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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응서라는 사람이 있었다. 조선에서 병마절도사급으로 출세한 사람으로는 보기 드문 평안도 출신이다. 사실은 더 높은 자리에 가야 할 용장으로, 혁혁한 공을 세웠다. 광해군 때 명나라의 강요로 출병한 조선군을 이끈 부원수가 바로 김응서였다(그때는 김경서로 개명). 그는 후금의 포로가 돼서도 조선을 위해 스파이 활동을 하다가 적발돼 처형당한다. 유능한 충신이요 충실한 군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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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김응서는 조선을 망하게 할 뻔한 사람이기도 했다. 정유재란 발발 전 소강상태였던 전황 속에서 그는 고니시 유키나가와 긴밀히 소통했다. 무슨 내통을 했다는 것이 아니다. 전쟁 중에도 사신은 오고 가는 법이고, 혈전을 치른 전후에도 대화할 상대는 필요한 노릇이니까, 고니시를 일종의 정보 교환과 교섭의 파트너로 삼았다는 뜻이다.

 

그런데 고니시 진영을 통해서 중대한 첩보가 날아든다.

 

“고니시 장군은 이번에 강화가 깨진 건 가토 기요마사 이놈 때문이고, 이놈을 끝장내고 싶다고 하셨소. 며칠 후 모월 모일 쯤 가토가 바다를 건너올 겁니다. 수군이라면 조선 수군 아닙니까. 놓치지 마시오.”

 

김응서와 고니시 진영을 오가던 이중간첩 요시라의 첩보였다. 정보 자체는 틀린 게 아니었다. 고니시와 가토가 서로 씹어먹고 싶어할 만큼 사이가 안 좋았고, 이는 조선 측에도 알려져 있었다. 가토가 요시라의 말과 비슷한 시기 조선으로 건너온 것도 결과적으로 사실이었다.

 

다만 정보가 '사실'이라는 것과 '유용하다'는 것에는 천양지차가 있다. 마음 같아선 부산포 앞바다에 무적의 수군이 출동하여 싹 쓸어버렸으면 좋겠고, 책상에서 군대 놀음하는 조정 관리들은 그러기를 바랐지만, 이순신은 그렇지 못했다.

 

“사실이라고 해도 부산포까지 가는 길목에 안골포니 가덕도니 일본군이 진을 치고 있는데, 어디서 물을 긷고 쉴 수 있나? 거기다가 가토의 군대와 부산포 일대의 일본군이 합세하면 우리는 독안의 쥐가 되는데?”

 

이순신은 마지못해 부산포 쪽으로 나아가긴 했지만 적극적인 공세는 취하지 않고 돌아왔다. 또 가토는 무사히 조선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또 요시라가 입을 놀린다.

 

“가토가 배로 건너오다가 풍랑을 만나 작은 섬에 고립된 적이 있었다고! 내가 통제사 이순신한테 연락까지 했다고! 그런데 통제사가 의심하고 두려워하여 오지 않아서 일을 망치고 말았다고! 우리 고니시 장군 말씀이오! 조선이 하는 일은 왜 늘 이 모양인가!”

 

당시 김경서는 경상우병사. 즉 최전방의 조선군 사령관이었다. 이쯤 되면 그는 단순히 적의 말을 옮기는 것이 아니라 전략적 전술적 판단을 해야 한다. 어디까지 자르고 어디까지 보고를 올려야 하는지, 사태가 진전됨에 따라 무엇을 해야 하며 어떤 정보를 믿어야 하는지 판단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걸 못하면 아무리 용장도 천하의 졸장이 될 뿐이다. 슬프게도 용장 김응서가 바로 그랬다.

 

그는 요시라의 말을 그대로 조정에 올렸다. “고니시가 조선이 하는 일은 왜 이 모양이냐고 그랬답니다.”라고까지 올렸다. 선조는 노발대발한다.

 

“줘도 못먹냐. 고니시가 우리 하는 게 왜 늘상 이 모양이냐고 했다니 이게 웬 망신이냐. 이순신 이거 통제사로 앉아서 겁만 늘어가지고는!”

 

김응서는 충신이었고 용장이었으나 판단을 그르쳤다. 그리고 그는 남의 말을 그저 옮기는 게 정당화되는 지위의 사람이 아니었다. 최전방에서 적과 맞선 사령관이 보내는 보고서에는 그만한 무게가 실리는 법이고, 그가 한 마디 한 마디 내뱉는 말은 수만 명이 귀를 쫑긋거리는 귀중한 정보가 된다.

 

그런 그가 “고니시가 그랬대요.” 하면서 조정에 고한 것이다. 누가 이를 탄핵이라도 했다면 그는 이렇게 얘기했을 것이다. “아니 내 얘기가 아니라... 요시라가 틀린 말한 것도 아니고... 고니시가 그렇게 말한 게 뭐 이해가 안되는 것도 아니고...” 요시라의 정보가 틀린 것도 아니고 고니시는 진심으로 조선을 탓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정보는 가토 하나 잡자고 조선 수군을 말아먹을 수도 있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여기서 김응서의 변명이 통했을까.

 

높은 자리에 오른 이, 그리고 오르고 싶어하는 이의 귀에는 수많은 말들이 쏟아진다. 그 말의 무게를 가리고, 진위를 살피고, 유불리를 가늠하고 악덕과 미덕을 고르는 게 그 사람들의 일이다. 수십만이 그 입을 바라보는데 엉뚱한 말을 뱉아 놓고 “내 생각이 그런 게 아니라 누가 그러더라고?”라고 말한다면 그는 그 자리를 감당할 자격과 역량이 아님을 스스로 인정하는 격이 된다.

 

군사 훈련을 시키면서 어느 군관이 경상우병사에게 “훈련 일자가 정해져 있사온데 까짓거 밤낮없이 잠 안재우고 1주일 굴린 다음 휴식을 주면 좋아할 것이옵니다.”라고 속삭이고 경상우병사가 작전회의에서 “그런 의견이 있더라구요.”라고 장계에 쓰고 작전회의에서 얘기한다면 그가 과연 온전한 장군일까.

 

김응서는 그래서 이순신을 죽이고 조선을 망칠 뻔 하였다. 용맹하고 충직한 장수였으나 경솔했고 자신의 책임의 무게를 망각했던 것이다. 이 김응서의 실책을 두고 유성룡의 식객이 지은 시가 징비록 부록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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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잘못 들어갔다.

오류임. 암튼 오류임.

 

 

倭嗾伯而十侍艮 왜주백이십시간

왜놈들 병마절도사 꼬드기니 열 명의 신하들이 일 그르치네

 

日暮舵皆駭慘奈 일모타개해참내

날은 저물고 배의 키잡이는 다 어지러우니 슬프다 어이할꼬

 

慌當海謀峈何泥 황당해모락하니

황당함이야 바다만큼 넓고 음모의 산더미는 얼마나 더러운지

 

耐假閑靺安理來 내가한말안이래

가짜를 견디고 오랑캐 막아내야 평안한 이치가 올 터

 

何夷鼓謠揚反衙 하이고요양반아

어찌하여 오랑캐 노래와 북소리는 저리 양양하고 우리 관아를 뒤집는가

 

戴痛呤殷倭悍大 대통령은왜한대

고통을 머리에 이고 읊조리나니 넘쳐나는 왜놈들 사나움 크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