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모함의 문턱을 낮춘 경항공모함
원래 항공모함은 강대국의 상징 같은 존재였다. 그 문턱을 낮춘 게 영국의 인빈시블이었다.
인빈시블
더 정확히 말하자면, 해리어가 나오면서 너도 나도 항공모함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비싼 돈 주고 정규항모 사느니 우리 수준에 맞게 경항모 사자.”
“그래그래. 함재기는 수직이착륙기 사서 남들한테 우리도 항모 있다 자랑만 하면 되지 뭐.”
(포클랜드 전쟁에서 해리어가 ‘쓸만하다’란 평가를 받으면서 경항모에 대한 꿈을 꾸게 된 거다. 항공모함은 함재기를 결정하지 않고는 나올 수 없는 무기다. 정규항모처럼 커다란 배를 운영할 수 없는 국가들에게는 작은 배에서도 함재기를 띄울 수 있다는 희망을 준 해리어가 고맙기 그지없었을 거다)
항공모함의 무기는 갑판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항공기를 띄울 수 있는 갑판이 항공모함의 무기다. 즉, 항공모함보다 더 중요한 게 탑재기란 의미다.
영국이 인빈시블을 들고 나오기 전까지의 '항공모함'은 캐터팔트(Catapult)가 달린 대형 항공모함을 말했다. 항공모함이란 게 아무리 커봤자 300미터 정도다(전장 350미터, 선폭 78미터 정도). 이걸 다 사용해도 모자른 판에 쓸 수 있는 갑판의 길이는 80~90미터다(비행기 주기도 해야 하고, 무장도 달아야 하고, 착함하는 애들 위해서도 갑판을 남겨놔야 해서 실제 쓰는 건 이 정도다). 문제는 비행기가 공중에 뜨기 위해선 최소 500~600미터의 활주로를 달려서 어느 정도의 속도를 얻어야 한다는 거다.
그래서 생각을 달리한다.
“비행기를 쏘아 올리자!”
그렇게 나온 게 캐터팔트다. 이 녀석은 전투기를 80미터 거리 안에서 시속 200킬로미터로 날아오르게 만든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전투기를 배 위에서 이착함시키기 위한 방도이다.
항공모함 함재기는 같은 기종, 즉, 공군에서 사용하는 기종보다 비싸다. 우선 랜딩기어를 강화해야 하고(이착함을 위해서는 기체 곳곳이 강화된다. 캐터팔트로 쏘아올릴 때 걸리는 하중만 80톤이다), 바닷물에 삭지 말라고 방염작업도 해야 한다. 항공모함에선 대단위 정비가 어렵기에 미국은 아예 부품을 파트 단위로 나눠서 설계했다. 나중에 고장이 나면 그 파트를 통째로 교환한 다음에 지상에 와서 그걸 뜯어서 고치겠다는 계산이다. 이러다 보니 같은 기종이라도 해군에 들어가는 비행기가 더 비싸다.
결정적으로 착함이 문제다. 이함은 로켓을 달든 쏘아 올리든 해서 어떻게든 해보겠지만, 문제는 착함이다. 항공모함 함재기들은 정상적인 방법으로 착함할 수 없다는 걸 알고는, 와이어에 고리를 걸어 강제로 멈추는 방법을 생각한다.
니미츠급을 기준으로(가장 큰 항공모함이니까) 함재기에게 허용된 착함 거리는 225.6미터다. 이중 100.6미터는 와이어가 늘어나는 거리니까, 실질적으로 항공기가 사용할 수 있는 길이는 125미터고, 실질적으로 항모 착륙을 사용하는 착륙용 거리는 70미터 정도다. 이 70미터를 진입각도 3도를 유지하면서 시속 240킬로미터 내외로 들어가 착함한다? 말이 좋아 착함이지 내리 꽂는 거다. 이러다 보니 함재기는 이곳저곳을 강화할 수밖에 없었고, 가격은 계속 올라갔다.
