해?”

 

그러게? 왜 그렇지? 생각해보니 그렇네. 그래서 찾아봤다.

 

사전에서는 ‘참’을 “아침과 점심 또는 점심과 저녁 사이의 끼니때”라고 정의한다.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참은 ‘음식’이 아닌 ‘시간’ 개념이다. 근데 노가다판에서는 주로 ‘참=간식’ 개념으로 쓴다. 이를테면 “야! 참 시간 안 됐냐? 참 먹자~!” 이런 식으로 말이다.

 

“참 시간에는 뭐 먹어? 빵이랑 우유 같은 거 주는 거야?”

 

“큰 현장에서는 보통 초코파이나 카스타드, 오예스 같은 거 하나랑 작은 캔 음료 하나씩 줘. 모텔 냉장고에 있는 작은 캔 음료.”

 

작은 현장은 또 좀 다르다. 동네 슈퍼 가면 카운터 옆에 꼭 매대가 하나 있다. 그 매대에 보면 주로 삼립에서 만드는 ‘보름달’, ‘크리ㅁ빠ㅇ’ 같은 게 쭉 있다. 내 방식대로 표현하자면 ‘슈퍼 빵’ 말이다. 예전에는 늘 궁금했다. 이렇게 맛대가리 없는 빵을 도대체 누가 사 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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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그렇다. 파리바게뜨나 뚜레쥬르 빵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뻑뻑함과 부실한 내용물에 늘 놀라곤 했었다.(미안해요, 삼립. 근데 진짜 맛없어요. 이해는 해요. 그만큼 싸니까.) 그 맛대가리 없는 ‘슈퍼 빵’을 누가 먹느냐고?? 그렇다. 우리가 먹는다. 작은 현장에서는 ‘슈퍼 빵’과 음료를 하나씩 준다.

 

그러니까, 뭐 대단한 걸 먹는 건 아니다. 실제로도 노가다꾼에게 참은 먹어서 맛이 아니다. 공식적으로 쉬는 시간인 만큼 누구 눈치 안 보고 맘 편히 앉아서 쉴 수 있다는 것. 거기에 의미가 있다.

 

참값 아껴서 퍽이나 부자 되겠다!!!!!

 

“참은 어디서 먹어? 식당에 가서 먹는 거야?”

 

“식당까지 왔다 갔다 할 시간이 있겠냐? 참 때마다 막내가 사무실 가서 가져와. 가져오면 그냥 현장 아무 데서나 철퍼덕 앉아서 대충 먹는 겨. 그래, 너도 언젠가 노가다할 수도 있으니 이건 꼭 알아둬라. 참 배달은 무조건 그 팀 막내가 하는 거다. 이건 노가다 국룰이여~!

 

말 나온 김에 참 배달 요령도 몇 가지 알려줄게. 하하하. 일하다 보면 정신없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른단 말이지. 오전 8시 45분, 오후 2시 45분에 알람을 맞춰놓는 거야. 그때 참 가지러 갔다 오면 딱 맞아. 간혹, 참 시간에 예민한 사람이 있거든. 제때 안 가져오면 네가 상상하는 것 이상의 쌍욕을 먹을 수도 있다!

 

그리고 형님들 음료 성향도 파악해놓으면 좋아. 너도 소싯적 많이 마셔본 그 ‘모텔 캔 음료’는 카테고리가 크게 세 가지야. 커피, 탄산, 그 외. 어떤 사람은 꼭 커피 마시고, 어떤 사람은 꼭 탄산만 찾거든. 그런 성향 파악해서 먼저 다가가는 거지. 형님은 커피 드시죠? 여기 있어요. 아~! 형님 거 사이다는 따로 챙겨놨어요. 이런 식으로. 엄청나게 좋아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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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는 내 말을 듣더니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냐는 거다. 뭔 놈의 알람을 맞추고, 무슨 음료 성향까지 파악하느냐고.

 

“그게 뭐 어렵냐?? 몇 번 배달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파악되는 건데? 그리고 그런 거에 자존심 상해하거나 크게 의미 둘 필요도 없어. 말 그대로 요령인 거야. 어차피 해야 하는 일, 조금만 신경 써서 하는 거지. 그러면 형님들한테 귀염 받고 금방 친해질 수 있다고. 그게 결국 나한테 돌아온다니까? 결과적으로 내 몸과 마음이 편해지는 거야.”

 

“그러면 간식은 누가 사주는 거야? 돈 모아서 사 먹는 거야?”

 

“내 돈 주고 사 먹을 리가 있나. 아무리 노가다판이라도 그건 아니지. 큰 현장은 회사에서 사주는 거고, 작은 현장은 오야지가 사주는 겨. 근데, 이걸 가지고 또 치사하게 구는 회사가 있다니까?? 이번 주 참값이 너무 많이 나왔다는 둥, 1인당 빵 하나, 음료 하나씩 준수해달라는 둥 얼마나 잔소리를 한다고. 어이없지 않냐? 초코파이가 빵이냐? 모텔 캔 음료가 음료야? 멸치 구워주면서 생선구이라고 할 사람들이라니까, 진짜!”

 

‘모텔 캔 음료’ 비싼 게 개당 약 350원이다. 싼 거는 200원밖에 안 한다. 도매로 사면 아마 더 저렴할 거다. 초코파이? 도매로 사면 개당 200원도 안 된다. 그러니까, 초코파이 한 개+음료 한 캔 가격 겨우 500원 안팎이다.

 

회사 말마따나 1인당 하나씩 준수하면 하루(오전 한 번, 오후 한 번)에 천 원이다. 한 팀에 15명이라 치고, 25일 출근한다고 계산하면 한 달 참값이라고 해봐야 한 팀당 375,000원이다. 넉넉하게 잡아도 50만 원은 안 넘을 거다.

 

적게는 수억 원, 많으면 수백수천억 원 왔다 갔다 하는 게 건설 현장이다. 참값 아껴서 퍽이나 부자 되겠다!!!!! 내가 이 말을 지난 현장 소장한테 해줬어야 하는데 말이다. 참 가지고 어찌나 인부들을 들들 볶고 쩨쩨하게 굴던지.

 

어릴 때 집이 가난했다. 먹을 게 귀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햄버거라는 걸 처음 먹어봤을 정도다. 지금도 그날의 기억이 또렷하다. 생일이었다. 엄마가 롯데리아에서 새우버거를 사줬다. 오. 마. 이. 갓!!!!!!!!!!!!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 존재한다고??? 그래서 지금도 나의 ‘쏘울푸드’는 롯데리아 새우버거다. 우울하고 힘들 때 한 번씩 먹는다.

 

아무튼, 그 시절 먹을 게 귀하다 보니 형과 가끔 간식 때문에 싸웠다. 그때마다 엄마가 늘 강조했던 말이 있다.

 

“이놈들아!!! 이 세상에서 제일 못난 놈이 먹을 거 가지고 치사하게 구는 놈이다. 나중에 커서도 마찬가지다. 먹을 거 가지고 옹색하게 구는 건 작은 어른이나 하는 짓이다. 그런 어른이 되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