비행기도 비싸고, 이 비행기를 운영하려면 최소한의 갑판 사이즈가 나와야 하고, 캐터팔트를 달아야 하기에 항공모함은 비쌀 수밖에 없다(러시아나 중국처럼 캐터펄트 대신 스키점프대를 달고 올릴 수도 있지만, 이 경우에는 이륙중량의 제한 때문에 무장 등 다른 부분을 희생해야 한다. 항공기 운영에 많은 제약이 따른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를 한 번에 뒤집을 만한 전투기가 등장한다. 바로 수직이착륙기다.
해리어는 언감생심 항공모함을 꿈꿔보지 못했던 이들에게 항공모함의 꿈을 실현시켜줬다. 대표적인 예가 태국이다.
차크리 나루에벳('위대한 차크리 왕조'라는 뜻)이라 불리는 항공모함이 있다. 이 항공모함의 역사는 좀 기구하다. 원래 태국 군부는 헬기 운영이 가능한 상륙수송함을 사기 위해 스페인 바잔 조선소와 접촉을 했는데, 스페인 쪽에서 역제안을 했다.
“너희들 예산에 쪼금만 더 보태면 항공모함 살 수 있는데, 어때?”
“항공모함이 좋은 건 알겠는데, 우린 함재기 살 돈이 없어. 함재기 없는 항공모함은 앙꼬 없는 찐빵이잖아.”
“기분이다! 항공모함 사면 함재기는 덤으로 껴줄게. 살래?”
“진짜?!”
당시 스페인이 해리어Ⅱ로 갈아타면서 남아있던 초기형 해리어가 있었다. 스페인은 이걸 태국에게 주겠다는 거였다. 태국은 이때 훅 넘어갔다.
“내가 항공모함을 운영할 수 있다니...”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해리어를 도입한 거까지는 좋은데, 이게 초기형 해리어이기 때문에 수명이 간당간당했다는 거다. 얼마 가지 않아 해리어는 노후화되어 도태된다. 그 다음은? 함재기 없는 항공모함은 앙꼬 없는 찐빵이다.
문제는 함재기다
여기까지 왔으니 가장 큰 문제가 뭔지를 알게 될 거다. 그렇다, 함재기다! 항공모함의 갑판은 함재기를 운영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지스함이 갑판 이곳저곳에 미사일을 쟁여놓는 것처럼 항공모함은 함재기를 쟁여놔야 한다. 문제는 처음 설계부터 ‘어떤’ 함재기를 운영할지를 결정하고 항공모함을 만들어야 한다는 거다.
해리어와 같은 수직이착륙기를 상정하고 만든 항공모함은 그 뒤로 일반적인 항공기, 그러니까 직선으로 활주한 뒤 이륙하는 전투기를 운영하기 곤란하다는 거다. 경항공모함을 만든다는 건 일반적인 항공기를 운영하는 건 포기한다는 의미다. 이 경우 선택의 폭은 확 줄어든다. 아니, 하나의 선택 밖에 없어진다. 바로 F-35B이다.
F-35B
F-35B는 F-35 시리즈 만악의 근원이다. 프로젝트 비용이 올라간 이유도, 프로젝트 기간이 길어진 이유도 바로 이 녀석 때문이다. 그만큼 수직이착륙 기능을 다는 건 어렵다. 문제는 수직이착륙을 한다는 이유로 나머지의 기능에 상당한 제약이 가해질 수밖에 없다는 거다.
F-35B는 이름만 F-35지 A형이나 C형에 비해 상당한 차이가 있다. 전방에 리프트 팬을 달아야 하기 때문에 기관포도 달려있지 않고, 폭장능력도 A, C형의 절반 정도다. 작전반경도 짧다. A형이 1,100킬로미터인데 반해 B형은 800킬로 수준이다.
수직이착륙을 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상당부분 제약을 받아야 한다. 하긴 수직이착륙이 보통 기술인가?
이러저러한 제약이 있지만, 어쨌든 스텔스 성능을 가지고 있는 수직이착륙기다. 이 부분은 분명 높이 사야 할 대목이다. 그러나 이건 운용하기 위해서는 상당부분 골치를 앓아야 한다.
이전의 해리어가 경차나 소형차 수준이라면, F-35B는 중형차급이다. 당장 기존의 경항공모함에서 운용하기에는 덩치가 있다는 소리다. 게다가 날개도 접히지 않는다. 항공모함을 보면 알겠지만, 작은 갑판 위에 최대한 많은 항공기를 싣기 위해서 날개를 접고, 접을 수 있는 모든 걸 다 접었다. 영국의 마지막 정규항모였던 아크 로열을 보면 F-4팬텀이나 버캐니아 폭격기가 접을 수 있는 모든 걸 접었다. 레이돔도 접고, 꼬리도 접고, 접을 수 있는 모든 걸 접어서 공간을 만들었다.
그러나 F-35B는 접을 수가 없다. 게다가 스텔스기이기 때문에 최소한의 여유 공간이 있어야 한다(접촉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그리고 명색이 수직이착륙기인데, 수직으로 내릴 때 문제가 좀 있다. F-35B는 수직으로 착륙할 때 무장과 연료가 4톤이 넘어가면 문제가 발생한다. 간단히 말해서 무게를 줄여서 착륙하란 소리다. 무장을 하고, 연료를 채우고 가다가 다시 돌아오려면 뭐든 버려서 착륙 중량을 맞춰야 한다는 소리다. (무장이나 연료를 버리기 싫으면, 갑판에 내리 꽂히듯 착륙하는 형태가 돼야 한다. 참 복잡다단한 사연이 있는 기체다)
무장이나 많이 달고 갈 수 있냐면 그것도 아니다. 내부 무장창이 작아서 일반적인 2000파운드급 JDAM 같은 건 달 수 없다. 달려면 스텔스 기능을 포기해야 한다. 리프트팬(수직이착륙을 하기 위한 팬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때문에 내부 무장창을 확대하는 것도 어렵고, 다른 형식의 F-35보다 도입비용, 운영유지 비용이 비싸다.
(수직 이착륙용 리프트팬부터 시작해서 별별 희한한 것들이 다 들어가 있는 데다, 해군용이라 해수 방염을 위한 도색부터 시작해서 돈 들어가는 게 한둘이 아니다. 다른 형식보다 도입대수도 적다 이러니 비용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 공군에서 운용중인 F-35A랑 비슷한 기체라 생각하면 큰코 다친다. 최대이륙중량만 봐도 확 다른데, F-35A가 31,751킬로그램인데 B형은 27,215킬로그램이다. A형이 2천 파운드 JDAM 2발을 달고 날아가 떨어뜨릴 수 있는 것에 비해 B형은 1천 파운드 급 2발을 달고 날아간다. 그러나 도입비용이나 운용유지비용은 B형이 훨씬 더 비싸다. B형이 자랑할 수 있는 한 가지는 수직이착륙 뿐이다)
규모의 경제도 어려운 게 이 녀석은 그나마 숫자가 적은 F-35 중에서 가장 숫자가 적은 존재이다. 일단은 반은 지고 들어가는 경기란 의미다.
F-35B를 파는 곳은 미국의 록히드 마틴이다 가뜩이나 비싼데, 독점이다. 게다가 이 녀석은 스텔스이기 때문에 기밀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공군에서 운용하는 F-35A를 두고,
“내 것인 듯 내 것 아닌 미국 것.”
란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우리가 함부로 뜯을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지금 소티 생성률을 걱정할 때가 아니다). 2021년 현재 경항공모함을 꿈꾸는 대부분의 나라들은 모두 다 F-35B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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